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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성경중심사상 / 요한계시록 본문

저서 & 기타(이근호)/성경중심사상

성경중심사상 / 요한계시록

정인순 2014. 3. 27. 20:14

성경중심사상 (이근호 목사)

 

30. 요한계시록

 

대부분 교회들의 역사적 의미만을 추구해 온 서신들과는 달리, 교회가 가지는 묵시적 의미에 대해서는 요한 계시록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묵시라고 할 때에는 먼저 역사가 묵시에 의해서 어떤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은 교회가 역사 속에서 갖는 위상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7교회에 관한 것이 우선적으로 등장합니다.(2:1~3:22) 뿐만 아니라, 그 교회가 교회다움을 지니는 것은, 7교회의 사자를 쥐고 계시는 인자의 의도에 일치 될 때인데,(1:20) 그 인자는 역사에 의해서 고난 받는 자로 등단되고 있습니다.

그 분의 피가 그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1:5) 사도 요한도 그 분의 환난에 동참한 자로 등장됩니다. 바로 그 인자가 기준이 되어 교회가 역사 속에서 갖추어야 될 주체성이 확립이 됩니다. 성령은 바로 그 인자와 교회를 연결을 하는 7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1:4, 10 /2:7, 11, 17, 29/ 3:1, 6, 13, 22)

교회의 사자는 성령에 종속되어 있는데, 만약 성령의 지시 따라 인자의 모습, 즉 고난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는, 그 교회는 교회로 인정받지는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는 성령과 사자(천사)에 의해 이 마지막 때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에 의한 역사 진행은, 구약에 의하면 마지막 때에나 일어날 유일한 현상으로써,(요엘 2:1, 28~32) 이미 성령을 보내시는 분이 보낼 만한 위치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그 위치란 바로 역사에 대한 심판권을 이미 확보한 자리를 말합니다.(1:13~18) 사망의 음부의 열쇠가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역사에 대한 정죄와 심판은 인자 되시는 분이 역사 속에 들어 왔을 때, 그 분을 배척하고 죽음에 넘긴 그 역사의 절정에 대한 심판으로 진행됩니다.(1:7) 오늘날에는 인자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역사 속에서 인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선택된(인 치심 받은 자 7:1~8) 자들을 향한 공격행위에 대하여 보복하는 형식도 병행하여 이루어집니다.(1:7/ 5:9/ 6:10/ 11:7/ 12:10/ 16:6/ 18

:20/ 19) 그들이 올리는 기도(향) 또한 그들이 당한 환난 가운데서 건짐 받음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5:8~14)

그런데 그들이 당하는 환난은, 어린 양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선택받은 그 수가 차기까지 계속되는데, 그것이 7인-7나팔-7대접의, 7로 표현되는 제한된 기간들입니다. 이 제한된 7의 기간은 비로소 안심을 낳는(14:13) 유일한 과정으로서 필수적인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누가 진정한 남은 자이며, 누가 그 남은 자를 괴롭히고, 역사를 파멸로 인도했는가? 라는 그 배후세력이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6:11/7:3)

그 동안 고난에 참여한 자들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야 하는데, 이긴다는 말은 곧 이미 승리자로서 보좌에 앉으신 그 어린 양의 통치를 신뢰하고 그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을 말합니다.(14:12/ 2:7, 11, 17, 26/ 3:5, 12, 21/ 21:7/ 13:

10)

즉, 역사 속에서도 묵시의 세계를 보는 눈이 믿음이요 인내입니다. 역사 속의 교회는 묵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성령과, 천사에 의해 유지되는데, 성령의 감동을 받은 요한의 입장에서(1:10) 제일 답답한 것은, 남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묵시적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묵시가 역사를 인봉한 셈입니다.(5:1~4) 그 인봉된 남은 역사의 해체는 이미 역사를 묵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분만이 가능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로 다윗언약의 성취자로서의(5:5/ 에스겔 37:25~28/ 창세기49:9/ 이사야 11:1/10) 이 역사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이십니다.(5:6/ 예레미야 11:18~19)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표상을 어린 양 하나로 고집하는 이유는, 출애굽 때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표상이 유월절의 어린 양이었던 것처럼,(출애굽기 12:1~14) 버림받은 역사에서 구출될 수 있는 유일한 표상도 언약의 틀에 맞추어 어린 양 인 것입니다.(15:2~4/11:8) 인봉의 공개에는 반드시 옛 언약의 형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선지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경고.

2. 그 경고에 합당한 심판인데 그것은 이방인을 막대기로 동원시킨다.

