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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미국중국인교회 / 20141004 본문

해외 특강/14미국 강의

미국중국인교회 / 20141004

정인순 2014. 11. 21. 19:40

중국인교회

 

녹취:한윤범

 

20141004 미국중국인교회

(강의:이근호 목사)

 

 

방금 읽었던 요한계시록 20장 15절 다시 한 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제가 말은 이렇게 천천히 하는 것도 저한테는 드뭅니다. 왜냐하면 빨리 하는 편인데 천천히 하라고 부탁받았습니다. 그래서 성질 죽이고 천천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한다고 다른 내용 없습니다.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렇게 돼있지요. 두 가지를 이제부터 이야기할 테니까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지 생각해보세요. 첫째,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천국 간다. 그것하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지운다. 여러분, 어느 것이 마음에 더 편합니까? 일번일 겁니다. 또 빨랐어요. 천천히 할게요.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천국 간다. 아무 부담 없이 오케이, 좋아요.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불이 피는 불 연못, 지옥 불에 들어간다. 내용은 똑같은데 이상하게 성경대로 하니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는 일가친척들 중에 고생하는 것이 눈에 훤하게 보이니까 그들을 두고 나 혼자 천국 가니까 천국 가는 나도 마음이 편치 못하는 겁니다. 지금 말 속도 괜찮지요.

 

우리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왕 같은 내용이라면, 좋은 게 좋다고 이왕이면 좋게 여러분,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천국 간다고 좋게 이야기하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통역 어렵겠다^^), 무슨 기분 나쁜 심정이 있어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지옥 불에 간다고 심란하게 이야기해주니까 듣는 우리가 걱정되지요.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인데 천국 갈까요, 지옥 갈까요? 골라잡으세요.” “천국 가겠습니다.” 그렇게 한 게 아니고 사실은 예수님 없었으면 우리는 다 불 못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을 전제로 깔아두기 위해서 이 말씀하신 거예요. 교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것, 뭐 심심하면 가지. 아닙니다. 몰라서 교회 못 나왔든, 알아서 못 나왔든, 관심이 있든, 없든, 그냥 그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지옥 불에 갑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너, 나 아니면 지옥 가는 거야.” 이런 겁니다.

 

마트에서 물건 살 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그래 나는 결정했어. 이걸 사겠어.” 이렇게 한 게 아니고 우리는 이 땅에서 가만있었으면 아무 소리 못하고 지옥으로 쓸려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청소할 때 쓰레받기에 쓰레기를 빗자루로 담습니다. 그 다음에 그걸 쓰레기통으로 가져가지요. “쓰레기야 미안하다. 더러운데 숨 막히는 곳에 고생해라. 삼가 위로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싹 쓸어버리죠. “쓰레기야, 미안하다. 내가 눈물난다.” 이런 것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안 찾아왔으면 지옥 불로 그냥 가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네가 선택하는 능력이 없는데 내가 네게 조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네가 지옥 가도 상관없는데 특별히 불쌍히 여겨서 너를 지옥에서 빼내줬으니까 네가 선택 잘해서 이런 식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일방적으로 불쌍히 여겨서 천국 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거리에 거지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거지를 봤어요. 안 줘도 되는데 돈을 꺼낼 때 거지는 앉아서 동전 말고 지폐를 바라는데 그 사람은 부스럭거리다 껌을 꺼내서 씹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가는 것도 내 마음이에요. 그런데 거지가 착각한 거예요. 저렇게 오래 걸리는 걸 보니까 큰 돈 주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냥 가버렸어요. 첫 번째, 거지가 화낸다는 것이 옳습니까, 그릅니까? 거지는 그 사람에 대해서 화낼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말고. 그것을 불쌍히 여김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거지는, “잘 먹고 잘 살아라. 에이 재수 없어.”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뒤늦게 동냥을 줬을 때 그 거지는, “안 줘도 될 분이 주셨구나.” 이런 것이 긍휼을 받은 것이란 걸 알게 되지요. 바로 주님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주시기 위해서(이제부터 중요합니다) 지옥 가는 사람들을 우리 곁에 배치해두신 겁니다. 솜씨 없어서 지옥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큐가 낮아서 지옥 간 것도 아니고 성실치 못해서 선택을 잘못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과 지옥 가는 것은 우리 주님 마음대로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천국, 안 줘?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은 지옥으로 분류하신 겁니다.

