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신학생의 걱정거리 본문

저서 & 기타(이근호)/기독교의 허상 1,2

신학생의 걱정거리

정인순 2011. 1. 4. 20:59

 

신학생의 걱정거리 / 이근호 목사

 

 

 

 

 

순진한(?) 신학생이 만나는 제일 첫번째 실망은 신학교에서이다. 수도원 같은 성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으로 알고 입학하지만 예상 밖의 비도덕적인 행실이 난무하는 공간임을 대하고 난 뒤 교회에 대한 인식이 달아진다. 거기에다 학교측의 무성의한 학생 지도에 겹치기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교수님과 동료 신학생들의 모범적인 성품에 잔뜩 기대를 하고 신학교 문을 들어섰는데 막상 와서 보니 속 빈 강정들 뿐.

 

 

그러나 이런 환경에 젖어 보면 이런 속물성이 오히려 반가울 수가 있다. 왜냐하면 수도사처럼 살아야 될 하등의 심적인 부담을 주기 않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오히려 진짜 걱정거리는 딴 데서 온다. 그것은 치열한 경쟁의 마당 한가운데로 자신들이 불려 나왔다는데 있다. 보이지 않는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우리 동창들 중에서 누가 더 큰 목회를 하게 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는 교회를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거창한 욕심보다는 당장 아담한 종교사업체 하나만 차고 있으면 좋겠다. 나도 살아야 할텐데 하는데 …, 나도 살아야 할텐데…,하나님, 뭘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몰려오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까?" 밤이나 낮이나 하는 걱정이 바로 "나도 살아야 할텐데…." 이다.

 

물론 나중에 큰 교회 당회장이 되고 부터는 기도의 제목이 바뀌게 된다. "나도 큰 목회 해야 될텐데…" 목회자가 큰 목회를 원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단 한 가지 이유뿐이다. 그것은 해마다 늘어나는 자신의 생계비에 대해서 충분한 여유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교인수가 늘 증가하지 않는다면 매년 생활비 인상이 교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이유가 된다. 자칫하면 도중 실직하는 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교인들의 반발에 대비해서 미리 충분한 권력 장치를 마련해 놓기는 하지만 그 이후 목회 하기가 상당히 꺼끄려워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순진한(?) 신학생이, 천사로 위장한 치졸한 삯꾼 목자로 (고린도후서 11:14-15) 이렇게 탈바꿈하게 된 원인은, 신학교 입학하면서 자신의 환상에 사로잡힌 채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에 너무나도 눈이 어두웠던 까닭이다. 적과 아군도 구별 못하고 선과 악의 구분도 엉뚱하게 규정한 채 비현실적인 환각 상태에서 신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예를 들면,불교는 악하고 기독교는 선하다 라든지, 기독교는 아군이고 불교는 적군이라든지 하는 유치한 구분으로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신학교 들어와서도 정말 제대로 공부를 했으면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찌하든지 날마다 우리 자신을 죽이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살게 해야 한다(갈라디아서 2:20).결코 목회자에게 잘 대해주는 교인을 믿어서는 안된다. 물론 사랑해야 하지만 결코 믿음의 대상으로는 미흡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도는 자신을 믿어서는 안된다. 자신을 믿고 살면 자신이 절대화되고 신격화된다.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자기의 포부와 희망 사항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오류이다. 겉으로는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 운운하면서 기도하지만 사실은 "나도 살아야 할텐데…,기어이 이 바닥에서 살아남고야 말리라!" 이런 식의 오기만 남는다. 목회 실패했을 때의 그 창피스러움이 두려워서 그 무슨 수단과 방법을 다 자행하면서 사람 끌어 모으기에 열중한 결과가 남도 지옥 보내고 자신도 지옥으로 줄달음치는 현상이다.

 

삯꾼 목자는 하루 아침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말 신학생이 되었으면 제대로 걱정하고 염려해야 한다. 살고자하는 세상 염려는 하지 말고, 이 세대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죽고 복음이 짓밟히고 십자가에 맺혀있는 구원의 능력에 대해서 불신하는 세력에 대해서 과감하게 선지자 노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 될까를 근심해야 한다(고린도후서 7:10).이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기뻐하는 일을 하라는 게 목회자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고 뽑혀 나온 사람이라는 인식을 늘 간직하는 점이다.

'저서 & 기타(이근호) > 기독교의 허상 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세상을 좋아하는 교회   (0) 2011.01.04
윤리의 함정   (0) 2011.01.04
장애자와 권태   (0) 2011.01.04
영광의 비영광성   (0) 2011.01.04
십계명에 담긴 뜻  (0) 201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