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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사도행전 9:5 / 차원 돌파 / 260421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사도행전

사도행전 9:5 / 차원 돌파 / 260421

정인순 2026. 4. 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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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김혜근

주일 오전오후설교(260419) 보충

그전까지는 우리가 보통 죄를 지어서 죽는다고 알고 있었잖아요. 로마서 6장에도 나오고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그런데 오전 설교에서 제가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우리가 죽는다.’고 이야기 했어요. 죽음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고, 죽음의 원인이 우리를 떠나서, 우리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창세기 2장 17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했잖아요. 따먹은 자가 누구죠? 사람입니까, 마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선악과 따먹은 자가 누구죠? 인간이죠.

그런데 거기서 왜 하나님께서는 따먹은 인간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마귀한테 책임을 지우고 저주를 했느냐 이 말이죠. 거기서 ‘정녕 죽으리라’했는데, 아담과 하와는 안 죽었잖아요. 그렇죠?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인간들이 이해하는 죽음의 개념은 창세기 2장 17절, 거기에 해당이 안 된다는 뜻이죠.

따먹고 난 후에 ‘헉헉~’하고 죽어야 되는데, 안 죽었단 말이죠. 그러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의 의미에서 인간의 이해는 배제되어야 되죠. “넌 끼지마. ‘정녕 죽으리라.’의 죽음의 자리는 네가 낄 데가 아니야.” 주님께서 저주를 할 때 뱀부터 저주를 했잖아요. 그렇죠?

이 죽음이 악마한테 이미 결정타를 날리는, 악마의 죽음을 겨냥해서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셨구나...왜냐하면 여자의 후손은 사람하고 상대하는 게 아니고, 뱀의 후손과 상대하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을 때에 왜 따먹도록 뱀이 에덴동산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따먹을 때 왜 안 말렸을까?

생명나무는 따먹을까봐 사전 조치를 했잖아요.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요. 그런데 선악과는 왜 조치를 안 했죠? 그 차이가 뭐죠? 같은 나무인데... 왜 생명나무는 단도리를 하고, 왜 선악과는 방치하듯이 했느냐 이 말이죠. 그것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게 하면서요.

왜 그렇게 하셨는가?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놔 둔 것은 골로새서 1장에서 비로소 그 정답이 나옵니다. 마귀부터 해서 모든 피조물들은 누구를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골1: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진짜 죽음이다. 이제 결론 나왔죠? 우리 인간이 죽는 이유는 예수님 자신의 죽음으로서 인간이 죽거든요.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은 주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이 주님의 관심사인데, 악마는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너 그러면 죽어!’라고 죽음을 가지고 협박, 공갈을 하는 거예요.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죽는 게 문제가 아니고, 마귀의 종 되었다는 이 관계에 대해서 인간은 죽더라도 못 빼요. 죽어서 빠지면 다행인데, 죽더라도 뺄 수가 없어요, 이 발목을.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간을 죽게 함으로써 인간이 생각하는 죽는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대표적인 예가 거지 나사로입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잖아요. 거지 나사로의 죽음은 그게 죽는 게 아니고, 남의 땅에서 자기의 본 고향,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거죠. 실컷 고생하다가, 자기 임무 마감하고 가는 거죠.

그래서 성경 전체는 예수님의 죽음을 가지고 시작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은 성경을 볼 때, 자기 죽음 문제를 해결하려고 성경을 보니까, 이건 뭐 백날 봐야 마귀 해석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나오죠.

“어떻게 하면 안 죽습니까? 어떻게 하면 지옥 안가고 천국 가겠습니까?” 이거는 벌써 시작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인간이 마귀한테 정신이 팔려서 자기 죽음에 급급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이 가리워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리워진 자신의 죽음, 이 죽음을 일찌감치 생명나무와 선악과, 하나는 죽게 되어 있고, 하나는 살게 되어 있는,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나무를 심어놓은 거예요. 나무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은 서로 연락이 되고, 관계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게 관계거든요. 독점적인 진리가 아니고, 관계예요. 관계가 진리예요. ‘나는 이것을 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느냐? 이게 진리예요. 이것을 주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선악과 따먹을 인간과, 그리고 절대로 따먹어서는 안 되는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과 인간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 그 관계를 로마서 1장에서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라고 이야기해요. 하나님의 의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대신 죽으심’이 들어있죠. 여기 또 죽음이에요. 대신 죽으심 때문에 의롭지 못한 자를 의롭게 만드는 기적이 일어나서, 그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래서 낮 설교에서 핵심적인 것을 예수님이 먼저 죽음으로써 그 다음부터 우리가 죽는다. 우리가 죄를 많이 지어서 죽는 게 아니고, 우리가 죄 지은 게 아니고, 아담이 죄 지었으니까 우리랑 관계없고요.

아담을 대표로 해서 선악과 따먹게 해서 죽으면서도 당장 아담을 죽이지 않고, 뭘 하느냐 하면, 저주라는 삶의 환경 안에 들어가서 죽기는 죽지만 저주 환경을 맛보게 하고 죽이죠. 우리는 그 전체를 이 땅에서 되풀이하죠. 어떤 일을 해도 인간은 고생스러워요. 고생이 없다는 것은 자기 주제 파악을 못해서 그래요.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다는 것, 주님의 죽으심, 십자가 중심이라는 것을 누가 아느냐? 사도바울이 알았잖아요. “나는 십자가만 자랑한다”(갈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럴 때 예수님이 아버지한테 버림받았죠. 그러면 예수님의 죽은 것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공식은 간단하죠. 예수님이 버림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버림받죠. 그러면 우리 성도는 뭐냐? 버림받은 것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면 끝이죠. 버림받은 것을 즐기는 거예요. 왜? 버림받아야 자기 공로가 거기 섞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오후 설교 첨가한다면, 성경대로 “모든 인간은 애곡하리라”(계1:7-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끝났어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애곡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결국 애곡으로 끝납니다.

미리 자기 사람을 빼돌리죠. 빼돌리는 사람은 뭐냐 하면, 십자가 중심이고, 이 세상은 애곡하기로 확정되어 있음을 눈치 챈 자, 그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어떤 미련도, 어떤 부러워하는 것도, 세상에 어떤 기쁨도 그것이 거짓인 것을 눈치 챘죠. 눈치 챈 겁니다.

그래서 오후 설교에서 사도요한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밧모섬에 있었죠. 귀양살이 하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휴스턴의 로켓 발사대에 있는 거죠. 밧모섬은 뭐냐 하면, ‘세상에서 뜬다’, ‘하늘나라 간다’와 가장 가까운 접촉점이 되는 거죠.

세상에서 버림받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마지막 접촉점, 모든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사도요한은 자기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감격스러워서, 하나님의 천사가 주신 계시에 감격스러워하면서 그것을 글로 썼고, 그 글을 보고 듣고 기뻐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게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추가) 버림받는다는 게 그렇게 기쁜 소식이에요. 왜냐하면 주님과 동기동창생 아닙니까? 주님이 아버지께 받은 운명이 어떻게 나에게 카피되는 혜택을 주시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워요? 너무 감격스럽죠. 감히 내가 주님이 당했던 그 체험에 참여되다니요.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죽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 죽는 게 아니고, 바로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만이 버림받은 데서 건져내지죠. 하나 더 보탠다면, 바로 불의한 청지기, 얼마나 아이러니해요?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롭다는 말은 자체적으로 자기한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자예요.

그래서 뭐했다? 돈 횡령했잖아요. 주님이 보시기에 불의한 청지기는 주님 스스로 만들어낸 예이지만, 옳지 않죠. 그런데 옳지 않은 것이 의로운 너희들보다 어디 간다? 천국 간다. 자기의 옳지 않음을 파악하는 자가 천국 가는 거예요.


녹취:안순석

2026. 04. 21. 강남강의 차원돌파 A – 이근호 목사님


오늘은 사도행전9장 하겠습니다.
(행9: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1)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그렇게 돼 있죠. 요한계시록 13장 7절에 보면 666 나옵니다. 그 666 나올 때에 앞에 어떤 말이 있느냐 하면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매매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그 당시에 도미티 티아누스의 시대에 그 제우스한테 제사를 드리면, 제사 드렸다는 그런 증서를 나눠줘요. 증서를 나눠주면 그 증서가 없는 사람은 돈 아무리 있어도 마트에서,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이걸 뭐 사자성어로 표시된다면 “철두철미” 완벽하게 인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 생존, 생존 못할까? 무섭고. 완벽하게 그 생존에 대한, 생존에 대해서 철두철미하게 압박을 가하는 수단 또는 제도를 짐승이 알고 있다.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어떠한 여지를 철저하게 짐승의 세계 이 세상에서는 차단하고 있습니다. 어떤 요령을 부리고 지하교회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기어이 색출을 합니다.


그리고 마귀나라에서는 그 신앙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부활했으니까, 부활했으니까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그분을 이 세상에 어떤 지도자 통치자를 제끼고 그분이 나의 왕이고, 나는 그분의 백성의 관계로 새롭게 이어졌다. 그것을 고백하는 자가 신자다 라는 그 정도 정보는 이 세상에서 꽉 잡고 있죠. 그러면, 그 사람을 빼놓고 국가가 운영될 수는 없잖아요. 히브리인들 빼놓고 애굽 나라가 너희들끼리 종교생활 해. 난 여기 탈취하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들 제끼고 우리끼리 여호와 안 믿는 사람끼리 나라 할게. 이렇게 나오던가요? 애굽이? 아니지요. 하늘의 태양이 둘이 될 수 없잖아요. 오직 태양 같은 어버이 수령님은 누구십니까? 하늘 같은 어버이 수령님이 누구예요? 북한에서 만약에 지하교회든 뭐든 신도가 보안부에 잡혀 가지고 왔다 그러면 묻지요. 이 땅의 지도자가 누구냐? 묻지요. 그러면 우리 김정은 지도자입니다. 그러면 니가 믿는 예수는 뭐야? 그럼 뭐야? 지도자야? 지도자 아니야. 이렇게 질문을 이렇게 하죠. 그러면 지도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예수님이 믿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보안부에서 우리 김정은은 우리 지도자는 뭔데? 그 지도자에 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이 말이지. 처형해. 그게 어떤 논박에 있어서 신문하는 논박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빠져나갈 길을 줍니까? 안 줍니까? 일체 허용을 안 해요. 허용을 하지 않습니다. 유치원 바보도 쓴다니까요. 그 예수님이 있는 그림 가지고 밟아라 하는 그런 거 유명하죠. 6.25 때. 그런 게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은 유치한 방법이죠. 그런데 로마는 어떻게 했다. 했습니까?


