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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304강, 305강) 악함 , 과거의 망령 200317 본문

유튜브 강의(이근호)/유튜브 강의

(304강, 305강) 악함 , 과거의 망령 200317

정인순 2020. 3. 17. 18:31



303강          음성                  동영상


304강          음성                  동영상



녹취:이하림

305강-YouTube강의(과거의 망령 시편84)

20200317-이 근호 목사


제305강, 제목은 ‘과거의 망령’. 사람은 자기 몸 중심으로 살다 보니까 자기 몸이 느끼는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어요. 시간의식 자체가 현재입니다. 시간이 있고 현재, 과거,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의식을 느낀다는 자체가 바로 ‘지금’, 영어로 now죠, 현재를 뜻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현재에 입각해서 어떤 기억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가지고 ‘과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에 준해서 미리 내일, 모레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걸 가지고 ‘상상’이라고 합니다. 미래는 상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미래라는 것을 상상할 때 뭔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기억에 준해서 상상하죠. 그리고 그 기억이라는 것은 현재의 기억이겠죠. 그러니 인간의 시간의식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이렇게 나누긴 나누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그 모든 생각은 현재 내가 생각하는 그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심지어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되죠.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은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가 다 있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의 생각을 편집하고 그것을 소설로 구성하면서 내놓은 것이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나의 미래다’ 그렇게 정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사실 현재만 있기 때문에 과거라는 것도 없고 미래라는 것도 없는 거예요.

다만 그 과거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이죠. 과거에 대한 기억, 그걸 더 분명히 말해서 내 현재가 만들어낸 기억이 과거가 되는 거예요. 곧 과거라는 것은 현재 내 생각을 나타낸 것, 반영하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제목이 ‘과거의 망령’인데 사실은 과거란 없는 건데 그 내 과거에 있는 기억이 지금의 나를 굉장히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그리고 불안케 하는 요소가 됩니다.

그럼 성경에서 나오는 신앙인들과 우리가 똑같은 인간인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느냐? 하나님의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시간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했는가? 거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84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되어 있어요.

지금 여기 시편84편에 나오는 이 신앙인은 과거의 기억이 있어요. 있고 미래의 희망도 있지만 지금 무엇에 흠뻑 빠져 있느냐 하면 주와 함께 있어서 주님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주님이 계시다는 점. 내가 누구한테 고맙고 감사할 수 있도록 해주신 이 현재에 대해서 되게 감격하고 있는 모습으로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시편 84편을 계속해서 보게 되면 10절,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이렇게 되어있어요. 다른 공간에 있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주의 장막에 있는 것이 그렇게 좋다는 거예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의 천 날보다 낫다” 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 이야기를 쉽게 가기 위해서 지금 저와 여러분들의 나이가 한 98세라 합시다. 그리고 숨이 헐떡거리면서 곧 숨이 끊어진다 합시다. 그렇게 될 때 과거가 어떻게 됐든 간에 지금 숨을 헐떡거리는 이 순간 결국 우리에게 남아있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이 현재밖에 없어요. 숨을 헐떡거리고 곧 숨이 넘어가고 죽음으로 넘기우는 그 현재만 그 순간 느낄 뿐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순간과 지난 모든 순간을 한번 비교해보자, 어느 것이 나은지를. 세상의 천 날보다 지금 이 순간, 이 날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 날이 즐겁다는 겁니다. 이게 감사하다는 거예요. 고맙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신앙인의 진정한 즐거움이고 고백입니다.

1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주님이 없는 사람들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 인생 내가 책임지고 내가 꾸려나가야 돼요. 남을 의지한다 하지만 사실은 남을 이용하는 거죠.

성경에 봐도 어린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간다 했는데 어린아이의 주특기는 자기 가까운 부모나 어른들을 의지하는 겁니다. 자립성이 전혀 없어요. 그 어른한테 기대고 의지하고 부탁하고 매달리고 보호받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면서 어린아이들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아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있는 보호자를 늘 느끼며 살아가죠.

천국이라는 곳이 그런 겁니다. 스스로 인간이 자립하고 독립선언하는 데가 천국이 아니에요. 천국은 “내가 의지하는 분은 저 분입니다.”라고 지목할 수 있는 관계. 그 관계로 영원히 이어지는 나라. 그러한 세계.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천국가서 잘하겠다 하는 건 소용없고 지금 있을 때부터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독립하려는 생각보다, 내 자아를 가지고 자랑질 하려는 그 생각보다 시편84편 2절 말씀처럼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이것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거예요. 세상 사람한테는 내가 여기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자기가 제일 중요하니까.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있는 최종 마감은 바로 내가 여기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실질적이고 실제적이고 확실한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여깁니다, 불신자들은.

그런데 신앙인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더 분명하고 더 좋고 더 실제적인 것은 바로 나의 왕, 나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태어난 곳이 자기 마음의 보금자리이고 마음의 고향이죠.

그러나 신앙인들은 자기가 태어난 자리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원초적으로 원래적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이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제단, 하나님의 집이 원래 내가 시작된 지점이라고 보는 겁니다. 시작한 곳이 하나님의 품속에서부터 시작했기에 다시 하나님의 품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품속에서 만들어낸 백성으로서의 마땅한 마음가짐이 되는 거죠.

자기가 여기 있음 자체를 가지고 행복하지 않고 주님과 더불어 주의 제단에 내 집이 있음을 참새처럼, 마치 제비처럼 주의 집에 한 몫을 거기서 마련해주셨다는 이 사실에 굉장히 성도는 감사하고 마음의 안정감을 얻습니다. 안도감을 얻습니다.

