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20, 21강 / 빌3장17절 /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본문
100611 빌 3:17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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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00611빌3장17절a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오늘 강의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십자가의 원수 되면 천국 갑니까? 지옥 갑니까? 예를 들면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삼위일체 다 인정하고 십자가도 다 인정 하는 데 행하기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 그 사람 구원받겠어요? 십자가의 원수인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 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해요. 다 인정하는데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려면 보통사람은 안되고 마귀에 들려야 이것이 가능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가 없어요. 악마의 힘이 필요합니다. 악마의 힘으로서 십자가의 원수로 자리 하게 되는 데, 지금 제가 적어 볼게요.
‘나는 하나님을 인정한다.’ 여기 사도 신경 새로 외울 필요 없지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다 안 다면요. ‘나는 교회를 믿는다.’ 줄줄이 나는 다시 사신 것 다 믿는 데 십자의 원수라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을 모르겠다. ‘십자가의 원수가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라고 나온다면 상당히 곤란합니다. 구원받았다고 하기가 곤란해요. 왜냐 하면 보통사람들은 십자가를 어디에 집어넣느냐 하면 십자가가 우리 성도가 알아야 될 여러 가지 사도 신경에 나오는 항목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부활도 있고 재림도 있는데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십자가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교회도 알아야 하고 하나님도 알아야 하고 삼위일체도 알아야 하고 부활도 알아야 되고 십자가도 알아야 되고 ……. 10개 된다면 그중에 하나, 십자가의 원수로 행동한다면 과연 나머지 9개 아는 것이 전부 무효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하는 이것만 문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십자가 원수 이것만 문제 된다면 나머지 9개를 보고 그 사람을 신자로 볼 수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되려면 십자가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마지막 10번째가 재림이라면 중간에 천국도 있고 있는데 이 십자가가 1,2,3,4,5,6,7,8,9,10 중에 십자가가 독특하게 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10문제 있는데 그 10문제 중에서 기껏 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다 이 말 이죠.
예를 들어서 10문제가운데서 한 문제틀리고 9문제 맞으면 몇 점입니까? 90점이잖아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뭐라 하냐 하면 너희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다 이 말이죠. 부활의 원수다. 교회의 원수다. 삼위일체의 원수다. 하나님의 원수다. 이것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원수라고 결정한 거예요 그렇다면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을 가지고 천국과 지옥을 가름했다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성경 개념 가운데 적당하게 포함될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독특하게 튀어야 할 문제예요 따로 뽑아내어야 될 문제에요. 여러 가지가 성경에 있지만 그중에 우뚝 서야 할 문제가 뭐냐 하면 바로 십자가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왜 다른 여러 가지 가운데서 십자가만 독특하게 불쑥 튀어나와서 십자가의 원수 된 자들이 지옥 간다면 그것은 백발백중 십자가의 원수이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지옥 갈 거냐, 천국 갈 거냐 판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느냐 교회를 믿느냐 그것이 판결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느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다면 그 사람은 지옥가고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라면 천국 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무슨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여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라 했으니까 천국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천국은 십자가 중심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십자가 건드려서 십자가 반대하고 십자가 원수로 행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다른 어떤 조건이 갖춰줘도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이 많은 교훈 중에서 율법도 있고 천국도 있고 땅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이 있는데 하필 십자가가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까요? 그것은 바로 십자가는 누구만 행할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만 행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시고 어린 양으로서 다 이루었다고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우리가 십자가 지고 산위에 매달리면 그게 십자가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요 이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원수가 된 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나는 이정도로 했습니다. 하는 것이 전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거죠. 십자가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100층짜리 건물을 외벽을 맨손으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 저것은 예수님만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의 적은 무엇이겠어요? ‘에이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는 것, 이것이 적이잖아요. 결국은 지옥 가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면 ‘내 힘으로 천국갈 수 있는데......’라고 나오는 것은 전부다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다 지옥 가는 사람이에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교회 나와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교회 나오는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헌금하는 것도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데 기도 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에이, 나도 할 수 있는데…….’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기 위해서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솟아 올라와지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를 중간에 두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은 지옥 간다고 결정을 냈다 이 말입니다.
원수란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내 힘으로 교회갈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닌 것은 뭘까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지금 된 겁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선 것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선 겁니다. 하나님의 일로 인하여 제가 지금이 자리에 섰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가 안 된 사람이겠죠. ‘하나님이 없었으면 내가 십자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유일하게 하나의 원수가 안 된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를 내 힘으로 믿을 수 있다 하면 그것 자체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거예요. 십자가 믿는 것도 내가 알아서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십자가 원수가 되는 겁니다. 지금 내가 여기 있게 된 것이 밑에서 누가 솟구쳐 올라와서 내가 이렇게 있다는 겁니다.
여기 팽팽한 보자기 하나있고 그냥 얇은 보자기 하나있고 밑에 울퉁불풍한 조각품을 하나 만들어 놓고 이것을 가지고 밑에서 힘을 줘서 쭉 올라오면 보자기 이것도 이 모습 따라 울퉁불퉁 되겠지요. 그럴 때 다른 사람이 보고 ‘오 당신 생김세가 왜 이래?’ 하면 ‘밑에서 뭐가 치고 올라와서 이 모습 됐다.’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와서 이렇게 된 거예요. 세상의 모든 것은 말씀 계획 잡힌 대로 치고 올라오니까 어떤 사람은 미국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필리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박지성이고 그렇다 이 말입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 있어요. 이 밑에서 올라오는 힘이 누구 힘이냔 말입니까? 이게 하나님의 힘이고 말씀의 힘이 되는 거예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이만큼 이 모습까지 되었습니다.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야, 도대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이렇게 누구야? 라고 물을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돼요.
나를 이 자리까지 있게 한 이가 누구십니까? 정체를 밝히세요. 누구십니까? 그 때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어이, 당신 지금 누구보고 이야기 하는 거야? 당신이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이 애쓰고 노력하고 공부해서 된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럴 것 같으면 누구냐고 묻지를 않지, 누구세요? 무대 뒤에서 빨리 나 오세요. 나를 이 모습까지 이끌어 주신 분 빨리 나와 보세요. 누구십니까? 나는 나를 믿지 않고 당신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해야 되는 겁니다.
갈릴리 바다를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이 지났습니다. 파도가 일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풍랑을 잠잠케 하기 위해서 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웠어요. 예수님이 일어나서 먼저 나물하십니다. 쉽게 말해서 풍랑이 일어나는 것도 이 밑에서 풍랑 일어나야 된다는 계획 하에서 이것을 밀어버리니까 하필 갈릴리 바다에 가는 제자들에게 풍랑이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일어나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기 전에 먼저 누구보고 나물 하였냐면 제자들에게 나물하신 거예요. ‘아이, 얘들아!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이죠. 참, 재미있지요? 지금 제자들은 제발 우리가 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풍랑을 잠잠케 해달라고 했는데, 제자들은 지금 풍랑을 가리키고 있는데 주님은 일어나자마자 제자들이 가리키는 풍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너희들은 왜 밑에서 밀고 오는 이것을 보지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바다야! 까불래 자꾸, 잠잠해라!’ 하니까 잠잠해 졌지요.
그제야 제자들이 풍랑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풍랑도 보지 않고 자기도 보지 않고 일제히 주님을 봅니다. ‘저분이 누구시기에 풍랑도 잠잠 하는고?’ 아, 주님이 누군지 몰랐습니까? 주님이 때마침 풍랑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몰랐습니까?
신앙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니까 덥다고 때려치우고 춥다고 안 해 버리고 교회에 삐져서 안 나오고 자기가 평소에 생활하는 것이 내 힘으로 인생을 일구어 나가는 그 참 더러운 버릇을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와서 천국 가는 것도 자기가 노력해서 애써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을 실천에 옮겨서 그래서 자기가 천국 간다고 하니까 그게 바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사도신경 외우라 해서 다 외워, 주기도문 외워, 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목사가 물으면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것도 안 되면 ‘믿쓉니까?’ ‘믿쓉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외치고 나중에는 ‘믿습니다.’를 반복한 그것으로 구원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밑에서 계획 잡힌 것이 나를 치고 올라오는 것은 이것은 내 권한 밖이고 내가 손쓸 수 있는 권한 밖에서 움직이는 피스톤이에요. 각이 짜인 어떤 형체가 있는 피스톤을 여기 평평한 막이 있었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까 이 형태, 모습 그대로 튀어 나 온 거예요. 막이 밑에서 치고 올라온 모습을 가지게 된 거예요.