요한계시록에 제우스 신을 숨기고 거기에 대한 제사를 드리고, 그 증서 제사드렸다는 자격 없으면 어떤 마트가 돈이 있어도 못 사게 만들었다? 짐승의 표에 그 표가 없으면 물건이 매매가 안 되게 돼 있어요. 물건 매매 안 되면, 돈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는 거예요. 금은 못 뜯어먹잖아요. 그러면 결국은 뭐하면 항복하게 만들어야 돼요. 항복하게.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어떻든 그건 니 마음대로 믿는데 너희들이 믿는 모든 종교, 불교, 천주교, 천주신, 예수, 어떤 알라신 어떤 건 좋은데 하지만, 그걸 인정해 줄게. 인정하는데 조건이 뭐냐 그것보다도 국가의 말을 먼저 듣는다는 조건 하에 취미생활, 종교 취미생활 취미생활을 하도록 해줄게. 지금 상황이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현재 상황이. 그걸 그렇게 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는데 나선 사람들이 성직자들이에요. 목사. 국가에 충성할 테니까. 우리끼리 우리끼리 종교 활동하는 거는 이러면 눈 감고 한번 봐주소. 나라에 다 협조하고 세금 내고 군에 다 전쟁할 테니까. 해주세요. 이리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거 9장 1절에 보세요.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향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갔다. 이 말은. 국가의 체면이 있어요. 감히 여호와 믿는 유대교 체제에서, 여호와가 우리가 유대교에서 분명히 이단으로 해서, 안 에서 이단으로 규정했던 자가 누구냐 하면 예수잖아요. 예수를, 아직도 분명히 예수를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 예수님 믿고 따르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처형했어요? 새로운 종교의 교주 예수님을 처형했잖아요. 그러니까 생각을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딴 종교 같은 것 성경 덮어버리고 이성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걸 왜 해? 하지 말라는 게 나라에서 그냥 예수를 죽였으니까. 요모조모 따져보고 이게 이단인지 아닌지 따져보고 처형했잖아요. 그 나라의 종교에 대해서 헬라어 히브리어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다 전문가들 있잖아요.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연구해서 무지한 백성들에게 그런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내는 조치가 뭐냐. 예수 믿으면 이거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여호와 믿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우리나라에 그런 걸 용납하게 되면 국가 정체성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노함을 받아가지고, 너희들 그 잡스러운 너희들 때문에 여호와 유대인이 기다리고 있는 그 소망이 하나님이 삐져가지고, 약속대로 며칠 안 올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그러한 생쥐 같은 것을 잡아내야 제대로 된 하나님 섬기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교가 여호와 믿고 율법대로 사는 거 맞죠? 우리는 이 정도로 열심으로 뽑아낼 가라지를 다 뽑아냈습니다. 이 정도는 해줘야 하나님 앞에 기다린다 할 수가 있잖아요. 결국은 이 세상 문제는 뭐냐 하면 이거예요.


너는 너대로 믿고 나는 나대로 믿는데 대다수가 믿는 것을 진리라고 인정하고 난 뒤에 너가 개인적으로 취미생활하는 것은 내가 인정해 줄게. 지금 이 정도예요. 다수의 의견이 통치의 원리입니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에요. 다수의 의견이 집안에 식구가 5명 있는데, 4명이 보살이다. 그런데 하나는 교회 간다. 갸 죽었지. 용납이 안 돼. 왜? 4대 1이잖아요. 이래 가지고 가정이 되겠어? 가정의 평화가 되겠어? 얼마나 합리적 생각입니까? 좀 튀지 마라. 합리적 얼마나 합리적인 것이 다수의 의견이 무엇을 가져다주느냐 하면은 평화를 갖다줘요. 평화. 평화는 뭐냐 하면 조용한 거잖아요. 조용한 거. 제발. 우리 가족만이라도 좀 조용하게 살면 안 되냐? 어? 너 왜 거기 빠져가지고, 왜 조용한 우리 가정을 왜 파탄하느냐 우리는 4대 때 불교 집안이다. 너 낳을 때 이름 누가 지은 줄 알아? 보살한테 이름 지었어. 보살. 스님한테 뭐 이름 받아 적었어.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 전부 다 제사들 절에 가 있어. 그런데 너는 왜 무슨 바람에서 교회 나와? 알지? 너 기본 알지? 튀고 싶은 맘이야 아는데 우리 적당하게 하자. 적당하게 우리 타협하자. 너 교회 나간 거 인정해 줄게. 그런데 가정에서는 조용하게 제사 지낼 때, 거기에는 여기 있잖아요. 운동 뱃살 빼고 절하는 운동 되잖아요. 108배까지 하지 않는데 향 피울 때 코는 냄새 맡으면서 절하면, 너 하나만 그만 양보하면 가족들이 편해. 그리고, 우리 아버지 엄마 촌에 땅 있다. 이게 무기죠. 너 교회 가면 너 돈 가지고 교회 갖다 바칠 거니까, 너 자칫하면 내 가족에서 유산에서 빼는 수가 있어. 동생들 주지, 너 안 줘. 그런데 너 키우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가 그렇게 부모를 안 듣나?


이런 게 나의 아저씨라는 2019년도에 드라마에서 나의 아저씨, 돌아가신 이선균, 아이유 나온 드라마 있거든요.
그때 그 술집 여자 술집 주인공하고 주인하고 어떤 젊은 운동권인지 그 사람이 한 20년 전에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그 남자가, 아 강의시간에 왜 이러는 거예요? 남자가 마음에 걸린바가 있어서 절에 갔어요. 절에 갈 때 술집 주인이 찾아가 20년만에 찾아가서 이러죠, “풀때기도 사랑하면서 와 나는 사랑 못하면, 너희들은 풀때기도 사랑한다고 하면 왜 멀쩡한 나는 왜 사랑 못해? 가자 집에 가자” 하면서 라이터를 준비했어요. 절에 불질러 버릴라고. 그 대사가 아주 임팩트 있는 대사였습니다. 근본적인 의견은 뭐냐? 근본적인거는 이거예요. 크게 쓸게요. 여러분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적습니다. 근본적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이 이겁니다. 인간은 인간만 상대하자. 합리적이고 너무나 이성적이죠. 이성적이에요. 인간과 인간만 상대하면서 이게 뭐냐 하면, 여기에 법과 제도가 나옵니다. 국가제도가. 법과 제도가 나오는데 이 법과 제도는 대대로 인간 쪽으로 내려오면서 이게 인간 세상이라면 이 밑에 인간들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쉬워요. 공중에 날아다녀요. 공중에 날아다닙니다. 이것을 이렇게 보면 이 공중, 이 공중이라는 공중에 이게 날아다니면 이 날아다니는 것을 뭐라고 하나? 이걸 기표라고 합니다. 기표, 기호에 뭐가 뭐냐 하면 의미가 있어요. 이 기표와 의미를 이미 기성세계에 있는 기표에 우리가 태어나서 이 기표와 의미를 숙지하고, 그걸 받음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세상에. 사람이 되는 거예요. 모든 단어에는 인간들이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전제돼 있는 단어를 주고받아요. 이게 지금 여기가 무슨 세계냐 하면, 유대 사회예요. 유대 사회. 유대사회에서 다수가 법과 제도를 의미 기표에 의해서 이렇게 만들어내요. 예를 들면 빨강 불이 들어올때 건너지 마세요. 횡단보도 이야기잖아요. 빨강 불일 때 건너지 마세요. 이 단어 한 단어 쪼개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거예요. 빨강불일 때 건너지 마세요. 왜 이거 분홍색 빛은 왜 안 되고 노랑 빛은 왜 안 되느냐, 이것이 뭐냐 하면 붉은 빛과 대비해서 이거는 멈춰라. 녹색, 버스는 가라 라고 약속을 한 거예요. 차이에서 약속을 낸 거예요. 차이에서.


그러면 예를 들어서 어떤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남자가 여자보고 사랑한다. 여자가 사랑이 뭔데? 늘 보면 이렇게 보고 싶은 거예요. 보고 싶은 게 뭔데? 계속 뭐를 동원시켜요? 그 기표 언어를 계속 갖다 붙이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계속 치환한다, 교환한다. 이렇게 합니다. 아무리 해도 사랑한다는 본인 마음을 언어에다가 담아낼 수가 없어요. 그걸 주일 낮에 뭐겠습니까? 해상도가 낮다는 거예요.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마음의 해상도보다 낮습니다.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요. 그럼 나중에 뭐라 하나? 킹콩처럼 되지요? 아우 답답해라. 아우 답답해라. 이 답답해라가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이것을 이 공중에 뭐하냐? 하면 기표가 있지만 인간에 뭐가 있냐면 일자가 있어요. 일자 일자 일자 일자 일자 하는 것은 단독자. 단독자 개별자의 개별자로 돌아다니는데. 있으니까 내 마음을 타인에게 알릴 방법은 없어요. 내 이 의미를 가지고 상대방한테 요구를 하는 거예요. 지금 몇 주 전에 제가 낮 설교 때 언급했는데 이유를 여러분들이 답을 한번 내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 내가 왜 너한테 말을 하지? " 왜 내가 꼭 너한테 말을 해야 돼? 이게 인간의 본디 모습에 부합되는 겁니다. 내가 너한테 말을 걸을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만약 여러분 딴 사람이 여러분 부르거든요. 바로 일어나요. 왜? 왜 내한테 말 안 하는데? 내 말해달라고. 나한테 요청한 적 있어 없지? 니가 뭐한테? 내한테 뭐 이야기하고 싶은 거 있어? 있어 없어? 나 내가 남한테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니까, 이유가 성립이 안 돼요. 왜냐하면, 나는 나대로 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나대로 사는 것이 남한테 말한다는 것은 결국 그게 부모든 자식이든 남편이나 아내든 상관없어요. 그건 뭐냐? 내가 내 혼자 사는데 내 사는데 나한테 밥이 안 될래? 나한테 이용당하지 않을래? 하는 취지할 때만 우리는 타인에게 말을 던집니다. 말을 던져요. 경상도 남자가 퇴근하고 하면 무슨 말 해요?


