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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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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2012년 4월 15일
본문 말씀: 아모스 9:1-4
(암 9:1, 개역)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암 9:2, 개역)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암 9:3, 개역)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암 9:4, 개역)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을 들고 대심방하면서 가정마다 외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거부감을 나타낸다면 이는 평소에 말씀보다는 다른데 마음 두고 살고 있다는 것이 들통 난 겁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 말씀이 자기에게 현실이 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 현실이란 자신이 만들어내고 싶은 현실로서 늘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선지자가 단호하게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을 알려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망하는 길이 사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망한다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성취되는 것을 너희들이 극구 거부하는 이유도 내가 알고 있다”는 식으로 하나님쪽에서 나오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말씀 대신이 무엇으로 그들 사회에 유포시킨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성전과 그 성전과 유사품들을 명승고적처럼 나라 전역에 만들어놓았습니다. 백성이 원한 바로 왕이 그들의 소원을 실행에 옮겨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은혜대로 능력이 나올 기미가 큰 곳을 마음을 두고 있다가 자기 신상에 위험한 일이 생겨버리면 얼른 그곳으로 피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들이 피하고자 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진다는 말은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잘못 섬기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세상 종말을 대비해서 뭔가 대비책을 나름대로 챙긴다고 챙기지만 제대로 대비책을 세울 수 없는 지경으로 인간의 마음은 잘못되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만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무슨 기준에 의해서 주어지느냐를 우선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5:28-29에 보면,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지금 자신이 살아있는 채로 계속 살아보겠다고 발바둥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어도 사는 기준이 뭔가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안 죽겠다고 살아서는 기존의 기준을 계속 지탱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심판이 뭐길래 이스라엘은 필히 망해야 할 나라였더란 말입니까?
사무엘상 8:6-9에 보면,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왕제도는 낯섭니다. 하지만 오늘날 시대에도 도리어 왕 제도가 없는 나라를 이상하게 보는 안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본디 자기보다 특출한 존재를 지도자로 마음 속에 나마 삼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북한의 치제가 그러겁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의 이상을 밖으로 표출해서 현실로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인간들의 왕 찾음은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데 필요한 힘이 자기가 소유한 능력으로 충분치 않다는 의식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나라들처럼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왕을 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왕되심을 버리는 노골적인 태도다”고 말입니다. 고대 나라에 왕이 있는 것은 ‘왕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 반역이요 이 반역에 대해서 공개처형“으로 대처합니다. 그것은 왕의 존재가 법의 최종적 권귀가 보장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법이 엄중해도 그 법의 시행을 정당시화해 줄 최종적인 바탕은 역시 한 인물인 왕에게 집중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왕을 무너뜨리고 양식 있는 사람들 끼리 약속, 곧 ‘사회 계약’에 준해서 국가가 운영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법치국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권력이 한 사람에게 두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고대 국가처럼 이스라엘도 왕이 계십니다. 그 왕은 보이지 않고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단지 그 몸에서 나온 법이 이스라엘 전체를 덮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 하나를 어기면 모든 것이 어기게 되면 율법 하나를 지키면 모든 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하늘의 임금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온 율법을 다 이룬 것에 해당됩니다.
율법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랑만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으로 한 율법을 지킨 것은 실은 모든 율법을 지킨 것이 됩니다. 바로 이 사랑을 드러내지 못한 모든 법은 인간들의 자기 사랑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리고 개인의 우월을 드러내는 황경으로 전락해버립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왕’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즉 왕의 법말고 자신들을 자신이 사랑해도 되는 그런 법을 얻기 위해서 인간들과 타협가능한 인간왕을 그리워해 온 것입니다. 이방나라들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렇게 해서 세워진 왕들이 이스라엘와 유다 나라를 망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자기 나라라고 간주된 이스라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만의 사랑입니다. 아모스 말씀 속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아픔소리가 듣겨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선악과만 따먹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소식이 섞여 들어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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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이한례
24강-암9장1-4(성전 문지방)12041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8장1절에서 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283 페이지입니다.
