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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이사야 50:1-3 / 죄로 팔렸다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이사야

이사야 50:1-3 / 죄로 팔렸다

정인순 2013. 11. 5. 17:03

 

134강-사50장,1-3,(죄로팔렸다)-isa0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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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팔렸다

2008년 4월 2일

이근호

 

본문 말씀: 이사야 50:1-3

(사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보냄을 입었느니라』

(사 5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사 5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볼 때에, 개인적인 자질이 얼마나 뛰어나는지 아니면 얼마나 인품이 훌륭한지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팔렸느냐 아니 팔렸느냐로 보십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죄라는 것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기에 어떤 죄를 지어도 어떤 죄는 안 지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여러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죄로 인간들을 빨아들이십니다. 그 죄는 바로 ‘선악과 왜 따먹었느냐’입니다. 인간들 보기에 죄란 숱하게 많다고 여겨지겠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죄만을 언급하십니다. ‘왜 너희들은 선악적인 인식을 하느냐’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선악적인 사고방식을 발휘하면 이렇게 됩니다. 비록 내가 조그마한 죄를 짓더라도 다른 선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면 악한 일로 인한 흉도 얼마든지 보충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골짜기가 문제가 있으면 높은 산정을 깍아서 골짜기에 메우면 그만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 자체가 죄악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인간들에게 있어 죄 문제가 어디까지나 자신에 관한 문제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를 않습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훼방놓고 미워하고 공격하는 성향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그 여파가 하나님에게도 도달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죄라는 것이 단순히 그 인간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지은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본인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처리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는 상황으로 변모시킵니다. 그래서 죄 속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맨 처음 아담과 하와가 이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수치만 가리면 그만이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들의 신세는 자신들도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팔렸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겁니다. 팔린 자는 자력으로 원상회복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한 덩어리로 봅니다. 아담이 죄에서 못 빠져나온다면 아담 후손 그 누구도 죄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갈라디이사 3:22에 보면,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가두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인간들이 처해 있는 공간은 인간에게는 감옥입니다. 못 빠져나옵니다. 아무리 현재 대자연이라는 환경이 높고 넓다고 하더라도 갇혀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죄 아래 갇혀 있는 신세를 호전시킬 수가 없습니다. 16살 먹은 청소년이 세상이 갇혀있는 것과 같이 90살 먹은 노인네도 역시 갇혀있고, 설사 이미 죽어버린 자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갇혀 있는 꼴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여행하면서 뭔가 탈출했다는 해방감을 갖게 되지만 실은 사람은 바다 끝에 가고, 땅 끝에 가고, 하늘 끝에 가도 갇혀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고 싶은 그곳에 자신의 몸이 현재 같이 따라가고 있으니 실제로 인간은 자기 몸을 떠나 어디에도 여행한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즉 몸은 한국에 있는데 마음은 파리가 가서 여행하는 그런 경우란 인간에게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몸마저 파리에 같이 데리고 가야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면서도 한 가지 죄로 인하여 그 죄 아래 갇혀있는 신체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선악적인 사고방식을 발휘하게 되면 꼭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즉 “나는 이렇게 착한데 저 사람은 저렇게 나쁘구나. 그러니까 나만 따로 독립해서 나와서 나만 구원받아야지”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오직 하나의 몸으로 간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은 숱한 이스라엘들은 오직 하나의 군대처럼 통솔해 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하나로 몰아세우시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몸통 되는 그 아담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이점을 몰라서, 예수님께서 어디 가신다고 하니,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따라 가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베드로가 목숨 바치더라도 갈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처소가 마련되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처소는 오직 예수님만이 장만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몸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몸은 현재 우리의 몸으로서 아담의 운명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손가락이 자신의 몸통을 분리해서 따로 떨어져나올 수 없듯이 우리 자신들이 다른 사람과 다른 운명의 길을 스스로 노력과 스스로의 선택으로 떨어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몸이 천국이기에 그곳에 붙으려고 애를 쓰고 그곳에 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신이 모든 백성을 하나로 묶어주듯이 예수님에게서 나온 성령께서는 예수님과 아담 속에 있는 자기 백성을 하나로 묶어서 ‘한 몸’되게 해주십니다. 이로서 아담에서 떨어져 나오기 성공한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분은 자진해서 말하기를, 자신은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선악 지식 구조를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고백하기를, 십자가 피로서만 의인되고 천국 간다고 외칩니다. 결코 사도 바울 개인의 자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그를 한 몸으로 끌어당겨서 자기 몸에 붙이신 것입니다. 인간으로 불가능한 이 일을 예수님을 해내시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어찌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겠습니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으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 되는 새로운 몸이 되었으니 오직 예수님의 행하신 것만 의미를 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