3. 이방나라가 언약 백성에 대한 과도한 심판을 한 것에 대하여 이방나라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고,

4. 최후로 하나님의 언약대로 남은 자가 회복된다.

이상의 4가지가 신약 때는,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이 등장되며, 바로 이들이 역사 주변과 갖는 관계를 통해서 구약의 남은 예언은 다 역사 안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성되지 않는 한, 역사는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언약이 허락하는 범주까지에만 진행됩니다. 남은 역사가 개봉되어야 되고, 또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개봉되어야 될 이유는, 언약의 발전에 따라 그 새 언약의 내용을 공개 할 역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인자를 거부한 이 시점에서 과연 진정 누가 언약의 백성이겠습니까? 그것은 어린 양으로 더불어 같이 그들로부터 거절당한 무리 일 것입니다.(6:9~11) 천사에 의해서 역사에 심판을 시작한 것이 첫째 인을 뗄 때부터 입니다.(1:1) 자연히 질서의 무너짐은, 노아언약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점차로 옛 언약이 심판 받는 과정이 되며, 옛 언약의 의해서 선택받은 무리와 인간들은 같이 하나님께 부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재림 때는 끝내 창조언약에 속하는 하늘과 땅마저 날아가 버리게 되며, 이는 곳 옛 언약에 의해서 탄생된 인간 자체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6: 12~17) 창조와 같은 순서로 옛 창조는 자리를 떠납니다. 이는 역사의 세계가 끝나고 묵시의 세계가 그 자리를 차지한 셈입니다. 창조가 처음 생기기 전 그 무질서의 모습으로 창조는 은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된 새로운 인간 무리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수가 144,000으로서 야곱의 복이 최대로 증폭된 것입니다.(12․12․1000, 7:1~9) 그런데 그들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7:17) 왜냐하면,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7:14)

마치 아벨처럼 말입니다.(창세기4:10) 그럼 누가 이들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게 했습니까? 마지막 7째 인, 즉 미 개봉 된 것을 펼칠 때 드러났습니다.(8:1) 다섯째 인을 뗄 때에는 순교자의 무리가 등장했지만, 다섯째 나팔이 불 때는 그들을 환난 당하게 한 무리들이 보입니다.

나팔의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최후의 공격 목표가 누군가? 인지를 알기에 그들을 향해서 경고의 나팔을 분 것입니다.(아모스 3:6, 계 9:1~3)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전갈로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임금도 알려집니다.

그 이름은 아바돈입니다.(9:11) 그들에게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은 결국 주의 증인들입니다.(11:4) 그러나 그들이 자기 할 일을 다 했을 때, 짐승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데,(11:7) 그 장소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장소입니다.(11:8)

세상은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죽음을 기뻐합니다.(11:10) 드디어 이제는 그들에게 직접 심판과 저주를 퍼부을 차례입니다.(11:15, 18) 그 진노는, 하나님의 옛 언약에 기준하여 그렇게 합당하게 살지 못함에 대한 심판입니다.(11 :19) 모든 인류가 다 그 기준에 의해 심판 받지만, 새 언약에 의해서 태어나는 여자의 후손만은,(교회) 최후의 전쟁의 피해에서 제외됩니다.(12:4~6, 13~17)

사단은 드디어 그 여자와 후손과 싸우기 위해서 땅에 나타남으로써 자기의 정체를 스스로 폭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의 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1 3장) 하지만 새 이스라엘은 시온산에서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14:1~5) 마지막 진노가 시작될 때, 성도들은 모세가 가르쳐 준 새 노래를 부르면서 하늘나라로 가는 홍해를 건너고 있습니다.(15:2~4)

드디어 진노는 시작되었지만, 이를 악물면서 까지도 하나님께 도전하는데,(16 :10~11) 그 이유는 땅의 화려함과 사치에 이미 마음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17장~18장) 하늘에서는 혼인 잔치를 준비할 동안,(19:1~10) 땅에서는 마지막 전쟁에서 사탄이 체포되고 맙니다.(19:19~21) 여기서 성도들이 알아야 되는 것은, 왜 주님이 두 번 오셔야 되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 2중의 구속사건은 새 언약에 의한 새로운 이스라엘의 창출에 있었던 것입니다.(20:5~6) 사망과 애통, 눈물,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21:3~4) 오직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생명나무와 생명수가 흐르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21:6,10/ 22:1)

이 모든 것은, 옛 언약에서 멸망 받을 자기 백성을 자신의 피로서,(7:14) 그곳에서 건져 주시고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는(22:17) 어린 양, 예수님 덕택입니다.

오소서! 어린 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