 

여러분, 땡잡았습니다. 우린 땡잡았어요. 내 행함도 아니고 열심도 아니고 나의 착함도 아니고 주님께서 그냥 갈 줄 알았어요. 그냥 갈 줄 알았는데 뒤돌아서서 긍휼을 주시는데 주시는 것 안 받을 수도 없고 받아보니까 용서에요, 용서. “너, 죄 졌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용서해줄게.” “당신은 누군데 용서하십니까?” “내가 바로 지옥과 천국을 결정짓는 심판관인데 나는 그 권한으로 너의 죄를 용서함으로 천국에 보내줄게.” 그렇게 해서 가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 15절 다시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렇게 돼있습니다. 제가 지금 천천히 하는 것, 보통 인내 아닙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할 때까지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누구든지’와 ‘생명책’을 연결시켜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이 땅에서 시험 쳐서 합격한 사람만이 아니고 everybody누구든지 주님께서 인간의 조건을 거부하시고 인간을 일체 인정하지 않으시고 주께서 집어넣게 되면 그게 거기인지 창녀인지 세리인지 관계없이 누구든지 집힌 사람은 다 천국 가기 때문에 생명책에 적힌 사람끼리 경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주 내놓고, “너, 100미터 몇 초야? 20초? 나는 18초야.” 이렇게 자랑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브리바디 조건 없이 기록된 거예요. 나는 거지는 거지인데 인물이 좀 되는 거지지. 그러니까 불쌍히 여겼구나. 같은 여자 거지지만 이번에 미장원에서 머리가 잘 나왔기 때문에 예뻐서 생명책에 기록된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라는 말은 네가 따로 조건을 따질 필요가 없이 그저 하나의 조건, 불쌍히 여겼다는 조건으로 여러분, 100프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런데 여러분들이 궁금한 게 있을 거예요. 그렇게 긍휼을 받았다면 긍휼을 받은 티가 나야 되는데 그래야 내가 천국 간다는 티를 내고 안심을 할 텐데 그렇다면 “목사님, 긍휼 받은 사람의 티, 달라진 면이 뭡니까?”라고 궁금하고 싶지요? 궁금해야 되는데(-예, 궁금합니다. 한국사람 말고). 이게 상당히 궁금해야 돼요.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그래서 궁금증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신의 행함을 가지고 천국 가겠다는 사람은 긍휼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내 행함을 묻거나 따지지 아니하시고 다른 식으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믿어버리면 그 사람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럼 그 다음에 또 이런 의문점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아주 머리가 좋습니다. 그것은 무슨 의문점이냐 하면, 도대체 우리의 행함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왜 천국에 안 넣어주시는가? 우리가 하는 행함 속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그것을 시비 걸어서 천국에 안 넣어주는가? 그게 또 머리 좋은 여러분들은 떠오르게 돼있어요.

 

행함이 뭐가 문제냐? 그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함은 어떤 방향, 어떤 곳을 바라보게 돼있습니다. 다시 천천히 하겠습니다. 행함을 자랑하게 되면 그것은 긍휼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 불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행함으로 나한테 나올 생각 말라. 행함에 문제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아멘, 예라고 하고 돌아서면서도 무슨 문제가 있지요? 우리는 묻고 싶어 미치겠어요. 그게 궁금하니까. 우리 행함에 뭐가 문제가 있느냐 말이죠.