아모스9:1-4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방금 읽었던 이 대목을 대심방할 때 이걸 본문으로 심방을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상당히 궁금해요. 이 대목을 염두에 두면서 2012년 올해를 마야 달력에 의하면 인류의 종말이 온다는 그 해입니다. 계산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12월 달쯤에 온다는데. 그래서 지금 인류종말을 대비해서 미국이나 여러 각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이 굴을 판다든지 한 6개월 치, 아니면 1년 치, 양식과 음료수를 준비해서, 또 그걸 탐내고 뒤늦게 합류해서 ‘같이 살자. 나눠 먹자.’ 인간들이 올까 싶어서 엽총을 들고 ‘오기만 해봐라.’ 그거 준비해서 마지막 인류의 종말을 대비해서 깊은 산골에 숨는 그러한 활동들이 미국 같은 곳에 많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걸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고 그 모임이 있는 모양 이예요. 6개월 땅 속에 버틸 때 공기와 물과 그리고 양식은 어느 정도 준비해야 되고 거기 영양분은 몇 칼로리 계산하고 식구는 몇 식구가 가능하며 그리고 철조망을 쳐서 같이 살자 해서 마지막 핵폭탄, 인류 멸망했을 때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교신할 때는 어떤 교신으로 해야 되느냐, 그건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여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갑자기 유성이 와서 지구를 때려버리면 지구는 완전히 하늘이 깜깜해지고 화산이니 이런 거로 깜깜해져서 못사니까 그때는 땅을 파야 된다. 일종의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을 지금 만들어서 회원모집을 하고 이렇게 하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게 소용이 없어요.
여기 2절에 보면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갈지라도 너는 도망하지 못하고,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2012년 종말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준비한 사람들이 뭐가 잘못이냐 하면 준비 할 것을 준비 못하는 거예요. 준비 할 것이 음료수 이런 걸 준비하는 게 아니거든요. 비스켓, 초콜릿 이런 걸 준비하면 안 되고 준비 할 것은 심판을 할 때 심판의 방식에 대해서 먼저 무지하기 때문에 심판 할 때 뭐로 심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준비하는 것도 제대로 준비를 못하는 거예요.
죽어도 사는데 그걸 모르고 현재 목숨을 안 죽으려고 하니까 그 준비 과정이 영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겁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 26절,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볼 때마다 감사한 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도 아닙니다. ”진실로, 진실로“ 100% 리얼하다 말이죠.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살아 있는데 안 죽어야 된다는 그러한 꼼수는, 꼼수 이번에 떨어졌잖아요. 살아있는데 안 죽으려는 꼼수 하지 말고 죽어도 살 수 있는 방법을 해야지, 그 방법을 생각을 해야지, 죽어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살아 있을 때 죽어도 살리시는 그분을 미리 만나면 되는 거예요. 참 쉽죠?
죽어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죽기 전에 살아있을 때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분의 하신 일이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작용하고 터져버리면 되죠. 사람들이 죽은 자들이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그 다음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그런데 뒤에 부활만 좋아하지 말고 어느 식으로 분류되어서 나오느냐, 부활되느냐가 무서운 일이죠.
“심판의 부활로“ ‘심판 받아야 니는 죽어도 나는 너를 안 놓칠 거야. 나는 너를 심판 주고야 말리라.‘하는 하나님의 야무진 계획안에서 영원토록 심판 받기 위해서 모든 인간은 꼭 살아나야 됩니다. 심판 받기 위해서. 그러면 심판 받기 위해서 살아나면 그 심판 받을 이유가 그 사람 속에는 분명히 있어요. ’아! 이런 것 때문에 나는 영원히 심판 받아야 되는구나.‘라는 것이 그 사람 속에 영원히 장착돼 있고, 반대로 ”생명의 부활로”라는 사람은 ’아! 이래서 생명을, 영생을 누릴 수밖에 없구나.‘ 하는 그 이유가 장착돼야 됩니다.
우리는 그게 궁금하죠? 무엇이 심판을 영원히 받고 무엇이 생명을 영원히 받는지 궁금하죠? 뭐 궁금할 거 없습니다. 그대로 사시면 심판받고, 여기 그대로 사시는데 뭐 하나 더 추가되면 사는 겁니다. 선악과를 이미 따먹었기 때문에, 안양에서 그런 강의를 했는데 우리 조상 아담이 이미 선악과를 따먹었잖아요. 따먹었으면 하나님께서 회담을 하던 누구와 대화를 하던 우리 선조하고 대화하지 우리하고 이야기를 안 합니다. 이미 이야기는 끝난 이야기예요.