이 피스톤 밑에 이 막이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발걸음도 세십니다.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버릇이 뭐냐 하면 항상 내 인생은 내가 가꾸고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을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결정짓고 자기가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무엇을 자꾸 놓치고 잊어버리느냐 하면 주께서 밀어 붙이셨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다 날려 버렸어요. 주께서 하셨다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아요.
결국 그들은 무엇을 믿느냐 하면 나는 내가 열심히 애쓰고 있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나 신앙생활 하는 행동 자체를 믿어버려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라는 겁니다. 그것이 왜 십자가의 원수가 되느냐 하면 이렇게 풍랑에서부터 밀어붙이는 것의 모든 하이라이트, 구심점 마지막 최종점이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직결되는 모든 것, 전부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부활의 원수도 아니고 하나님의 원수, 삼위일체의 원수, 교회의 원수, 교회의 원수 된다고 지옥 가는 것 아닙니다. 삼위일체 원수 된다고 지옥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 다 걷어치우고 오직 유독 지옥이냐, 천국이냐의 가름하는 기준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어요. 십자가의 원수가 되면 이것은 아무리 삼위일체 알고 교회 잘 다녀도 다 지옥 가는 겁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안 되어야 됩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할 때, 사도바울이 너희들이 ( )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문제입니다. 다음 중 ( ) 안에 들어갈 말은?
1) 교회의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2) 목사의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3) 착한 일에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4) 부활에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5) 재림에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6) 요한계시록 잘못 해석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7) 십자가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몇 번 입니까? 7번이지요.
너희들은 왜, 완전히 행하지 못해 그것을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너희들은 재림 안 믿으니까 지옥 간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전부다 재림이든 요한계시록이든 모두가 다 한 곳에 모이는데 그것은 십자가로 모이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모르면 전부를 모르는 것이 되고 십자가를 알면 전부를 아는 것이 됩니다. 왜, 십자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주께서는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00개중에 10개를 할 줄 아는데 90개를 못하겠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90개만을 위해서 죄를 사했습니까? 우리가 100개 중에서 10개는 자신 있는데 영 자신이 없는 90개는 못했다. 그러면 주께서 90개만 찾아서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 죄를 씻었습니까? 십자가에서 그런 거예요? 십자가는 우리의 하는 모든 것 때문에 대신 지신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해도 십자가 없이는 구원 받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행함은 주님 앞에 안 받아 줍니다. 그것을 ‘우리의 어떤 행한 것도 주님께서 일체 받아 주지 않습니다.’ 라고 아는 사람은 ‘십자가가 너무 좋아’ 이것을 아는 사람이에요. 십자가를 안다고 해 놓고 나름대로 할 수 있다고 골라내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를 모독하는 겁니다. ‘주님 그거 헛짓 했습니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 부활이 어느 지점에서 부활 되는 거예요? 물위를 걸어서 부활되던가요? 아니면 산상설교 하다 부활 된 건가요? 예수님의 부활된 장소가 어딥니까? 십자가지요. 십자가를 거쳐서 부활되잖아요. 감람산에 올라가서 설교 하시다가 그냥 올라가신 게 아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부활이 되고 싶습니까? 그래서 변화산에 올라가서 모세, 엘리야처럼 같이 합세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야 해요? 예수님 갔던 경로, 십자가 속에 있었을 때 비로소 부활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뭐라 했습니까? 그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가 어떤 행동도 만의 하나라도 제대로 행동한 게 전혀 없음을 십자가 앞에서 발각당하는 즐거움, 그런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어떤 것을 해도 의가 아니고 죄밖에 되지 않는군요.’ 하는 기쁨과 즐거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그 행복감, 여러분! 이것 맛보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또 죄짓고 맛보지 말고 죄 안 져도 죄인이에요. 이것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내가 천국갈 수 있는 어떤 바탕을 내가 지상에서 내 힘으로 만들 수 없구나하는 것을 충분히 알 때, 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은 십자가 앞에서 섰다는 것이고 십자가 앞에서 섰다는 것은 이미 부활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뜻이에요. 왜, 부활의 세계 안에 십자가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현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짓는 모든 것도 죄 지으라고 주께서 밑에서 피스톤으로 올려붙인 거예요.
너는 앞으로 이런 죄를 지을 것이고 내가 죄 지은 것도, 내가 죄짓고 싶어서 지은 게 아니고 밑에서부터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밀어 붙인 겁니다. 죄가 아담에 속했잖아요. 아담에 속한 사람은 죄가 왕 노릇 한다고 했죠. 죄가 왕 노릇 했다는 말은 우리는 죄의 신하죠. 그래서 죄가 왕 노릇 했다는 말은 죄가 왕이니까 ‘어이, 비타500 가져와!’ ‘예’ 이러면 이거 무슨 행동입니까? 죄지요. 죄가 시켰잖아요. 죄가 왕 노릇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죄 따로 있고 우리 따로 있는 것이 왕이 아니에요. 왕이란 말은 우리를 포함시키고 못 빠져 나가게 만들고 똘마니, 똘마니란 말 알지요? 상스런 말이지만 제가 상스런 말 한두 번 썼겠습니까? (하하) 죄의 종일 때, 그 죄가 오야봉, 우두머리가 되는 거예요. 죄가 오야봉이란 말은 우리는 본의 아니게 죄가 시키는 대로 똘마니처럼 굴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애써 그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밑에서 올라오는 말씀 덩어리 자체가 너는 되는 거야 하고 밀어붙여서 성경 로마서 5장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 말이죠. 죄가 너희에게 왕 노릇 한 것이다.
죄가 왕 노릇하는 것을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죄가 왕 노릇한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 만 주어진 혜택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누구야? 음, 죄가 왕 노릇 했구먼!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거예요. 표정들이 왜 그래요? 행복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하) 이게 얼마나 행복한 겁니까?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악령이에요. 악령 속에 너희는 지냈다. 이것이 여러분 기분 나쁘게 들립니까? 오케이! 딩동~ 이이래야 돼요. 내가 악령 안에 있는 똘마니였고 악령이 우리 오야봉 이었고 나는 철저한 야쿠자 세계에서 철저하게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인 것을 이제 알게 되었으니 다 같이 우리 행복 합니다. 다 같이 우리 행복한 겁니다. 이것을 아시는 분이 행복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 전체를 보고 여러분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이 성경 전체, 어떤 한 구절도 밑에서 이미 작정한 대로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행해서 지금 내가 이 자리까지 이런 모습으로 깨닫게 된 것도 주님의 공로라는 것을 알 때 성경 보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 성경 보는 것이 부담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 이것도 해야 합니까? 저것도 해야 합니까? 평소에 버릇이 자기가 행해서 구원받는 버릇이 들어 기도 하면 하나님 돈 벌고 바쁜 가운데서 이 정도 한 것도 좀 봐 주세요. 여기서 더 하라 하면 나자빠집니다. 정말 더 이상 못합니다. 더 이상 봉사하다가는 우리 집 거덜 납니다.
