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레 13:1-8 / 문둥병자에게 발린 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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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문둥병자에게 발린 피 (레 13:1-8)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날마다 그분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서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생각이 나고, 그 사람의 허물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라, 빨간 신호등이라고 보셔도 무방한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에 뭔가 다른 것이 자꾸만 생각나고, 눈에 들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시간 교회에 나오셔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야 주님의 몸으로서 이 시간에 교회에 앉아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볼 것인데, 먼저 나 자신을 전적으로 말씀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바다에 큰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말씀이 큰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오고 있음을,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라면 졸음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간은 T.V를 보는 시간도 아니고, 이야기를 서로 재미있게 하는 시간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가슴속에 담아서, 그 큰사랑을 느끼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겸손히 그 말씀을 받아드려서, 말씀가운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살펴보면, "문둥병 환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이 왜 생깁니까? 자기가 건강 관리를 잘못해서, 그 병균에 감염이 되어서 생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과는 이 문둥병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사를 살펴본 대로, 자기가 실수하고 잘못을 했을 때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문둥병에 걸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뭔가 뜻이 있어서, 즉, 일부러 그렇게 조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문둥병에 걸리게 하십니까?" 라고 하소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병에 걸린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억울해 하지말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먼저 한 번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독 이 문둥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왜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해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합니까?", "왜 남들처럼 그렇게 예쁘지를 못합니까?" 등등, 여러 가지 다른 경우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원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기 신세를 원망한다든지,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이 가득 차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만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것이 관심을 가지고, 욕심을 부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예수님만 사랑한다면, 왜 마음속에 온통 그분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다른 생각이, 다른 것들이 왜 마음속에 들어 올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들이,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까지 이 만큼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살아왔다는 것을 날마다 나의 가슴속에서 깨닫게 된다면, 무슨 걱정과 염려가 나의 앞을 가로막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좋게만 생각을 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순간까지 인도해 오셨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려 신음하고 고통 하는 순간이 닥쳐온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러한 이야기가 레위기 13장, 14장에 있는 문둥병에 관한 것들인데, 하나님의 뜻이 계속해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레 13:3)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그 당시에 이 문둥병이라고 하는 것은 불치병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걸리게 되는 병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을 제사장이 진찰하는 것은, 요즘처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진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능력의 종이니까 문둥병을 고쳐 주시겠지" 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당신 문둥병에 걸렸구먼, 그것은 사람은 못 고치네. 잘 가세!" 이 말을 하려고 진찰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치려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진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문둥병에 걸렸구만! 이것은 고칠 수 없네!" 라는 그 말을 제사장이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막힌 노릇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제사장이 이 문둥병자에게 말합니다. "자네는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이렇게 문둥병에 걸렸지만, 그러나 당신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네!"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 문둥병자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이 13장 45, 46절에 나옵니다.
(레 13:45)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레 13: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문둥병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을 하는 것입니까? 그 병을 다 없애버리면 안됩니까? 병에 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마 문둥병이라고 해도 별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이 문둥병에 심하게 걸린 사람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 병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괴물이 따로 없지 않습니까? 이 병에 걸린 사람이 바로 괴물의 모습인 것입니다. 부모라도, 자식이라도, 그 환자 옆에 가기가 몹시 힘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징그러운지 말입니다. 정말 저주를 받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인 것입니다.