과거의 망령에 휩쓸릴 필요 없어요. 과거에 어떻다, 거기에 마음 둘 필요 없습니다. 지금 내가 사모하는 분이 누구냐. 그 분으로 인하여 지금 바로 천국생활이 이미 시작된 겁니다.   



304강-YouTube강의(악함 잠언8:36)

20200317-이 근호 목사


제304강, 제목은 ‘악함’. 성경에 악함이 있다는 것은 곧 악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 되겠죠. 이 세상에 선도 있고 그리고 악인도 있게 되는 이유가 구약성경 잠언에 의하게 되면 지혜가 천지를 창조할 때에, 이 땅이 생기기 전에, 바다가 생기기 전에 지혜가 먼저 있었는데 지혜가 천지를 만듦으로써 비로소 이 땅에 무엇이 의고 무엇이 악인지가 밝혀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미리 말해서 악마의 존재를 악이라고 하고 의는 예수그리스도를 가지고 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세계와 예수님이 저주하는 세계, 악마의 세계, 다른 말로 하면 지옥, 이걸 천지창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는 사실이 잠언서 8장을 통해서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인간이 만들어진 이유는 어떤 것이 의이며 어떤 것이 악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잠언서 8장 35절에 보면,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나’라는 것은 지혜 또는 지혜자, 천지를 만드시기 전에 천지를 만들 때 그 원리원칙을 부여하신 분, 이 분이 바로 지혜가 되겠습니다. 땅이 생기기 전에, 바다가 생기기 전에.

잠언서 8장 23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다” 지혜가 지혜답게 드러내기 위해서 천지창조가 시행되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과학에서는 하늘과 땅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인간이 만들어져서 인간은 하늘과 땅에서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적응하는 존재로만 이해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렇지 않고 천지창조 이전부터, 인간을 만들 때부터 지혜되신 곧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잠언 8장 35절에 보면,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런데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36절에 보면,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예수그리스도 곧 지혜가 기준이 되어서 이 세상에 의인과 악인이 구분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관심사가 ‘어떤 자가 악인이냐’라는 데에 초점이 모아지겠죠. 악인의 특징에 대해서 잠언서 9장부터 계속해서 악인과 의인을 비교하면서 내용들이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만 잠언서 11장에 보면 본격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잠언서 11장 7절에 보면,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 악인이 희망을 품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악인에게 소망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악인도 얼마든지 죽어서 천국가고 싶어하고 악인도 이 땅에서 성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고 그런 것을 늘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악인이 죽게 되게 되면 그 소망도 같이 끊어져요. 자기가 평생 품었던 모든 희망도 같이 날라가버리는 겁니다.

악인의 운명이 그렇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악인의 특징에 대해서 잠언서 끝에 나오는 것처럼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남는 것이 누구밖에 없냐하면 자기 몸뚱아리밖에 남지 않겠죠. 그러니 자기 몸뚱아리밖에 없는 생을 살다가 자기 몸뚱아리가 숨쉬는 것을 멈추고 박테리아나 세균에 의해서 소멸된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희망도 소망도 같이 없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기 전에 지혜가 먼저 있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영원히 사는 인간은 누구냐. 지혜가 내포되어 있는 사람만 살겠죠. 그래서 잠언서 11장 7절에 보면,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진다” 그러면 의인은 어떻게 되는가?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 있어요. 9절,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의인 속에 있는 그 지혜가 의인으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는 거예요.

잠언서 11장 18절에도 마찬가집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역시 인간이 어떻게 대단하냐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노력하냐가 아니라 인간 속에 천지 창조했던 원리원칙, 지혜를 품은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 잠언서 11장 18절에 악인은 허무하다했어요. 허무하다는 말은 헛방이다. 뭔가 있는 것같지만 막상 와서 손에 쥐게 되면 푹하고 꺼져 버리는 겁니다.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지혜가 없으니까 그냥 빈 공간이 되어버리죠. 2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29절에도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30절에 보면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헛된 악인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은, 자기 재물을 의지한다든지 모든 것은 결국은 바람같이 소용없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서 12장에 넘어가면 또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이 나오는데 12장 1절에,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훈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를 좋아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혜 가까이에 오려고 하고 지혜를 들으려고 하고 지혜가 나보다 더 우선된다는 것을 굉장히 고맙고 여기고 그것을 기쁘게 여기는, 비로소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나에게 있지 않고 지혜에 있음을 아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겠죠.

그렇다면 말씀이 있는 이상 그 사람의 인생이라 하는 것은 늘 희망이 있고 기쁨이 있어요. 왜? 복음이 있고 말씀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말씀을 싫어하고 지혜를 싫어하는 악인들, 이 사람은 자기 소망을 목표로 살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안되고 소망대로 안되게 되면 인생사는 것도 고역이고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짜증나기 마련이죠. 자기 소망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안되거든요.

그러면 악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잠언서 12장 1절에 보면,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한다”라고 해서 지혜에 뿌리를 둔 사람은 위에는 흔들리더라도 아래쪽은 흔들리지 않으니까 전체적으로 흔들림이 없는 인생을 산다 이 말이죠.

지혜가 꽉 잡아주니까. 지혜가 기둥, 중추역할을 하니까, 심지역할을 하니까 어떤 인생을 살더라도 그 사람은 지혜,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신 원리원칙이 박힌 채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약속만 자랑하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