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세상을 좋아하는 교회 본문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세상을 좋아하는 교회 / 이근호 목사
흔히 선교 단체에서나 교회에서 교인들을 교육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어떻게 해서 인간은 구원받는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이 말을 교인들은 퍽 좋아한다.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자기 자신의 뜻과 포부를 파괴하신다는 것을 과연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소유하기 위한 행위이다. 소위 교회 부흥이라든지 성장이라든지 표현도 소유에 관한 표현이다. 반대로 소유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든지 아예 소멸하기 위한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반인간적인 행위로 보일 것이다. 이 반인간적인 행위를 성령께서는 시키신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성격은 세상에 대한 멸망이다. 그리고 심판이다. 성령, 성령을 들먹이면서 소유 지향적인 모습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성령을 사칭한 인간적인 일이 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보고 하시는 말씀이,"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을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태복음 16:23). 성령의 비인간적인 이러한 작업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자기 세상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파괴를 위한 비판이 아니라 개선을 위한 비판이다. 현재 상황보다 발전된 미래의 영광된 모습에 꿈을 꾸고 그 꿈에 스스로 도취되고 매료되면서 의욕을 부단히 유발시킨다. 비록 현재는 사정이 어렵고 고달프지만 언제 가는 이러한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 날이 올 것이라고 스스로 격려해 본다. 이러한 인간들의 환각에 대해서 전도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해 아래서 새로운 것은 없는 법,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성경은 인간들을 향하여 일체의 발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맹목적으로 발전을 구상한다. 발전해야 될 이유도 전혀 없는 채 무작정 발전을 기대한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격이다. 가다 보면 뭔가 구원의 길이 열리겠지라고 여긴다. 이러한 인간들의 맹목성이 오늘날 교회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네들의 인간들이 발상으로 일하면서 자꾸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겨댄다. 발전, 또 발전을 외친다. 세상을 비판하고 교회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 비판은 ,뭔가 보다 나은 미래상을 기대하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을 가지고 스스로 위로하기를 [건전한 비판]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의 눈과 귀에 주님의 말씀이 들어 갈 틈이 없다. 모든 것을 버리라는 주님의 호소를 안 받아 드리려고 하고 있다(누가복음 14:33).미우나 고우나 역시 이 세상이 좋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공격과 저주를 퍼부어대면서도 마지막 꼬리 부분만은 기어이 손안에 쥐고 있으려 한다. 성령께서는 날마다 교회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는 사실에 성도는 눈이 열려야 한다. 과거에 빛난 영광이 현재의 부활하신 주님을 기뻐시게 못해준다. 과거의 충성이 오늘의 충성의 몫까지 대체하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목사들과 동업하지 않는다. 사람과 흥정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불쌍히 여겨 구원했으니 기존에 귀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초개같이 버리라고 요구하신다. 인간들의 피와 땀으로 엮어낸 것보다 예수님의 땀과 피로 주어진 그 나라와 의를 더 귀하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이제부터 자기 파괴 작업에 나선다는 말이다. 주님의 공로를 가리는 무허가 건물 같은 나의 세계를 허물도록 종용하신다 성령께서 강권하신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도록 요구하고(요한복음 12:25), 자기를 부인하도록 바라고 계신다(마태복음 16:24).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고(고린도전서 15:31),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넘긴다고 했다. 그래야 귀한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5:11).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분되지 않고 있으면서도 막무가내로 교회라고 우겨서는 안된다. 교회라는 이름의 세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현실 교회의 타락상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구호가 있다. 다름 아닌 "21세기에 보다 발전합시다!"라는 구호이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21세기가 아니라 오늘밤의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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