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뒤에서 본 한국교회] 사도행전 2 본문
사도행전 2
05,04,1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역사와 묵시의 만남 !!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 이란 사람이 등장하는데, 거기서 사울이란 사람이 가진 역사와 하나님의 묵시가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니 이 사도행전 9장을 모르면 그 뒤에 나오는 바울서신서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울이란 사람이 가진 역사관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를 믿는 자를 처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을 처단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울의 역사관은 어디서 나왔는가? 보통 역사관은 왕조사관과 민중사관으로 나누어지는데, 사실 이 민중사관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주장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원래는 왕조사관만 있는데, 즉 신께서 인간을 다스릴 때는 지도자를 통해서 다스린다는 것이다.
◈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
그래서 과거 유신 시절에는 항상 뉴스만 틀면 제일 먼저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라고 하면서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야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두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 너도나도 다 지도자라고 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정글처럼 되어서,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가 어려움을 당하니 말이다.
북한의 경우에 아직도 죽은 김일성을 왜 포기를 하지 못하는고 하니, 그렇게 해버리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일성은 하나의 절대자이니 말이다. 그런데 김일성을 절대자로 만드는데, 무턱대고 "나는 잘났다. 나는 왕이다" 라고 해버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니가 왕이면 나는 율부리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이 이렇게 지도자가, 즉 주석이 되는 것은 자기가 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적 과정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김일성을 반대하는 것은 눈을 감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니 말이다.
김일성의 경우에 자기를 항상 돌보아준 가까운 친척이 바로 목사인데, 그러니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이 제일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도 좋아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북한의 경우에는 왕조사관인데, 즉 지도자를 중심으로 꽁꽁 뭉친다는 것이다.
◈ 그런데 마르크스가 나타나서 !!
그래서 감히 여기에 누가 대항을 하겠느냐고 여겼는데, 그런데 '칼 마르크스' 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민중사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래 이 사람은 독일사람인데, 좌파정치활동을 하다가 그만 영국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친구 엥겔스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영국에서는 1879년 10월에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해서 난리가 났는데, 왜냐하면 이제 공장마다 밤에 전구를 켜고 작업을 계속해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식민지에서는 면화를 비롯해서 값싼 원자재가 마구 올라오는데, 그러니 빨리 많이 만들어서 그 식민지 나라에 비싼 값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마치 일제의 우리나라에 그렇게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른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물건을 비싼 값에 팔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장이 잘 돌아가니 농촌에 있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와서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했는데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10대의 청소년들까지도 하루에 16시간 이상씩 노동을 하고 말이다. 마치 초창기 우리나라의 동대문 시장처럼 말이다.
◈ 전태일, 근로시간 준수하라 !!
그래서 근로시간을 준수하라고 하면서 동대문 시장에서 일하던 '전태일' 이란 자는 불로 자기 자신을 태우고 자살을 했는데, 그렇게 여직공들이 그 좁디좁은 다락방에서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생리현상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미싱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YH사건'도 마찬가지인데, 가발을 만든다고 여공들이 너무 노동시간이 많아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그래서 각성제를 마시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유신정권은 그러한 민중사관을 가진 자들을 빨갱이 집단이라고 마구 몰아 부쳐서 처벌을 했는데, 물론 모함을 해서 말이다.
아무튼 민중사관은 무엇인고 하니까, 왕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호사스럽게 잘 사느냐는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혼자서 측근들을 통해서 다 즐기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왕 중심으로 살아왔기에 왕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 이 목사님, 김밥 드세요 ??
그렇다면 오늘날 이것이 어디가 제일 심하겠는가? 당연히 교회인데, 아직도 교회는 극보수주의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왕조사관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를 신처럼 모시고 섬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가 예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제가 있는 우리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저 같은 경우에 이번에 안동에 놀러가서 점심시간에 김밥만 한 줄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무리 폼을 잡고 사진을 찍어도 그런 왕의 자세가 나오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저는 사진에 항상 고개를 들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는가 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지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목사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주의 종' 이라고 하고, 이렇게 주의 종이 되면 반드시 "너희들은 양이야. 그러니 까불지 마" 라고 하는 것이 전제가 되는데,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주의 종은 성경에 있는 것처럼 양을 섬기고 주님에게 복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양이니, 나를 섬겨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유무상통(有無相通)을 !!
아무튼 이런 민중사관에 입각해서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보니, 자본가들이 이자 이상의 소득을 많이 얻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몫도 제대로 찾지를 못하고 자본가들에게 빼앗긴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깡패에게 당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다 돌려주어야 하고, 또한 이제는 왕도 필요 없고, 일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기본적인 원시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르크스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말씀을 결단코 모를 리가 없는데, 거기에서 뭐라고 하는가? 초대교회의 특징이 바로,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유무상통(有無相通)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모임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러한 유무상통이 유독 기독교 신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이런 욕구가 다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왕이란 나쁜 놈들이 인간을 너무나도 억눌러왔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원래 원하는 그런 인간상에서 너무나도 멀리 가버렸다는 말이다. 그 나쁜 놈의 왕 때문에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왕의 종으로서 충실히 일을 하고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마치 인간다움의 전부인 줄 알고 착각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민중사관이란 말이다.
◈ 구약의 왕조사관은?
이렇게 이 사회 속에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대립이 되면서 진행이 되는데, 물론 이것을 이 세상에서 말하는 역사관이고, 그렇다면 이스라엘에서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역사관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왕조사관이 있고 민중사관이 있는데, 왕조사관에서 찾는 신이 바로 '여호와', 즉 '야훼' 라는 말이다. 여기에 비해서 민중사관은 '엘로힘' 이고 말이다.