이러한 무서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자기의 옷을 찢고, 그리고 머리를 풀어 제치고,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라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문둥병에 걸린 부정한, 더러운 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제사도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워서 못 드리는 것이 아니고, 아예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려 성전에 나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문둥병에 걸려서 온 동네를, 진동까지 돌아다닌다고, 그것도 "나는 더럽다, 부정하다" 라고 소리를 치면서 말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입니까? 문둥병에 걸린 것만 해도 억울한데, 거기에다가 온 동네를 부정하다고 외치면서 돌아 다녀야 하니 말입니다. 성전에도 전혀 나올 수가 없고 말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는데, 그런데 자기에게 돌아온 것은 문둥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면, 하나님이 마구 축복을 하셔서 불신자들보다 훨씬 잘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고, 사고가 나면, "내가 하나님께 무슨 잘못을 했는가?" 하는 생각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물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자기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좋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 이웃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되는가" 라는 것이 아니고,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잘 살면 잘 사는 데로,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닥치는 데로, 오늘 본문처럼 문둥병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병 걸린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불가능합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 얼마나 불쌍합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문둥병이 뭐냐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문둥병 말입니다. 그것이 저주이지 무슨 하나님의 뜻이고 영광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문둥병이 저주로서만 끝이 나는지를 말입니다. 뭔가 다른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이 죽을 때까지 계속 가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뜻이 있어서 문둥병을 발하게 하셨을 경우에는, 그 문둥병이 분명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레위기 14장에 계속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나는 부정하다" 라고 외치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문둥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고 하니, 다시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 몸을 내다보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의 몸을 자세히 살펴서 병이 모두 치료가 되었으면, 새를 두 마리 잡아다가, 한 마리는 새를 잡아서 그 피를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에게 뿌리고, 다른 한 마리는 새를 살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둥병이 나은 사람은 입은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나는 이제 과거의 병에 걸렸던 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이 옷이 빨아진 것처럼 내 몸도 씻겨졌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왜 새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죽여서 피를 흘리고, 다른 한 마리는 살려 줍니까? 잘 날아다니는 새는 왜 잡아서 죽이고, 또 한 마리는 왜 날려보내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살아난 새는 바로 다른 새가 죽었기 때문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는 도무지 자기 힘으로는 이 문둥병을 치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병이 고쳐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가 죽는 것처럼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문둥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병에서 고침을 받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인하는 것이 있는데, 머리카락과 눈썹과 수염을 다 밀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깎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둥병은 이러한 머리카락이나 눈썹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몸의 털을 밀고 난 뒤에 다시 정상적으로 자라나면 문둥병이 깨끗하게 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철저하게 확실하게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7일이 지나고 8일이 되면, 제사장은 이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이 모든 것들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확인 작업을 하게 됩니다. 8일 전에 새를 잡은 것은 제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새를 잡는 것을 성전이 아니고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사장은 백성들을 다 모아놓고 제사를 드리는데, 어린양을 잡습니다. 그 만한 능력이 안되면 비둘기도 괜찮습니다. 제사장과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이 나란히 서서, 제사장이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문둥병에서 나은 이 사람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 쪽 엄지손가락, 오른 쪽 발가락에 이 피를 바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른 쪽 귀 부리,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피를 언제 발랐는고 하니, 제사장을 세울 때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그것이 레위기 8장 23절에 보면 나와 있는데, 한 달 전에 주일 낮 시간에 이미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전혀 기억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임직을 받을 때에 했던 똑 같은 것을 왜 이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에게도 그렇게 합니까? 다른 어떤 경우에도 제사를 드리면서 제물의 피를 이렇게 직접 몸에 피를 바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장은 자기가 거룩해서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제사장 직분을 받으면서 피를 발랐다는 것은,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서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피가 발린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를 오른 쪽에 바릅니다. 왼쪽이 아니고 오른쪽에다 바른다는 것은, "너는 죽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발린 피 때문에 살아있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오른쪽이 중요한데, 그것을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왜 제사장과 같이 문둥병자이었던 사람에게도 이러한 똑같은 피를 발라야 합니까? 그것은 제사장도 피를 바르기 전에는 문둥병자와 같이 썩어서 죽어 가는, 냄새나는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라고 잘난 것이 아닙니다. 저 밖에서 자기는 부정하다고 동네방네 뛰어 다니는 문둥병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일을,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것은 오직 자기 몸에 발린 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제사장, 저주받았다고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죽어만 가는 문둥병 환자, 이 두 사람을 하나님은 똑같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그러나 둘 다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몸에 피가 묻혀져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문둥병 환자입니까? 저주받은 이 땅에 버려져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문둥병 환자인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 몸에 그 문둥병이 걸렸느냐, 안 걸렸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말입니다.
온 몸이 멀쩡하고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죽어 가는 흙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해 가는 세상에 버려진 불쌍한 우리들을 하나님이 직접 육신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달아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오직 십자가의 피만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다른 피는 안되고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피만이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 때 잡은 짐승들의 피는 다 이 예수님의 피를 미리 앞당겨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제물의 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장차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의 피로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고 싶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을지 몰라도 하늘나라에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만을 기억하고, 십자가 피의 흔적으로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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