 

자식 낳아서 잘 길러. 이게 무슨 문제가 있냐? 배가 고파서 숟가락 들고 밥 퍼먹었어. 이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오줌 누려고 화장실에 가고. 이 행함에 무슨 문제가 있으며 누가 웃긴다고 웃는 것, 이게 무슨 문제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는 그게 땡 탈락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요한계시록보다 앞서 있는 복음 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4장에 있습니다. 1절부터 11절까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길지요. 길면 귀찮지요. 귀찮으니까 다 보기 싫지요. 그래서 저는 간추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귀찮은 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냥 간추려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세 가지로 방향이 정해져서 행동하게 돼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은 돈 없이는 못 산다는 겁니다. 공감들 하시지요? 우리의 마음은 사람이 먼저고 돈이 나중입니다. 사람 낳고 돈 낳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현재 이 세상 세계는 돈 낳고 사람 낳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쁘지요. 여러분이 부자 돼보세요. 그게 기분 좋은 이야기입니다. 돈 많을 때 기분 좋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상상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방향은 부자 되고 싶습니다. 지지리 궁상(이것 통역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찢어지게 가난함 정말 진절머리 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인생을 살다가 진짜 죽을 때까지 가난할 것 같아(말 빨리됐다. 큰일 났다). 피곤에 찌들어서 퇴근해서 방에 널브러져 자게 되면, 주여, 정녕 언제까지 이 지경입니까?“ 끝이 보이지 않고 희망도 없고. 언제까지.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소원이 뭐냐?” 우리는 말합니다. “보면 모릅니까? 아시면서 약 올리기에요. 알면서. 왜 고생하는데 그놈의 돈. 돈 없으면 아파도 병원 못 가고 돈 없으면 인간 취급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이 세상에서 도대체 이런 식으로는 더는 못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돈 좀 주세요.”

 

모든 사람이 화장실에서(그놈의 돈 번다고 화장실도 자주 못 오네) 오줌 누면서도 돈 생각은 잊을 수가 있는가? 우리의 행함, 방향성 있습니다. 그건 돈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너는 돈만 벌면 인간된다고 천지창조 때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치던가요? 아니지요. 중간에 운명이 바뀌었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생각해야 될 생각이 어떻게 됐는지 돈, 돈, 돈밖에 모르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지 본인들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 성경 보니까 악마가 그렇게 우리를 인간성 다 버려놨습니다.

 

“악마야, 네가 나를 사람이 사는 목적이 돈 버는 재미로 살도록 네가 인간을 아주 버려놨구나.” 악마한테 따지면 악마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네 소원대로 돈 포기해보지, 왜?” 악마는 배짱으로 나옵니다. “돈 없이도 재미있게 살아보지, 왜?”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우리는 갑자기 이렇게 나옵니다. “그건 아니고. 말이 그렇지(통역 어려운데). 농담도 못하나.”

 

“아이고, 이 회사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 봉투에 사직서 쓰고, “사장 나와. 나도 사나이야. 더럽다. 이까짓 돈이 뭔데?” 사직서 던집니다. 그러면 사장님이, “어이. 김 대리. 방금 뭐 내놨지?” 물으면 갑자기 별 것 아니라고 도로 집어넣었어요. 총각 같으면 됩니다. 눈앞에 아내와 자식 둘이 어른거리면, “참아야지.” “방금 뭘 꺼내던데?” “아닙니다. 그래 참자.”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는 이미 돈이 유일한 삶의 기쁨이요, 살게 하는 원동력, 동기로 작용하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꼼짝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목사님, 나이 들면 바뀝니다. 라고 하는 사람 있는데 제 주변에 경험으로 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사람은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아니고 돈 없는 늙은이에요. 늙은 것도 서러운데 돈까지 없으면 그처럼 서러운 게 없습니다. 사실 돈 번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합니까.