이 여호와는 번역을 하면 '약속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엘로힘은 '신들(?)'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이렇게 여호와와 엘로힘, 두 종류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 이러한 이야기를 처음 듣지 싶은데, 이것은 구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인데, 개신교나 천주교나 다 말이다.
◈ 다윗은 하나님이 선택한 왕 !!
왜 그렇게 되었는고 하니, '여호와' 라는 신은 성경 처음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후대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자기가 그렇게 왕이 된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서 되었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과거부터 있어온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편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항간에 계속해서 떠돌아 내려오는 전설들을 말이다. 물론 전설이라고 해서 거짓말은 아니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천지를 6일만에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리고 애굽에서 탈출할 때 홍해를 갈라지게 해서 건넜다고 하는 등등의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런 건국신화를 비롯한 이야기들이 역사를 통해서 흘러 흘러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누구 입맛에 맞추는고 하니까, 당연히 다윗왕의 입맛에 맞추어서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는 목적이 바로, 다윗왕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왕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드러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의 의해서 선택이 된, 결코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왕이라는 말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
이것이 바로 구약에 나오는 왕조사관인데, 따라서 이러한 왕조사관에 의하면, 그 사관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방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모두가 다 가짜인데, 그것은 곧 '우상'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만 계시를 하시고, 또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바로 그런 하나님으로 활동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은 한 놈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그런데 그것은 아니고, 이사야서나 아모스서에 보면, 예외 규정을 두어서 비록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런 믿음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그리고 미드라쉬를 비롯한 365가지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그러게 작정을 하면 비록 이방인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구원에 포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바울(사울)도 역시 왕조사관의 신봉자 !!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울(바울)이 가졌던 그런 왕조사관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역사관을 철두철미하게 교육을 받고 믿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처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바울이 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핍박하게 되었는지 알겠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하나님 중심의 왕조사관을 부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말이다. 즉 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이방인이든지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말이다.
더욱이 이방나라도 아니고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유대나라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못된 놈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자들이기에, 그들은 그야말로 인간도 아니기에 당연히 자기들이 처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합법적으로 처단을 하려고 공문을 받아서, 요즘 말로 하자면 체포영장을 받아서 말이다. 그렇게 그들이 모여있다고 하는 다메섹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런데 그만 천지가 배격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행전 9장 3절의 말씀이라는 말이다.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행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 다시, 역사와 묵시의 만남 !!
제가 이 장면을 두고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역사와 묵시의 만남'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즉 '그리스도인' 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 사울, 아니 바울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울과 바울은 '큰 자'와 '작은 자'가 아닌, 그냥 발음의 차이죠?)
◈ 예수쟁이는 일단 하나님쟁이는 아닌데 !!
이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요즘 말로 번역을 하면 '예수쟁이'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예수와 똑같이 닮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예수쟁이는 하나님쟁이(?)는 아닌데, 그러니 예수쟁이는 다른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즉 '예수' 라는 자는 인간이 아닌, 이 땅을 방문한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는 참 하나님이다" 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참 하나님이 이 땅에 다녀가셨다는 것인데,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을 크리스챤, 즉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에 얽매인 자들' 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바로 '예수쟁이' 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아닌데, 왜 그런고 하니까, 그 하나님은 인간이 지어낸 가짜 하나님이기에 말이다.
◈ 역사 속에서 나온 하나님은 가짜 !!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역사 속에서 나온 하나님은 가짜라는 것인데, 오직 묵시적인 사건에 의해서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나타난 진짜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만 그리스도인이고 말이다.
이것을 좀 상세히 이야기하면, 혹시 '일기' 라는 것이 있는데, 아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기를 쓰기 싫어하지만, 아무튼 태어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역사라는 것이다. 그 역사는 바로 '내'가 있기 때문에 '내 역사' 라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없으면 '내' 역사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묵시는 인간이 만들 수 없어 !!
그렇다면 이 묵시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생뚱맞은 것이 묵시라는 것이다. 인간은 '내'가 있으면 '내' 역사가 생기는데, 그것은 인정하지요? 즉 '내' 가문이 있으면, '내' 가문의 역사가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 묵시는 도저히 인간이 만들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묵시는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과거는 어떻고, 현재는 어떻고, 미래는 어떠한지, 그렇게 해서 다듬어서 만든 것은 '나의 역사' 인데, 또한 우리교회의 역사이고, 우리회사의 역사이고 말이다.
◈ 묵시는 역사를 공격해 !!
하지만 여기에 비해서 이 '묵시' 라는 것은 인간이 도저히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묵시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공격한다는 말이다. "너의 역사를 포기하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즉 "너의 역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9장의 핵심이고 말이다.
◈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
요한복음 3장 5절에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나오는데,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대나 소망이나 포부를 가지고는 천국에 넣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그 튼튼한 낚시대 덕분에 제가 !!
구약에 보면 천국은 주님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데, 예를 들어서, 낚시를 하려고 가면 고기가 알아서 다가와서 "반갑습니다. 저를 좀 잡아가 주세요" 라고 하면서 옆에 와서 붙던가요? 물론 전설의 고향에 보면, 어머님 보약으로 드시라고 그런 경우가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낚시대를 던지면, 그것에 의해서 고기가 걸리도록 되어있는데, 그것을 두고 성경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낚시대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저 튼튼한 낚시대 덕분에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성도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피에 의해서 구원받았음을, 그래서 그런 주님의 공로만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지은 모든 죄를 한꺼번에 다 해결해주신 주님의 튼튼함과 확정하심, 성도는 바로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감격함과 편안함과 안도감과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다시 오늘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 9장을 보자.