"아는?" 그럼 아내가 뭐 다른 이야기 안하나? 하면, 이야기 왜 해야 되는데 "피곤하다 자자" 너는 아내라 하는 것은 내게 필요한 존재지 내가 너 부를 때까지 가만히 있어. 내가 필요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 요새도 그런 남자가 있기는 있겠습니다마는 따지고 보면 내가 남한테 이야기할 이유는 천 가지, 만 가지 단 한 가지도 없어요.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 9장 초반에서 사울이 기세등등하다는 것은 기존의 이미 기존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그 법과 제도에서 자기가 정당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정당하고 이 정당한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그 잡범 같은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첫 번째 알아야 될 것은 뭐냐 이거예요. 이런 건 참 적어 놓으면 좋습니다.

"사울은 죽은 스데반 집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습니다." 네, 사울은 죽은 스데반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게 사도행전 7장(58절)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때에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 발앞에 두었지요. 거기 사울이라는 사람이 뭡니까? 스데반 집사를 돌로 처형하는데 주모자가 예 그렇게 행정적 책임자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었고, 그 기세 등등 해서 그다음에 8장에 보면 8장 3절에 보면 사울이 교회를 진멸할 시에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더라. 완전히 김정은이 보안요원 하듯이 그렇게 한 거예요. 더 쉽게 말해서 예수상이 있으면 예수상을 이렇게 끄잡아 땡겨서 거꾸로 해가지고 오하마라고 해서 내리 치려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고 난 뒤에 사울이(9장에 보면) 살기가 등등해서 대사장에게 갔어요. 이게 대사장, 이게 AD 서기 37년경이에요. 예수님 돌아가신 것이 AD 30년경이거든요. 7년 후의 일입니다. 다메섹. 다메섹은 현재 시리아. 그 당시에 지금의 시리아예요. 지금의 시리아 나라 된 것은 아시리아 지역이기 때문에 아자 빠지고 시리아가 된 거예요. 그 아랍나라 옛날 아랍나라의 그 당시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니까 (행9: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그 도를 쫓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울을 향하여 다매섹에서 갑자기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둘러 비췄죠. 그러니까 다시 1번을 다시 봅시다.


사울은 나중에 바울이 되어서라도, 사울은 전에 자기가 예수님 만나기 전에 스데반 집사를 죽였는데 행정적 책임자로 나선 거에 대해서 그 후에 미안해 했어야 돼요. 미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예? 왜 안 미안해 할까요? 예?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사울은 자기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폭을 했어요. 학폭을 하고 난 뒤에 사울이 나중에 연예인 되었을 때 자기한테 돈 뺏기고 자기한테 예 그 저 매 맞은 나한테 미안해 합니까? 아닙니까? 미안해 하죠. 안 그러면 지금 연예계고 뭐고 배구 선수고 다 날아갈 판인데 미안해 하지요. 좀 봐도! 하든지 뭐 하던데. 그런데 사울은 보세요. 죽은 스데반 집사에서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유가 뭐냐? 첫 번째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이것은 2번 때문에 그래요. 사울은 주님 만나고 난 뒤 살 이유가, 자기가 살 이유가 없고, 이유는 주님이 일방적으로 따로 주셨다. 세상적으로 보면 자기가 스데반 집사 처형 할 때 주모자였잖아요. 자기가 예수 믿고 난 뒤에 내가 과거에 이런 나쁜 짓을 했구나.


물론 폭행자, 살인자 그거 디모데후서에서 했지만, 그거는 포괄적으로 이야기한 거고, 개인적으로 스데반집사에게 그런 이야기를, 미안한 감을 안 주는 이유가 뭐냐, 그러면 사울이 예수님 믿고 난 뒤에, 내가 참 예수님도 모르고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내가 스데반 집사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가서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예수님을 못 만나서 그랬습니다. 이제 와서 만났으니까 사과합니다. 우리 인간적으로 죄송합니다. 하는데 문제는 사울은 예수 만나고 난 뒤에 인간적인 것이 날라가 버렸어요. 사과할 수 있는 주체가 없어요. 사과할 주체가. 이거 뭐 배짱이 센긴지 이거는 뭐, 자기를 더 이상 자기를 챙길 수 있는 것을 주께서 용납을 하지 않아요. 내가 이제 나쁜 짓 했으니까 사과하면 어떻게 돼요?


이제는 착하게 살아야지 이게 없다니까, 이게 없어요. 사울에게는 이게 없어요. 사울에게는 이제 도리어 내가 어떻게 바르게 사느냐가 없고, 남은 것은 자기한테 할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할 일이. 나를 버린 게, 나만 버린 게 아니고 내가 속해 있는 이 세상 전체를 버린 대신, 주님께 부여받은 것은 사명이었습니다. 너 내 시킨 대로 해라. 달랑 그것뿐이에요. 뭐 누가 돌아다니면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몰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자기가 속해 있는 세상 자체, 세상 자체를 주님께 그냥 반납했다. 할까? 그게 날라가 버린 거예요. 저는 이것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차원 돌파 점 0차원, 그 다음에 선 이거는 1차원, 면적 이거는 2차원, 입체 공간 이거는 3차원, 4차원은 초공간, 이게 차원이거든요. 선에 개미가 기어 다닐 때 그 개미는 면적을 이해 못하고, 면적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렇게 동그라미 쳐놓고 동그라미 쳐놓고 여기서 못 빠져나온다 하는 이런 것들은 위로라는 개념이 없잖아요.


2차원 개념은 이렇게 뒤로 가고 앞으로 가고 옆으로 가고 요건 되는데, 위로 가는 게 성립이 안 되죠. 입체적 보면 3차원에서 보면 2차원은 뭐가 없습니까? 뚜껑이 날라갔죠. 위에서 다 보니까. 이거 4차원에서 3차원 보면 3차원에 어디 있든지 간에 뚜껑이 날라간 거예요. 뚜껑 날라간 걸로 생각하면 제일 쉬워요. 뚜껑이 날라갔죠. 뚜껑이 날아갔기 때문에 3차원 안에서 통하던 그 의미, 그 가치, 그 자기의 이것은 4차원에서는 이거는 갖다 버릴 것이지. 아무 소용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들끼리 인간 대 인간이 만나서 교류했던 그 의미는 천국에서는 안 받아줍니다. 인정을 안 해줘요. 인정을. 일체 인정을 안 해줘요. 이 땅에서 착하고 바르게 사는 거. 천국에서 인정을 안 해줘요. 그러면 이런 건 시험해보면 되죠. 예수님 상이 있다. 이스라엘 군사 있잖아요. 예수님 상을 부수는데. 그때 만약에 이스라엘이 북한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서 너 예수님 믿나 안 믿나? 모르겠습니다. 니가 그냥 속인다 이 말이지. 그러면 도끼가지고 예수님의 머리상을 부숴라. 그때 그 차원을 돌파하지 못하고 3차원에 매달린 예수 믿는 사람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멈칫하고 주저하겠죠. 주여 용서하소서 뭐 하든지, 안 그러면 구약때에 나아만 장군처럼 제가 그 림몬당에서 하더라도 뭘로 봐줘라? 여호와께 예배 드린 걸로 좀 쳐주세요. 이런 거 있잖아요. 구약시대니까 주저할 거예요. 그러나, 상황이 돌파되게 되면, 그걸 예수님의 상을 깨는 것은 어디에 해당됩니까? 뭘 깨는 거예요? 예수님 상을 깨는 건 어디에 해당됩니까? 네자로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우상숭배 천주교회에 하는 게 아니고,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돌로 만든 거 어떻게 해야죠? 깨야죠. 내가 깰게. 왜 착하고 안 착하고 악하고 이게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하는 모든 행함에 대해서 일체 의미와 가치를 주지 않고, 주지 않는 거예요. 구원이라는게.뭐도 의미가 없어요? 믿는다 안 믿는다도 의미가 없어요. 믿는다 안 믿는다도 의미가 없어요. 그런것 묻지도 않아요. 우리 사울 착하다. 볼까? 이러고 온 게 아니거든요. 예수님께서. 지금 사울이 한 일은 뭡니까? 3차원적 세계에서의 종교관에서 보면 정말 이거는 악하고 독하고 진짜 이거는 나쁜 인간에게, 주께서 찾아간 셈이 되지요. 주님은 사울이 나빠서 찾아간 게 아니고, 착해서 찾아간 것도 아니에요. 그냥 창세전에 예정됐기 때문에 그냥 찾아간 거예요. 그냥. 찾아갈 때는 너가 나쁜 짓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거 없어요. 왜냐하면, 그냥 찾아가서, 그냥 찾아가서 그냥 이렇게 주께서 사울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빼앗아버렸죠. 사울의 인생, 특히 사울의 추억, 사울의 기억, 인생관 세계관 다 빼앗았습니다. 이게 차원 돌파 차원 뚫기.

이 차원이 왜 이게 뚫어야 되느냐 하면 구약 때부터 내려오지만, 이 3차원, 이 세계의 공간, 이 세상은 지배자가 있어요. 누구냐 하면 악마라는 지배자가 있어요. 아까 처음에 할 때 어떻습니까? 사자성어로 "철두 철미" 마귀가 바보가 아니에요. 뱀은 지혜로워요. 인간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계를 뚫고 생활하는 건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인간하고 협상을 해요. 기독교, 천주교, 예수 믿는 거 다 해.


다 하되 어떤 명령이 국가의 명령이 주어질 때는 그때는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고 난 뒤에 사적으로 너 마음적으로 영혼적으로 영혼이 어떻고 이분은 어떻고 예수 믿는 거 내가 인정해 줄게. 하지만 국가적으로 하는 것은 너가 따라야 된다. 왜? 그게 바로 현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는 망상이죠. 현실이 이미 구축이 됐잖아요. 현실에 구축됐는데 또 다른 현실은 없어요. 현실은 현재 인간 사는 눈에 보이는 세계 전부입니다. 전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거는 거짓이고 망상입니다. 이거는 세상에서 마귀가 충분히 용납을 해줘요. 충분히 용납을 해준다고요.


