복음과 믿음
열왕기상 6:23-28 / 천사의 작업장 본문
천사의 작업장
이근호
2025년 1월 29일
본문 말씀: 열왕기상 6:23-28
(6:23)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고가 각각 십 규빗이라
(6:24) 한 그룹의 이 날개는 다섯 규빗이요 저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 날개 끝으로부터 저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6:25)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한 척수, 한 모양이요
(6:26) 이 그룹의 고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일반이라
(6:27)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폐었는데 이 그룹의 날개는 이 벽에 닿았고 저 그룹의 날개는 저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6:28) 저가 금으로 그룹에 입혔더라
성전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은 성전을 지었다고 우깁니다. 심지어 성전에 들어 있는 천사상까지 사람 손으로 지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천사가 성전 안을 지키는 수호 천사가 됩니다. 창세기 3:24에 나오는 말씀, 즉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고 싶은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생명나무 과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있음’이며 무엇이 ‘없음’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계속 있는 것은 주님과 악마입니다. 곧 ‘여자의 후손=주님’과 ‘뱀의 후손=악마’는 영원합니다.(창 3:15) 반면에 인간은 ‘흙’이 되어 소멸합니다.(창 3:19)
이로서 이 세상은 계속 존재하는 주님과 악마의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 목적인 악마에 대한 영원한 저주와 주님에 대한 영원한 찬양을 성사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백성)을 통해서 영원한 찬양을 받고 싶으신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마귀의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시면서 그 성전의 최종 막힌 공간, 곧 지성소를 두 천사가 선점해서 차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두 천사 사이에는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나오고 돌아오는 자리가 생명나무를 지키는 천사(그룹)들로 하여금 수호토록 하신 겁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참여하도록 조치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죄인이요 죽은 자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취지는 이러합니다. 죄를 지었다고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죄 용서’를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그만큼 인간은 벌써 자신이 죄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죄는 자신의 ‘있음’부터 인식됩니다. 본인이 엄연히 그 ‘있음’의 가치와 의미를 망치지 않으려고 발바둥칩니다. 흙이 되어가는 주제에 그래서 나름대로 소중하다고 자부합니다. 이런 자기 존재 의미는 이미 악마로부터 부여받은 욕망의 질(質)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네가 신처럼 되리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성전 건축을 허락맞은 이스라엘 사람이나 솔로몬도 예외가 아닙니다. 만약에 오늘날 사람들이 솔로몬 성전으로 관광하려 간다면 동쪽 입구로부터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뜰에 커다란 제단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손과 발을 씻는 물두멍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3층 높이로 곧게 서 있는 두 기둥을 성전 현관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각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왕상 7:21) 그리고 가이드는 계속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벽면에 있는 종료나무 문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지성소를 구경하게 되는데 거기서 거의 5m나 되는 두 천사상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라면 그냥 “거기 두 천사상이 있네”라고 보고는 돌아서서 관광상품 파는데 가이드가 데리고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상이 있는 곳, 바로 거기에서 성전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동쪽으로 들어와서 서쪽에서 막히게 됩니다. 하지만 성전을 만드신 하나님의 취지를 살린다면 그저 관람하는 것으로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천사가 저기 있다면 나는 없다”가 됩니다. ‘천사도 있고 나도 있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천사가 있다면, 곧 영원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로 인하여 우리는 결코 영원하지 않고 곧장 없어져도 마땅한 존재가 됩니다. 즉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사의 최종 공간에 천사를 두시는 겁니까? 그것은 이미 인간은 영원한 존재인 악한 천사 악마의 수중에 놓여져 있어서 인간에게 마치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부축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성전이 있어도 결국 그 성전이 불타버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뭘까요? 이사야 44:14에서 우상은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또 시편 115:4-7에서는 우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알려주십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
그런데 이러한 우상 표현은 지금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는 평가 그대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하나님의 생명나무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어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영원히 하나님께서 사수하시려는 생명의 가치를 훼방하고 방해하는 중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바로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우상의 진수입니다.
반면에 천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바로 업무 달성을 위해 천사는 가차없이 심판을 해버립니다. 따라서 성전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⒈ 성전이 있고 천사도 있다.
⒉ 성전이 없어지고 천사는 있다
⒊ 성전이 없어지고 천사는 심판을 감행하고 성신은 있다. (겔 10:18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⒋ 성전은 없고 주님은 오신다
⒌ 성전도 없고 주님도 떠나지만 성령은 오신다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⒍ 성령은 계시고 성전도 새로 생기고 주님도 계시고 천사도 옆에서 찬양한다.
바로 이와 같은 성사된 성전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골로새서 3:5에는 오늘날의 우상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주십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완성된 성전 안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이 가능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은 내가 어느 장소에서 발견되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새 성전 안에서 비로소 내가 누군지를 안다. 나는 죄인이었다. 용서를 수긍하는 죄인이다.” 여기서 무한한 웃음이 계속 나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성전 건설에 참여하게 된 것을 무한히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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