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80강 / 계19장 4-6 (숨길 수 없는 기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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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숨길 수 없는 기억
2007년 9월 30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9:4-6
(계 19: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계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우리가 집 안에서 일부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옥 툇마루 끝에 있는 뒷 문만 열면 맞바람이 불어서 들녘에 모아있는 바람이 한꺼번에 집 안에 들어와서 집 안은 온통 가을로 넘쳐 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의 바람은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얇은 문의 밖의 세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집 안에 갇혀서 답답해 할 것이 아니라 문만 열면 들이닥치는 그 천국의 세계를 보고 놀라야 합니다. 그 천국의 세계가 오늘 본문입니다.
그 나라에 이미 24장로들이 앉아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입니다. 괴물이 아닙니다.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주님 보좌 앞에 앉을 수 있다면 우리도 앉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았다고 하면 같은 인간인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구원받은 겁니까? 1절에 보면,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는 겁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겁니다. 이는 곧 우리 인간에게는 없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으면 남들에게 없는 줄로 압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없으니까 실망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이 우리에게는 없고, 우리 능력으로 안된다고 해서 구원이 없다고 외치면 안됩니다. 분명히 단언합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있다’는 것으로 인해 24장로들도 천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안 되는 것이기에 아예 안 된다는 식으로 성경을 보면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주님의 능력으로 움직이기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은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아담이 죄 지어서 우리가 죄 아래 있다’는 로마서 5장의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우리가 죄 지었기에 우리가 죄인 되는 줄로 압니다. 죄를 자신이 짓고 안짓고를 통해서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것에서부터 사고 전환이 있어야 하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아담이 죄 지었기에 우리가 죄 짓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 자신에게서만 찾지 마세요. 우리 외부에서 일어난 일로 인하여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자입니다.
따라서 죄의 책임이 홀로 다 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시험 든 꼴이 됩니다. 즉 “내가 죄가 많아서 인생이 이처럼 꼬이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가 많아서 일이 꼬이는 것이 아니라 아담 때문에 일이 꼬이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아담이 죄 지은 것이 참 고마울 수가 있습니다. 모든 죄 책임을 그쪽으로 몰아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 두 번째 아담되시는 예수님께서 의인이 되셔서 우리가 졸지에 의인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발상이 전환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의논해서 이미 의인될 사람으로 우리를 골라내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죄나 의가 모두 우리 자신과 상관없이 이루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24장로들이 구원을 받았기에 그들은 천국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마음에 우러나와서 노래부릅니다. 이들은 복음을 알고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때는 직사게 자기에게 실망을 해야만 합니다.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솜씨를 기대를 걸다가 철저하게 낙담을 해봐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성공적인 삶으로 살기 위해서 애써다가 다 그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절감해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보면 인간들 가운데 성공한 인간은 없습니다. 목회자라면, 이 세상에서 목회에 성공한 자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자신의 인생이 끝까지 실패한 인생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끝까지 이 악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3절에 보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즉 성도의 삶이란 하늘에 올라갈만한 연기를 피우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최초로 한 사람이 아벨입니다. 아벨의 연기는 하늘에 상달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란, 억울함에서 오는 하소연입니다. 가인이나 아벨이나 다 같이 제사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둘 다를 받으면 형제 간에 다툼이 일어난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셨다는 겁니다. 즉 아벨의 제사만 받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은 것입니다.
그래도 이 사실을 가인이 고분고분 받으면 될터인데 웅크리고 있던 죄가 가인의 마을 덮쳤습니다. 그 때부터 가인의 마음이 악의 종이 되어 되어 아벨을 죽이는데까지 이릅니다. 아벨을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었습니다. 이 죽음이 곧 향기로운 연기가 되어 하늘 나라 보좌에 반응을 나타내게 했습니다. 보좌에서 군대가 출동케 했다는 말입니다. 가인이 있기에 아벨이 억울하게 당했습니다. 이로서 성도와 비성도가 구분됩니다.
이 경우가 그대로 예수님에게 이어집니다. 종교적으로 봐서 바리새인보다 더 완벽한 경지에 이른 자들이 없습니다. 인간 쪽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모든 시도에 있어 이미 바리새인들이 달인입니다.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나타나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나’를 앞장 세워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나는 떡이요, 나는 생명이요,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부활이요”하시면서 말입니다. 바리새인을 악에 받쳤습니다.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아니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주장이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하나님께서 누구의 손을 번쩍 들어주셨을까요? 두 말 없이 예수님의 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했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을 죽게 한 그 모든 것이 사기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이 능력이요 구원이요 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우리의 마음으로 연필하나 1cm 이동시킬 능력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미 마음을 변화시킨 자에게는 구원에 까지 이릅니다. 마음의 변화, 사고의 전환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나를 꼭 구원시켜 주어야 돼”가 아니라 “왜 하필 저를 구원하셨습니까”라는 구원받은 자의 감동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적용에 의해서 구원되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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