이렇게 모든지 자기가 행한다고 생각하니까 뒤로 두두둑 물러서 가지고 나중에는 믿음이고 뭐고 다 귀찮고 싫은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누가 그렇게 만들었냐 하면 목사들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목사들이 금요일 철야예배에 나오세요. 새벽기도 나오세요. 주일날 나오세요. 헌금하세요. 십일조 하세요. 교회 건축헌금하세요 뭐 하세요 뭐 하세요……. 자꾸 시키니까
여러분 사람의 본성은 노는 겁니다. 호모루덴스라는 책에 보면 사람의 본성은 노는 건데 그 노는 것은 사람의 본성은 오락하는 것이 본성이에요. 그래서 일하는 이유가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일하는 거예요 그 오락의 내용이 전쟁이에요. 내편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승리하고 내편이 아닌 것은 무조건 죽어줘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사람은 희열을 느끼는 거예요 우리 초등학생들 희열 뜻이 뭔지 알아요? 희열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희열 중에 최고의 희열이 월드컵입니다. 젊은이들이 붉은 티를 입고 같이 응원할 때 도대체 누가 저 사람들 십자가의 원수 아니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들이 무엇에 열광합니까? 왜 열광합니까? 왜 그렇게 한 통속이 되는 건데요 평소의 그들의 사고방식이 어떠했기에 어떻게 한 통속이 되느냐 이 말입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기에 행복을 어디서 찾기에 보람을 어디서 찾기에 애써서 공부하고 애써서 교회 다니고 열심히 기도한 그것 자체가 즐거움이 아니었고 사실은 교회 다니고 공부해서 힘을 모아서 그 힘을 어디다 써먹나 하면 내가 있는 자리는 무조건 승리의 자리가 되고 나에게 대드는 놈은 모두 다 작살나라……. 그러니까 모든 세상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고 나의 원수로 간주하는 즐거움 내가 돛대가 되고 나머지는 다 적이 되서 남에게 굴복하는 그런 광경을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목사에게도 이런 것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서 복음 전하는데 누가 와서 목사 당신! 하고 손가락 내밀다가 손가락이 얼어붙어서 내가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니까 손가락이 다시 풀리는 거……. 열왕기상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이렇게 보여주면 목사가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역시 난 주의 종 맞아 나한 테 까불면 저주받는 거야’ 라고 하잖아요. 바로 그 태도와 그 마음가짐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지점이 뭐냐 하면 부활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 이었죠. 그러면 하나님마저 이 땅에는 사람들한테 천대받아서 배척받아서 결국 간곳이 십자가 갔잖아요. 지난 시간에 했는데 빌립보서 3장10절 봅시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죠. 죽으심을 본받지 아니 하면 어디에 이르지 못합니까? 부활에 이르지를 못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오신경로를 밟지 아니 하면 부활은 어림도 없습니다. 부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부활 없어요. 십자가 지점에 서야 부활이라는 조명발이 있는 거예요 십자가에 가지 않는 자는 부활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간다고 부활되는 줄 알아요. 십자가 있어야 돼요 십자가에 서야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에 설 때 우리는 죄인으로 서는 겁니까? 의인으로 서는 겁니까? 죄인으로 서는 거예요 예수님마저 저주받는 모습, 죄인으로 섰잖아요. 십자가 질 때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십자가 서면 어떻게 돼요? ‘우리는 죽어 저주 받아 마땅합니다.’ 이래야지요. 예수님이야 어찌하여 하지만 우리는 어찌하여 할 것도 없어요.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저주받으니까 어찌하여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저주받아야 하지요 이렇게 십자가에 설 때 비로소 내가 대학교 총장이 되던 내가 변호사가 되던 내가 의사가 되던 하나님이 변호사 앞에 꼼짝 못하고 하는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학총장이기 때문에 깜짝 놀라고 이것은 아깝다 하는 그런 것은 없어요. 그냥 죄인입니다. 죄인인데 총장하면서 죄를 드러내게 했죠. 의사하면서 죄 들어내게 하시고 목사는 목사하면서 죄를 드러내고 장로는 장로하면서 죄를 드러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가진 직업 여러 가지 있지만 그것이 몽땅 소용없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아무짝에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안 행복해요? 나에게 걸치고 있는 모든 직업과 평생 동안 내가 모았던 것이 나의 자리 나의 돗자리 내가 지금 까지 모아왔던 성과가 있는 그것이 남들 보기에는 재벌이라고 부러워하던 그것…….
여러분 박지성 선수가 1년 수입이 70억입니다. 재원씨 알았어요? 어느 세월에 모으겠어요? 세금이 반 나가요 50억 나갑니다. 그런데 박지성이 언제 성령 받아서 십자가 영을 받아서 주여! 죄인입니다. 할 때 다른 사람이 70억 버는 박지성보다가 무슨 면을 보겠어요? 도대체 박지성이가 무엇을 보고 저렇게 돈 잘 벌고 축구 잘하면서 뭐라 합니까?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박지성이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같이 가서 같이 쳐다보고 그 자리에서 뭐가 보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세상에 70억 벌어도 아무 의미 없다는 거예요 안개라는 겁니다.
신학박사 박사증은 진작 찢어버려야 돼요. 목사증 그것도 찢어버려야 돼요. 주님 앞에서 찢으면 훌륭한 거예요 왜? 그것이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니까 목사답게 신학박사답게 의사답게 판사답게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찢어버려야 돼요. 나는 그냥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주여 나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충분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 말입니다. 네가 예수를 본받고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십자가 앞으로 너희를 세워 줄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현재 내가 나 된 것이 일체 내가 어떻게 해서 된 일은 절대로 아니고 밑에서부터 이미 뜻에 의해서 차고 올라와서 지금에 내가 됐다 그런데 차고 올라온 하나님의 일에 모든 초점은 오직 십자가의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결국 그것이 지옥 가는 사람은 오직 십자가의 원수라는 이유 때문에만 지옥 가는 거예요. 십자가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최 정점이에요. 오로지 주님께서 다 이루셔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그 십자가에서 천국과 지옥이 판단되는 겁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특이성이라고 하는 데 특이성이라는 것은 그 지점에 서야 방향이 결정되는 것을 특이성이라고 해요. 만약에 여기 서 있으면 방향은 위라는 방향이 결정되어 있죠. 여기 서 있으면 내려오는 방향이 결론되어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하지만 이쯤에 서면 내려갈까? 말까? 하는 방향은 여기 이 지점에 설치하는 거죠.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최 정점에 와야지 이쯤해서 천국이고 지옥이고 안 돼요. 이쪽은 저쪽이 안보이고 저쪽은 이쪽이 안보이니까 산비탈이라는 정점에 서야 이쪽은 확연하게 천국이고 저쪽은 확연하게 지옥이고 둘이 섞이지 않는 둘이 섞일 수 없는 그 중앙지점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원수라는 말은 십자가의 원수가 될 때 너는 방향적으로 이미 지옥 갈 방향이다 이말 입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특징은 때려죽여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내가 알아서 이끌러 왔다고 우기는 사람, 이것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를 못해요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부흥 시킵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목사님 그게 아닙니다. 이 교회 부흥된 것은 이 교회부흥을 통해서 우리가 왜 죄인일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간단하지요 교회 부흥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십자가 믿는다 하니까 곧이들었죠. 막상 부흥되니까 이제는 교회가 아까운 거예요 교회 50명 되다 2천명되니까 2천명되고 교회 손 털고 나가라 하니까 아까워 죽는 거예요 왜 자기가 평생 낙타 무릎으로 기도 해서 2천명되었다고 우기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평생 동안 십자가의 원수로 만들었어요. 자기만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교인들을 원수로 만들어 버렸어요. 진작 그 교회에서 십자가 방향설을 이야기했더라면 그 교인 모두가 교회를 안 믿고 십자가 사건을 믿을 건데 자꾸 목사가 평소에 교회 키우세요. 교회 부흥되어야 한다 하니까 교인들이 그것이 하나님 뜻 인줄 알고 교회 붙들고 가니까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줄 미처 몰랐죠. 목사만 나쁘다고 할 것이 못돼요 교인들이 교회 오면서 ‘목사님 십자가 복음만 알려 주세요.’ 하는 교인들이 없거든요 ‘복주세요 복 내놓으란 말이야’ 이렇게 나오니까 목사님이 ‘복 줄께 받쳐라’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라 이 말입니다. 쉽게 복 주는 거예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니까…….