‘너 선악과 따먹었지?’ ‘따먹었습니다.’ ‘저주 받아라. 낙원에서 나가.’ 끝난 문제예요. 뒤늦게 거기서 태어나서 ‘주님 아담하고 이야기하지 말고 저하고 이야기합시다.’ 주제넘게 나설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이 못 됩니다. 우리 대표자가 하나님하고 이야기해서 끝났으면 우리는 그냥 일방적으로 그 환경을 수용할 뿐입니다. 새삼스럽게 착한 일 한다고 우리 인생이 달라지고 변경되는 여지가 없어요.
성경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어요. 어디 착하고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성경을 보실 때는 우리 선조하고 주님하고 그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것만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끝난 문제예요. 6자 회담 주체 자가 그분인데 지나 개나 전부 다 6자 회담한다고 4800만, 5000만 회담이지, 다 끼어들어서 바쁜데, 한명 대표자만 남아. 전부 다 가고 대표자만. 대표자가 아담이었고 아담이 선악과 따먹었으니 저주 받는 것, 끝난 거죠. 그냥 물려받은 DNA대로 그냥 사시면 지옥 가는 겁니다. 뭐 어렵지 않아요. 쉬워요.
문제는 그냥 사시는 게 정상이고 상식이고 그냥 사시면 돼요. 장사하고 살든지 뭐하고 살든지, 농사짓고 살든지 하면 되는데 뭐가 하나 새로 개입이 돼야 되는 겁니다. 그게 뭐냐, 생명나무가 개입돼 버리면 영생 얻죠. 원래 생명나무는 대표자가 선악과 따먹어서 생명나무는 대표자만 못 따먹을 뿐 아니라 우리도 못 따먹게 돼 있어요. 우리는 구경도 못하죠.
선악과도 우리 선조 되시는 아담만 구경했지 우리는 구경도 못해보고 선악과 따먹은 저주스런 효과는 우리는 다 받고 있고 상당히 불공평하죠. 그런데 아담은 어떻게 살았느냐, 아담의 부인의 이름이 있어요. 이름이 뭐냐, 하와입니다. 하와 뜻이 뭐냐 하면 생명이란 뜻 이예요. 남편은 선악과 따먹고 죽었는데 죽음 속에서 이름이, 죽어야 되는데 그래서 남편 이름이 흙, 죽음이거든요. 흙인데 그러니까 김 흙, 최 흙, 흙인 거예요. 일어나는 모든 것이 흙으로 환원하기 위한 그러한 현상들이 우리가 한평생 계속해서 이어지는 겁니다.
아내 이름은 생명이다. 그러면 여자에게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이키는 힘들이 여자 쪽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걸 약속이라고 합니다. 언약이라 하는 것은 역사 속에 등장하지만, 약속은 에베소서에 보면 역사 이전에 이미 약속이 있어요. 그 약속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작업이 벌써 인간이 선악과 따먹을 때부터 벌써 개시가 되었어요. 약속이란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고 에덴동산을 쫓겨나는 그 인간을 재료로 해서 뭐를 일궈야 되느냐 하면 약속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벌여나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그냥 상식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도 그게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거예요.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내 맘대로 안 되는 경우들이 발생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맘대로 안 되게 하시는 그 배후의 세력을 추적해 보니까 그건 선악과에서 나온 힘이 아니고 생명나무에서 나온 힘이란 말이죠. 우리가 생명나무를 따먹을 입장이 못 되니까 아예 생명나무 쪽에서 친히 방문(방문 판매)하셔서 우리에게 주는 겁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안동 용상을 갔어요. 안동 댐이 있어서 갔는데 점심시간에 중국집에 들어가서 아내는 자장면, 저는 우동을 먹죠. 물론 우동은 그냥 아니고 곱빼기예요. 기쁜 것은 그게 손 자장이라는 사실. 그게 쉽지 않아요. 먹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홀에는 사람이 몇 명이 안 돼요. 몇 명이 안 돼도 중국집이 운영이 되는 것은 배달 손님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내가 뭘 느꼈느냐 하면 ‘아! 앞으로 교회는 배달 손님이 많으면 되겠구나. 홀 손님은 몇 명 되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배달 손님으로 운영이 되는 게 아닌가. 앞으로 배달 손님 위주로 이것도 바꾸고 해서 홀 손님도 없고 하니, 그런 장난기 같은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ㅎ
