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7:15-22 / 하나 됨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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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 2003년 3월 26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7:15-22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누군가 하늘로부터 이 땅에 왔다는 것은, 이 세상 입장에서 봐서는 큰 위기입니다. 그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왜 오셨단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인간들 손에 이 세상을 맡기지 않겠다는 분명한 다짐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인간들에게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네가 죽든지 누구가 죽든지 그저 내가 사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모든 이들이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도 통하지 않습니다. 정의와 불의도 통하지 않습니다. 잡아먹고, 뺏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진리를 요구하는 작자가 나타난다면 사정없이 밟아버립니다. 그리고 없애버립니다. 모두들 힘 키우기에 분주합니다.
따라서 살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올바름과 진리를 아는체 하지 말 것을 강요받습니다. 선한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계속 선하게 되면 그 사람을 제거해 버립니다. 누구라도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남고자 한다면 이 힘의 논리 이외에 다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위험한 세상이 이 인간 세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세계를 그냥 두고 보시지 않고 어떤 분을 이 세상에 투입시켰습니다. 옛날 구약 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창세기 18:20-2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데 있어 세 가지점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있는 그대로 위로, 하늘에 까지 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그 일의 내막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쉴새 없이 관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관찰하시는 것으로 끝내겠습니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저 관찰로서 끝내는 일이란 하나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9장에 보면,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하늘에서 퍼붓는 대 폭격이 일어났습니다. 유황불로 인해 완전히 소멸된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세상이 너무 악하고 다들 막무가내로 사니까 하나님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특히 예배 시간에 예배드리지 않고 산으로 들로 놀려나가는 행락 차량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하나님에 대해서 무능력함에 실망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까? 물론 교회란 하나님과 교제하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하고 교제하려 나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격분같은 것이 있을리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창세기 15:16에 보면, 멋진 하나님의 답변이 있습니다.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라고 되어 있는데, 즉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했다'는 겁니다. 대규모 심판을 감행할 만큼 아직 죄악들이 성숙되지 아니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열심히 죄악을 모으고 계시는 중입니다. 심판의 정당함이 충분히 반영될 그 순간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움이 정의답게 온 우주에 증명되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하여튼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이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관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어떤 분을 보내셔서 이 세상 죄악의 강도를 측정하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이 땅에 들어오셨다는 것이 인간 세상의 최대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보면 됩니다. 인간이 인간들에게 죄지을 때는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들이 하늘에서 오신 분에게 달려들 때면 더 이상 하나님도 용납해 주지 않습니다. 창세기 19장에서, 심판을 감행하려 오신 두 천사를 그 지역민들이 어떻게 대접했습니까? 그 천사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롯은 두 천사를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두 딸을 대신 내놓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참담한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오늘날 이 정도까지 희생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모두들 자기 몸하나 챙기기 바쁜 이 시대에서 말입니다. 롯은 천사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도리어 성도를 이 악한 시대에서 보호해 주시려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보호해 주시려고 합니까? 천사들을 보내어 성도의 집 문 앞에 보초로 세워 악한 자들이 무기를 갖고 해롭게 못하도록 방비하십니까?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차라리 이 세상에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그 대신 다른 것이 성도에게 덮칩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가 악에 빠지지 않는 것은 개인적이 역량과 관계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말씀의 능력에 의해 붙잡혀 있기에 생긴 현상입니다. 오늘 본문 17-1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의 취지는 이러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측정하기 위해 같은 인간인 성도에 대해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 안에서 살게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 안에 깊숙히 거주하시며 사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오로지 아버지의 말씀, 오직 진리에 붙잡혀서 사셨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성도들이 살도록 조치하시겠답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는 세상적인 것으로 세상과 승부에 나설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마음껏 자랑하라고 하세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자랑거리로 봐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진리의 말씀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합니다. 이로 인하여 세상은 이 진리에 대해서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그렇게 했듯이 그들도 과감하게 추방시켜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인간 세상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비진리인가가 뚜렷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도는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이처럼 복음이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여유만만한 가운데 복음을 전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복음의 진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탐내고 있는 여유있는 재물에 관심을 두게 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거룩,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성도에게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이 점을 알기 위해서 여기는 우리는 구약의 요나 선지자를 찾아가야 합니다. 요나 1: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폭격하기 직전의 말씀과 같지 않습니까. 드디어 마치 천사의 역할로서 요나가 그 죄악이 많은 니느웨성에 잠입합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이 죄악된 세상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취지에서 활동하십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입에 담아 두신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 말씀이 요나 3:4에 나옵니다.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렇습니다. 죄을 지었으면 당연히 멸망 받아야지요.
하나님은 원래 불의를 그냥 방치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요나 선지자가 하룻 동안 이 말씀을 전했더니만, 갑자기 온 나라가 회개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나 3:6-9에 보면,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니느웨 왕부터 모든 사람들이 요나 선지자가 전하는 그 말씀이 실제로 앞으로 일어날 일로 곧이 곧대로 받아 들였다는 겁니다. 거부하지 않고 말입니다. 따라서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제 2의 소돔과 고모라 꼴이 된다고 내심 고대했던 요나 선지자는 갑작스런 대변화에 낙담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삐져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결국 다음과 같이 해답을 내려줍니다.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에게 보낸 것은 니느웨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원해주시려는 배려였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신 것은 죄악된 세상의 멸망을 통고해 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방문을 보고서, 그 말씀 전부를 실제 상황으로 고분고분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그 어떤 죄도 하나님께서 묻지 않고 진노를 도리켜 구원으로 이끌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전하는 자의 임무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고귀한 사명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사명자가 된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요나처럼 당당하게 예수님의 구주되심을 증거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모두를 일시에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곁에서 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에서의 우리의 할 일을 찾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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