(행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 사울아 사울아 !!
여기 4절에 보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하는데, 이 음성이 어디에서 들렸는가? 하늘에서 들렸다는 것이다. 즉 하늘에서 '사울' 이라는 이름을 불렀고, 그래서 사울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불러주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이러한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종교인데, 그 종교 안에 바로 왕조사관도 민중사관이 있다는 것이다. 즉 교회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천주교의 경우에 역사가 2000년이 넘는데, 개신교는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니 600년 정도로 보면 되고 말이다. 그것을 소위 '교회사' 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역사는 하늘나라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 이 세상에서 뿌듯함은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 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날마다 없어져도 되는데, 날마다 주님의 은혜에 의해서 살아간다" 라는 것이다. 없어져도 그만인데 말이다.
◈ 갈도(?) 못하는 사도바울 !!
빌립보서 1장 21절에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정도면 바둑으로 말하자면 1O단(?) 정도는 족히 되는데, 이제 죽어도 전혀 자기는 아쉽고 손해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갈도(갈지?) 못한다는 것이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갈도 못한다" 라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구요? 혹시 '갈군다' 라는 말은 아시는지? "찝적거리며(?) 애를 먹인다" 라는 것인데, 같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니, 그렇다면 이런 "갈도(갈지) 못한다" 라는 것이 혹시 표준말이 아닌가?
◈ 예수님을 만나면, 자기 역사관은 '꽝' !!
아무튼 이렇게 바울이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자기의 모든 역사관이 다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자기가 5살 때 오줌을 샀든지, 10살 때 부모님 몰래 학교를 빼먹었든지, 또한 20살 때 사기를 쳤든지 말이다. 그것이 도대체 천국에 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려고 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성질을 좀 고쳐야지? 이런 나쁜 짓은 그만 해야지" 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자기 역사에 빠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믿은지 10년이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변했을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주님의 묵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질문 - 어제 어떤 분을 만났는데, 자기가 교회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갔느냐고 물으니까,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아야지요" 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 교회가 욕을 듣는 것인데, 뭔가 좀 아는 사람은 무엇인고 하니, "얼마나 엉터리 같으면 교회에 가서 착하게 되는가? 나는 교회에 가지고 않고도 이렇게 착하게 사는데"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자기는 어릴 때부터 공자와 맹자를 다 배웠기 때문에 착하게 사는데, 그런 무식한 놈들이 교회에 가서 "아하, 그렇구나" 라고 하는 것이지, 자기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 그야말로 유치한 푸닥거리 !!
MBC에서 일요일 저녁에 미친 '장XX' 목사가 나와서 하는 프로가 있는데, 참으로 기도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저질인지, 그런데 그것이 곧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목사의 모습이란 말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철학이나, 그런 학문을 한 사람들이 보면 전혀 교회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놈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가 이미 다 아는 것이니, 그러니 굳이 교회에까지 나가서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놈들은 그야말로 주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이라는 것이다. 복음을 방해하는 말이다. 물론 저는 집에서 거의 TV를 보지 않는데, 그런데 가끔씩 그런 것들이 눈에 순간적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목사가 그런 프로에 나와서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처세술인데, 물론 '카네기 처세술' 이란 책도 있는데, 혹시 들어보셨나요? 좋은 말로는 '상담술(?)' 이라고 하는데, '좋은 가정 만들기' 등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시장의 약장수처럼 떠벌이고 나서는 커미션을 챙기는, 그것이 오늘날 목사들이 하는 짓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그것을 사람들이 요구하지 않나요?
물론 요구하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과거에는 굴곡진 울퉁불퉁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이제부터는 착하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착하게 살면 하늘에서 복도 오고 좋지를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울퉁불퉁하던 그 역사가 안정된 역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교회라는 것이다.
◈ 불교는 빌어서 복, 기독교는 바쳐서 복을 !!
제가 전에도 한번 이야기를 했지만, "불교는 빌어서 복을 받고, 기독교는 바쳐서 복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더 돈이 되는데, 그런데 절도 돈이 만만치 않은 것을 보면 금융업을 또 부업으로 하는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를 보고 타락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고 하니까, "착하면 복을 받는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 3가지만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무엇인가? 튼튼한 낚시대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즉 예수님은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치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물론 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가 해야 될 모든 것이 다 하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직 그분의 공로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그것을 눈치챈 사람이 바로 천당에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성도는, 자기 역사가 없어 !!
그러니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자기 역사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연연해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이렇게 사람이 자기 역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인데, 과거에 여자가 몇 명이었든지, 술을 고래로 만들었든지 말이다. 과거에 사기를 쳐서 남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든지 간에, 그런 것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끙끙거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역사가 없기에 말이다.
물론 자기가 첫사랑에게 과거에 차인 경험이 있어도, 맛있는 것을 다 사주고, 예쁜 옷도 다 선물하고,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는 결국 차이고 만 경험이 있어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찔찔거리면서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뒤돌아설 때 한방 제대로 날리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사람이 과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을 해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과거를 찢어서 다 불에 불쏘시개로 아궁이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고 할까? 아무튼지 묵시를 경험한 사람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아하, 나도 참 나쁜 짓을 많이 했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데, 즉 사람이 시건(철?)이 나면 철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이 새롭게 생각이 나는데, 왜냐하면 자기 자식들 때문에 말이다. 그 자식놈들이 하는 짓이 자기가 한 것과 너무나도 똑같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하는 것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행진 ??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그때 좀 더 사고를 칠걸" 라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하, 나도 참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데, 또 쓸데없이 엉뚱한 곳에 돈을 많이 날렸다고 하면서 말이다. 괜히 로또복권을 일주일마다 열심히 구입하고, 그렇게 엉뚱한 짓들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계를 들었으면 순서라도 기다리면 되겠지만, 로또복권에 무슨 순서가 있는가? 걸린 놈이 또 걸리는데 말이다. 그렇게 새치기(?)를 한다고 멱살을 잡고 싸울 수도 없고 말이다.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번개를 한 사람이 일분 안에 3번을 맞을 확률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활률은 항상 결과적인데, 그것이 확률적으로는 '제로' 라는 것이다.
