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63강 / 계14장 8-12 (성도들의 인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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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성도의 인내
2007년 5월 27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4:8-12
(계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성경은 사람을 둘로 분류시킵니다. 여자의 후손에 속한 자와 뱀의 후손에 속한 자를 분류하게 되는데 그 작업을 예수님이 하십니다. 자신이 성도인지 아닌지는 맞은 편에 있는 뱀의 후손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통해서 파악될 수 있게 하십니다. 맞은 편에 있다고 여기는 뱀의 후손들이 가진 사고방식도 동일한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분명 뱀의 후손에 속한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여자의 후손에 성도들은, 하나님이 유적 발굴하듯이 찾아내는 식으로 일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방식과 같이, 예수님은 스스로 목자를 찾아올 수 없는 양을 친히 찾아내어서 자신의 어깨에 매어 돌아오는 그 즐거움이 곧 온 하늘의 즐거움이 되게 하십니다.
성도를 만약 땅 속 깊숙이 수 천년 먼지와 진흙 속에 깜깜하게 묻힌 보물이라고 한다면 그 두꺼운 진흙층을 일일이 뚫고 깨고 부수고 하시면서 그 보물에게 접근하는 늘 외부 작업자의 몫입니다. 유물이 스스로 무거운 진흙층 안에서 몸부림 친다고 해서 푸른 하늘을 행해 열어제치고 탈출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는 스스로 자기 위를 수십 년 누르고 있는 진흙층을 뚫어내지 못하는가요? 그 두꺼운 진흙층이 바로 오늘 본문 ‘큰 성 바벨론’으로 나와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란 국가를 말합니다. 뱀의 후손들이 마지막 때에 접어들면 국가적 차원에서 복음을 반대하고 모독하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큰 성 바벨론을 모든 인간들이 무척이나 반기고 좋아하고 찾는다는 겁니다. 큰 성 바벨론이란 막강한 힘이 집결되어 있는 곳입니다. 모든 현대 교육은 교육 대상자들 속에 힘을 채우는데 주력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입니다. 실력이 있어야 사람 대우받는 것이 이 사회라는 겁니다.
힘은 법에 실려서 질서 형태로 등장됩니다. 법이 없는 곳은 힘도 없습니다. 하지만 법이 있는 곳은 항상 힘이 작렬합니다. 힘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국가의 법에 고개 숙입니다. 힘을 얻기 위해서 법이 있는 곳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힘으로 살겠다는 것은 법을 지키는데서 나오는 법의 힘으로 살겠다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국가의 대표격으로 하필이면 역사상에 등장하는 그 많고 많은 나라 중에 ‘바벨론’입니까? 다니엘 2:31에 보면, 우상이 등장합니다. 이 우상은 앞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인류의 국가의 속성을 전부 담아내고 있습니다. 금으로부터 시작해서 은, 놋, 철, 그리고 철과 진흙의 혼합물로 만들어진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끝’을 말해주는 우상입니다. 왜 인류는 끝이 나와하며, 왜 끝장나야 하는지는 이 우상으로 인한 본질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겁니다. 이 우상을 근거로해서 바벨론왕은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그 법은 이 우상은 우주의 중심점을 삼기 위해 법입니다. ‘이 금신앙에서 복종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법에 거부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이 이 우상으로 집결시키고자 하는 법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속에 이미 다른 법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법‘이란, 어떠한 요건도 묻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법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의 계명‘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계명은 ‘그 어떤 요건도 만들지 말라’는 식으로 다가옵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은, 추가적인 인간의 행함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자체적으로 구원에 있어 필요한 모든 힘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 완결지어진 구원의 힘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에베소서 2:8-9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즉 그저 받는 겁니다. 구원에 있어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그 어떤 흥정과 거래도 하지를 않습니다. 수 천년 먼지 속에 파묻힌 유물과 유물을 파내는 문화재 직원과 무슨 흥정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도리어 “찾았다, 기쁘다, 신난다!”라는 환호성만 성도의 귓전을 때릴 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잠자고 있던 영혼들이었습니다. 메시야께서 무슨 일을 하며, 누가 그 메시야이신지에 관심조차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잃었던 자를 찾아내시는 예수님의 작업으로 구원된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아무런 이유도 우리가 만들어내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 안에서 따로 조건이나 요건이나 규칙이나 준칙이나 규범이나 법이나 세칙 같은 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이 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뱀의 후손들은 웅장하고 거대한 법으로 유지되는 국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게 무너진다는 겁니다.
‘무너진다’는 말은 곧 뭔가 안무너지기 위해서 애쓴 건물같은 구조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완벽한 나라를 구상하고 건설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율법에 대한 개인적 성취도에 따라 여러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제일 윗층에는 늘 율법을 가까이 하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자리잡았고, 제일 밑바닥에는 세리와 창기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시스템을 뒤덮어버렸습니다. 제일 밑바닥에 있는 자가 오히려 천국에 가깝다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하여 구원은 인간의 그 어떤 법과 질서체계로 성사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해졌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의 질서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러워합니다. 힘의 세계, 바벨론 세계로 진출하여 자신의 인간됨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뱀의 세계를 양성하더라도 성도가 참으로 선물로서의 조건없는 믿음이라면 그런 것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인내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가짜 믿음인지 진짜 믿음인지 스스로 점검하면서, 늘 조건을 깨부수고 찾아오시는 주님의 능력에 순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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