홀 해봐야 소용없거든요. 100주년 가보니까 예배당 지어놨어도 본 교인은 몇 명 없어요. 그저 홀 손님은 다 도시에 다가버리고 촌에는 몇 명 안 되니까. 주께서 배달을 해주는 겁니다. 왜, 이건 주문해도 오는 게 아니에요. 일방적으로 예수님께서 불평등하게 택한 백성이라 해서 ‘너는 이미 창세전에 찜해놨어.’ 해서 찜했다는 뜻으로 낯선 능력이 와버리는데 그것이 뭐냐, 자꾸 이름이 영생, 생명, 영생, 생명,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이 성경을 쓰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므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생명나무를 따먹을까 해서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킨 그 이야기와 딴 이야기가 튀어나와 버려요. 이상하다. 분명히 창세기 3장에서는 생명나무를 못 따먹게 이렇게 의도적으로 차단시켜 놓고,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단 말이죠. 그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게 바로, 이 일을 알기 위해서 제가 사무엘상 8장을 이야기하고 오늘 본문 들어가겠습니다. 사무엘상 8장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얻기를, 일종의 투표해서 왕 뽑기를 사무엘에게 부탁을 했어요. ‘사무엘 당신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께 부탁해 주세요.’ ‘뭐라고?’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처럼 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할 때 사무엘상 8장 7절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를 교회 지도자로 생각을 하는데 교회서 목사를 뽑는 것은 이건 당연한 거니까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지도자라고 하고 뽑을 때 그 사고방식이 사무엘상 8장 7절,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더 이상 안 믿겠다. 눈에 안 보이는 예수, 못 믿겠다는 그런 속내를 ‘우리에게도 훌륭한 목사님 있어야 되겠습니다.‘하는 걸로 대체한지 안 한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검토해봐야 돼요.
검토 점검 할 거 없죠, 뭐. 인간 자체가 복음의 훼방꾼이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은 믿겠는데 눈에 안 보이는 그 존재는 못 믿겠다 이 말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분 가지고 김 종찬을 부르고 김 세돌을 부르든지 하는 것은 좋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만 이야기하니까 상상력도 나이 많으면 떨어져요. 처음에는 상상해서 믿지만 상상력도 고갈돼 버리면 그들은 뭘 근거로, 상상력도 뭐가 눈에 보이는 걸 근거로 해야 상상할 게 아닙니까? 어느 집에 기도해서 부자 됐다 하니까 그걸 근거로 해서 예수 믿든지 이렇게 출발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 출발점을 그들은 믿기 싫은 거예요.
그러면 인간은 왜 그런가, 인간은 어디 매어 있습니다. 고대 왕국들은 왕이 있습니다. 임금들이 있는데 왕과 임금과 황제와 총통과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왕이 있을 경우에 지금은 왕이 없거든요. 그런데 왕이 있을 경우에 현대인들이 이해 못하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왕의 말을 어기면 반역죄가 되고 이건 공개처형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 보세요. 내 옆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내가 안 듣는다 해서 내가 반역죄가 되고 공개처형 당하면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니 뭐야? 니 뭔데? 웃기지도 않아. 니가 뭔데 내가 니 말 안 들었다고 내가 공개처형 당하고 국가 반역죄에 걸리고.’ 현대인들이 이건 도저히 용납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게 상식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왕이 곧 그 나라의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북한에 보세요. 북한에서 김정은 말 안 들으면 안 듣고 탈북하면 3대를 멸한다 하죠. 공개처형 당하고 아오지 탄광 보내고, 요새 아오지 탄광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다 파먹고 폐광됐는지 모르지만, 아오지 탄광 보내고 공개처형 하는 게 있답니다. 김정은 말 안 들으면.
왜 그래요? 그들, 북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세요. 북쪽에 있는 사람들은 남쪽에 있는 사람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참 이상해.’ ‘왜?’ ‘훌륭한 지도자 뽑아서 오랫동안 하면 좋을 텐데 왜 자꾸 5년 만에 한 번씩 뽑아서 선거 비용 들고 나라도 혼란케 하고 왜 그러느냐.’하는 거예요. 바로 니들이 왕이야. 그들이 말하는 바는 근대 이전에 왕국이 그런 거예요. 그것도 세습제로, 거기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왕은 하늘의 친자라 해서 왕은 하늘의 아들이 돼야 되니까 종교도 ‘우리 임금님은 하늘의 아들입니다.‘를 집중적으로 그걸 내용으로 하는 식의 종교들이 있는 겁니다.
