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사기 9:1-2 / 권력자의 본성 본문
이근호
21강-삿9장1-2(권력자의본성)-jdg0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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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본성
2008년 3월 2일
본문 말씀: 사사기 9:1-2
(삿 9: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가로되』 (삿 9: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기드온이 죽고 난 뒤에 기드온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열한 존경심은 그것을 권력으로 이해한 모리꾼들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기드온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포집해서 그것으로 자신이 왕이 되는 권력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자식이 72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 70명을 한 자리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정치적 정적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가 형제들을 정치적 세력의 라이벌로 간주하여 다 죽이면서 우상의 제단에 바친 돈으로 건달들을 매수하여 거사를 치렸습니다. 즉 자신이 왕이 되는데 있어 눈 앞에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심성은 사실은 누구에게다 있다는 겁니다. 교회 내에서 흔히들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피의 공로를 언급합니다. 공짜로 구원해 준다니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식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하나님을 향하여 고맙다는 멘트는 던집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자기 바깥에만 멈춰지는 일일 경우에 한해서 그러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 정신이 자기 내부까지 파고들어오면 그 누구라도 도저히 용납하지 발끈합니다. 십자가가 나의 내부까지 들어오면 그 십자가 정신이 나의 모든 것을 다 파먹고 잠식하기 때문에 진정 ‘나’라고 규정지을 건덕지 남아 있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은 겁을 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나의 외부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일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나의 영역 속까지는 들어오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의 내부까지 파고들어오면, 나의 즐거움, 나만의 쾌락, 나만의 포부와 나만의 절대적인 가치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 뻔하니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고마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 뻔합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성이 오늘 본문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아비멜렉의 경우, 아버지 기드온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맺어졌는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고 현재로서는 남아 도는 권력이 자기 집안 주변을 감싸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자기 쪽으로 긁어모으게 되면 자신이 아버지 기드온 못지 않게 카리스마 넘치는 권력을 행세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된다는 계산만 하고 있는 겁니다.
아비멜렉의 집단 학살에서 구사일생 살아남은 요담이 다음과 같이 세겜 사람들에게 핀잔을 줍니다. 세겜 사람들은 이미 아비멜렉 편으로 돌아서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나무 비유로서 경고합니다.
나무들이 모여서 자기네들의 왕을 뽑는데, 감람나무에게 왕이 되기를 권고 했건만, 감람나무는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올리브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에게도 왕이 되어줄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그도 사양합니다. 맛있는 과일 맺는 것이 자기 할 일이라는 겁니다.
포도나무에게도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도 거부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 맺는 것이 자기 할일이니 이 중대한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들이 이번에는 가시나무에게 부탁합니다. 가시나무는 얼시구나 하고 왕이 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별 할일도 없이 가시만 쭈빗쭈빗 돋아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난 뒤에 가시나무가 왕이 된 뒤에 이 가시나무의 포악한 성품이 유감없이 폭발하면서 주위에 있는 모든 나무를 불살라버리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이처럼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정치적 욕망에 놀아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아니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서로 친하게 지내든 아비멜렉 진영과 세겜 진영 사이에 악신을 보내어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갑자기 서로에 대해서 배반을 하니 이들은 더 이상 기드온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해서 완전히 관심없고 오로지 “누가 감히 나를 건드려!” 자아성만 폭발하고 맙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교회나 이스라엘이나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입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은 목회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능력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구원이 못될 정도로 못난 존재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더욱 깊이 공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늘 본문처럼 악신이 임해서 망하는 대목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악신이 임하면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쉽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얼굴을 돌려버리고 곧장 자신의 권력을 사수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지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나 일반 사회 단체나 소위 남아도는 권력을 자기 자신을 위한 권력으로 전화하려는 정치꾼들이 등장해서 예수님을 대신하려고 나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목사들이 그 대표적인 작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십자가에서 피 흘린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면 그만인 자들입니다. 교인들이 결코 그들의 소유가 아니며 그들이 주장하는 교회 권력의 희생물이나 밥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피의 은혜가 싹가시고 나면 남는 것은 인간과 인간 간의 힘으로 결탁해서 현재의 상태를 강하게 결속시켜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악마의 신, 곧 악신을 보내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싸우게 되고 결국 둘 다 망하는 코스를 밟게 됩니다. 결코 이들이 복음의 투명성과 진리성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에 인간의 행위가 섞이느냐 마느냐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뒷전이고 오로지 ‘누구든지 나의 영역에 도전하면 가만 안둔다’는 것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공로와 은혜성이 사적인 영역까지 침투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런게 다 악신이 임해서 그러합니다. 악신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성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방향으로 인간은 움직이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고맙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신적인 요소가 우리 가운데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는 받아놓고 우리의 관심사가 오로지 자신의 영광에 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는 쪽으로 바뀌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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