 

같은 부자 친구 늙은이는 돈 있어 젊은 여자 벌써 세 번째 바꿔치기 했는데 돈 없으니까 여자가 오지를 않네요. 참 서글픈 우리 미래의 자화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요? 예수? 교회? 삼위일체? 돈만 주면 부처라도 믿겠다고 자진해서 나서는 이런 성향, 이미 우리는 마귀의 품에서 권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부분만 정리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기를 결정할 때 이게 나한테 돈이 더 들어올 수 있는 행동인지 아니면 내 주머니의 돈이 나가는 행동인지가 선택에 유일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돈 되면 뼈 빠지게라도 충성할 수 있고 돈이 아니면 안 되는 그것이 왜 주님은 평소에 우리의 모든 행동이 문제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지요.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유일한 라이벌은 돈이 되는 그런 처지에 너희들이 속해 있다는 겁니다. 더 확실한 사실은 하나를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를 미워하게 돼있다는 겁니다. 이거 겁나게 무서운 말입니다. “집사님, 하나님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은 뭔 뜻이냐 하면, “집사님, 돈 무지무지 미워하시지요?”라는 질문과 동일한 질문이라는 말씀이에요. 이것 지킬 위인 없습니다. 우리는 돈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돈까지 주시는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 마귀가 만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유혹 받고 교회 다니지 마세요. 거기에 적그리스도가 앉아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의 행동에 문제 있는 이유는, 돈으로 인기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 인기라는 것은 평범함에서 우뚝 솟아있을 때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아요. 대표적인 것이 연예인들, 가수, 영화배우, 탤런트들. 못 생긴 탤런트 수준이 보통 사람 잘 생긴 것보다 더 잘 생겼어. 탤런트가 못 생겼다고 하지만 실은 그 수준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겁니다. 그래서 감독이 픽업하는 거예요. 그 배우들이 우리가 그리워하던 특출한 인물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은 대리만족으로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거든요.

 

주목 받는다는 것은 아이큐가 높다든지 공부를 잘한다든지 권력이 아주 높다든지 인물이 좋다든지 어떤 기타를 잘 친다든지 컴퓨터를 잘한다든지 어떤 특출한 능력, 그것이 인기로 돼있습니다. 이왕이면 유명하게 살아보고 싶은 것, 이게 바로 마귀가 예수님에게 두 번째 한 시험입니다. 마귀가 주님한테 하는 모든 말의 취지는 그동안 모든 인간이 내 손에서 다 굴복했고 내 꾐에 안 빠진 위인이 없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사람은 떡을 제일 중요시 여겼고 남보다 특출한 기적과 능력을 행할 때 사람들의 박수와 주목을 받는다. 이것이 내 수하에 있는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그쪽으로 방향을 잡게 돼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우리는 세상의 번영과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권세욕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이왕이면 많은 것을 더 소유하겠다는 이 소유욕, 이것은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함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눈치 챌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여,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제가 반성하겠습니다. 또는 회개해서 제대로 행동하겠습니다.”라고 하면 행위 해놓고 내 쪽에서 알아서 반성하면 천국 갈 수 있는 길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내 잘못을 내가 알아서 반성하면, “착하구나. 네가 네 잘못을 아니까 내가 넣어줄게.” 이렇게 될 법도 한데 “왜 그러면 다른 책, 생명책이 필요하냐?”라는 생각이 여러분 이 시점에서 궁금하지 않습니까?

 

반성 잘하는 내가 행동해놓고 반성하게 되면, “네가 네 죄를 아는구나. 그냥 넣어줄게.” 할 수도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왜 따로 생명책이 필요하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마귀 안에 있는 인간들이 반성을 하게 되면 이제는 반성하고 난 그 이후에 나 자신을 굉장히 신성시 하고 대단한 존재로 간주하는 그러한 속성을 드러내요. 그 대표자들이 누구냐 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 일에 집중하고 몰두했던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그들에게 질책을 해봤더니만 그들이 예수님을 떠밀었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뭐냐? 예수님의 죽음이고 피였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죽었던 피 흘린 분이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어요.