그 대신 왕은 1년에 한 번씩 자기가 대표적인 제사장이 되어서 제사를 드려야 돼요. 지금도 영국 국가 내용이 뭡니까? ‘여왕이여, 영원하소서.’ 아닙니까? 여왕이 영원해야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건 하나의 왕이 있으면 자연적으로 나라가 생기는 거예요. 이건 개미 왕국과 똑같은 거예요. 개미 왕국은 여왕개미가 있으면 저절로 일개미는 여왕을 못 섬겨서 난리 나요. 충성하려고.
사람들이 자기 줏대도 없고 주관도 없어요. 왜 그렇게 어떤 인간에게 그렇게 매이느냐. 우리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참 이해하기 곤란하지만, 요새 나오는 아이돌이라고 있죠? 아이돌이 뭔 뜻인지는 모르지만 걔들을 보게 되면 김 재범이라든지. 그 애들을 보고 50대가 넘은 분들이 ‘아하~’ 하는데 아이쿠, 이건 자진해서 자지러져요. 뭐 이뻐 죽겠다는 거예요. 귀엽고. 그러니까 서른 살들이 춤추면 징그럽고 20대가 나와서 미끄러지듯 춤추면 이건 이쁘고, 앞으로는 10대가 나와야 돼요. 10대가 나왔네. 이젠 영계가 나와야 돼요. 사람이 자진해서 자발적으로 뭔가 지가 원하는 것을 매이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왕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돼요. ‘봐라, 너희들이 왕을 구하더니만 바로 너희 왕 때문에 멸망했잖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면 옛날 선배격인 이스라엘이 왕 때문에 망했다는 것을 그대로 인수인계해야 됩니다. 이걸 남의 이야기라 해서 ‘우린 안 그러면 되지.’ 이러면 안 돼요. 그대로 인수인계해야 됩니다. 인수인계하게 되면 평소에 우리는 어떻게 산다고 우리는 우기는가.
근대 국가에 오게 되면 왕 제도를 대신하는 제도로서 대체가 됩니다. 그게 바로 뭐냐 하면 바로 존 로크라는 사람이 나오는 사회 계약설, 사회 계약설이라 하는 것은 왕의 존재에서 법이 나오는 것을 서로 합의해서 법을 만들면 그 법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인간 위에 법을 두어서 ‘모든 인간도 그 법에 종속하는 방식으로 나라를 만들자.‘ 해서 나온 것이 사회 계약설에 의한 현대 국가입니다. 권력도 셋으로 나눠서 삼권분립을 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왕국만 있던 것이 근대화 되면서 전부 다 입헌군주국 내지는 이렇게 의회제도 중심, 그리고 법 중심으로 다 바뀐 겁니다. 법에 의해서만 말하고 법에 의해서 재판하고 법에 의해서만 보호받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베트남 여자가 와서 투표하려고 하면 안줍니다. 왜, 대한민국 헌법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보험 했는데 혜택을? 안 됩니다. 왜, 베트남 여자 방금 시집와서 온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혜택 없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끼리 모든 사회 보장, 복지도, 뭐든지 간에 애들 공부 시키는 문제, 법에 의해서 한다 말이죠.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법에 의해서 하는 것이 이게 당연하고 왕이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원래 인간 속에는 보이지 않는 왕이 살아 있었던 겁니다. 그걸 가지고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하나님이 이미 그들의 왕인데, 구약 성경 이해하기 힘들죠? 하나님이 왕이라 하니까 오늘날 우리는 왕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법대로 하세요.’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원래 율법이라 하는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왕 한 몸에서 나온 법이 율법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존 인간들이 섬기는 법의 나라가 세상 나라의 왕국이라면 하나님의 몸에서 나온 법이 율법이 되는 겁니다. 그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율법을 지키더라도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기게 된 이유가 모든 율법 속에는 ‘우리 왕이 최곱니다.’라는 왕에 대한 애정과 사랑, 그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에 어떤 율법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그건 모순돼요. 하나를 지키면 다 지킨 게 되고 하나 어기면 다 어긴 게 돼요. 왜, 모든 법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담겨 있을 때 제대로 된 율법을 지킨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세상의 왕은 백성들 지배하는 왕이지만, 우리의 왕 예수님은 오히려 백성들의 죄를 씻어주는, 대신 십자가에서 아버지로부터 저주를 홀로 받고 심판을 홀로 받는 그 분으로서의 왕으로 오신 겁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인간 왕은 필요가 없고 그 대신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율법에 의한 하나님의 성전이 거기에 성전법이 있어서 제사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주님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돼 있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인데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여기 오늘 본문 9장에 보니까 하나님이 성전 문지방이거든요. 