◈ 아이쿠, 하늘이 무너졌구나 !!
아무튼 그것은 그렇고, 이 묵시가 역사를 만난다고 할 때,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되는고 하니, 쉽게 말해서, 하늘이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한때 빛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빛의 세계가 그야말로 사도바울을 덮쳐서 내려앉았다는 말이다. 마치 2층 천장이 내려앉듯이, 그렇게 사도바울은 완전히 빛의 세계인 하늘나라에 갇혀버렸는데, 묵시의 세계에 말이다.
사도바울이 빛을 보았다고 하니, 마치 천도교 교주인 최제우가 경남 양산(경주?)근처에서 도를 닦을 때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즉 하나님이 자기를 만나려고 5만년을 기다렸다는 소리를 듣고서 최제우가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차원이겠는가?
◈ 精神一到何事不成, 나무아미타불 !!
물론 지금은 인간이 신을 생각하는 것이 호르몬이 작용해서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주장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정신일도하사불성' 이라고 해서, 즉 정신을 집중하면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정신을 집중하면 다른 것이 삭제가 되는데, 즉 예수님만 생각하면 삼성이 롯데에게 역전패를 하는 것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예수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말로 자기 최면을 걸면 되는데, 즉 '예수, 예수' 라고 하면서 반복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졸지에 방언이 되고 마는데, 그것도 잘 안 되는 사람은 주기도문을 빨리 외우면 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옆에서 보면 완전히 성령에 충만해서 방언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말이다.
◈ 지금부터, 점찍고 벽 바라보기 !!
아무튼 '정신일도하사불성' 이라고 해서, 그것이 프로이트에 의하면, 정신을 집중하게 되면 다른 것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것은 스님들이 옛날부터 다 해온 것인데, 사실상 고대종교는 다 그런 것이었고 말이다.
그들은 도를 닦을 때 벽에다 점을 찍는데, 그렇게 해서 점을 바라보면서 10시간이고 끈질기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으면, 그러면 자기의 모든 마음의 번민과 고뇌가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기의 모든 무거움이 다 날아가 버리고,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연꽃이 피어나는 느낌이 자기 마음속에 든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어나는 순간이 그런 것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인데, 그때부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고, 독도는 우리 땅이고, 석유값이 올라가고, 그렇게 온갖 것이 다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차를 운전하면 경찰이 없는지 살펴야 하고, 안전띠도 매야 하고 말이다.
◈ 여러분, 지금부터 정숙 !!
그러니 마음 수련회를 하는 원장들이 얼마나 사기꾼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학원생들에게는 "여러분, 점을 바라보면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라고 해놓고, 정작 자기는 그 학원을 운영하기 위해서 점을 찍기는커녕 월세도 내야하고, 장부도 정리해야하고, 그렇게 바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또 강의시간이 되면, "정숙, 벽을 바라봅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에게는 그런 참선이 돈이 되는데, 정작 자기는 참선을 전혀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자기도 과거에 잠깐 그런 참선의 기간이 있었지만, 그러니 그냥 그것을 써먹는다는 것이다. 마치 야구감독에게 야구를 하라고 하면 힘이 들어서 안 되듯이 말이다. 시킬 줄은 알지만 정작 자기는 번트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좀 했겠지만 말이다.
◈ 묵시는 한 때가 아니라 !!
그것이 바로 역사인데, 즉 역사는 "한 때 했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한 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묵시가 완전히 내려앉았다는 말이다. 즉 자기는 묵시의 세계에 확실하게 갇혀있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금부터는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혀 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빛을 한 순간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하과 그 인도하심이 자기의 발자국을 깨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로서 자기에게 덮쳐왔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9장부터 시작되고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세력이 자기를 덮쳐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환난이나 고난이 오게 되면, 그때 보통 사람들은 기피하게 쉬운데,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을 보자.
아무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인지라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역사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즉 "내가 과거에 그렇게 했다" 라는 것을 아쉬워한다든지, 그렇게 후회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그때 그 사람을 선택했다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을텐데"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어느 미세스 경북(?)의 회상 !!
우리 친척 가운데도 그런 분이 있는데, 경북여고를 나온 인물이 좀 되는 양반인데, 그렇게 선을 많이 보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이고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창문을 열어다오" 라고 꽃을 들고 노래를 부른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그 사람도 대학교수인데 말이다. 물론 지금의 신랑도 괜찮은 사람인데,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 시카고에 본부를 둔 백화점의 극동 지부장도 하고 했는데, 물론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은퇴를 했지만 말이다.
그 양반이 지금도 "그때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라고 가끔 공상을 하는데, 물론 그런 경우는 지금도 그렇게 아쉬운 것이 없으니 별 문제가 아닌데, 즉 행복한 과거에 대한 회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남편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그 얼마나 자기 과거를 씹으면서, 그런 과거 때문에 현재를 아예 작살을 낸다는 것이다.
