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성경중심사상 / 성경 전체의 내용 본문
성경중심사상 (이근호 목사)
33. 성경 전체의 내용
이 부정은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지는데, 그러나 여기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에 대해서는 이미 구원해 놓은 상태에서 그들에게 자기 부인을 요구하지만, 둘째는, 그렇지 못한 비 선택 자에게는 이러한 계시는 왜 네가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가? 에 대한 통고의 형식을 취합니다.
심판 때에 그들이 핑계치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예를 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는 불평과 원망 같은 것, 롬1:20) 이것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는 어떤 내용으로 자신의 모습(형상)을 보이느냐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 일 뿐, 결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임으로서 일을 진행시킵니다.(롬 9:14~21)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의 보이지 않는 것이 피조물 속에 남아 있고, 스며있다면, 이것은 태초의 창조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써, 영원한 묵시적인 심판을 받아야 되는 비창조적 성향의 존재들입니다. 이 존재를 가지고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았다는 비창조성 때문으로 해서 영원히 하나님 면전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15:13/ 요한복음 15 :5) 이것이 바로 저주입니다.
❛저주받는 기준❜은 그 피조물 내에 여호와의 형상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구약❜ 같으면「유월절 정신」이 상실 되었으면 우상이 되고, ❛신약❜에 와서는「십자가 정신」이 상실되면 그것이 곧 우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성은 신구약을 통하여 인간세상에서는 갖가지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바벨탑이 그러했으며, 바로의 장자가 곧 우상이었고,(출12:12) 이스마엘이 그러했으며, 에서의 팥죽이 그러했고, 금송아지가 그러했으며,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백성들에게 그러했고, 사무엘 시대 때는 법궤가 그러했으며, 다윗 이후에는 성전이 우상이었고, 솔로몬 이후 열 왕들 에게는 솔로몬 시대의 영화가 우상이었으며,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가나안 땅이 우상이었고,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이 우상이 되었으며, 사도 바울에게는 성령이 우상이 되었습니다.(행8:17~19)
인간의 타락된 종교성과 조직성은, 모든 것에 거룩함의 의미를 부여하여, 비 유월절 정신으로 그것을 점령해서는 자기 것으로, 또는 자기의 행함과, 노력과, 열심으로써 거룩함을 창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었습니다. 모든 거룩함을 미리 점령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함과 비 거룩함을 분간 못하게 하고, 형상과 비 형상을 혼동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실천력으로 전도와 선교를 달성하여 주의 재림을 촉진시켜 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죄 아래 팔린 채로 이 세상에 등장한다는 것을 말해주며, 공중권세 잡는 자 아래서 어떤 모양이든지 예속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거룩함이 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가 될 수가 없습니다!(엡 2:22)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서는 조직 자체가 우상이 되며, 무(無)조직 또한 우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해도 십자가 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진리와 정의를 위한다는 고난 자체가 우상이 되며, 순교 자체가 우상이 됩니다. 고린도 전서 1~3)
그럼 우리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래도 우상, 저래도 우상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라는 말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간단합니다.
사도행전 1:8절에 보면, ❛증인❜, 즉 목격자가 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증인이 아니 되려야 아니 될 수가 없습니다. 전도하기 위한 증인이 아니라, 증인의 근원을 보이는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일어난 사건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들과의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하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양(量)과 소위 흔히 이야기하는 부흥과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되면, 저주받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진리가 여기에 모이게 되어 있는데,(고린도 전서 2:2) 그 이유는, 성령께서는 새 언약의 범주를 벗어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전서 2:11) 성령이 소개하는 새 언약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그 이외의 것 인 어디에다가 기록을 심어 놓은 것은 모두 다 우상 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의 조직 그 자체가 거룩하다고 여기는 풍토도 여기에 해당됩니다.『성경』은 새 언약이, 거룩함을 빌미로 하여 비 거룩함을 정죄하고, 그 와중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거룩한 자들, 즉 성도들만을 건져 내어, 자기 처소로 삼겠다는 내용의 책입니다.
오늘날도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볼 때는, 교인들은 목회자들과 손을 잡고 끊임없이 교회라는 조직을 팽창, 확장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사회생활 가운데서 비양심적인 행위나 혹은 완전치 못한 덕성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책임 추궁이 두려워서, 내세와 현세에서 그 징벌로부터 벗어나고, 또한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어떤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수십 년간을 투자하면서, 앞을 내다보면서 종교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십자가 정신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교회의 일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일은 있을지라도, 고난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과연 제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헌금했다면, 자기가 남긴 것에 관해서는 추호도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의 의(義)가 우상이었으며, 십자가 보다 그것에 마음을 더 두고 있는 것입니다.(목회자도 마찬가지…) 결국 우상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의 말씀처럼, 목회자는 사람을 좋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자기를 포기하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증인되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21:19,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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