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79강 / 계19장 1-3 (할렐루야 복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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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할렐루야 복수
2007년 9월 23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9:1-3
(계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계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계 19: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성경을 보게 되면, 이 세상은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도 개입하는 세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치워버리고 안 보게 되면 오로지 이 세상은 인간들만의 세상으로 으로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 일구어내었고 개인적인 인생사도 자기가 자기에게 지속적으로 희생과 노고를 가미했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간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또다시 보게 되면 세상사 뿐만아니라 개인사마저 하나님이 관여하신 결과라도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경을 전적으로 도외시할 수 없어 하는 종교색깔을 띤 자들은 전적으로 자기에게만 지사충성 할 수 없기에 신에게도 성의를 표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자기에게 충성을 다 쏟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 아니면 그 누구가 나를 도와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그 중의 일부를 신을 위한 시간으로 할애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 안에서 관여하시는 하나님에게 성의표시로서는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성의를 표하는 것을 거부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성의가 부족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충성하는 그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한채 그 연장선에서 하나님에게 뭔가를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판거리에 해당될 뿐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정신은, 평소에 인간들이 자기를 섬기는 사고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서 죽은 자는 산 자를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육은 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이 육을 위하여 지상충성하는 양상으로 영을 위한다고 해도 영은 그것을 충성이라고 봐주지를 않습니다.
인간의 육적인 정신은 연속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즉 정해놓은 목표가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지금부터 찬찬히 한걸음씩 밟아 나가면 언제가는 그 불가능한 일도 손에 잡히는 일이 되는 겁니다. 목표와 출발점 사이가 멀다하지라도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늘 나라는 이 지상의 나라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를 않습니다. 도약해야 합니다. 불연속성이 존재합니다. 이 지상에서 인간들이 자기에게 하던 행세를 아무리 그 끝을 이어 신의 나라로 확장시켜 봤자 거기에는 불연속적입니다. 마치 사다리를 아무리 높여도 별을 딸 수가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심판을 앞장 세워서 쳐들어오십니다. 정성이 부족해서 심판이 아니라 아예 사고방식 자체가 하늘나라에서는 통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사용해서 신을 섬기겠다는 그 자체가 바로 심판받을 짓이 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자기에게 충성하는 그 방식대로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인간 마음 속에 영웅심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왕을 원하고 그 영웅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영웅이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고대로부터 왕을 민중들이 원했던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왕이란 건달입니다. 조용하게 농사짓는 자들에게 다가가서 “도둑을 지켜줄 테니 세금내라”라고 돈이나 뜯는 양아치들입니다. 자기네들끼리 군대라는 패거리를 만들어서 약한 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이 왕이 됩니다.
주몽이나 왕건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건달들의 무모함에 옹호하고 환영하고 부러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죄짓더라도 뭐든지 용감하게 지으면 위대한 영웅으로 보이는 법입니다. 무슨 짓을 위해 정권만 잡으면 난세의 위기를 극복한 신의 사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평소에 인간들에게 한이 맺혀 있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확장’입니다. 자기 이름을 세상적으로 빛내고 영광을 얻어내는 겁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러한 소원을 달성하면 그 분 무릎 밑에 꿇어 마음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인간들이란 모두 내면적으로 이런 영웅들을 찾고 있음을 안 이상, 하늘 나라에게는 그런 인간들의 여망을 들어주는 식으로 그들을 천국에 흡수시키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영웅심리를 의도적으로 피해가는 방식의 메시야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 53장에 보게, 그 분이 막상 세상에 오게 되면 아무도 그 분을 알아보는 자가 없다는 겁니다. “누가 알았으리요 누가 믿었으리요” 그만큼 세상 사람들은 엉뚱한 메시야상을 각자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왕은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늘에게 위대한 영웅이 오시기를 기대했는데 막상 오니 도리어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왕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그 분 앞에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죄를 인정해야 한다면 죄가 아닌 다른 사고방식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핱텐데 인간에게 나올 것은 오로지 영웅주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그분을 사이비로 간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 분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죄인 아니었던 경우가 없습니다. 몸이 약한 병자가 아무 일도 못하듯이 죄를 품고 있는 죄인은 아무런 의로움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곧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마치 말의 발목 힘줄을 전달해 버리면 말이 도약을 못하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로 하여금 육적인 사고방식 안에 가두어버려서 결코 자력으로 영의 세계로 도약되지 못하게 하시는 겁니다.
이러한 사태는 여전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격분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 마음이 영웅심리로 가득 차 있기에 누가 와서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해도 상관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악마의 종들이 교회를 장악해도 그들은 고분고분했습니다. 별 이상을 못느껴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관심사가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자신들이 영웅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종들은 인간들의 이 점을 너무 잘 아닙니다. 자기 몸만 아는 것이 육의 한계를 것을 너무합니다. 따라서 악마는 그들을 자신들의 욕망의 한계 안에 가두어버리게 했습니다. 이로서 오늘날도 이단들만 득세하는 교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육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육의 모든 시도는 기껏 흙에 속한 형상이 조성한 것입니다. 흙은 흙일 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받게 될 몸은 현재 우리 몸이 아닙니다. 현재 몸이 연속성이 없습니다. 천사보다 더 빛나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체로 우리 몸이 변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이 근원적으로 죄 자체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 상태에서 참된 메시야가 왜 피를 흘리면서 다가오셔야 되는 지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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