◈ 과거의 회상이 현재를 박살내기에 !!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그때 입사시험을 칠 때 컨닝을 할건데" 라고 말이다. 그때 그렇게 한 놈들은 떵떵거리면서 지금도 회사에 다니고 높은 위치에 있는데, 자기는 양심대로 한다고 하면서 특별한 직업도 없이 지금 이렇게 백수신세가 되어서, 그러니 도대체 이게 뭐냐는 말이다.
그런 과거에 대한 상상들이 지금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재미로 하겠지만,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그야말로 인생을 망가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자기 역사를 만들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대안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묵시세계에 둘러싸인 사도바울 !!
사도바울에게는 이렇게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하는 삶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데, 왜냐하면 자기는 묵시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기에 말이다. 역사가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몸무게가 '제로'인데, 얼마나 가벼운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다른 사람 같으면 낙담하고 절망을 하면서 난리를 피우는데,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인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도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혼자 산다고 하는 것이 그 얼마나 비참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너무 책임감이 강해서 결혼을 회피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그러나 옛날에는 헤어지는 한이 있어도 결혼을 해야 남자구실을 한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경우에는, 자기도 다른 사도들처럼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자기는 자기에게 받은 복음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에 역사는 더 진행이 되어봐야 별 볼일이 없는 역사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 성도는, 묵시에 의한 역사고발의 전리품 !!
사도행전이 9장만 있는 것이 아니고, 10장, 11장으로 계속해서 진행이 되지만, 그러나 그 전체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묵시에 의한 역사고발' 이라는 것이다. 즉 묵시가 역사를 공격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 전리품으로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그만 '그리스도인'이 '툭'하고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성령을 통해서 하늘의 일이 역사 속으로 내려왔는데, 즉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다 공격하는데, 그렇게 하면 "저는 공격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인 줄 몰랐던 인간입니다" 라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런 자들이 바로 성도라는 것이다. 그것이 일종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성도가 태어나는 것은 묵시를 가지고 역사를 공격할 바로 그때라는 것이다.
◈ 집사님, 가정을 포기하세요 ??
예를 들어보면, 저에게 이런 상담을 많이 하는데, 자기 남편이 술을 먹고 행패를 마구 부리는데, 그러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목사인 저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고 하니, 아까 공식이 뭐라고 했지요? 묵시로 역사를 공격해야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뭐라고 질문을 하는고 하니 "집사님은 남편 때문에 삽니까? 아니면 예수님 때문에 삽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 양반은 그래도 자기가 예수를 믿는다고 이렇게 목사에게 와서 상담도 하니, 당연히 자기는 예수님 때문에 산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엉망인 자기 남편은 더 이상 믿지도 않고 말이다. 물론 대부분이 거짓말이지만 말이다.
* 집사 : 목사님, 저는 남편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 목사 : 왜요?
* 집사 : 매일같이 술만 먹고 행패를 부립니다.
* 목사 : 그러면 집사님은 누구를 믿습니까?
* 집사 : 예, 그야 물론 남편이 아닌 예수님을 믿습니다.
* 목사 : 그렇게 남편이 행패를 부리는데, 그것이 집사님에게 무슨 손해가 됩니까?
* 집사 : 그러면 우리 가정이 엉망이 됩니다.
* 목사 : 그러면 그 가정을 포기하십시오.
* 집사 : ? ? ?
* 목사 : 그렇게 가정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보면, 남편을 사랑하게 됩니다.
* 집사 : ? ? ?
* 목사 : 그렇다면 이제 남편을 경찰에 고소하면 됩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남편이 자기를 때리면 경찰에 고소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이 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기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남편에게 얻어맞고서도 "제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렇게 되었어요" 라고 하니 말이다. 남편은 그것을 알고 더욱 더 행패를 부리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자기 남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자기 위신 때문에 자기 남편을 경찰에 고발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집안우사(?) 라고 하는데, 즉 너무나 넘사스럽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구요? 무슨 뜻인고 하니, 집안망신이라는 말이다. 제가 지금 쓰는 용어가 너무 디피컬트한가요?
◈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그러니 그런 것은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방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면서까지 구제를 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보는가? 흔히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성경은 이런 상식(?)을 다 깨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말도 아니고 행동도 아닌데, 사랑은 그냥 '마음먹기' 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사랑을 두고 뭐라고 하는가? 오래 참고, 온유하고, 투기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등등,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은 바로 '인간성' 이라는 말이다.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전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사랑의 매는 기적이 아니면 !!
그렇게 사랑으로 하면 상대방이 아는데, 즉 선생님이 같은 회초리를 들어도 사랑으로 하는 것과 자기 성질이 나서 하는 것을 학생들이 안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것을 죽어도 '사랑의 매' 라고 하지만, 하지만 거의 99%가 거짓말인데, 사실은 사랑의 매가 아니라 것이다.
하지만 기적으로 사랑의 매도 들 수가 있는데, 보통 선생님의 경우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그 다음날 자기 반 아이들은 죽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부부사랑(?)을 하고 나면 그 반대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사람이란,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한 일이 있으면 작살이 난다는 것이다. 보통은 밖에서 그런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화풀이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 특징이 온유해야 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비록 신랑을 고소하더라도 온유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고소를 해도 무례히 하면 안 되고 말이다. 그러니 판사가 피고를 사랑하면 흥분해서 고함을 칠 이유가 없는데, "너 같은 것은 법의 따끔한 맛을 좀 봐야 돼. 징역 10년이야. 땅땅땅" 라고 말이다.