뭐 사랑의 교회 사람이 많아서 교회 2천억 주고 짓는다 하는데 거기에 어떤 목사가 와서 복음만 전해 버리면 몇 만 명 교인이요 그 다음 20명 정도 남을라나 교회 텅텅 빕니다. 교회 아무도 안 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마신 그 쓴잔을 마십시다.’ 하는데 누가 나와요 복 달라고 온 무당 제단에, 사랑의 교회라는 무당 제단에 왔는데 여러분 그것이 주의 뜻이 아니고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자로서 주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 주님 마신 쓴잔을 우리같이 마십시다. 처음에는 몰라요.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서 한 500명 남겠죠. 세 번째 네 번째 되면 한 20명 남습니다. 물론 남기 전에 목사부터 쫓겨나겠지요.
세상에 사도 바울을 목사로 초빙하는 데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을 왜 초빙 못 하느냐 하면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후서 당시 이미 그 모든 교회를 사탄의 일꾼들이 장악했던 거예요 악마의 종들이 이미 교회 마다 장악했어요. 교회라고 하는 곳은 죄를 확산시키는 장소에요. 사람들이 교회 와야 제대로 죄가 뭔지 알아요. 술집에 가면 죄도 아닌 것을 죄라고 하는 거예요. 술 먹고 싸움질하고 그것은 죄도 아니에요. 그것은 아주 수준 낮은 죄예요. 진짜 수준 높은 죄, 하나님을 어떻게 욕보이느냐 할 때는 세리와 창기가 욕보인 게 아닙니다. 누가 욕보였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 소위 신학자들 목회자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죽이는 데 주동했잖아요. 술집에 조폭들이 예수를 핍박한 것이 아니에요. 진짜 죄는 교회 가서 예수로 복음 이용해서 교회 키우려고 하는 것이 그런 작자들이 ‘devil of devil’ 악마 중에 악마 ‘king of king’ 최고죠.
죄의 왕 노릇 한 다는 것은 이미 우리는 똘마니라서 죄가 시키는 대로 그냥 따라 가는 것이 똘마니에요 그러면 우리는 시키는 그대로 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피스톤으로 밀어붙여서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죄의 똘마니 악마의 똘마니로 그렇게 만들었어요. 여러분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참 부탁합니다. 아닌 게 아니에요. 그게 진짜에요 왜 성경에 나오니까 하나님은 참되시나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 이게 로마서 3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하면 거짓된 줄 아세요. 나는 빼주세요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참되시고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 하면 거짓된 것 맞아요. 거짓된 인간은 그냥 지옥가야 되요 그뿐 이에요. 천국 안 넣어줘도 상관없어요. 왜 우리는 거짓되기 때문에 가야 되는 겁니다.
행여나 십자가 앞에서 거짓된 것 알고 죄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여러분의 공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이기 때문에 때가 돼서 그것을 깨닫게 한 겁니다. 모든 공로는 주님 앞에 돌려져야 돼요. 사람들이 말씀을 안 듣는 이유는 평소 버릇이 내가 행해서 지금 보다 내 가치가 높이는 일에 매진하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 지려고 아르바이트하는 사람 없습니다. 십자가 지기 위해서 보험건수하나 올리는 사람 없습니다. 지금 보다 삶의 질이 나와지고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여러분 성경공부해서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망했어요.
그런데 그 주님가신 그 좁은 길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선택할 수도 없고 그 길에 참여 하지도 못하고 동행하지도 않습니다. 주의 뜻이니까 우리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잖아요 죄의 종이 좁은 길 넓은 길을 선택하면 이 좁은 길이 좁은 길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문제 아닌데 다시 할게요. 죄의 종이 ‘나는 좁은 길로 갈래’ 해서 좁은 길로 가면 그게 좁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이거 넓은 길입니다.
예를 들면 수녀들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 나는 부족하다 하는 사람들……. 이거 전부 넓은 길이에요. 금식하는 사람들 몇 달 굶고 철야하는 사람들 넓은 길이에요. 남들 보기에 좁은 길로 보이죠. 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길이에요.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없는 길을 가신 분은 이만큼 넓어도 그게 좁은 길이에요. 우리는 매일 눈만 뜨면 이 일도 내가 원한 하루가 아니고 이 직장이나 이 모든 교회나 이 모든 사항도 이 날씨도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월드컵에 붉은 옷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있으면 생명의 길 좁은 길로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과는 한 통속이 안 되는 거예요
월드컵 이야기 해 보면 월드컵 할 때 ‘치 예수도 안 믿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 하겠지만 막상 상암 경기장이나 거기에 휩쓸리게 되면 자기의 숨겨진 본색이 다 나옵니다. 막 기도가 절로 나오죠. ‘주여 한 골만, 한 골만 넣어주세요’ ‘붉은 악마 응원 속에서 100대 0으로 져라’(하하) 이런 집회에서 힘을 모아서, 기를 모아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거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정 응원하고 싶거든 인간이 할 수 있는 응원하지 마세요. 그냥 집에서 할 일하세요. 그래서 한 골 넣으면 주의 은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괜히 기를 모으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말씀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뜻이 가미된 십자가의 원수가 하는 짓이 바로 그 짓이 되는 겁니다. 월드컵 보면 압니다. 앞으로 월드컵, 그것은 유혹꺼리도 안됩니다. 앞으로 어떤 유혹이 올지 모르겠어요.
‘같이 합세를 하자! 같이 한 통속이 되자! 너 여기서 왕따 되면 안 돼. 그럼 넌 죽어.’ 이런 식의 유혹이 얼마나 많이 찾아온다고요 그럴 때 마다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어. 나는 벗어났어.’ 이런 행함으로 여러분들이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그냥 ‘나는 그런데 왠지 관심이 없어 나는 내가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뭘 더 한 다고 나에게 효과 있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주는 은혜로 살아 왔는데 앞으로 그럴 거야’ 라는 식으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비록 옛날 죄의 행세가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이 이미 십자가에 포대기로 싸여서 주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증거하는 증거로서 우리인생이 그 좁은 길을 향하여 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완전하게 행해서가 아니라 내가 쉴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의 노동을 생각안하다보니까 그 자체가 주님의 노동이 되고 주님의 은혜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도 주님의 하신 일을 증거하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울100611빌3장17절b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18절에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절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십자가 원수가 되면 멸망이에요. 십자가 원수가 되면 멸망이고 십자가 원수가 안 되면 멸망 아니겠지요. 멸망되는 조건이 뭐냐 하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시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이렇게 이만큼 살아 온 것은 내 덕이고 내 힘이고 내 애쓰고 노동해서 내 뜻대로 이만큼 됐다고 생각하시면 그것이 바로 멸망이다 이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의 종이 된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십자가를 헛짓으로 괜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공연한 짓이 되어 버려요.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사 죄인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그 피를 믿는 자가 구원받는다는 이 지시, 하나님의 지시, ‘주여, 헛짓했습니다. 아이고, 쓸데없는 짓 했네.’ 하나님과 자기 아들이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주께서는 참지를 못해요. 주님께서 아무것도 안했으면 ‘얘들아! 착해라.’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완전하지 않더라도 어지간히 하면 내가 어지간히 점수 줄게.’ 이렇게 하면 되는데 우리보고 ‘너희끼리 열심히 해서 천국에 내가 다 넣어주지는 못하고 1등부터 100등까지 넣어줄게.’ 이러면 우리가 십자가의 원수가 될 필요 없어요. 그냥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사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주께서 대신 죽게 하시고 안 되는 것 알기 때문에 그 피로 말미암아 안 되는 것 때문에 일방적으로 주께서 부활하셔서 안 되는 것 때문에 주께서 성령 보내셔서 성령 보낸 자에게 십자가가 이미 다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자에게만 구원한다는 말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은 결국은 십자가의 하시는 일과 경쟁관계에 있는 거예요.
