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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레 12:1-8 / 인간의 본성(산모의 정결규례)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레위기

레 12:1-8 / 인간의 본성(산모의 정결규례)

정인순 2011. 1. 13. 11:22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12)인간의본성(레12,1-8).MP3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12)인간의본성(레12,1-8).hwp

 

 

12. 인간의 본성(산모의 정결규례) (레 12:1-8)


 

흔히들 아이들을 두고서 철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철이 드는 것입니까? 쇠붙이를 먹으면 철이 듭니까? '철이 들었다' 라는 것은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습니다만,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그 기준을 말씀드리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안다면, 철이 들었다고 해도 좋을 줄 압니다. 주로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서 설칩니다. 요즘 유행하는,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안 해서 못하는 것이지!" 라고 하면서, 마치 이 세상이 자기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한 번 멋있게 살아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든 사람들은 압니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뭔가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철이 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I.M.F는 이런 면에서 우리들을 많이 철들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입니다. 물론 곧 잊어버리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떠한 원리로 움직여 나갑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을 만든 분의 뜻을 살피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마음을 기록한 것이 성경책이고,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가장 확실하게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보이시고, 그분의 일하심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제쳐놓고서 바로 하나님의 일을 알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보다는 하나님과 바로 상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게 들리겠지만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 살았던 원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사랑"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사랑" 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 사랑이니, 우리를 보고서 "사랑하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누구를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그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먼저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보여 주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가?"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3절을 보면,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양피를 베라고 합니다. 양피를 베라고 하는 것은, 사내아이의 고추 끝을 자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을 할례라고 하는데, 요즘은 병원에서 하는 포경 수술과는 형태는 같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할례하고 사랑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실 지는 몰라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생일에 케이크나 꽃을 선물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랑해!" 라고 말을 하지만,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선물해 주는 차원이 아니고 아예 잘라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들고 갓난 남자아이의 고추 끝을 자르는 것을 가지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도무지 사랑이 아닌데, 그건데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5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레 1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12: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레 12:3)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레 12: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레 12: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일을 지나야 하리라


 

오늘 본문이 보통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경도" 나 "산혈" 같은 말은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합니다. 특히 남자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지금 여인이 아이를 낳고 나서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생각에는 아이를 낳으면 "수고 하셨습니다" 라고 하면서 축하를 해 주는데,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마치 큰 홍수가 난 것처럼, 큰 일에 생긴 것처럼, 그 상황을 아주 위급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여인은 7일 혹은 14일 동안 부정하니까, 특히 남자아이면 8일 만에 그 아이의 양피를 자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모의 경우에 사내아이라면 33일 동안 성전에 나오지를 못하고, 여자아이인 경우는 66일 동안 성전에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에 나가지 말라는 것은,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낳은 것은 축하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에 그 벌로 받은 것이, 바로 여자가 고통 가운데 아이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세기 3장 1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그러니, 이러한 죄를 지은 모습이 터져 나왔으니, 빨리 그 상황을 수습해서 막으라는 것입니다. 마치 홍수로 댐이 터졌을 때에 응급복구를 급히 하듯이 말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됩니까? 무슨 뜻인지 아실 줄 압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쫓겨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로 질퍽질퍽해진, 이 더러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고 죄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죄를 지은 그 모습으로 인해서 여자는 해산하는 극한 고통을 갖게 되고, 남자는 땀흘리고 수고해야 하는 아픔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를 지은 인간의 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나 남자가 살기가 힘든 것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두 가지가 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여자라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되고, 남자라면 누구나 다 열심히 땀 흘리고 일을 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죄로 물든 세상에서 죄의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듯이, 이러한 여자가 해산해서 고통 당하는 것을 빨리 빨리 처리하라는 것은, 이러한 죄의 모습을 빨리 없애라는 것은,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 건져 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이 죄로 덮여진 세상에서 구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 지키는 그 정결 기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에는 33일 동안 정결하게 지키라고 하시고, 계집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 두 배인 66일입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하나님께서 남, 녀 차별을 하는 것입니까? 예, 차별을 합니다. 하기는 하는데,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를 차별해서, 오히려 여자아이에게 더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두 배로 말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남자들이 어디 여자들이 아이 낳는 고통을 상상이나 합니까? 병원에서 아내가 아파하면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장모님을 모셔다놓고 도망가는 것이 남자들 아닙니까?


 

여자가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어 준 본래의 임무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임무는 남자를 옆에서 도와주는 남자로부터 나온 배필입니다. 그래서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아담이 하는 일을 도와주고 살펴주어야 할 이 하와가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아서 죄를 짓도록 망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도와주었다면 죄를 짓는 것을 도와준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하와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고통을 한 번 당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니, 하나님, 그 잘못은 하와가 했지 어디 제가 했습니까? 왜 제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라고 하나님께 항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죄가 나의 죄' 라고 성경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이러한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혼자서 독신으로 평생을 사는 여자는 아이를 낳는 고통이 없는데, 그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이를 낳지 않아도 여인에게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경도한다" 라고 표현되어 있는, 여자들이 한 달에 한번 하는 그 생리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런 고통이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것도 고통이 따르고 죄의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그런 경도하는 것을 부정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에는, 태어난 후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왜 자릅니까? 더럽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더럽다는 것입니다. 그대로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을 수가 없으니, 자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생적이나 건강차원에서 자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일이 다 가르쳐 주십니까?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일이 모두 다 지적을 하시고, 날마다 죄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까? 부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의사, 판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이 세상의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이 죄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그 구원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이 우리의 죄 때문에, 사랑이 왜곡되어서, 삐뚤어져서,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두고서 복을 받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잘 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설교를 하는 목사도 너무 많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여인에게는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는 33일, 혹은 66일을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갖게 하시고, 남자인 경우에는 태어날 때 고추 끝을 자르게 함으로, 이 세상과의 단절을, 죄와의 관계를 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모두 다 끝이 납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마무리를 시키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말씀 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레 12:6)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산모의 경우에 정결한 기간이 끝이 나면, 어린양을 취하여서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서 제사를 드리게 합니다. 왜 어린 양으로 제사를 지내야 합니까? 어린양의 그 희생이, 그 생명이 아이를 낳은 여인에게나 아이에게 들어가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정결 기간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의 어린양의 대신 죽는 그 희생 정신을, 생명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돈이 없는 사람들을 대비해서, 어린양을 잡을 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없거든, 어린양을 말고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돈이 없어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시시한(?)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영생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 이러한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산모는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교회에 나오지를 못하고, 나오면 반드시 헌금을 해야 합니까? 또,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에 반드시 8일 만에 할례를 해야 합니까?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설교시간마다 강조를 합니다만, 이미 율법은 예수님께서 모두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율법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해산을 하고 일 주일 만에 교회에 나오셔도 괜찮고, 사내아이를 할례를 시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이러한 사랑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고마워하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