성전에 서서 성전을 부숴버린데 그 성전을 부숴버린 이유가 그들이 그 성전의 자리가 하나님의 몸에서 나온 성전의 자리가 인간 속에 내장돼 있던 우상으로 완전히 도배한 자리로 변절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부숴버립니다. 그 부숴 진 여파가 뭐냐 하면 여기 3절에 나옵니다.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이 말은 뭐냐 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유다 온 나라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존의 인간의 왕을 찾는, 하나님은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우리도 눈에 보이는 ‘사람의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내장돼 있는 그런 우상 숭배의 속성이 하나님 이라는 이름으로 군데군데 성전을 만들어 놨어요. 베델, 길갈, 사마리아, 브엘세바 전부 다 명승지입니다. 그리고 갈멜 산, 야! 이런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진짜 한 사건들 했던 곳, 요새도 기도원 짓기 바쁘죠. 그야말로 하나님의 큰 효과가 있던 곳, 그런 곳에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우상을, 그들은 우상이 아닌데, 유사 성전을 만들어 놓고 섬겼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니가 어느 명승지에 어느 성전에 숨을지라도 내가 모조리 다 파헤쳐서 기어이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 심지어 1절 끝에 보면 ‘남은 자’라 할지라도 남은 자마저 살륙해 버리도록 조치한다. 모든 것을 니가 있음에, 니부터 출발함에 영생은 없다는 이 말입니다. 너부터 출발해서 너의 아이디어와 너의 생각으로 출발하는 모든 종교 생활은 결코 영생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너에게 ‘영생은 안 돼.’ 추방시킨 그 취지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겁니다.
이번에 5월 5일 날 십자가 마을 특강을 하는데 어린이 날 이예요. 그 장소가 어디냐, 안 가봐서 다음 지도를 통해서 주소만 알아서 찾아봤어요. 찾아보니까 그곳도 명승지예요. 무슨 명승지냐 하면 옛날에 천주교 박해했을 때 천주교 피난처입니다. 얼마나 골짜기인지 우리 황전도사님 말씀에 의하면 가게까지 가는데 차로 15분 걸린답니다. 새우깡 하나 사먹으려면 차타고 새우깡보다 더 비싼 기름 값 들게 돼 있어요. 그 근처 장소에서 하는데 그 장소가 우리 황전도사님 집을 새로 한 거예요. 집 지어놓고 다른 사람이 덮칠 판인데 그날 그 장소에서 하신답니다. 5월 5일이니까 손자 데리고 놀이동산 비좁은 데 가지 마시고 이렇게 순교지에 명승지에 오셔도 좋겠는데, 바로 이 명승지라 하는 것은 천주교 가게 되면 천주교 성당에서 나오는 어떤 광고를 보면 여기를 명승지로 굉장히 소개를 많이 해놨어요. 순례지, 그곳에 가서 옛날에 6,25때 이야기, 그리고 그 전에 근대 초기에 순교했던 그런 걸 되게 강조해요. 왜, 간단합니다. 사람은 눈에 봐야 은혜를 받아요. 그것 자체가 가짜다 이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홀리게 한다는 자체가 사람의 숨어있는 우상숭배를 독려하는 것밖에 안 돼요. 그걸 자극해서 끌어 모으는 것밖에 안 되니까 그게 바로 가짜라는 뜻 이예요. 바로 그런 사람에게 주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는 그런 속성이 그런 것밖에 없는데, 우리는 백날 눈에 보이는 그것만 찾고 있는데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 만날 눈에 안 보이는데, 교회 오지 말고 일부러 피해 가야 되느냐, 그게 아니고 바로 이 아모스 말씀이 우리 속에 직접 투입하게 되면 바로 이들이 이렇게 당해야 될 사람이 우리도 같은 한 편입니다.
‘아담이 대표자인데 대표자가 이미 썩어버리면 그 후발 주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라는 것을 제가 인정하겠습니다. 하는 이것이 바로 주의 생명의 능력이 부활의 능력, 그 구원의 능력이 이미 주의 음성이 이 아모스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니가 죽어도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근히 저희들이 눈에 보이는 지도자 왕을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타고난 우상이요, 우리의 조상 아담의 속성인 줄 압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겸하여 듣게 되니 바로 예수님이 왜 죽었는가를 이제사 알게 되는 우리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성지가 우리 자신이 성지인 것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