십자가를 인정할 것 같으면 자기 공로를 포기해야 되고 자기 공로를 포기 못하면 결국 십자가를 헛짓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게 아까 말한 산의 꼭짓점입니다. 나의 행함이냐, 주님의 행함이냐, 주님의 행함을 믿을 것이냐, 내 행함을 믿을 것이냐, 꼭짓점 이쪽이냐 다른 이쪽이냐 꼭짓점이 오은선 대장이 올라갔던 에베레스트 산봉우리 같아요. 뒤로 올라가면 미끄러져요. 오은선 대장이 뒤로 가서 사진 못 찍은 이유가 그 뒤로 가면 떨어져요. 이쪽으로 미끄러지는 사람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고 다른 이쪽으로 미끄러지는 사람은 ‘모든 것이 역시 내가 잘했기 때문에 이만큼 버텼습니다.’ 라고 자기 공로를 자랑하는 것이고 그 중간에 십자가가 있어요. 그래서 십자가를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하면 속이 타요. 왜, 괜히 좌우로 가르는 기준이 있다고 그냥 대충 성적순으로 자르지 그 십자가를 보내셔서 날카롭게 미끄러지도록……. 좀 양다리 걸치면 안 되겠나, 여기 양다리 걸치면 찢어집니다. 양다리가 안 돼요. 이쪽경사로와 이쪽 경사로가 서로 반대편이기 때문에 양다리가 안 돼요.
멸망 아니면 영생입니다. 여기 이 꼭대기가 십자가가 아니고 교회를 세운다든지, 세례를 받았느니, 선교를 했니, 어떻게 했니, 이런 것들 필요 없어요. 오직 십자가에요. 왜? 사람이 할 수 없고 주님이 혼자 하신 여러 사람이 한 것이 아닌 혼자 행하신 일이 십자가로 마감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19절 그 뒤에 보세요. 저희의 신, 하나님은 배(belly)요,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세상에 땅의 일을 생각했다고 멸망 받는다는 거예요. 빌립보서 3장 19절에 땅의 일을 생각했다고 해서 멸망 받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땅의 일이 아닌 것 봅시다. 조선일보 봅시다. 오늘 오다가 중앙일보를 봤는데 중앙일보 첫 페이지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중앙일보 땅이 아닌 게 어디 있어요?
김연아 피겨 그거 땅의 일 아닙니까? 월드컵, 땅의 일이잖아요. 어떤 교회가 신축, 건축한다는 것, 그것도 땅의 일 아닙니까? 교회 건축하는 게 십자가 아니죠? 땅의 일이 아닌 것은 뭐 밖에 없다? 오직 하나, 뭐 밖에 없다? 주님이 행하신 십자가 밖에 없어요. 교회 세운 거 그거 땅의 일이에요.
하늘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 다니는 거, 땅의 일이에요. 내가 헌금한 거, 땅의 일입니다. 내가 기도한 거, 땅의 일이에요. 자기 기도한 것을 생각하고 그걸 믿으면 안 돼요. 십자가를 믿어야지 자기가 기도 오래한 걸 믿으면 안돼요. 지 헌금한 거 믿으면 안돼요. 지가 전도 백 명 한 거 그걸 믿으면 안 됩니다. 그거 전부 땅의 일입니다. 멸망 받을 짓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이론에 의하면 멸망 받지 않을 짓은 오직 십자가만 믿는 것, 십자가만이 멸망 받지 않는 것이라면 그러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십자가, 십자가…….’ 이러면 멸망 안 받겠네요.’ 이렇게 반박 나올 수 있지요.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보세요. 아침에 눈뜨게 된 것도 그 힘이 십자가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십자가가 꼭대기이니까, 꼭대기이니까 구원받을 사람과 지옥 갈 사람들이 모든 힘이 여기서 쏟아져서 지옥 갈사람 지옥가야 하고 천국 갈사람 천국 가도록 하는 그런 힘이 십자가에서 나오는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공로에서 나오는 겁니다. 주님의 은혜에서 나오는 거예요.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라서, 성경 전체를 파헤치는 어려운 이야기라서 강요는 안하겠습니다만 듣기나 한번 들어보세요.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구약이 있었죠. 이것은 알지요. 여러분 아는 것부터 하겠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십자가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뭐라 하느냐 하면 십자가 그늘, 십자가 그림자라고 합니다.
찬송가에 있지요?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지난 주일에 찬송가 오래간만에 한번 불렀죠. ‘고마워라 임마누엘 펀드만 섬기는 우리 집......’ 십자가의 그림자가 구약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은 이 그림자부터 추적해 들어가야 하지요.
추적해 들어가면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하면 십자가에서 비로소 부활, 부활의 세계에 올라가는 것도 추적해 보면 나오는 구석이 있어요. 나오는 구석이 뭐냐 하면 바로 제가 얼마 전에 썼던 논문 70이레에 대한 비역사적 해석에 70이레가 나옵니다. 이 70이레 이야기는 다니엘에 나옵니다. 다니엘은 신약입니까? 구약입니까? 구약이죠. 구약은 십자가의 그림자라고 했죠.
그렇다면 구약을 설명하면서 십자가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느냐 하면 다니엘 같은 경우에 짐승이 나오는데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짐승이냐 하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에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제국을 이룬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표범 같고 곰 같고 독수리 같고 네 번째는 그것보다 더 센 놈이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해요. 바다에서 올라와서 땅을 차지하는 힘을 줘요.
그러면 사람들은 힘을 모으게 되는데 힘의 집중인데 아까 붉은 악마 같은 경우 혼자서 빨간 티 입고 돌아다니지 않죠. 붉은 악마가 우르르 모이죠. 모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주체라고 하죠. ‘나’ 라고 하는 주체, 힘이 모이는 것, 여러분의 몸이 혼자 몸, 홀몸이지만 이 몸에 대해서 주체를 끄집어 낼 때는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누구이고, 우리 아버지는 누구고 우리 엄마는 누구고, 우리 동생은 누구고 얽히고설킨 동창생은 누구이고 우리 친구가 청와대에 근무하고……. 얽히고설킨 것이 많아요.
이것이 현재 힘이 되어서 그것이 현재 나의 주체를 이루는 겁니다. 어렵지요. 특히, 학생들에게 어렵지요. 이렇게 보면 학생들에게 쉬운 거예요. ‘너 몇 학년이지?’ ‘4학년’, ‘너 누구지?’ ‘저, 3학년 때 반장했어요.’ 3학년 때 반장한 내가 지금은 4학년 된 거지요. 진짜 어려운 이야기 해 볼게요. ‘너 지금 몇 학년이야?’ ‘4학년이요’ ‘그래?, 그런데 작년에 3학년 반장한 애가 아주 똑똑해요.’ 하니까 ‘그 애가 나에요, 나라니까요’ ‘방금 너 4학년이라면서…….’ ‘저 맞아요.’ ‘그런데 3학년 지난 이야기잖아, 지난 이야기 하니까 네가 왜 열광해’ ‘글쎄 작년에 반장이 나라니깐요’ ‘아, 니 지금 4학년이라니까’ ‘글쎄 게가 나라니깐요’ 사람은 지난해에 반장 한 것이 세월은 지나가도 4학년 안에 내 몸에 내 주체 안에 뭐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3학년 때 반장한 것이 포함해서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나를 집중하게 하는 힘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권력을 반대 하는 반권력 안에 사실은 권력이 들어 있고 폭력을 반대하는 반폭력 안에 이미 폭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논문을 쓰면서 발 뒷 굽치에 각질 떼어내면 안 자라납니까? 떼어내면 또 나오고 떼어내면 굳은살 또 생기고 하지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반성했다고 떠들어 봐야 거기서 또 죄가 나오고 반성해도 또 나옵니다.
