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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20:24-29 / 도마의 믿음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20:24-29 / 도마의 믿음

정인순 2013. 12. 28. 23:17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716103.WMA

 

도마의 믿음

2003년 7월 16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20:24-29

 

 

20:24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한다면 성경 안에서의 부활이지 실생활의 부활로 느껴지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도마라는 제자가 개인적으로 다른 제자들과 이야기 한 내용을 도마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먼저 선수치시면서 언급을 하시는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 현장에 같이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성도들은 어디를 가든지 늘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현장입니다. 하지만 그 현장을 주님께서는 적절하게 활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로 하여금 마음껏 자기 의사를 드러내도록 기회를 주신 것으로 봐야합니다.

 

"보지 않고서는 못믿겠다"는 도마의 발언에 대해서 흔히 불신앙으로 매도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도마와 같이 오늘날의 사람들도 같은 형식으로 예수님에게 다가서기 싶습니다.

 

마치 대형 할인점에 카트를 끌고 가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담고 원하지 않는 물건은 제외시키는 것처럼, 성경을 보면서 자신이 믿을 만한 것은 믿고 못믿겠다는 것을 제외시키면서 "그래도 예수님을 미워하지 안찮아"하고 스스로 달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는 타락과 인간들이 상호들 끼리 통용되는 타락이 틀립니다. 타락이라고 한다면 보통 윤리적 타락을 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산다 할지라도 복음을 모르면 하나님 보시기에 확실한 타락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부활하셔도 여전히 일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물론 제자들은 이 '끝까지 사랑'이 잘 감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도마의 주장처럼 "보지 않고서는 못믿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거나 믿더라도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이 앞서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부활하셔서 일부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이유와 '끝까지 사랑하심'에 담긴 진정한 내용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직면하면서 자기 믿음에 뭔가 몇 가지 요소가 누락된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즉 다른 믿음은 괜찮은데 몇 몇 요소만 첨가하면 보다 완벽한 믿음이 될 거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도마가 궁극적으로 믿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멈춘 것이 아닙니다. 28절에 보면,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아 과연 예수님은 부활되어야 마땅하군요"에 멈춘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기 전에는, 도마는 자신이 믿을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들의 공통적인 속성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마의 문제점은 딴 게 아니라, 자신이 ''믿는다'는 그 '믿는 행위'에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그는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설사 자신이 '믿는다'는 '믿음 행위'에 문제점이 있다고 한들 어쩌겠어요. 대책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차라리 도마처럼 "보지 않고서는 못믿겠다"고 나서는 것이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겸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런 도마에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역시 봐야 믿음이 생기는 거야"라고 확신했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보지 않고서는 못믿겠다'라는 그 마음의 근본적인 문제성을 그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자신의 '믿음 행위'로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도마 자신을 믿게 해야지만 비로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도마는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먼저 예수님에게 다가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까지 주님께서 하셨다는 이 실을 두고서 도마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저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주님'은 모든 하나님의 일을 독점적으로 본인의 열심히만 성취시키시는 그런 주님이십니다. 물론 도마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신봉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이 점을 익히 압니다. 하지만 과연 이 진리가 도마 자신에게 직접 작용하기에는 이번에 처음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이란 곧 '만남'입니다. 아브라함과 만났고. 이삭과 만났고, 야곱과 만났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참 이스라엘 전부와 만나십니다. 물론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무슨 목적과 계획과 사명이 병행해서 부여되는 만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일을 마무리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찾아오시고 만나서 구원시키시는 겁니다. 물론 이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도마는 이런 일을 자기 노력으로 억지로 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자기가 시도하려는 신앙 생활 안에는 예수님이 꼭 구태어 부활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과 만나고 나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애썼던 모든 것은 모두 엉터리였던 것입니다. 그냥 자기 기분과 결심에 불과했습니다.

 

그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물론 남들보기에 그럴사 했을 것입니다. 자기도 이만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모두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모두 것들을 주저없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도마는 이제 제대로 된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보여 주는 방식을 철수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영이신 성령께서 나서서 영속적으로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를 겨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즉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대단한 실력가이다"가 아닙니다,

 

믿음은 실력으로 결정나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서도 도마도 동일한 선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날 터인데 이들은 정말 큰 복을 받았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지도 않고서도 도마의 달라짐과 같이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보여주지 않고 믿게 되는 복이 앞으로 모든 신앙인 만들기의 표준으로 자리잡습니다.

 

복이란 종결성이 있고 완료적입니다. 즉 복을 받고서도 모자람이 있어 또 인간의 행위를 추가로 보탤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연구하고 탐구하는 모든 것은 항상 미완료적이고 미종결적입니다. 뭔가 이만하면 됐다고 자부하는 순간 또 모자람이 생깁니다.

 

그래서 발전이라든지 부흥을 탐하게 됩니다. 만약에 구원이 미종결적이라면 그 미흡함으로 인해 아무도 구원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이란 그 자체로 종결적으로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시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처음 믿을 때나 오랫동안 신앙 생활하나 변함이 없는 요소입니다.

 

바로 이 변할 필요도 없는 것을 믿게 되면 그란 사람은 더 이상 죽음과 그 어떤 사태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미종결적이고 미완료적인 것이기에 그런 것들이 찾아오나 혹은 없어져 버리거나 사실 미련 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옳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신앙을 믿는다든지, 자신의 체험을 믿는다든지 하는 것은 아지막 더 큰 체험이 있을 가능성 때문에 미완료적입니다. 이런 신앙은 기초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믿음은 복으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제조해낸 믿음입니다.

 

변화된 믿음이란 이럴 필요가 아예 없는 것입니다. 믿음조차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 되심의 열매로서 주어진 것이라면 우리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보이고 아니보이고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쪽만 보고 계시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이 주님이시기에 당연히 그런 일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으면 되는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것을 내놓지 맙시다. 그런 것들은 항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학의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사물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들만 교류하는 것이 이 세상인 줄 압니다. 이런 식의 신앙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할 때나 나올 태도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주님을 위해 생명을 내놓아도 지장이 없는 사람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두고 두고 감격하고 놀라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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