그러니까 인간은 협상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인간의 신앙생활은 짐승과 마귀와 협상한 조건 하에서 개인적인 취미생활에 해당돼요. 모든 교회가 취미생활이고, 취미라는 것은 굳이 할 필요가 있다. 없다? 없죠? 취미니까. 돈도 없는데 무슨 교회 나가니까 돈 벌면 교회 나가지 취미니까 몸 편하고 이렇게 미래에 걱정되니까. 보험 드는 식으로 그냥 교회 나와주는 거죠. 어떤 의미에 충실합니까? 세상 같은 인간들.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이에요. 인간과 인간들이 형성되는 이 세상에 그들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그들의 누를 끼치지 않은 조건 하에 나름대로의 짜투리 시간이나 짜투리 여유를, 자유를 가지고 내 사적인 영적인 취미생활에 매진하면 주께서 그것도 신앙이라도 봐주시겠지. 하나님 눈은 꼭 감아주겠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자기가 안에서 협상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 안에서. 그런데 사울에게 찾아왔던 주님은 사울이라는 사람을 파괴시켰어요. 나의 세계, 나의 세계, 내가 속한 이 세상이 파괴되면서 어디로 이동했는가? 말씀의 세계로 옮겨줬습니다. 나의 세계가 파괴되고 말씀의 세계로 옮겨줬습니다. 그거는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어섰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저보고 살았다. 하지 마세요. 제 안에 주님이 살아있지. 내가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라고 고백한 거예요. 시 공간이 섞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안에 들어온 거예요. 기존의 시간과 공간이 섞이지 않는 이 시간과 공간이 섞이지 않는다는 말은 미래 과거 현재가 없이 모든 게 확정되었다. 운명이 확정된 거예요. 그래서 이 인간의 운명은 뭐냐 하면 그 차원, 현재 우리가 사는 차원을 돌파했느냐 돌파하지 않느냐로 이미 인간은 두 종류로 확정이 되어 버렸어요. 돌파하려고 애 쓰는 건 소용없어요. 돌파 안됩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이해하는 모든 의미는 돌파하지 않는 이 세상에 짐승의 인간들의 다른 인간들이 사용하는 그 의미 밖을 못 벗어나서 그걸 사용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다고 나를 규정하는 의미 자체가 마귀가 용납해주는 의미들이에요. 가짜가 이미 가셔서 나는 남들이 꾸며낸 그 나가 나예요. 그래서 자꾸 물어봐요. 내 옷이 어때? 내가 어때? 내 인간이 어때? 인간성이 어때? 그걸 남한테 물어봐서 소급해서 그걸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꾸준히 어릴 때부터 양육받고 교육받았어요.

세상이 나에게 비난해버리면 집에 돈이 있더라도 자살합니다. 내가 남한테 욕 얻어먹다니 나는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어? 이러고 죽어요. 내 존재의 의미는 내가 내가 못 정하고 내가 정하는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남이 정해줘야죠. 내가 누군지를. 그래서 남의 좀 삐딱하다. 남이 좀 나를 멀리한다. 이러면 나는 앞에 콱 죽어버려요. 나 콱 죽어. 이렇게 가족들한테 내 인정 못 받고 내 차라리 엄마 나 집 나갈까? 집 나갈까? 남편이 아내를 줘패도 못 나가요. 술 먹고 들어가서 줘패도 이혼 안 합니다. 왜? 남편이 없으면 내가 누구의 아내라는 게 없잖아요. 얻어 맞으면 천사라도 되지. 나 남편이 악한자가 되면 내가 덤으로 착한 사람 되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 이게 자기 의라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 의를 못 놓습니다.

이게 악마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백날 해도 내가 준 발목에서 발을 못 빼요. 왜? 나는 잘났으니까, 누가 악마가 그렇게 나한테 그렇게 그러한 예 잘났다는 수용체를 줘 가지고 왜, 악마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돈 못 벌면 인간도 아닙니다. 왜? 남들이 그렇게 봐요. 내가 아무리 나 돈 없어도 믿음이 있다. 백날해도 이 세상은 안 통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할 일은 뭐냐? 남한테 인정받는 것이 인간의 할 일이고. 인정받는 것이,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에 가가지고 지 출세했다고 무덤에서 울면서 소주 까고 있어요. 소주 까고 있어요. 세상에 대한 인정, 인정 그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노력하면서 뭐가 쌓이겠어요? 그동안 이렇게 잘난 나를 인정 안해준 세상과 가족에 대한 무슨 심? 복수심, 날로 날로 강화해요. 복수심이. 복수하기 위해서 출세하는 겁니다. 좀 중요한것 같으면, 좀 적어 놓으세요. 복수하기 위해서. 엄마 나 무시했지. 아빠 나 복수하기 위해서 죽으라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밥먹고 살면서 나 1억 모았다 벌써, 20대 뭐 이런 거 있잖아요. 하여튼 남이 없으면 남이 없으면 내가 살 이유가 없다니까 남이 없으면.

주님은 새로운 차원으로 사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 이야기가 뭐냐? 주여 누구십니까? 할 때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러분 잘 아시죠? 주여 누구십니까 하면 나는 이렇다 하면 되는데 어떻게 했습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그 다음이 뭡니까? 핍박하느냐? 주님의 십자가 지신 상처 안이 4차원 세계였던 겁니다. 그 4차원 세계가 주님의 상처로 사울을 삼켰어요. 삼키는 동시에 사울은 자기가 잘했다. 못했다가 다 날아갔어요. 이제는 타인의 평가, 시선, 비판. 이것은 자기한테 해당사항 없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조건이에요. 구원의 조건.


걸리버 여행기, 걸리버 여행기 있잖아요. 작은 소인국에 갔을 때 걸리버가 거인처럼 대우받잖아요. 소인국에서 그 걸리버를 붙잡기 위해서 걸리버가 잠자고 있을 때, 여기에 텐트 치는 것까지 해 가지고 실을 이렇게 했잖아요. 실을 묶어놔 가지고 그들은 생각하기에 소인들이 이 정도 하면 거인도 꼼짝 못할 것이다. 이래 해 가지고 바닷가 보상 누워가지고 이래 있는 장면 삽화 봤지요? 그걸 걸리버가 일어나면서 거미줄이 있나? 두드둑 뜯고 다 나오잖아요. 사울이 주님의 상처안에 들어가면 세상에 얽히고 섥힌 모든 가족관계, 친척관계, 우정관계가 두드덕 두드덕 다 떨어져 나가요. 실밥 터지듯 해서 다 떨어져 나가요. 그 남은 것은 뭐냐 하면 이제는 내 시킨대로 하는 사명만 남아요. 사명만. 그 상처 안에서. 그게 바로 요나의 선지잖아요. 그게 고기 안 속에 들어 갔습니다. 물고기 안 속에 들어 갔습니다. 삼킴을 당한 겁니다. 내가 니 잘했다. 못했다. 일체 묻지 않아요. 일체 안 묻습니다. 세상에 이런 자유가 어디 있어요? 내가 훌륭하다 훌륭하지 않다. 일제 하나님 묻지도 물어볼 생각도 없어요. 3차원이거든요. 3차원과 천국 차원의 차이점이 모르겠습니까? 뚜껑이 없어요. 귀를 만드신 자가 듣지 못하랴. 눈을 만드신 분이 보지 못하랴. 자기들끼리는 전부 다 이렇게 있지만 위에서 보면 뚜껑이 없어진다고요. 말씀의 세계. 그래서 인간의 세계에서 사울은 이제 말씀의 세계로 갔는데, 그리되면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7년이라는 간격 틈 예수님 죽은 것이 십자가가 AD 30년, 서기 30년 사도바울이 예수님 만난 것이 37년. 이게 뭐냐? 왜 그러냐면 그 당시에 사건별로 역사도 나와요. 37년, 분명히 7년 간격이 있는데,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2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같이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산다. 나는 뭐냐 그리스도의 껍데기다. 주님의 껍데기다. 여기서, 하나의 공식을 적어보겠습니다. 나의 의가 뚫리지 아니하면, 주님의 의의 나라 의의 나라죠. 주님의 의의 나라가 뭡니까? 이 천국이죠.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의가 뚫리지 아니함이지. 나의 의가 없어지면이 아닙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잘남이 안 없어져요. 뚫린다는 말은 구멍난 흔적을 갖고 있으면 돼요. 지 잘난 체 하다가 뻥 하고 뚫린 거예요. 총알이 이렇게 가면, 어떻게 됩니까? 여기 빈칸이 있고 주변에 찢어지죠? 터미네이터 2에 터미네이터에 T1000이라는 액체 금속 로봇도 등장해요. 그 영화를 제가 그 영화를 봤는데 아주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특히 재밌는 것이, I'LL BE BACK, 그건 별로고. 뭐냐 하면 분명히 그 아놀드 주인공이 찔렀으면 구멍이 났잖아요.
구멍이 났는데 이게 뭐 터져 가지고, 이제는 뭐 끝났다 하는데 자기들끼리 조립이 돼 가지고 액체 금속이 은색 금속 가지고 구멍이 메꿔져요. 꼭 오늘날 성도의 삶 같아요. 분명히 십자가로서 땅하고 쐈는데, 주여 죄인들, 했는데 복음 듣고 3분도 안 지나가지고 구멍이 다시 봉합이 돼버려요. 이 정도 하면 미신앙이잖아. 이 정도. 내가 복음 아는데 신앙인이지. 다시 뭡니까? 다시 자아가 복원되어 버렸어요. 자아가. 말씀의 세계에 들어갔으니까 말씀이 가만두겠습니까? 안 두겠습니까?