 

여러분들은 비행기가 왔다갔다하는 곳이 활주로가 아니고 활주로 목적이 비행기가 빨리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나야지요. 온종일 비행기 몰고 스물네 시간 재미있다고 비행장 돌아다니면 그거는 비행기 아니지요. 그건 자동차지요. 비행기는 떠야 맛이란 말이죠. 아무리 회개하고 반성해도 죽어서 부활 안 되면 자기 잘난 재미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홈을 팠습니다. 이 땅에 와서 고난 받고 드디어 비행기처럼 수직으로 올라간 것처럼 아버지 쪽으로 수직으로 올라갔습니다. 수직으로 올라간 그 길이 바로 유일하게 천국 가는 길입니다.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거든요. 그 말을 줄여보면 그 누구도 반성한다고 해서 아무도 하늘나라가 갈 수 없다는 말이에요. 아무도 갈 수 없다.

 

따라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나와 함께 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오심은, 왜 오셨느냐? 아무도 천국 갈 수 없음을 마귀에 속했음을 인간의 어떤 모든 행동도 돈과 인기와 세상 권력을 확보하는데 있기 때문에 문제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갈 수 없음을 내가 자국을 남기면서 흔적을 긁어가면서 그걸 하신 거예요.

 

그 흔적으로 우리를 가게 할 때 합류한 사람의 특징은, “주여, 나의 모든 행함은 죄였습니다.”고 이야기하면서 들어가 보니까 그 흔적이 피가 적셔있어요. 그 피, 이 땅에서 죽음을 당한 그 피가 부활로 이어진 겁니다. 피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고, “십자가가 있는데 누가 너를 꼬시더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

 

우리는 거기에 초청받아 가면서 저벅저벅 피를 보면서 이 피 아니었으면 잘난 재미로 살아왔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지금도 돈 좋아하고 인기 좋아하고. 주면 좋지요. 안 줘서 문제지. 돈 있는 게 문제 아니잖아요. 안 줘서 문제지.

 

그런데 피를 보니까 그냥 반성이 아니고 이거는 반성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반성하나 안 하나 반성하는 행위로도 구원받지 못하고 이미 우리가 반성해도 소용없음을 아시고 미리 준비된 용서의 피가 네 죄를 내가 대신 가져가서 네가 당할 저주를 내가 아버지께 대신 받았다는 그것을 피라는 흔적을 남길 때 그 피를 따라서 가게 되면 예수님은 첫째 부활, 우리는 그 다음 부활, 하늘나라 형상을 보면서 비행기에서 위를 보면서, “아담아, 안녕. 긍휼 받아서 미안해. 그런데 내 소망이 아니고 주님의 소원이었거든.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도 미안하지만 주님의 소원이 나에게 긍휼을 줬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헤어지자.”라고 지금 뜨는 중에 있습니다.

 

돈 없습니까? 너무 서러워하기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지금 머리 둘 곳 있습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마음을 낮출 때에 더 크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사람은 마귀가 있어서 더더더 돈, 더더더 인기, 더더더 세상 권력. 우리도 그것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그 죄가 어디서 용서받았는지 확인합시다. 피로 용서받는다는 것이 농담 아닙니다. 왜? 피 흘리신 분이 사흘 만에 부활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것이 실제로 죽었다가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 되었습니다. 철학박사 아니더라도 공학박사 아니더라도 그 지혜만 있어도 주님 나라에 합격입니다. 마지막 웃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믿어지는 놀라운 능력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영을 주어서 나의 피는 너를 위함이라고 지적해줄 때 우리는 그 마음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돈 없어도 행복한 것은 바로 주님께서 사랑을 해준 그 사랑으로 활주로를 날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중부양, 진리가 너희를 날게 할 것이다. 세상에서 떨어지게 할 것이다. 마음껏 공중 나는 즐거움을 누리시고 밑을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잘난 것 없었는데 주님 믿으라고 요청한 것도 없었는데 일방적으로 의논 없이 협의 없이 그냥 들어와서 피와 너의 운명과 관련 있다고 저희에게 알려주시니 우리는 그런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피 흘림이 나의 계획 속에 없었던 건데 나를 만든 주님의 계획 속에 있던 것이 이 땅을 방문해서 피만 남기고 올라가셨으니 그 길 따라 우리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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