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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81강 / 계19장 7-10 (혼인잔치)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81강 / 계19장 7-10 (혼인잔치)

정인순 2010. 12. 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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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혼인 잔치

 

2007년 10월 7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9:6-10

 

(계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오늘 본문을 보니 하늘 나라는 완전히 잔치 분위기입니다. 찬양과 감사가 오는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에 우리 교회도 편승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리 봐도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문만 열린다면 이런 하늘 나라의 찬송소리가 맞바람 들이닥치듯이 우리에게도 들이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찬양 듬벅이는 모두 하늘 나라 ‘결혼식 소식’ 때문입니다. 신랑이 신부로 초청시킨 자들과 더불어 우주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의 중심에는 ‘결혼식’이 자리잡고 있는 셈입니다. 결혼식만 끝나면 우주의 역사도 끝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중매쟁이’로 소개합니다. 신부를 신랑에게 중매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활동한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지금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변경이 일어난다면 이럴 경우, 그 미래란 있으나마나 하는 미래일 뿐입니다. 적어도 행복이 되는 미래상이란 지금 우리의 그 어떤 행동에 의해서도 변경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 미래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우리 자신들의 남편감을 우리가 골라 세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도리어 남편되시는 분이 우리에게 찾아들어서 우리를 신부로 삼을 경우에만 우리의 미래는 변경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각오나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은 자신이 책임지고 필히 지켜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약속에 시큰둥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이 세상에서 대해서 미련이 남아서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신랑의 사랑에 무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랑을 아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못되는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결혼 태도를 보면, 그냥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변하지 않은채 결혼까지 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호기심으로 결혼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신랑으로 변해야 하고, 여자는 아내로 변해야 합니다. 남자와 신랑의 차이점을 상대방 아내를 아껴주는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습니다.

 

여전히 자신에게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따진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아껴주려는 마음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즉 자기 자신부터 아낄려고 하지 상대방을 자기보다 우선해서 아껴주려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의 사랑 앞에서 서로가 못난 존재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앞에서 서로 잘났다고 으스대는 존재로 만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세상이 주는 유혹은 우리 힘으로 감당이 되지를 않습니다. 서양 전설에 ' 오디프스 신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오디프스라는 이 영웅은 지나가는 배를 삼키는 것으로 유명한 해엽을 지나가게 됩니다. 배들이 그곳만 가면 침몰하는 이유는, 풍랑이 심해서도 아니요 항해술이 낙후되어서도 아닙니다.

 

배의 선원들은 유혹하는 강력한 여신의 노래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세이렌이라는 여신이 노래소리를 듣게 되면 어느 인간도 정신을 놓은채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배를 끌고 가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암초에 걸려 배가 침몰하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곧 인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유혹에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오디프스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그는 영웅적으로 대처합니다. 우선 선원들의 귀에서 왁스를 발라서 세이렌 여신의 노래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선원들보고서는 자신의 몸을 돛대에 꽁꽁 묶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오디프스는 세이렌의 노래 소리를 결국 다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돛대에 묶여있기에 거기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겁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돛대가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에 푹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사히 해엽을 지나온 오디프스이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있습니다. 그의 뇌리에는 그 여신의 노래소리가 저장되어 있어 언제고는 틈만 나면 달려가 유혹을 받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처럼 현대인에게는 일시적으로 세상의 죄와 유혹에서 벗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자꾸만 혼이 세상 유혹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이 말을 듣지 않는 늙은이의 시기가 되어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신부될 자들의 연약함까지 우리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미리 다 알고 계시기에 그것조차도 벗어날 수 있는 돛대 역할로서 십자가 피를 흘리시고 제시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혼인이 나옵니다. 한번은 율법이라는 남편과 혼인했던 그 여자가 다시 그 후에는 성령과 혼인한 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율법이라는 남편은 모든 면에서 자기 아내에게 완벽을 요구합니다. 뭘 해도 빈틈을 보이지 않아야하고 완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어느 한 구절도 지켜내지 못함을 압니다. 일시적으로 지켜내는 것 같지만 마치 다시 도박에 미쳐들어가는 도박 중독자처럼 우리는 세상 부귀 영황에 중독되어 있는 중독자입니다. 따라서 그 율법으로 인해 이 여자는 위선이라는 죄를 추가적으로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성령과 혼인하고 보니 모든 것이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되는 관계입니다. 즉 남편이 아내의 약점과 한계성을 미리 간파해서 그 점까지도 너끈히 해결할 수 해결책까지 갖고서 혼인한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 눈 앞에 보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자로 취급받습니다. 이러한 남편의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이런 사랑에 감동받아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자신을 주님의 것으로 드리는데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성경 안의 결혼잔치 분위기가 우리 교회까지 덮쳐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찬양과 찬송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선악과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중에 '오디프스'는 오디세이'로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