다시 총을 쏘는데 어떤 식으로 쏘느냐? 사람의 환경 속에서 나의 잘남과 나의 의가, 작살나는 경우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거에요. 나 신양인인데 하나님 왜 어려움을 주십니까? 니가 어려움을 주는 게 아니고 주께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지금 가로막힌 게 뭐냐 하면은 주님의 의를 찾아야 되는데, 지금 자기 잘남을 잘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구멍을 내는 거예요. 뭐 내봤자 돌아서 다시 또 나 뭐 이제 은혜 받았다가 은혜 받았다가 자기가 셀프 의가 되어버렸어. 은혜 받은 게. 그러면 다른 사람한테 가가지고 나 너도 보니 내 얼굴 좋지 자기 자랑해요. 주님의 의를 자랑해야 되는데 내가 예수 잘 믿어 이렇게 잘 됐다. 자기 자랑한다고요. 자 그럼 여기서 주님의 환경이 이 세상에 사명을, 사도바울은 사명을 받았잖아요. 받아서 사명을 사명하도록 주께서 조치하는 그 환경은 어떤 환경이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그 환경을 그걸 그대로 재현해 줍니다. 그러니까, 이래 보면 돼요. 사도바울은 이제 사도바울이죠. 사도바울은 무엇을? 주님의 상처를 이동시키고, 짊어지며 가는 그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게 했던 그 상황들이 다시 재현되는 현상이 일어나요.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를 꾀더냐(갈3:1) 삼장에 쭉 나오죠. 주님과 함께 살다 보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남이 이렇게 일부러 해코지 않으면 다 점잔은 사람들이에요. 양심들이 있어요. 그리고, 인간은 짐승이 아니고 다 생각들이 있고 양식들이 있어가지고 이것이 나쁜 짓이고 이건 나쁜 짓이 아니고 이것이 남한테 해를 끼치는 것이고. 그러면 미안한 일이고 이거는 이런 짓은 해서는 안 되고, 미안해서는 안 되고 이런 것은 남을 도와주는 것은 참 선하고 착한 것이고. 이건 남한테 참 아름다운 도움이 된다. 이 정도는 인간이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알고 있는데, 그렇게 그것을 완벽하게 의를 행해서 청구하겠다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었어요. 마태복음 5장 20절에 예수님도 알고 있어요.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바리새인보다 더 앞서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가지 못한다. 아주 단정을 해요. 단정을 천국 못 간다.


누구? 바리새인보다 의가 낫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천국이 얼마나 완벽한 의를 원하는지 아시겠죠? 그런데 바리새인도 천국 못 가요. 그런데 바리새인은 노력해요. 인간은 짐승이 아니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한테 유익을 끼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 바르게 살아서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빛과 소금이 되자 이것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그거는 3차원이고, 뚜껑 떼고 주님의 상처 십자가 상처를 재현한다 앞에서, 모든 인간들은 다시 말해서 성령받지 않은 모든 인간들은 거기서 발작을 합니다. 내 착하잖아. 내 착한데 왜 나보고 죄인 이래. 나 이렇게, 이거보다 더 완벽하게 바르게 살 수 있어? 없잖아.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남한테 해꼬지 않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유익한 인간 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그게 내 선한 양심이야. 그런데 나보고 나보고 죄인이라고 마귀에 속한다고 이렇게 나오죠. 그 수모를 이런 겪어야 해요. 겪으면서 이 수모를 어떻게 감당하는 것을 10분 숨 고르고 난 뒤에 (이상 강남강의 1강, 2강에서 계속)


2026. 04. 21. 강남강의_차원돌파 B_이근호 목사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때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까 따로 있었습니까? 아버지와 함께 있었어요. 왜냐? 아버지는 영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을 뭐라고 하냐면 성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 받았죠? 그거는 단독행위가 아니고 아버지와 함께 일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의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 주님의 직업은 3차원 세계에서는 무직입니다. 그런데 천국 차원에서는 유일하게 효과 있는 결과를 내는 유일한 일이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백날 뭘 해도 안 받아줍니다. 의사, 판사, 변호사 이런 거 안 받아줘요. 목사 어떤 일을 해도 주께서는 안 받아줍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간 자체가 폐기 돼야 되기 때문에, 인간은 갈 수 없는 세계거든요. 인간은 갈 수 없는 세계예요. 찾아와야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에서 창세전에 디모데후선가요? 창세전에 날 예정했던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죠.

(디후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불러내는 거죠. 차출이죠. 우리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고 오직 자기 뜻대로 예수의 일방적인 뜻대로 영원한 때에 예수 그리스 안에서 우리를 주신 은혜대로 하시며, 예수 안에서 영원한 때부터 이미 확정된 자에게만 호출하는 식으로 데려갑니다. 왜 그렇게 하는거에요? 아무도 없거든요.

 

천국 갈 그런 자격이 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게 바로 복음 아는 사람이 신나는 대목이에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주님이 속해 있던 환경, 아버지의 영을 받아서 활동했잖아요. 그 세계 속에서 예수님께서 활동했던 그 환경 속에 집어넣었을 때 오늘날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밖에 없느냐 하면,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 기도밖에 없어요. 이 기도가 응답이 되겠어요? 응답이 안 되겠어요. 성도가 기도하면 하나님께 들어줍니까? 안 들어줍니까? 자신있게, 자신있게 들어준다. 안 들어준다?

인간의 모든 기도는 안 들어줘요. 안 들어줍니다. 기도는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답답하니까 ,답답하면 기도한다고 해서 들어주지 않습니다. 모든 응답은 모든 응답되지 않는 게 기도의 응답이에요.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기도한 이유는 그만큼 아주 사정이 급하다, 다급하다.

 

이거는 이제 상세하게 할게요. 성도가 주님이 찾아왔잖아요. 찾아왔지요. 찾아왔으면 성도가 바로 천국 갑니까? ___ 성도가 예수님이 찾아와 가지고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살잖아요. 짐승의 세계에 산다고요. 짐승의 세계에 살면서 예수님은 견디지만, 인간들은 견딥니까? 못 견딥니까? 이거 열두 제자가 짐승의 세계를 이겼어요? 못 이겼어요. 베드로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까? 택도 없지요. 열두 제자의 기도가 응답이 안 돼요. 제자들의 어떤 누구의 기도도 응답이 안 됩니다. 본인의 기도가 응답되면요. 그 사람은 기도 재주꾼으로 그걸 근거로 합격한 수가 있기 때문에 그건 천국에서 삐 안 받아줘요. 인간의 어떤 행위도 천국의 조건이 될 수가 없어요. 아까 이야기했던 사는 이유는 주님이 일방적으로 주님이 주님의 이유 외에는 나머지는 다 없애버려요.

 

주님이 널 택했다는 이유 빼놓고, 어떤 이유도 우리한테 있으면 안 돼요. 따라서, 성도가 짐승세계에 살게 되면 어떤 상황이 있을 때에 다급함이 있겠죠. 절박함이 있고 야 이거 세상도 없고 세상에도 없고 믿음도 좋다. 하니까 이게, 박자가 안 맞는 게 따로 노는 거예요. 예 그 그런 춤을 도돔바라 합니다. 이 절뚝이 춤, 저런 춤이 있어요. 라틴계통의 도돔바 치듯이 절뚝 떨면서 춤추는 기술이 잘 안 맞아요.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뭐 밖에 없습니까? 답답해서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주께서는 그럴 때 택도 없다. 택도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뭐가 나오냐 하면 히 725절이 빼꼼히 나옵니다.

 

725절이 어떤 말씀이 있냐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응답한다 이랬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기도가 무사한 기도해봤자 소용 없던 걸 알 때 그동안 우리가 여기서 버틸 수 있는 것은 다른 계획이 있었는데, 그 계획은 우리는 몰랐는데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압니까? 모르는데 미래까지 다 꿰뚫어 보시는 주님께서 알아서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뭐를 주시는가? 내 주님이 너를 위해서 뭐하고 있다? 기도하고, 있대요. 주님이 항상 살아계셔서 늘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니가 그걸 인정을 안 하니까 자꾸 내 기도 응답됐냐 안 됐냐 이래 하는데 그거는 이게 니가 아직도 너의 세계에 있다고 착각하는데, 지금 여기는 무슨 세계냐? 말씀의 세계예요. 삼차원 뚜껑이 날라가버린 초월적인 세계예요.

 

주님이 살아 있어서 주님이 자신이 하는 일을 시키시는 그 세계 속에서 우리의 몸은 여전히 어디에 속합니까? 우리의 몸은 육신은 어디에 속합니까? 기존에 있던 3차원 세계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얼굴 새파래 지어가면서 하나님 믿어도 소용없네. 나 끝났어 끝났어 끝났어 죽었어 있잖아. 나 이제 예수 안 믿을 거야. 이걸 하루에도 열 몇 번씩 하면서 살아가게 바들바들 떨며 살아가는 그 그러한 것을 모습을 보면서 주께서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제가 어릴 때 제가 마음이 굉장히 여리거든요. 아무도 안 믿지만. 어릴 때 오뎅 국물을 이렇게 먹는데 너무 뜨거운 거예요. 그런데 뭘 생각하냐? 하면 내 마음이 불신인지 어디 자비심인지, 내가 이렇게 오뎅 국물이 이렇게 뜨거운데 이 오뎅은 이 어묵은 얼마나 가슴 아프고 뜨겁겠는가, 예 그런 생각도 들어요. 무생물이지만 감정이입이 되어가지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오뎅이 그렇게 뜨거워야 주님의 입속에 들어간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묵 어묵탕으로 만들어 가지고 이 세상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하루에 수십 번 내가 예수 계속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차라리 양다리 걸치는 기존 교회 가가지고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하고 남한테 신양 좋다는 인정받는 그런 세대로 살아야 될지 남도 속이고 주인도 속이고 나도 속이고 그렇게 하니 사실은 돈 좋아하면서 돈 안 좋은 척하는 이런 위선자로 살아야 될지 그걸 벌벌 떤다고요.

 

주께서는 니 마음대로 해라. 어떤 벌벌 떨든 그 벌벌 떠는 것조차도 누가 그렇게 의도했어요? 주님의 기도가 너에게 어떤 경우라도 먹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런 상황을 주시는 겁니다. 자기의 옷 매무새를 이렇게 단정하게 할 하등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개판같이 살 이유도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개판같이 사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돼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양심이 있어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같으면 남보다 더 착하도록 완벽하지 않지만 노력은 해야 돼 라는 식으로 살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문제는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고 이렇게 바르게 살도록 애썼는데 하나님 내 돈 안 줍니다. 사는 꼬라지, 이 꼬라지 이게 사는 것도 아니고, 거지지 이게 뭡니까?

 

이래 가지고 빛과 소금에 예수님이 있는 어떤 보람이 들겠습니다. 이런 게 나온다니깐요. 이런 게. 그게 뭐냐 아주 어묵이 뜨거운 맛을 먹고 더 집어 넣고 거기에다가 간장까지 찍어가지고 잡숬잖아요.