◈ 10년만 좋은 경험을, 사랑해요 ??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죄가 미운 것이지 사람이 미운 것이 아닙니다. 예, 10년입니다. 좋은 경험을 한다고 여기세요. 아마도 10년 안에 석방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얼마든지 사랑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니 같은 인간은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야만 해. 판사가 바로 너 때문에 있어. 정의는 살아있어. 10년이야"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판사가 재판 장면을 촬영을 한다고 하는데, 자기가 흥분하는지 하지 않는지 보려고 말이다. 온유하게 하면서 구형은 할 것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설경구가 나오는 영화 '공공의 적'과 같이 하지 말고, 물론 그렇게 작살을 내도 좋지만 온유하게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고, 또 지금 수갑을 차면 조금 갑갑해도 참으세요" 라고 하면서 가볍게 수갑을 채우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말이다.
아무튼 사랑이란 것은 천사의 말, 즉 좋은 말을 한다고 사랑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는 것은 주의 일이구나. 그러니 주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지, 내가 폼을 잡으면서 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도행전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특히 뒤로 갈수록 말이다.
◈ 주님의 묵시 안에는 사랑이 !!
그러므로 이 사도행전 자체가 묵시로 역사를 공격하는데, 그런데 그 묵시 안에는 사랑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사랑했으니 찾아오셨지, 그렇지 않다면 찾아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이, 얼핏 들으면 사울을 야단치는 것 같지만, 그런 나무람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즉 "자슥아, 너는 구원받았어"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러니 주님이 우리를 불러서 "야, 너는 명색이 목사라면서 술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 이제 그만 좀 마셔" 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우리를 야단친다기보다는 "야, 이제 너는 구원을 받았어" 라는 뜻이란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 아니, 성도에게 무슨 환난이 !!
어떤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훌륭한(?) 말을 했는데, "성도에게 환난이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성도에게는 환난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남아있다" 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감사로 끝난다는 것이다.
◈ 어느 포르투갈의 신부의 일본 선교이야기 !!
16세기에 일본에 포르투갈의 천주교 선교사가 와서 핍박을 엄청 받았는데, 그때가 임진왜란 이전의 일인데, 그때 일본정부에서 모든 선교사들을 다 추방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가 그려진 이 초상화를 밟는 사람은 남아있어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때 어느 신부는 지근지근 그 초상화를 밟고 남아서 선교를 계속해서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데, 그때 주님의 음성이 자기에게 들리기를 "야, 밟아라.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실제로 예수님의 얼굴도 아니고 그림에 불과하더라는 말이다. 설령 자기들이 아무리 예수님의 얼굴이 맞다고 해서 그렸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과거에 불과하고 말이다.
◈ 이것이 바로 '묻지마 구원' ??
다시 말해서, 묵시의 구원 바구니에 올라 탄 사람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주께서 전혀 묻지 않고 구원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묻지마 구원(?)' 인데, 왜냐하면 처음에 찾아올 때부터 이미 구원을 주기로 작정을 하고 오셨기 때문에 말이다. 즉 바지에 똥을 싸든 오줌을 싸든 이미 자기 자식은 여전히 자기 자식이라는 것이다.
아까 말한 그 포르투갈의 선교사의 경우에, 그렇게 살아남아서 계속해서 일본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자유롭지 않을 것이 뭐가 있느냐는 말이다. 이미 묵시세계에 속해있는데 말이다.
* 질문 - 아까 목사님이 판사를 예를 들면서 사랑을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약올리는 경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은 본인이 아는데, 상대방을 약을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 물론 안 되고, 정말 그런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즉 자기반성(?)이 된 상태에서 말이다. 사랑이 언제 터지는고 하니까, 주님의 은혜로 자기의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정말 온유와 화평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절로 무례히 행치 않고 말이다. 남의 의식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아하, 내가 꼴랑 이것 때문에 !!
예를 들어서, 우리가 화투를 치게 되면, 물론 설날이나 추석 때만 잠시 치게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돈을 잃다가 그만 오기에 발동해서 끝까지 밤을 새우고 해서 다 땄다고 하면, 그렇게 처음에는 열을 받아서 돈을 다 따서 상대방을 골탕을 먹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데 막상 다 따고 나면 허탈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서 목표가 없어지게 되면 말이다.
예를 들어서,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나면 천하를 다 얻을 것 같지만, 그러나 막상 시험에 걸리고 나면 허탈해진다는 것이다. "아이쿠, 내가 꼴랑(겨우?) 이것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보내었던가?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사법연수원을 나오고 검사가 되어도 또 경쟁의 연속인데, 검사가 하루종일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 정상이 아닌, 사기꾼, 도둑놈, 깡패 등등, 그런 놈들만 만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의 거의 말아먹다시피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해서 의사가 되고, 또한 겨우 전문의를 따서 병원을 개업해도, 그렇게 하면 팔자가 펴는가?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성추행범으로 고소를 당하고 말이다.
◈ 아이쿠, 의사 팔자야 !!
또한 아침부터 밀려오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의료보험증 하나만 달랑 들고 오는 노인네들이고 말이다. 자기들은 돈도 전혀 내지 않고, 아침부터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놀다가 주사 한 대 맞고는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라도 해서 손님이 오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마누라는 어떤가? 그래도 명색이 의사부인이라고 하면서, 비싼 최고급 음식에다 백화점에 가서는 명품을 사야 한다고 하면서 카드를 마구 긁어대는데, 자기의 취미생활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자기 신랑은 등골이 얼마나 휘는지 모르고 말이다. 아니 쇼핑이 취미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지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뭔가를 가지고 되면 뜯어먹는 그 사람이 주위에 생기게 되는데, 항상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이 잠언서에도 나오는데, 그래서 복권에 당첨이 되면 이민을 간다고 하지 않는가? 주위에서 얼마나 괴롭혔으면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묵시가 아니면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묵시가 역사를 공격해서 구원받은 사람을 !!
