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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열왕기상 4:20-21 / 부귀 영화의 토대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열왕기상

열왕기상 4:20-21 / 부귀 영화의 토대

정인순 2025. 1. 2. 11:35

음성 동영상 Youtube

 

부귀 영화의 토대

 

이근호
2025년 1월 1일              

 

본문 말씀: 열왕기상 4:20-21

(4:20)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4:21) 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을 만나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부귀 영화가 솔로몬의 은퇴와 함께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도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부귀 영화는 솔로몬에서 온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깔고 앉아 있는 다른 토대에 의해서 주어진 겁니다. 그리고 그 토대의 진실을 위하여 솔로몬 시대가 저물면서 같이 소실되어야 합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이것이 ‘탈피 대상’이라고 합니다. 대충 관찰하면 거기에 있어 그 상황을 장악한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시선을 집중하면 그 대상은 그 현장에서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마치 신문지의 글자를 조금 떼어서 보면 뚜렷하지만 가까이가면 그냥 흑백의 자국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복의 토대를 그 시대에 솔로몬이 깔고 앉아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것도 한시적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본래의 자리는 오래 전에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서 예고된 현실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이 예언된 내용대로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인구가 엄청 불었습니다. 영토는 어떻게 될까요?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0)

이 영토 규모도 얼추 솔로몬 시대와 비슷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현실을 만들어놓으시고 눈에 보이는 솔로몬의 공로인지 아니라 언약의 공로인지를 일관된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으시고 물으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복을 고맙게 받을 것이라고 여기고 감사할 준비를 할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관점에 본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여망을 담고서 조성해놓은 일방적으로 ‘자기를 위한 시선’입니다. 언약이 이스라엘 내부를 걸쳐서 오면서 하나님께서 발굴하고 들추어내고자 하는 바는 미리 히 예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 9:4-6)

즉 언약이 언약대로 현실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필히 ‘목이 곧고 교만한 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자신의 애씀과 침착함과 조심스러움과 세밀하게 각가지 상황을 고려한 결과라고 여깁니다. 그러니 이들은 현 자신이 누리고 지니고 있는 것이 자신의 완악함과 교만으로 가리워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편 73: 4-6에 의하면,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즉 내가 수고하고 고생해서 얻은 것을 ‘내 것이다’고 주장하는 것이 완악함과 교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태도가 언약 홀로 성취해가는 일관성이 원칙이 가리고 공격하는 성질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나 것 위주’가 되어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새떼가 비행기 엔진 터빈에 들어가서 승객이 179명이 죽었을 때, 그 누구도 인간의 비행체에 일방적으로 당한 새떼의 죽음에 애도를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새때나 나무들이나 해와 달과 별들은 모두 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자라나고 있고 때가 되매 죽습니다.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6-29)

반면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한 세상’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원래 주인이 오게 되면 그들의 본성과 본심과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즉 예수님께서 바로, 모든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의 거대 동체 속에서 태클을 걸기 위해 가장 중심 부위에서 죽임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나 이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빌 2:5-9) 이것이 바로 언약적으로 “다 이루심”의 성과입니다. 이 분에 의해서 인류는 둘로 분리됩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에 의해서 강제로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왔습니다.(창 19:29) 천사의 강제조치입니다. 그러나 이 가족 내에서는 또 분리가 일어납니다. 롯이 가담되지 못하도록 하나께서 술을 마시게 되는 와중에서 언약과 상관없는 두 민족인 ‘모압’과 ‘암몬’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육신에 대한 집착은 삼손의 경우도 해당됩니다.

하지만 삼손은 강제로 이방민족으로부터 힘의 원천이라고 여긴 것을 제거당하므로서 진정한 언약의 힘은 ‘선지자 자신의 죽음’에서 바탕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주게 됩니다. 늘 ‘마땅히 죽을 수 있기에’ 비로소 언약의 성취가 보이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언약의 현실을 우리 존재가 막히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