제가 여러분께 나눠드린 거 우리가 평소에 신앙이고 뭐고 다 치우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담백하게 보여주는 노래가 있어서 내가 일부러 한번 채택해 봤습니다. 투영 피플 미자싱 아 영어생략 발음이 문제예요. 그냥 한글로 나가겠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두 젊은이 젊은이예요.

 

서약을 맺고 결혼하기로 서약 맺고 날개를 펼치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정착하네. 욕심도 없어요.

우리는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면 되지. 굳이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는

그러한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게 사랑으로 살아간다 했잖아요.

리빙. 온 러버가 사랑으로 버티는 거예요.

 

버틴다는 말은 억지로 가는데 억지 아니고 진짜 진심으로 사랑만 있으면 나는 족하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녀는 그냥 여자도 보세요. 됐잖아.

사람이 여자는 유행에 신경 쓰지 않아요.

사람이 사랑이 넘쳐버리면 자기 꾸미는 데 신경을 덜 써요.

내가 못나도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그저 그의 미소만 좋을 뿐 대리석과 타일만은 부족해.

사랑으로 살아가네. 사랑. 사랑으로 살아가며 시간을 사네.

고다음에 누군가 없이는 아무 가치 없어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절절하니가 없죠.

마치 옛날 동화 속 운율처럼 사랑으로 살아간대.

(요새 동화책은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고 전부 다 공주와 백마탄 공주 아니고 왕자의 이거 살아갔는데)

그다음에 간단하게 들리겠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랑은 눈 깜짝 할사이 불길 속을 걸어갔었어.

이런 각오로 가는 게 두 젊은이가 우리의 서로 없이 만났지만,

남들 부러워하지 말고 힘찬 힘차게 이 험한 세상을 사랑 붙들고

서로 의지하면서 믿으면서 살아가자 그 이야기를 합니다.

충분히 가지면 많은 거 필요하지 않아.

사랑만 많으면 그까짓것 필요치 않다는 거예요.

 

얼마나 순수합니까? 그런데 그 젊은 어디 어떻게 됐습니까? 어느새 노인네가 된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두 노인네가 자녀는 천당으로 떠나고 이제 둘 남았지요. 여전히 노래해요.

사랑을 노래하고 앞쪽 현관 그네에 나란이 앉아서 사랑하고 살아.

하면 그러면서 앞뒤 현관에 있잖아요.

이렇게 흔들 의자 거기에 나무로 만든 거 정원에 하나 만들어 놓고

둘이 나란히 하면서 또 그때가 해질 때네

해질 때 노을에 서쪽 보면서, 노을이 얼굴에 붉게 물들 때

둘이 같이 손잡고 흔들거리는 그 모습.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그녀는 바닥 청소를 제대로 못해.

손에 손잡고 문을 통과하네.

사랑으로 살아가네. 사랑으로 살아. 시간을 사네. 그러다 죽는다고 하지.

누군가 없이는 아무것도 가치 없어.

10센트 동전 마치 옛날 동화성 분열처럼 사랑으로 살아가네.

간단하게 들리죠.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랑은 눈 깜짝할 새 불빛속으로 걸어간다.

까 많은 곳은 필요치 않다. 아니 그다음에 3페이지에.

 

아니 충분히 가지면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아요.

사랑으로 살아가요. 아까 맨 같은 이야기 이렇게 있죠. 어떻습니까? 내가 이 가사를 보면서 신앙 없고 그냥 태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세상만 살아가는 사람의 염원. 마음속에 있는, 그러니까 남한테 빼앗지도 않고 욕심내지 않고, 욕심 없는 행복의 나라라는 노래도 있어요. 욕심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한 때 마지막에 두 사람이 늙어서 손잡고 흔들의자 타기만 해도 우리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그런 염원 같은 게 있잖아요. 있죠. 그게 굉장히 소박해서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어떤 자신감이 있어요. 뭐냐? 나는 그딴 거 예수 하나님 필요 없어. 나 이 정도만 해도 나는 좋게 욕심내지 않으니까 남한테 죄질 일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혹시 혹시 없지만,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지만, 하나님도 없지만, 있다고 한다면, 깨끗한 나같이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는 지옥 가지 않을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래 되겠죠.

 

그게 인간이 자생적으로 바로 사울에게 주님이 주님의 상처 핍박받는 자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모든 인간 속에 교회 나와도 이런 자신감 같은 게 있어요. 어떻게 이 가사가 음악 한번 틀어 보실랍니까? 이것도 음악 틀면 유튜브에 못 떴는데 유튜브 떠요 한다고 돈 안 줬다고 틀어봅시다. 가사를 한번 보면서 큰 틀의 음악이에요. Livin' On Love

 

Two young people without a thing

Say some vows and spread their wings

Settle down with just what they need

Livin on love

 

She dont care 'bout whats in style

She just likes the wayhe smiles

It takes more than marble and tile

Livin on love

 

Livin on love, buyin on time

Without somebody nothing aint worth a dime

Just like an old fashioned story book rhyme

Livin on love

It sounds simple thats what you're thinkin'

But love can walk through fire without blinkin'

It doesnt take much when you get enough

Livin' on love

 

Two old people with a thing

Children gone but still they sing

Side by side in that front porch swing

Livin on love

He cant see anymore

And she can barely sweep the floor

Hand in hand they'll walk through that door

Livin on love

 

Livin on love, buyin on time

Without somebody nothing aint worth a dime

Just like an old fashioned story book rhyme

Livin on love

It sounds simple thats what you're thinkin'

But love can walk through fire without blinkin'

It doesnt take much when you get enough

Livin' on love

No it doesnt take much when you get enough

Livin' on love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또 하나 나눠주세요.

그런데 요게 염원이에요. 그런데 뭔가 하나씩 나눠드려요. 그 소박하기 짝이 없어요. 욕심도 없어요. 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나 재벌도 싫어. 우리 손잡고 끝에 흔들의자만 하면 나 그걸로 나 족해. 주여. 더 이상 주지 마소서. 요거만 해도 저는 족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자기 딴에 소박하고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이고 누가 봐도 그거는 과욕이다. 소리 안 듣는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여기 사단 난 거에요.

그게 뭐냐면 The End of World라는 무슨 가사 이름 뭡니까? 세상에 종말, 1962년도 노래예요.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 more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I lost your love

I wake-up in the morning, and I wonder

Why everything's the same as it was

I can't understand, no, I can't understand

How life goes on the way it does

Why does my heart go on beating?

Why do these eyes of mine cry?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you said, "Good-bye"

Mmm, mmm, mmm, mmm

(Why do these eyes of mine cry?)

Mmm, mmm, mmm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you said, "Good-bye")왜 태양은 밝게 빛나는 걸까요?

왜 파도는 해안으로 계속 밀려드는 걸까요?

그들은 이 세상이 끝났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왜 이 가사 쓴 사람은 왜 태양은 빛나고 아직도 파도는 그렇게 멀쩡하게 밀려드느냐?

세상이 끝났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 모르겠어요. 왜 세상이 끝났는데 내가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거든.

 

아 이 노래가 가사다. 시간관계상 하지 않겠습니다.

 

워낙 유명한 노래거든요. 사람이요. 자기가 원했던 그 소박한 꿈마저 작살 날때, 세상에 빠이빠이 세상이여 안녕해요. 그러면 그 동안의 세상관은 누굽니까? 누구를 위한 세상관이었어요? 내 잘남을 증명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은 햇빛도 비추고 하도록 채화되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며 살았던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햇빛에 비추고 뭐해도 내가 행복해야 되고, 내가 남한테 인정받아야 되고 내가 건강해야 되고, 내가 잘나야 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으로 인간은 버티고 살았던 겁니다.

 

그런 사울에게 누가 찾아왔어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상처를 안고 찾아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교회생활 50, 60년 다니는 게 아무 소용 없죠. 그건 취미생활 한거죠. 진짜는 뭐냐? 진리는 외부에서 나한테 나 인생 자체를 박살내면서 파악하면서 다가와야 돼. 전부 다 내가 어떤 소박한 거, 욕심이 없는 거 어떤 거 해도 그런 것은 니가 소설 쓰고 있는 거야. 그거는. 기존의 2천년 교회의 역사가 인간을 그런 식으로 조작해 온 거예요. 내가 한번 적어볼게요. 괜찮아 괜찮아 하는 이런 격려와 위로가 진리를 보는 기회를 박탈하는 잔인한 짓이다. 잔인한 짓이에요. 잘 될 거야.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이것은 주님이 진리잖아요. 진리하고 바꿔야 되는데 그냥 안 바꾸는 거예요. 주님이 후시딘 연고입니까? 그냥 바르고 던져 놓으면 그만이에요? 내가 스스로 치료될 가능성도 없고 나는 존재 자체가 이 자체로서는 구원이고 천국이고 영생이고 해당 없어요. 해당 없습니다. 못 들어가요. 그런데 그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꾸 괜찮대요.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서면 된다는 거예요. 자꾸 격려를 해주라고 격려를.

 

그래서 사울에게 열심히 찾아온 것은 세상과 주님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 아까 차원이라고 하는데 차원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져야 됩니다. 바뀌는 방법이 바로 이 세상을 어둠으로 바꾸는 거예요. 어둠으로. 아까 했던 거 너무 짧게 한쪽 섭섭한데 The end of the world에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첫 번째 끝에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세상이 보세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세상이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왜 세상은 아무렇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느냐? 무안 공항 분턱에 박쳐가지고 내 아들 자식 죽었는데 왜 프로야구? 삼성, LG 롯데는 왜 그렇게 야구하는데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이 몰려? 그 다음 페이지에 왜 내 가슴은 계속 뛰고 내 눈에 눈물 나는데 왜 세상은 왜 그대로 진행되느냐 하는 거예요. 이게 세상 탓입니까. 본인 문제 있어요. 본인의 문제가 있죠.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눈물 나게 만드는 거예요. 그 신앙이라는 그 손꼽놀이 고만하지 뭐. 신앙생활 좀 그만둘 때 안 됐어? 교회 출석해가 예배 듣고 하는 그런 거 니가 생각해도 그거 니 장난치는 거 맞잖아.