이제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사도행전은 마치고 로마서로 넘어가겠는데, 일단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살펴보자. 그리고 잊어버렸지 싶어서 다시 강조하지만, 사도행전은 묵시가 역사를 공격해서 구원받은 사람을 데리고 가는데,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이라는 것이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무슨 말씀이 있는고 하니까, 이것은 교회에 다닌지 한 달만 되면 대부분이 다 아는 유명한 구절인데, 특히 대학교 선교단체에서 얼마나 강조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영적인간'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슈퍼맨(?)'이 된다는 것이니, 얼마나 좋아하겠느냐는 말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슈퍼맨은 무엇을 해도 정당하고 무엇을 해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없는 대학생들이 자기 한계를 아는데, 성적표를 봐도 매일같이 시들시들하고 말이다. 가끔 권총도 보이고 말이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에 그렇게 죽으라고 공부를 해서 대학교에 들어와서 학기초에 노는 맛이 말면, 공부는 그야말로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군대에 가서 고참에게 매일같이 머리를 얻어맞고 뺑뺑이 돌다가 제대를 해서, 그때부터는 철이 들어서 공부를 한다고 폼을 잡고 해보지만 어떻게 되는가? 그러나 그때는 이미 머리가 다 돌이 되어서 그만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집에서 학교를 다니면 생활에 질서가 있어서 공부라도 조금 할 수 있지만, 하지만 시골에서 올라와서 자취라도 하면 그야말로 노는 아이들의 본부가 되어서 엉망이라는 것이다. 자취방에는 라면봉지가 수북하고, 소주병, 맥주병, 콜라병과 담배 재떨이, 그리고 어지럽게 널린 옷가지들, 그야말로 개판 5분전이라는 것이다.
◈ 당신은 지금부터 성령을 받은 슈퍼맨 ??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아는 사람이 하도 부탁을 해서 선교단체에 가면 뭐라고 하는가? 자기를 그만 성령을 받은 영적인간으로 인정을 해주는데, 그러니 지금부터는 차원을 달리해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영적인간으로, 즉 하나님께서 자기를 슈퍼맨으로 만들어주신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니 선교단체에는 당연히 이 구절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자기 몸임에 한 명이라도 더 끌고 와야하니 말이다. "이제부터 당신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라고 하면서, 이사야 43장 1절에 나오는 말씀까지 인용해서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질문 - 그러니 선교단체가 자기 모임으로 유도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물론 그러한데, 그렇게 해서 사람을 많이 끌어모아야 후원금도 제대로 들어오고 말이다. 바로 그렇게 유도하는 재료가 바로 "당신은 위대합니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는 절차로서 확인한다는 말이다.
◈ 그런데, 왠지 나도 모르게 !!
그런데 문제는 이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 8절 끝에 보면, "내 증인이 되어라" 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특징이 있는고 하니, 자기는 여전히 "나는 슈퍼맨이 되기 싫어. 그냥 이전처럼 마구 놀고 싶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날부터인가, "왠지 나도 모르게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란 것이 인정되어질 때, 바로 그때는 성령님이 찾아오셨다" 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도행전 전체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의 세례가 어떻게 오는고 하니,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그야말로 우연찮게 온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 '유두고'의 경우에 !!
사도행전 20장도 그런 예가 나오는데, '유두고' 라는 사람은 우연히 사도바울의 집회에 참석해서 3층에서 그만 졸다가 떨어져서 죽고 말았는데, 그런데 사도바울이 내려가서 기도하니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통해서 본인은 무엇을 깨달았는고 하니, "아하,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도하시는구나" 라고 말이다.
(행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행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아무튼 그런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하나님과 자기는 남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즉 하나님의 갈고리가 자기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당기는데,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찍을 때 사용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고리가 말이다. 그렇게 해서 고기를 걸 듯이 그렇게 걸어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필요하면 또 내려서 사용하고 말이다.
◈ 성령 받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는 삶을 !!
바로 그렇게 주님이 자기를 잡아땡겨서 이 세상을 살게 하고,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 마음속에서 느껴질 때, 그런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바로 그때 "너는 나의 사람이 되고야 말리다" 라고 하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성령이 임했는데 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그것이 결코 인간의 능력이나 공로가 아니고, 오직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아하,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구나" 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드디어 역사세계에서 묵시세계로 올라가게 되는데,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공중부양(?)으로 올라가신 예수님 !!
이것이 마지막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별장면인데, 물론 우리가 구름을 타면 그냥 떨어지고 말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사기를 치는고 하니, 자기는 구름을 탈 수 있다고 하면서 공중부양을 하는데,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연습을 하면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더 높이 뛰겠지만, 인도에서는 조금 더 뛰고 말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그렇게 제대로 된 공중부양(?)을 해서 올라가 버렸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묵시의 사람으로 그렇게 다루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는 약속대로 성령을 기다렸는데,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 사도행전 2장을 살펴보겠는데, 1절부터 제가 읽습니다.
(행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렇게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갑자기 마치 강한 바람과 같이, 또한 불의 혀, 즉 불꽃과 같은 것이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왔는데, 그런데 그때부터 거기에 모여있던 자들이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방언이라고 하고 말이다.
◈ 방언은 '랄라라'가 아니라, '훌랄라' ??