내가 이제 거짓말 하면 일기장에 가위표를 치겠다고 '오늘은 나쁜 일을 3가지했어. 가위, 가위, 가위' 했잖아요. 적어도 그랬으면 인간적으로 그 다음에는 그 일이 없어야 될 텐데 한 달 뒤에 보면 가위가 열대개가 나와요.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그 안 된다고 한 짓을 미쳐 숨어 있는 권력이 이것을 계속해서 유발하게 만들어요. 난 두 번 다시 이런 짓 안해야지 하는 그 짓을 집중해서 그 짓이 계속해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힘을 모으는데 있어서 힘을 더욱 모으기 위해서는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이 이것이 힘을 가져다 줘요. ‘나는 착하고 착하기 때문에 더욱더 힘을 많이 가져도 나는 당연한 사람이고 정당한 사람이다. 너는 나쁜 놈이기 때문에 힘을 가지면 안 돼. 나같이 착한 사람에게 힘을 모아 줘야 돼’ 라는 것이 인간에게 반성, 회개로서 힘이 집중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짐승에서 올라오는 힘이 인간의 몸을 자행해서 주체를 만들어서 이 주체가 짐승(힘)이 누구를 공격하느냐 하면 인자, 인자가 누구죠? 예수님, 예수님을 공격하는 만만의 태세를 갖춘다는 것이 다니엘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에서는 70이레라는 시간은 바로 이런 인자로 말미암아, 인자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시간인데, 이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그 보다 더 짧은 시간, 아무리 길어도 그 보다 더 긴 시간, 이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가 잘라 낸 시간 말고 다른 시간이 적용돼요. 그것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이렇게 표현되죠. 그 짧은 순간에 여기서부터 뭐가 주어지는가? 사건이 주어져요. 사건이 주어지게 되면 이 사건은 말씀대로 움직이는 사건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쉽게 하겠습니다. 처음에 70이레를 이야기 하게 된 것이 성전을 만들었어요. 성전과 십자가를 알기 위해서는 성전을 알아야 돼요.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성전입니다. 그 성전을 다윗이 만들려고 할 때, 하나님이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왜, 만들어 봤자 나는 그 속에 살지 않겠다 이 말입니다. 이유는 그것은 네가 만들었거든. 사람이 만든 성전에 있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죠. 사람이 만든 성전에 있지 않겠다는 말은 내가 들어앉을 집은 누가 만들겠다? 하나님, 내가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본인이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왜, 인간은 성전을 만들 수 없는 존재인가? 왜, 인간은 성전을 만들어도 소용없는 존재인가? 쉽게 말해서 왜, 인간은 교회를 만들어도 그 교회로 구원받지 못하는 교회냐! 같은 이야기에요.
왜, 인간은 성전을 만들 수 없는 인간이냐? 그것을 밝혀주는 겁니다. 성전을 만들고 난 뒤에 성전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까? 망했지요. ‘그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여러분 성전 만들어서 망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망한 줄 알면서도 성전을 왜 만들었어요? 그것이 인간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가둬 두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내 손에 다루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교회 올 때, 선입견이 뭐냐 하면 내가 기도하면, 내가 이렇게 잡아당기면 내 기도에 응답대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안산에서 그런 강의 했잖아요.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서 응답 받았으면 그 응답 버리고 오라고……. 우리가 응답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가 없어요. 왜, 기도 응답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 응답은 주님의 기도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기도 응답이거든요. ‘내가 말을 해도 말 참 어렵게 한다.’
여기 이 식혜를 내가 먹고 싶은데 이 식혜를 누가 먹는가? 우리 주님이 먹었어요. 내가 식혜를 먹고 싶은데, 그런데 내가 따로 식혜를 주여, 이 식혜를 먹게 하옵소서. 기도의 응답한다고 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식혜를 마셨습니다. 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식혜라는 것은 원래 하나님이 자기 몸을 위해서 식혜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하여 만물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뜻을 숨겨 놓았기 때문에 성령이 오기 전까지 모르고 하나님이 누구하고 상대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나하고 상대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누구와 상대한다? 나하고 상대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내가 모셔야 되고 내가 하나님을 붙잡아야 되고 내가 기도해야 하고, 나,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자가 없다는 식으로 이미 ‘나’가 등장한 거예요.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죄가 시킨 겁니다. 그러나 창세가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배척했습니까? 배척 안했습니까? 생명나무를 따먹으라 했습니까? 도망갔습니까? 생명나무 도망갔잖아요. 오지 말라고……. 하나님은 인간을 보기에 생명나무를 따먹지 말라는 존재인데 인간은 좋다고 하나님, 하나님 하고 있단 말이죠.
가인이 하나님께 뭐 했죠? 제사 지냈죠. ‘받으소서! 받으소서! 음복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안 받으시죠.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자기의 죽음을 표시하는 것을 제물에 섞어 넣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벨을 받으신 것이 아니고 아벨 제물 속에 담겨 있는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받는 거예요. 왜냐하면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누가 가만있지 않습니까? ‘왜, 나를 안 받아, 왜, 나와 더불어 내가 믿는 하나님, 하나님 믿는 나’ 나와 하나님이 한 세트이거든요. ‘왜, 내가 아는 하나님 하고 다른 거야!’ 라고 해서 자기가 아는 자기 존재 가치와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아벨을 죽이죠.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것, 자체를 따 먹어 버리면 더 이상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잔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얼마나 편합니까? 누구야? 선악과 따먹으라는 자, 아예 잡아 먹어버리게. 그러면 더 이상 누구에게 구애 받을 필요가 없지요. 구애 받을 필요 없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생명나무가 자기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나는 예수님 하고 안 논다 이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가인도 마찬가지예요. 가인이 하나님께서 제사를 안 받으시니까 가만있으면 될 텐데, 하나님께서 따로 아벨의 제사를 받으니까 자기가 졸지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것을 방지하려면 무엇을 죽이면 되요? 거울을 깨면 되요. 내가 못났으면 무엇을 깨면 됩니까? 자기의 못난 얼굴 비추는 거울을 깨 버리면 자기 잘난 사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십자가 안 믿고 성경 안보는 이유가 성경을 안보면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사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을 봐 버리면 자기는 멸망 받을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안 보려고 하는 겁니다. 성경을 이야기 하는 교회 안 가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거울을 내가 원하는 거울만 비춰주는 교회를 원하는 겁니다. 백설 공주 계모…….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만날 그 소리만 하려고 교회 온 거예요. ‘목사님, 목사님 저 예쁘죠?’ 사랑만 받으려고 교회 온 거예요. 우리 의존교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아벨을 죽임으로서 말미암아 자기가 인간으로서 자기만 사는 게 아니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도 살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거예요.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바리새인이 믿고, 사두개인이 믿고, 서기관과 율법사가 믿던 하나님은 엄연히 살아 있는 참 하나님이라고 사람들에게 선전할 수 있는 겁니다. 교회 와서 십자가를 얘기 안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 심성에 가지고 있는 그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사람들이 다 같이 속아 넘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를 외쳐 버리면 진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 죄를 위하여 우리한테 묻지도 않고 따로 자기 아들을 보내 사 우리 대신 그 예수라는 남자 분을 죽여 버리는 하나님 아닙니까?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어요. 진짜 하나님의 뜻은 ‘너 대신 내 아들 죽인다.’ 그런 하나님이지 다른 하나님은 없습니다.
돈 받고, 헌금 받고, 십일조 받고, 주일 성수 받고 하는 이런 하나님은 없어요. 십자가를 치워버리면, 예수님 치워버리면 우리가 생긴 대로 받치면 복 받고 지성이면 감천이고, 기도원에 가면 복주고 하는 이런 하나님이 계속 살아 있는 거예요. 왜, 이런 교회 될 때 교인은 모이는 겁니다. 자기의 행함을 인정해 주고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 내겠다는 것이 성사 되는 교회잖아요. 그런 간증들이 많지 않습니까? 굉장히 많죠. 감사 헌금 했더니 사업이 잘되더라. 교회에 봉사 하니까 교회가 부흥하더라. 구제하고 봉사하니까 사랑 찾아서 사람들이 모이더라. 노인들한테 봉투에 5만원만 넣어 주세요. 온 동네 노인들 다 옵니다. 쉬워요.(ㅎㅎ) 돈이 없어서 이 교회는 못하지만....
성전을 만드는 것은 이미 여기에 가짜 하나님이 있는 거예요. 성전이 있는 우리가 없는 나라를 이긴다고 여기고 성전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고맙게도 이 성전이 있는 나라를 멸망시키셨죠. 멸망시키고 성전이 날아가 버렸어요. 성전 날아가 버리니까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도 없다고 여기는 거예요. 과연 없을까요? 비밀요원들 몇 명이 빠져 나가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어요. 그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입니다.