 

다른 사람 다 속아 넘어가는데 주님은 안 속아 넘어가. 그거 오락이잖아. 왜 그래? 그러니까 재밌다고 돈 내고 응원하고 이게 오락이잖아. 그래서 지금까지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죽음을 딛고 다시 돌아온 자에게 이 세상의 모든 정치, 민주당, 국민의힘 모든 정치는 무슨 놀이? 애들 소꿉놀이 소꿉놀이죠. 입시, 취직, 결혼 뭡니까? 애들 애들이 미니어쳐 가지고 노는 거 반찬도 아닌데 그 돌 위에다가 잎사귀 떼가지고 이거 오늘 엄마가 밥 해줄 게 있잖아요. 소꿉놀이 하는 거요. 인형 들고 애업고 하는 게 소꿉놀이잖아요.

 

저기 줄을 여기 줄을 그었다고 봅시다. 이게 죽음입니다. 내가 살았던 거예요. 죽음을 만나고 십자가 지신 죽으신 주님을 만나고 다시 돌아서서 세상에 오게 되면 세상에 사는 모든 것은 뚜껑 열린 삼차원 세계 소꿉놀이에요. 그러니까 소꿉놀이 특징은 뭐냐? 나이 어른이 되서, 소꿉놀이 애 소꿉놀이에 그 화를 낼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 손꼽놀이인데 그걸 화를 왜 냅니까? 막 분노할 이유가 있어요? 소꿉놀이인데. 중학생 애가 교사를 떠밀고 밀쳐가지고 뇌진탕 걸렸다는 거예요. ? 게임 못하게 한다고. 걔는 게임이 소꿉놀이가 아니고 뭡니까? 진심이죠. 그런데, 인간의 진심은 항상 부서져. 혼자 심각해.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왜 세상은 멀쩡하냐. 왜 해는 비추느냐. 그러면 그 소리 듣고 해가 어떻게 이해합니까? 내가 널 위해서 울어줘? 이러니까 해가 지금 뭐 미친 거지? 나는 주님 지시받아. 니도 빨리 주님 지시받아. 어디서 니 중심의 소꿉놀이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화낼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죽었다가 다시 오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이미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졌어. 천국 차원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차원이 젊은 줄 알고 그 안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사일 쏘고, 이란도 쏘고 저것들은 심각해. 저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하고 자존심 걸린 문제라고 해소하면서 하는 거예요. 이 전쟁을 위해서 주님께서 나에게 예수님께서 안수를 했다고 머리에다가 손 얹고 그래 그렇게 해요. 국회 청문회 하면서 이제 증인은 말 똑바로 하세요. 예 지금의 대통령이 누굽니까? 답변하세요. 이거는 북한 보위부가 이야기 답변할 필요도 없지요. ? 소꿉놀이, 한 소꿉놀이 한다고 소꿉놀이 하는데 소꿉놀이 주인이 바뀌었어. 이걸 정권교체라고 이야기해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야. 정권교체가? 정권이 우리를 천국 보내줍니까? 아니잖아요. 국소적인 아주 코앞에 있는 그것만 아는 것. 성경은 우리의 모든 시선을 창세기부터 시작부터 알파까지 다 알려줘요. 전부 다 알려준다고요. 어떤 식으로 알려주는가? 궁금해요. 500. 이 시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끝까지 알려줍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어두움부터 시작해서 빛이 있죠. 어두움의 빛이 창세기 일장입니다. 그 다음에 빛이 빛으로 말미암아 어두움이 생겨요. 어두움이 생기면서 그 다음에 어떡합니까? 이 어두움은 영원한 어두움과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누어지는 것. 이게 성경의 전부입니다. 어두움에서 빛. 빛으로 와서 어두움. 어두움에서 어두움에서 빛 어둠 속에서 창조예요. 창조에 뭐가 포함되냐? 이스라엘 창조예요. 이스라엘 속에 뭐가 녹아있어요? 빛된 분이 있죠.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이스라엘은 잘 되었습니까 멸망했습니까? 이스라엘마저 어디 퐁당 빠졌어요? 이방민족이 믿던 신에 빠졌죠! 이름은 여호와인데 마음은 어디가 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포부, 차이성이 없어요. 어두움에 갔어요. 이게 요한복음에 빛이 어두움에 왔을 때 어두움의 특징이 뭡니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어두움을 두 조각 내요. 한쪽은 지옥, 한쪽은 천국이 나옵니다. 이 일을 누가 하느냐? 빛이. 빛이 이 작업을 해요. 그래서 어두움은 어두움이란 뭐가 만드느냐, 빛이 빛을 만나서 어둠이 돼요.

 

빛이 없는 곳이 어둠이 아니고 빛이 빛을 만나서 어두움을 만들어내요. 보통 빛은 하늘에 있죠. 천사들이 빛나잖아요. 하늘이 빛났을 때는 제대로 된 어두움이 아니에요. 빛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와야 돼요. 이 땅에 와서 그 빛이 어둠에 함몰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남으로써 어둠을 경유한, 어둠을 경유함으로써 이제부터 약간 어려워요. 쉽게 하려고 애쓰겠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경유함으로써 빛을 빛되기 위해서 뭐냐 하면 어두움 관계가 어두움이 관계로서 반드시 둘 다가 성립이 돼야 돼요. 둘 다가. 천국만을 목적이 아니고 지옥이 지옥으로 지독히 어두우려면 빛이 어두움을 경유해야 지옥과 지옥이 진짜 어둡고 궁극적으로 어둡고 빛은 천국은 궁극적으로 빛의 세계가 되는 겁니다. 이 점을 여러분들이 그냥 말하면 어렵기 때문에 제가 쉽게 이게 쉬워지는지 모르겠어요. 쉽게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냥 아는 그냥 물리학 상식 가지고 동원하겠습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어둠은 아니면 같은 말인데 그림자는 왜 생깁니까? 그림자는 왜 생깁니까? 그림자가 예 어떻게 생깁니까? 이 말 질문이 아니고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빛이 있으면 벽을 통과 못해서 그렇게 생기잖아요. 이건 어떻게 해요? 왜 생깁니까? 그림자가 왜 생기죠? 빛 때문에 빛과 빛에다가 빛을 보태니까 그림자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물리학에서는 이게 파동의 간섭현상이에요. 간섭현상. 파동의 간섭현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봉우리하고 골짜기하고 파도가 칠 때 간섭 현상을 해서 같이 어떤 때 중력이 되는 이게 상쇄가 되면 편안하지만 이게 합쳐져 버리면 그냥 보통 깊이가 아니고 가장 깊은 가장 깊이 들어가 버려요. 가장 깊이 빛을 빛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뭐가 반드시 등장해야 되는가? 어두움이 반드시 등장해 줘야 돼요. 물리학에서 이렇게 하지만 이건 성경적으로 보면 창세기 2장의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바로 그겁니다. 선악과는 죽음을 나타나죠. 생명나무가 생명을 나타내잖아요.

 

이제는 나무 차원이 아니고 그걸 세상 전체의 원리로 다 적용해버리면 이게 죽음이 그냥 숨 끊어진 죽음이 돼서는 안 되고 생명을 삼키고 죽여버린 그 죽음이야말로 제대로 된 저주받을 만한 진짜배기의 어둠이 저주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담은 죽고 난 뒤에 선악과 따먹고 정녕 죽으리라고 해놓고는 어떻게 안 죽죠? 아까 유튜브 할 때 했죠? 안 죽죠? 실컷 고생하다가 흙이 되잖아요. 그거는 지금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해야 될 진짜 어둠과 빛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서론격이에요. 서론격. 예고편격이에요. 철저하게 이 세상은 어둠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은 반드시 예수님을 살해해야 됩니다. 살해해야 돼요. 그래서 어줍잖게 어둠에 속했으면서 태어나기를 어둠에 속했으면서 자기의 율법을 지키고 말씀을 지킴으로써 빛의 세계로 가겠다는 그 주제 파악이 안 되는 인간들은 모조리 다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그 상처와 죽음은 바로 내가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게 하고 착한 사람으로 천국가겠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진짜 하나님을 죽이게 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발견해야 되죠. 예수님 빼놓고는 하나님의 의의를 논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사도행전 244절과 47절 이 대목과 432, 35절 대목을 한번 보겠습니다. 보고 여러분의 의견을 잠시 구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45- 47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같이 모여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순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함께 참여했다. 이래 있죠. 그렇죠? 특히 45,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다.

왜 이런 짓을 하죠? 왜 이럽니까?

 

그 다음에 43235

32절 믿는 무리가 다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물건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 말하는 이가 없더라.

34절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밥과 집 있는 자는 팔아서 판 것을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앞에 두매, 저희가 값을 나눠주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해요?

 

그들에게 성령이 왔죠? 성령이 오면 이렇게 해야 됩니까? 질문을 잘 들으세요.

성령이 오면 온 사람은 이렇게 해야 됩니까?

1) 해야 된다.

2) 할 필요 없다.

몇 번입니까? 제 질문은 항상 객관식이에요. 성령이 오면 우리가 집 같은 거 다 팔아내야 된다. 1. 그럴 필요 없다. 2. 몇 번입니까? 2번이죠. 2. 내일 주일날 이야기했잖아요. 헌금 구제. 구제를 우리가 뭐 한다고? ? 돈이 있어야지요. 집에 한 15억 있죠? 권사님 한 10억 정도 있죠? 그 정도 있습니다. 그 돈 누구입니까? 주님 거잖아요. 그렇죠? 진짜 있는 것 같다. 주님 거죠. 주님 거니까 내 돈이 아니잖아요. 내 돈이 아닌데 지가 마음대로 왜 혼돈을 하고 구제를 해요? 자기 것처럼 성령을 받게 되면 내가 집에 수천억이 있더라도 나는 돈 한 푼도 쓸 권한과 자격이 없습니다. ?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아까 사도행전 4장과 2장 보면서 이 대목을 보면서 교인들의 이 대목에 대해서 어떻게 보겠어요? 심사숙고 봅니까? 안 본 것처럼 그냥 넘어갑니까?

그냥 넘어가요. 교회 돈 뺏기나 싶어서 넘어가는 거예요. 잘못 걸리면 진짜 집 팔아서 교육관 바친다고 돈 날릴 수가 있대. 큰일 나는 거거든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어진 돈은요. 하나님 주님이 우리 보고 준 거예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우리의 어떤 노동의 대가 없이 준 거예요. 노동의 대가 없이 그냥 준 거예요.