이렇게 해서 드디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방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기도문을 빨리 외우면 나타나는 그런 현상을 방언이라고 여기는데, '랄라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빨리 외우면 알아듣지를 못하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방언은 그렇게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다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각 지방의 표준말로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지방에서 보면 사투리인데, 그렇게 그런 각 지방말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그때 오순절에날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는 것이다.
◈ 드디어 예수님의 이야기가 퍼지는데 !!
물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만 성령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받지를 못했는데, 그렇게 받지를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받은 자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거의가(?) 사도들인데, 이렇게 해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함으로 말미암아서,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을 한 자들이니, 당연히 그들은 예수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각자의 집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이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아주 큰 축제일인데, 그렇게 유대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로마까지도 말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이방인들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집에 가서 가만히 있겠는가? 당연히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안디옥이나, 물론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도바울이 가서 전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각 지역에 교회가 세워져있다는 것이다. 다만 사도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계시를 그들에게 가르치는 임무를 받았고 말이다. 자기가 새롭게 받은, 조금 더 깊이 있는 예수님에 대한 통찰을 말이다.
◈ 사도바울이 가기 이전에 이미 교회가 !!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바울이 아니라 성령께서 세운 것인데, 오순절 축제 때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들이 모였을 때, 그렇게 방언으로 전하게 되니, 그들이 듣고는 각자의 고향으로 가서는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증인이 말이다.
바로 그렇게 해서 하늘나라가, 즉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묵시의 세계가 이 마지막 때에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그런 방언의 내용이 사도행전 2장 16절부터 계속해서 나오고 말이다.
(행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 드디어 묵시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의 현장에 !!
여기 17절에 보면,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라고 하는데, 이렇게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는 것이 잠을 잔다는 말인가? 역사에는 없는 묵시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에 퍼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렇게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라고 되어있는데, 거기에서 말하는 '모든 육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일단 이 구절을 공구고(표시하고?) 나서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살펴보자.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모든 사람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
그러니 사도행전 2장 17절에 나오는 '모든 육체'도 역시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육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하는데, 거기서 말하는 '누구든지' 이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런 자들은 그냥(?) 주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을 얻는데, 그러니 구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쉬우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주(主)'는 어떤 분인가? 그분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행함이나 공로가 아닌, 즉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묵시의 세계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그분을 알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야속하게(?) 올라가신 그분을 말이다.
아까도 제가 말했지만, 남편에게 구타를 당해서 찾아온 그 안타까운 집사님에게 "남편이 중요합니까? 주님이 중요합니까?" 라고 하면서 난처하게 만든 것은, 그 집사님을 찾아온 그 묵시의 세계를 확인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하고 마치겠는데, 사도행전 마지막 장인 28장 24절부터 살펴보자.
(행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행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 아니, 사도바울이 성령으로 설교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
여기 24절에 보자면,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라고 하는데, 사도바울 지금 설교를 자기 힘으로 하는가? 아니면 성령을 받아서 하는가? 분명히 성령을 받아서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상식으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면 모든 사람이 다 믿지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설교하면 믿는 사람과 그렇게 않은 사람이 이렇게 구별이 되어 생겨난다는 것이다. 즉 믿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역시 성령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25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고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제 아무리 듣고 보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사도바울은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설교를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에게 설교를 듣게 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구원을 받게 하는가? 역시 전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도바울로 하여금 설교를 하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미리 약속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까 우리가 읽었던, 이사야 선지자에게 미리 말씀하신, 즉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사도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말이다.
◈ 아니, 하늘에서 로또복권이 !!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정상적이고, 그런 와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기적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 말씀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말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로또복권(?)을 그냥 공짜로 받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런 것을 너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를 말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평소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서 믿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지시고 그 모든 죄 값을 다 치렀기 때문에 말이다. 바로 그러한 사실이 믿어질 때, 그런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천국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자기 역사를 가지고 우쭐거리고 있음을 야단치고 계시는 줄 압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자기 잘남을 유지하고 싶고, 또한 앞으로도 더욱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욕심이 넘치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는 그 사실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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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옛날 구약시대에 '목사' 라는 학위가 있었나요? 만약에 없었다면, 왜 지금은 목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그렇게 목사만이 말씀을 전한다고 하고 있는지요?
그때에 그런 것은 없었는데, 구약시대에는 다만 선지자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이다. 학위는 13세기에 프랑스에서 대학이 생기면서 학위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런데 목사들에게 이러한 학위를 요구하고 준 것은 사회적으로 권위를 가지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학위' 라는 표현은 좀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고 하니, 명칭은 목사라고 해도 좋고, 발음이 안 되면 목수(?)라고 해도 괜찮고 말이다. 그 모임에서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세요" 라고 인정을 받을 때, 그런 사람을 목사라고 한다면 굳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에서 그렇게 자기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고 공감을 느낄 때, 바로 그 사람이 공동체에서 말씀을 가르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이든지 10년이든지 가르치다가 또 말씀이 전혀 아니라고 느껴지면 목사직을 그만두면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목사에게 학위를 주고 라이센스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장사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의미인가요?
일종의 목사세계를 보호하는 것이고, 결국은 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배운 것이 모두가 그런 가락인데, 물론 불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 시험을 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보면 협의체를 만들고 하는데, 왜 그런고 하니, 누구든지 다 중개업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러니 일종의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사님의 경우에도 자격증이 있어서 학교에서 전기를 만지고 하듯이, 누구를 욕할 필요도 없이 원래 이 세상이 모두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복음을 배척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집사님은 요즘 전기맛을 가끔 보시는지? 물론 종종 맛보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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