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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7: 4-10 / 하나님의 자녀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7: 4-10 / 하나님의 자녀

정인순 2013. 12. 28. 22:46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31285.WMA

 

 

하나님의 자녀

2003년 3월 12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7: 4-10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17: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17: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는 이미 나름대로 기준이 서 있습니다. 이 기준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자신이 과연 하나님 자녀인지를 제대로 확정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규정지을 만한 기준이 나와있습니다.

 

8절에 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남긴 것은 오직 말씀뿐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오면서 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을 것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만족시켜주지 아니하면 대단히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쪽에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것은 오로지 '말씀' 뿐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할 위인이 아무도 없겠지만 놀랍게 신기하게도 그런 자들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 자녀됨을 규정하겠다는 하나님의 취지입니다.

 

따라서 진정 하나님 자녀들은, 흔히 세상 사람들이 찾고 구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참 뜻에 관심을 두고 예수님을 통해서 전달되는 그 참 뜻을 알고는 대단히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순전히 이런 자들을 위하여 오늘 본문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세상 사람 전부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오로지 이 세상 사람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넘겨준 사람들만을 위한 기도에 한정됩니다. 전체가 아니라 일부의 사람들 만을 위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이 앞부분만 듣고 좋아라 합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온 세상 사람들을 전부다 사랑해주어야 진정 하나님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의 말씀을 더 봐야 합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에게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독생자를 믿는 자에게만 멸망치 않는 겁니다. 만약 독생자를 믿지 아니한다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3:16 앞 부분에서 말씀하신

 

'세상 사랑'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연히 세상 전부가 아니라 세상 사람 가운데 들어있는 일부의 사람, 즉 하나님의 자녀에 집중되는 사랑입니다. 그들만이 구원되기 위해 예수님은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방문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구하고 찾는 것을 외면하고 오로지 예수님만이 찾을 능력이 있겠습니까? 9절에 보니, '내게 주신 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우리 본인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성도를 가지고서 하나님 사이에 이미 주고 받고 하는 관계에 놓여져 있다는 겁니다.

 

이 소식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어줄 때만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사된다는 보편적 상식을 파괴해버리는 진리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스스로 점을 치면서 일진이 나쁘다니 좋다니 하는 말들을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은 왠지 기분좋은 날이 될 것이다"라는 예상이나 혹은 "오늘은 왠지 매사에 조심해야만 할 날처럼 느껴진다"는 그런 기분 같은 것은 하나님에 의한 자녀됨 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감정입니다. 즉 인간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느낌이나 종교적 감성 같은 것은 전혀 하나님에게 영향력을 입힐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선에게 이미 확정되어서 이 세상에 표출되는 겁니다. 마치 어릴 때 키 큰 형들에 의해서 장난감을 빼앗겨가지고 되찾아보려고 아무리 발바둥쳐도 키 작은 어린 동생은 형들로부터 자기 장난감을 도로 뺏아올 수 없는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인도하시는데 그 인도하는 최종 수준은 딴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과 팔자가 결정되어 있다는 이 사실에 대한 수긍과 동의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앙 생활 모습을 목표로 삼아 흉내 내려고 합니다. 만약 내가 남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를 검토해 봐야 합니다. 아무리 본인이 남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이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수 없는 그런 상태에서 나의 사랑이 남들에게는 큰 실례가 되는 경우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인간이란 모두들 각자 두뇌가 따로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모든 인간들이 마음에 품고 있고 내뱉는 생각들이 각자 다르게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정성과 사랑으로 타인에게 다가간다고해서 무조건적으로 이웃을 사랑했다고 우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참된 사랑은 자신의 느낌이나 행위나 애씀에 기준을 두지말고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바가 같이 하늘에서 내린 그 기준을 상대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도 오로지 성경 말씀 말이 믿을만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에 한해서 이런 사랑이 나오는 겁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앞으로 어떻게 살던 이미 예수님에 묶여 사는 삶, 이 외의 것은 도저히 나올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운명이라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점에 오히려 다행스럽고 편안하고 유복하게 느껴져야 하지 않습니까? 갓난 아이가 요람 안에 놓여 있는 것이 평화요 참 자유가 되지만 요람을 벗어나 번잡한 시장통 거리에 내동댕이쳐 있는 것이 과연 진정 갓난 아기의 자유로운 삶이겠습니까?

 

시편 131편 1-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이런 신앙 상태에 놓인 자는 결코 하나님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이나 교회나 자기 직장으로 인해 그 분풀이를 하나님에게 하지를 않습니다. 이 시편 신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세계에서 이미 확정된 진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기 때문에 터져 나온 고백입니다.

 

이 시편 신앙은 '교만'과 '눈의 높음'에 대해서 압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구원될 자가 없다는 점이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본인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됨'의 원리에 준해서 구원되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뜻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척 교회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심령이 가난하게 되었느냐 하는 바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성도는, 지난 날 자신이 교회문을 들어선 것도, 그리고 기도를 하게 된 것도, 그리고 성경을 보고 마음에 깨달음이 찾아온 것도 모두 사전에 예수님께 기도한 그 기도의 응답의 결과로 일어난 현상임을 압니다.

 

자신이 생기기도 전에, 이 세상에 출생하기도 전에, 이미 오로지 예수님만 섬길 자로 확정된 채로 '툭'하고 이 세상에 등장된 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것은 그저 이기도 또 이기는데서 삶의 희열을 얻고자 합니다.

 

밤에 집에 와서 잠 자리에 누우면서도, 오늘은 누구에게는 이겼고 누구에게 졌다는 것을 계산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일 해가 뜨면 또 이기고 이기는 하루로 장식되기 위하여 신이 자신에게 힘을 모아주는 행운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생에 대해서 좋아하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입니다. 마귀는 결코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고 돈의 위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는 점점 더 악마의 노리개감이 될 뿐입니다.

 

에베소서 6:14-17에 보면,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코 세상 권력으로 완전 무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이 주신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소원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먼저 생각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