 

그러니깐 누가 핍절하지 않고 누가 가난한 사람입니까? 머리 좋은 사람 없냐? 누가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누가 핍절할 뻔한 사람 누굽니까? 여러분 윤복희. 누가 날 위로해 주십니까? 우리 자신이 거지입니다. 25억 있는 거지예요. ? 한 푼도 내 돈이 아닙니다. 25억 넘어서 적게 썼다. 700억 가진 거지. 주식을 한 2만 주 갖고 있는 거지. 비트코인 좀 갖고 있을걸요? 반찬 하나하고, 시장 장을 보더라도 거지인 우리에게 주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용으로 시장에서 돈을 내놓고 사는 거예요. 이 말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우리 힘으로는 단 하루도 못 버티는 거지다 이 말이죠. 주기도문에 나오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렇다면 주변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나오죠. 누가 가난한데? 누가 가난한데? 주께서는 누가 이 세상에 여태 가난한 사람이 있던가요? 내가 말을 너무 어렵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풀이할게요. 일용할 양식이 있으면 되지요. 뭐 세 끼 못 먹으면. 두 끼 먹으면 되잖아요. 제가 부산 가서 그런 했잖아요. 우리 아랫배에 기름기 끼는 이유가 전쟁에 의한 비축용이라고요. 적어도 한 24시간 버틸 수 있어요. 이게 간에서 분해되어서 어떻게 될 수 있답니다. 양분이. 그러니깐 우리 옆에 우리 옆에 하루 두 끼를 못 먹는 사람이 있던가요? 그러면 밥 한 끼 도시락 싸 와 주세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국가가 철두철미하게 어떻게 됩니까?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못 하기 위해서 만든 게 뭐냐? 복지정책이에요. 이웃을 가난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이게 15세기부터 이미 본격적으로 17세기, 18세기 영국에 고아원 만들고 프랑스에서 고아원 만들고 네덜란드 영국에서 보험제도 만들고 사회복지정책 만들었어요. 이거는 뭐냐 하면 개인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지키지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어려운 사람을 국가 세금 내 가지고 하자 그래서 독일 같은 경우에 뭡니까? 십일조를 내잖아요. 전 국민이 종교를 감당해서 십일조를 내요. 몇 번째로, 내는 거야? 1%. 내요.

 

전 국민이 일부는 성직자 봉급으로 나오고,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 가지고, 세금만 내면 그걸 알아서 국가에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실현해 옮기는 것이 무슨 정책? 복지정책이에요. 복지정책. 몸 아픈사람, 보험, 나중에 나이 많아서 노동 못하면 연금제도, 그게 다 어디서 나왔어요? 기독교 사상에서 나왔어요. 이 나라에서 왜 그렇게 합니까? 신앙 신은 국가가 하는 일이 신앙이기 때문에, 따로 이 신앙생활을 하는 건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냥 국가 하나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지도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고 다른 사람은 세금을 면제하는 것.

 

이것이 뭐냐 하면 신명기, 민수기, 출애굽기에 나오는 바로 어려운 사람의 이삭을 다 줍지 말고 남겨두라 하는 그것을 기계적으로 정책적으로 시행하면 되잖아요. 언젠가 내가 그런 강의했는데 스크루지 이야기했잖아요. 스크루지 희곡에서 크리스마스 됐다고 딸랑거리면서 모금하니까 스크루지 영감이 뭐라 했는지 알아요? 국가가 하는 일 니가 뭔데 하느냐? 국가 세금 냈는데 그런데 거기서 스크루지 영감 보고 뭐라 합니까? 인색하다 하죠. 스크루지가 왜 인색해요? 세금 다 냈는데 간접적으로 복지에서 하라고 다 줬는데요. 차라리 세금 안 내고 몇 푼 주는 게 그게 약속한 짓 아닙니까? 바로 이 국가가 한 일이 약간 내 자리에 있지. 그게 뭐라고요? 소꿉놀이 결국은 뭐냐?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살고 싶은 사람. 살려주는 것. 이것이 위로와 격려예요.

 

그러나, 주님께서 상처난 몸으로 왔을 때는 살게 해줄게가 아니라 살아야 되는 이유는 너에게서는 더 이상 없다는 거예요. 니가 살고 죽고 한 이유는 누가 제공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는 거에요. 주님께서 제공하니까 사울이 누구한테 미안해 안 하잖아요. 스데반 집사한테 미안해 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왜 죽었어요? 착해서 죽었다고요? 스데반 집사가 죽은 이유가 뭡니까? 아담의 죄 때문에 죽었잖아요. 몰랐어요? 그거 로마스에 나오는데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서 죽은 거예요. 스데반 집사님이 사람이 대단해 가지고 착하긴 했는데, 억울하게? 인간의 죽음에 억울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를 죽이는 주님의 그 마땅함이 마땅함에 참여해야 돼요. 사도바울이 그걸 안 거예요. 뚜껑 열린 거예요. 이게 삼차원 뚜껑을 열어보니까 전부 다 사기예요. 마귀가 곁들은 사기에 전부 다 말려들어서 죽으면 안 돼. 그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이 나만 죽더라도 난 죽으면 안 돼. 지금 이걸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것만 하는 거에요. 인간은.

 

계속 봅시다. 9장 그래서 사울에게 갔을 때(다시 알았죠?) 사울은 그냥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안에 움직이는 것은 예수님의 자기 답답이죠. 자기 일거리에요. 사울은 사울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께서 사울에게 일을 자꾸 맡기는 거예요. 답답해도 주님이 답답하지 우리가 답답하지 않아요. 주께서 다 시키니까. 시키는데 그때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여기에 동원됩니다. 10절에 그때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이게 예비돼 있어요. 딱 기다리고 있다가 니가 사울이라는 사람이 오거든. 그에게 기도하라. 안수 기도하라그래요, ? 사울은 죽음을 경유했잖아요. 십자가 함께 못 박혔잖아요. 그 증상이 뭐냐? 눈이 갔어요. 그것은 자기가 생각했던 빛보다 더 완벽한 빛이 쪼이니까. 자기는 졸지에 어두움에 속했습니다라는 티를 내는 육신으로 티를 내는 증상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나 건드리지 마라. 예수님께서 함께 했다는 흔적이 나한테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눈과 관련돼 있다고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해요. 완전히 눈이 옛날 그 눈이 아니거든요. 눈이 컸고 안수해서 눈이 비늘이 떨어졌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경유해서 일어났던 주님이 다녀갔던 증거가 뭐냐? 눈 갔다 봉사됐다. 새롭게 눈 떴다. 이 말하면 새로운 세상관. 이 세상이 소꿉놀이고 모든 인간은 죽어있다. 누가 호출하지 않는 한 그에게는 영생이 없다. 모든 인간은 사도바울의 그 편지처럼 모든 것은 마귀의 세계에서 흑암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걸 사랑의 아들로 누가 옮겨줄 것인가?

 

누가 아가서 86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참 아가서 팔장 육절은 제가 제가 어지간히도 참 좋아하는 구절인데, 아가86: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됐어) 사랑은 뭐같이 강하고요? 투기는 음부보다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는 그 기세가 무슨 불? 여호와의 불이다. 사랑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불이 되어서 성령의 불이죠. 불이 되어서 우리가 음부 죽음에 있는 이 마귀의 저 지옥에 있는 우리를 질투심으로 우리를 끄집어 땡기게 돼요. 강한 질투심으로 내 사람인데 누가 내 사람을 건드려 하는 하나님의 강한 질투심, 그 마음을 품어라 이 말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고 강하게 질투심으로, 강한 질투심으로 우리를 이 내 사람이다. 끄집어 내는 거예요. 이거는 박신양도 그런 이야기했어요. 니는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해 말하고 있잖아요. 이거는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하고 끄집어 땡기는 거예요. 그럼 내 사람 되는 사람은 누가 합니까? 주님이 지시대로 하는 거예요. 주께서 살았던 그 험악한 지옥 같은 속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아버지 일을 혼자 다 이루었는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사울은 아나니아를 만납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는 멋도 모르고 그래도 뭣도 뭘 그냥 하나님의 지시가 떨어졌는데 긴가민가 내가 착각하고 있고 내가 요새 좀 피곤하다 싶어서 환상이 있는데, 이러는데 실제로 계십니까? 하고 돌아보니까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 거리가 멀어요.

간 도중에 빛을 받고 그냥 그대로 다마스커스예요. 그냥 다마스에 가서 사울이 예상 못한 누구를 만났어요.

 

끝으로 이 말씀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은 주님이 주선하신 주님의 주선이에요. 주선하신 거 우리 만남은 그 다음이 뭡니까? 우연히 아니야. 떨어줘야 돼요. 그것은 우리의 모든 만남은 주님이 주선한 겁니다. 자식은 부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선한 거예요.

 

그래서 자식은 부모한테 요구할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한테 요구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니 잘 키웠으니까 이거 하라는 그건 상도죠. 그거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한테 뜯어내라고 주께서 만나게 하십니다. 만나겠지? 뜯어내. 그래서 니가 나 자식 해보면 자식 낳아보면 니도 시집가서 자식 낳으면 내가 니를 얼마나 키우는지 잘 알 거다 이렇게 하는데요. 착각입니다. 몰라요. 딸이 자식 낳으면 지 딸밖에 몰라요. 부모 몰라요. 이거는 인간은 그렇게 된 거예요. 모든 것은 인간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하지 말고 그 사이에 주님을 넣어서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뚜껑 열린 거예요. 뚜껑 열었다고 화낸다. 뜻은 아니고 뚜껑을 열기 때문에 차에 화낸다는 내가 참 부끄럽지요. 사람하고 상대하지 마시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주님이 나에게 지금 이 현장에서 어떤 지시를 내리는가? 현장 탓 남 탓 하지 말고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너무 좁게 보지 않게 하옵소서, 넓게 보게 하옵소서. 모든 것이 예비된 대로 진행될 부분인데 왜 우리는 살아가면서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왜 자꾸 하나님이 원망되는지 그러기에 십자가의 피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그때마다 새삼 새삼 문득문득 떠올라서 깊이 있게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