선발대에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성전을 만들었습니까? 아니죠. 그 사람들 자기행위대로 살았습니까? 아니죠. 꿈 해석을 다니엘이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까? 못합니다. 자기가 무슨 재주로 꿈을 해석합니까? 느브갓넷살 꿈 해석을 어떻게 다니엘이 합니까? 못합니다. 그런데 했지요.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한 겁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다니엘이 꿈 해석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누구에게 감사합니까? 자기에게 감사합니까? 창문 열고 누구에게 감사 했어요? 하나님께 감사했잖아요.
하나님의 언약은 성전이 없을 때 비로소 진짜 하나님의 보좌와 성전이 눈에 띄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없을 때, 교회 다니면서 교회를 안 믿을 때 그 때 비로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교회 다니면서 교회를 안 믿을 때......
성전을 지었던 그 자체가 죄가 되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다고 70년 동안 안식의 땅을 쉬게 했습니다. ‘들어오지 마!’70년 후에 들어올 때 어떻게 들어오느냐 하면 성전을 지은 것이 죄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7이레입니다. 그 성전은 이방 민족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기간이 60이레입니다. 결국 이것은 너희는 이 땅에서 해야 할 것은 ‘아, 이래서 이것이 바로 죄구나!’ 라는 것을 후대에 계시로서 알려 주기 위해서 그들은 성전을 지어야 되었습니다.
부서지기위한 성전, 완전히 망가져야 될 성전을 지어야 되는 겁니다. 그 성전이 헤롯 성전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 성전을 지으면서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전을 짓게 해 드렸으니까 이 성전이 있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라를 회복했다고 우기게 되는데 그렇게 우긴 그것이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을, 메시야를 죽이는 주요 원인이었어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욕한다고 예수님을 죽이는 정도로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속 좁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심한 것이 언제인가 하면 예수님이 성전을 뒤집어 버릴 때에요. 성전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에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복 받는 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뒤집어 버릴 때 참다 참다 못 참는 거예요.
어느 교회 가서 ‘이 교회 분위기 나쁘다.’ 하면 그 교회가 어지간히 욕 많이 할 겁니다. 이 ‘교회 청소가 잘못됐다.’ 그런 것은 이해해요. 하지만 ‘이 교회, 여기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 라고 하면 그 교회에 뒤집어 져요. 그것은 용서 안 됩니다. 당신이 한 설교 가운데서 진짜 하나님이 없고 인간들이 원하는 가짜 하나님만 전파합니다. 하면 그 교회는 용서가 안 됩니다. 사실은 그런 소리 하면 ‘아멘, 옳습니다. 우리가 예배당 지어도 우리는 예배당 믿은 적 없고 우리는 오직 십자가 믿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 모두가 헌금 많이 한 사람이나 적게 한 사람이나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이러면 그게 진짜 교회에요.
왜냐, 교회 다니면서 교회를 안 믿고 십자가를 믿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교회 있는가 한번 보세요. 여러분 이것 아무 의미 없습니다. 십자가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하면 그 사람들이 ‘우리도 십자가 알거든 아니까 다른데 가서 놀아라.’ 이렇게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지은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자기가 소유화 시키려 하고 하나님을 성전 지어서 자기 품안에 하나님으로 삼으려고 하는 가인의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사고방식 그냥 가지고 있으면 괜찮아요. 문제는 그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이유로서 자꾸 반영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믿으려고 이렇게 애쓰는데 왜, 이것을 부정하느냐!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뭘 하려고 하는데 왜 이것을 부정하느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십자가는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그 앞에서 죄인이며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냥 모든 것을 다 해결했기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 공로, 피로 구원받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잖아요. 그러면 그 앞에서 우리의 행함을 자랑 해야 합니까? 안해야 합니까? 자랑 할 수가 없어요. 십자가뿐만 아니고 우리가 모든 살아가는 것도 십자가에서 나온 피의 공로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우리는 ‘나 밖에 모르는데 이런 죄도 또 용서를 해 줬구나! 또 용서를 해줬어! 또 용서하셔서 지금 죽어도 천국가게 해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닌 사람입니다.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십자가가 바로 땅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성전을 짓는데 이 성전을 지었을 때, 이 성전을 파괴하는 힘이 오겠죠. 그 힘이 어디서 올라오는가? 바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짐승은 하나님의 성전을 부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성전을 부수는 일을 할 때 이 성전은 부서지죠. 성전이 부서지니까 이제는 성전이 부서진 대신 성전 없으니까 말씀중심으로 간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말씀 중심으로 갔다니까 상당히 고상한 사람인줄 알죠.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에요. 사두개인은 성전 중심이고 이들은 말씀 중심이에요.
그러나 아까 권력 밑에 뭐가 있다고 했죠. 또 권력이 또 있습니다. 짐승에게 배웠어요. 악마에게 배웠어요. 배워서 권력이 어떻게 하면 집중하는가를 배운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교인들이 화목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바다에서 온 짐승, 마귀한테 목사들이 그것을 배운 거예요. ‘아, 이런 식으로 바자회 열면 뜻이 하나 되고, 이벤트 열면 뭐 되고 김제동 엄마 불러 간증하면 뭐 되고…….’ 전부다 하나 되게 하는 수법들 사용하는 것이 권력의 힘을 집중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서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인간들끼리 모여든 붉은 악마에서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힘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에게서 나와서 그 힘으로 우리가 사는 거잖아요. 우리 힘, 우리가 모아둔 힘이 아니고 우리 공로가 아니고 주님의 공로로 우리가 그 덕으로 사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성전을 보고 이것을 헐어버리라고 해요. 헐어버리라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죠. 죽일 때, 예수님이 너희가 나를 죽이는 것은 진짜 성전을 죽이는 것이다. 또 성전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헐어버리라, 내가 사흘 만에 짓겠다.’ 하거든요. 저들이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나중에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몸이 성전이에요.
그러면 성전이 도대체 몇 가지입니까? 다윗의 성전, 솔로몬 성전, 깨어진 성전, 다시 짓게 된 7이레 성전, 그 성전이 누구를 공개했다? 그 성전이 예수님의 몸을 공개해서 거기서 만든 몸이 성전 되었다. 결국은 하나님 계신 곳은 그리스도의 몸인데 그것을 인간이 자기 공로와 행함을 주장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진짜 성전 되신 예수님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성전이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 몸이 성전 되는 거예요. 이 몸은 주님으로부터 십자가의 공로로 왔기 때문에 이 몸을 다른 몸이 핍박을 하는 거예요. ‘예배당이 성전인데 왜 네 몸이 성전이냐?’ ‘그러면 네 성전은 돌아다니겠네?’ ‘그래 돌아다니는 성전이야, 움직이는 성전이야’그들은 부동산 이죠. 동사무소 가보세요. 부동산 등기 되어 있어요. 그게 성전이예요. 하나님 거기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여기 밑에 계신가? 어디계신데요? 하나님 저 뒤에 안계시고 앞에 계십니까? 앞에 계시면 강대상 옮기면 강대상 따라 갑니까? 그러면 강대상 밖에 폐기처리하면 고물상 따라 하나님 거기 계십니까? 강대상에 하나님 계십니까? 그러면 강대상 설계도에 하나님 계십니까? 3분의 2 만들때 오시는 겁니까? 4분의 3 만들 때 오십니까? 마지막 못질 할 때 오십니까? 마지막 못질 한 다음에 오시는 겁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성전 어디에 계시는데요?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 일으키는 장소에 와요. ‘내가 바로 주님을 못 박게 한 땅에 것만 생각하는 죄인입니다.’ 그 순간에 이미 주님이 함께 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다멕석에서 제자들을 데려갈 때 주님이 동행 할 때는 몰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설명 할 때 비로소 눈이 떠가지고 ‘주님이여!’라고 했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몰랐어요. 도마가 손에 있는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볼 때 비로소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했죠.
진짜 하나님이 다가올 때는 바로 못자국과 창자국을 가까이 하면서 다가오시는 겁니다. 왜? 바로 이것으로 너를 구원했다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지요. 월드컵도 안 보이고 102층 건물도 안보이고 ‘진짜 내가 살았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못자국 창자국보고 ‘아, 살았구나!’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하는 말이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그 말은 앞으로는 성령을 보내셔서 도마처럼 만져보지 않아도 이미 성령을 통해서 그 못자국 창자국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이미 그 사람은 성전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주와 함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러면 땅에 있는 시민권은 없는 겁니다. 잊어 달라는 거예요. 땅에 일이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 없이 내 공로로 얻은 것은 전부다 땅의 일입니다. 내가 어떤 대학을 졸업했다. 주님의 피스톤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옮겨 붙여서 된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뭐라 해석 하느냐 하면 내가 공부해서 학위를 땃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땅의 일이 되는 겁니다. 곧 나의 일이 되는 겁니다. 자기 배(belly)가 신이에요. 자기 배가 우상이에요.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십자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주신 그림자였다. 십자가의 그림자로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그런 사람은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제가 그려 보겠습니다. 여러분 걸쭉한, 걸쭉하다는 것은 점성이 강해서 손으로 쭉 잡아당기면 젤리처럼 늘어나는 것이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말은 모든 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우리를 핍박한다면 그것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예요. 해석, 이해를 그렇게 하는 겁니다.
머리가 있으면 몸은 자생하는 겁니다. 머리가 본부이고 머리에서 지체가 자라나는 거예요. 꼭 콩나물 같지요? 콩이 있으면 콩 밑에서 뿌리가 나오죠. 이 뿌리가 밑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고 머리에서 나왔다고 고백하면 그 사람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원판, 자기의 원료, 자기의 원천을 자기에게 두지 않고 자기 머리 되신 예수님에게 두고 예수님께 삐져나온 것, 예수님의 머리가 삐져나온 것 하나의 혹처럼 삐져나온 것, 이것이 지체, 팔다리를 사지라고 하죠. 손목에서 손가락이 나오죠. 이것이 하나로 모이면 하나로 뭉쳐져서 올라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지가 풀리면 이것을 제가 촉수라 했는데 문어발, 문어발에 촉수가 있지요. 이 촉수가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머리에서 나와 의미를 줘서 느끼는 겁니다. 무엇을 했더라도 그 원인의 원천은 머리에게 돌려야 돼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고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사람은 들어도 하나님은 부하게도 하신다는 것은 상당히 좋아해요. 그 뒷말은 되게 싫어해요.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다른 말로 하면 ‘부도 맞게 하시고’ 이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게 하므로 말미암아 가난 안했던 것도 내 공로가 아니고 주님의 공로였던 겁니다. 그것을 언제쯤 압니까? 부할 때는 몰라요. 가난하게 될 때 비로소 부할 때가 내 노동의 덕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 된 것을 아는 겁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부자이었던 시절을 은혜로 소급해서 깨닫게 하시는 이 은혜, 하나님이 누구신가 아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시는 것을 다시 아는 것 그때 머리가 유난히 중후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이 지체,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머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흥하는 것이라면 내가 망해도 좋습니다. 내가 망하는 것이, 내가 죽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죽겠습니다. 하는 이것을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라든지 성도가 사는 것이 이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날 위해 죽었다가 사신 분을 위해 살게 함이라. 그런 성경구절은 왜 그렇게 외우려 하지 않는지요? 기독교 서점에 책 많잖아요. 기독교 성경구절 보면 여러 가지 글자가 많은데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하는 것은 이사야가 한 이야기인데 왜 그 문구는 안 팔리는지 몰라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런 것은 많이 팔리는데 ‘화로다 망하리로다’ 하는 이 좋은 말은 왜 안 팔리는지 몰라요.
초등학교에서 ‘너희집 가훈이 뭐냐?’ 라고 물으면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하하) ‘너희 교회 교훈이 뭐냐?’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자!’ 이런 것...., (하하) 왜, 미워하는 자는 사니까 (요한복음 12장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왜 성경구절에 그런 구절이 있다는 것을 안 알려 줍니까? 장사가 안 되니까 그렇죠.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누구시냐 관심 없고, 내가 얼마나 교회를 이용해 먹을 것이냐! 얼마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 먹을 것이냐! 관심사가 거기에 두고 교회 오기 때문에.... 김명현 목사님이 그러셨죠. 교회는 뭡니까? 산당입니다. 교회가 산당입니다. 성황당이에요. 하나님 힘 빼먹기 위해 온 사람들이에요. ‘죄인입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내가 진짜 하나님을 모르고 가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제 용서하소서.’ 이렇게 오는 데가 아니고 힘 빼먹기 위해서, 사업 안 되니까, 애 아프니까, 성적 안 올라가니까, 가정 불화일어 나니까, 고부간에 갈등 일어나니까 오는 거예요.
그냥, 절이에요, 절. 거기에서 세례 받았다고 좋다고, 거기에서 장로 집사 됐다고 거기에서 행세하고 그런 교회에서 장로 됐다고 장로교회에서 ‘믿음이 좋으니까 장로 됐지.’ 이런 소리하고, 돈만 내면 장로 다 돼요. 이 교회는 돈 내는 사람 없으니깐 장로 안 되지만 돈만 내면 장로 다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왜? 자본주의 사회거든요. 밑천이 있어야 교회도 돌아가니까.
여기 의존교회 있는데 옆에다가 한 오천억 들여다가 교회 지어 보세요. 엄마들 이 교회 오겠습니까? 애들 다 보내 버립니다. 몰라, 의존교회도 ‘우리도 갈까?’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지요. 그런 교인은 없지만 있을 리가 없지만 거기가면 이미아씨가 가만 안 둘 거예요. 사회는 돈이 이기는 거예요. 돈 많은 데가 이기는 거예요. 시설 깨끗하고, 예수님 믿는 데는 진짜 관심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지금보다 삶의 질이 더 나아지는가? 살림살이 나아지는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교회는 절입니다. 산당이에요. 위험한 곳입니다. 정말 발 들이기가 위험해요. 교회 가셔서 실망하시기 바랍니다. 실망하는 것이 주의 복 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아하, 교회는 믿을 게 정녕 못 되는구나, 그렇다면 성경을 봐야 되겠구나. 성경에 보니까 아하, 십자가의 원수 나오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 머리는 우리 주님이고, 우리는 거기에서 자라나는 콩나물 뿌리 같은 그런 존재가 되어야 우리는 변화산 엘리야, 모세가 참여했던 천국에 가는구나.’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의 못자국과 창자국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었구나! 죄인인 것도 모르고 잘난 놈인 줄 알고 하나님 보고 만날 월급 올려 달라, 하나님 복 달라, 내 아이들 공부 잘하게 해 달라, 가정 화목하게 해 달라, 사업자들은 만날 주식 값 올라가게 해 달라, 만날 이런 식으로 때 썼던 그것이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철없는 놈아.’ 하고 대신 죽으셨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 사는 것은 그 죄인을 살려주므로 말미암아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나 같은 인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창기 같은 나, 나 같은 깡패 같은 놈도 얼마든지 예수님이 필요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러한 험하고 험한 꼴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참 이제 걱정됩니다. 이제 강의 끝나고 한 달 뒤에 또 얼마나 험한 꼴을 봐 왔을 지……. 우리 의존교회 안녕하십니까? 말하기가 무서워요. 안녕할 리가 있습니까? 세상이 어두운데……. 참 무지 무지하게 위태로운데, 그저 주의 은혜로 다시 잘 지내다가 한 달 뒤에 보도록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주이셨는데, 우리는 거기에 도통 관심이 없고 우리는 살고자 하는데 매진합니다. 살아봤자 소용없는 인생인데 죽어서 하나님과 거하는 것이 우리의 복인 줄 모르고 욕심껏 살고자 아무나 이용한 그러한 죄인, 십자가 앞에 세워 주셔서 우리가 그동안 십자가 원수로 살아왔던 것을 자백하면서 그런 인간에게 이미 용서했다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시니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고 우리의 사랑이 되고 우리의 소망이 되고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0. 6. 21. 15:00 녹취:김창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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