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514강 / 515강) 신의 지혜자 / 어린아이와 독사 260421 본문
녹취:이하림
514강-YouTube강의(신의 지혜자 다니엘 5:11)20260421-이 근호 목사
제514강, ‘신의 지혜자’. 본문은 다니엘 5장 11절. 다니엘 5장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여기에 ‘신들의 영이 있다’라고 이방인들이 표현을 그렇게 해줬어요.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해서 제목을 <신의 지혜자>라 한 겁니다.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지혜, 아이큐와 견줄 수 없는 지혜다 이 말이죠. 견줄 수 없는 지혜, 신들의 지혜.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인간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신의 지혜를 가진 자로 하여금 인간을 다스리고 지배하게 했다. 그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다니엘. 하나님과 다니엘 관계에서 다니엘의 호칭이 있어요. 다니엘 보고 뭐라 하느냐 하면 “인자야”라고 이야기했어요. 선지자 다니엘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는 어떤 관계? ‘인자야’.
‘인자야’라고 했는데 다니엘이 ‘이게 나한테 해당되는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인자’라고 호칭을 당하면서 받았던 내용 안에 인자(人子)가 나와요.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 계시다가 땅에 내려온다. 내려올 이유는 이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 내려온다.’는 그 계시를 다니엘이 받았거든요. 7장도 그렇고 9장도 그렇고요.
7장 13절 같은 경우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이렇게 되어 있죠. 여기 ‘인자 같은 이’가 나오죠. 그런데 그 인자 같은 이의 땅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다니엘 본인인 거예요. 본인보고 ‘인자’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다니엘은 눈치를 채야 되겠죠. 장차 오실 인자 같은 분이 이 땅에 와서 하실 일은… 지금 인자라고 불리움을 받는 다니엘 본인이 누구하고 상대합니까? 다니엘이 누구하고 상대해요, 지금? 촌에 농사짓는 할머니하고 상대합니까? 아니면 촌에 농협 이사하고 상대해요? 대출 건 때문에 이야기합니까? 지금 다니엘이 상대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왕이죠, 왕. 기존의 왕들이잖아요. 왕은 짐승에 속한 자들이에요. 짐승에 속한 자. 넷째 짐승 있잖아요, 다니엘에. 짐승하고 상대한다는 것은 국가하고 상대한다는 거예요. 국가하고 상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인자’라고 호칭을 하잖아요. 그러면 인자되는 내가 인자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할 때, 장차 예언된 대로 오실 진짜 인자는 상대자가 누구란 말이죠? 짐승이겠죠. 그 짐승이 어떤 형태냐? 그것은 국가 형태라고 방금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국가의 형태를 앞당겨서 누가 지금 관계하고 있습니까? 다니엘 본인이 관계하고 있는 거예요, 다니엘 본인이.
이걸 그대로 오늘날 성도에게 적용시켜봅시다. 성도니까 인간이니까 보통 사람하고 상대하잖아요. 사람하고 상대하는데 ‘사람하고 상대하는 상대자가 누구에 예속된, 누구의 통치를 받고, 누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하고 상대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짐승에게 해당되는 사람과 상대한다.’
오늘날 성도는 인간들을 상대하지만 그 인간은 인간 개인이 아니라 배후의 짐승이 자리 잡고 있고, 마귀죠, 짐승이 지배하고 있는 인간과 상대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 쪽에서 그들을 먼저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도 쪽에서는 상대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죠. 왜?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개, 돼지한테 복음 전하지 말라고 했으니까(6절).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상대로 하여금 얻을 게 있다, 없다? 아예 없는 거예요, 상대로부터. 얻을 게 있을 것 같으면 상대하겠는데, 얻을 건 없어요. 왜? 버린 자식들이니까.
그러면 그들을 상대 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뭐 산속에 사느냐? 아니요. 그들이 하는 행세를 보라 이 말이죠. 그럼 그들이 어떤 행세를 했는가? 다니엘 5장 1절과 2절에 보면 벨사살 왕이 나와요. 벨사살 왕은 바벨론의 제일 마지막 왕입니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이 파티 규모 한번 보세요. 엄청나죠? 일천 명. 뭐 백 명, 오백 명 정도가 아니고 일천 명이에요. “큰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자, 왜 파티를 했습니까? 파티하는 목적이 2절에 나와 있어요.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 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그걸 마시면서 4절에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신들을 찬양했다는 거예요.
벨사살 왕, 짐승이 하는 일은 바로 본인을 패배자로 보지 않고 승리자로 간주하는 자아도취에 빠지고 싶은 것, 이게 모든 인간의 내부 속성으로 들어있어요. 내가 승리자가 되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스스로를 축하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제사 도구에다가 술을 따랐는데, 따른 이유가 뭡니까? 이 기명들은 여호와에게 제사하려고 준비한 은 그릇, 금 그릇인데 거기에 술을 따라서 누구 쪽으로 드립니까? 자기가 만든 신들, 은과 금과 목, 인간이 손으로 빚어낸 신들을 찬양하기 위해서 여호와께 드리는 그 제사 기구를 가져온 거예요.
이것은 뭘 뜻하느냐 하면, 내가 여호와 안 믿기를 참 잘했다. 내가 여호와 없어도 이렇게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을 여호와 앞에서 모욕하고 싶고 모독하고 싶은 거예요. 여호와를 모독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는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모든 인간들은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짧게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나 봐. 이렇게 내 힘으로 잘 살잖아.’하면서 높이는 거죠.
그런데 5절에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이렇게 되어 있죠. 자, 이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거기에 있던 제사 기구를 가져온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여호와를 이겼습니까, 못 이겼습니까? 여호와를 포로 잡아 왔습니까, 못 잡아왔습니까? 자기 딴에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을 전부다 가져왔으면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도 꼼짝 마라’가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자기는 멀쩡하고 여호와 믿는 백성들을 패배시켜서 그걸 전부 몰살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가 믿는 신이 이겼죠.
이겼는데 여기 뭐가 나타났어요? 손가락이 나타난 거예요. 왜 손가락은 체포 못했습니까? 그 손가락이 어디에 나타났어요? 공중에 나타났죠.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글을 누가 써요? 인공지능이 글 쓰라 했어요? 누가 했어요?
모든 세상의 일은 인간이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인간이 확보하는 경우에만 인간들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손가락 나타나라 했습니까? 손가락이 글씨 쓰는 것을 누가 부탁한 적 있습니까? 이건 뭡니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그 범위 바깥에서 누가 열심히 활동하더라? 하나님이 열심히 활동을 해버렸죠.
그러면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 기구 가져와가지고는 ‘이거 내 거다. 너희 꼼짝 마라.’했던 그것은 전부다 허사죠. 헛된 짓한 거예요. 인간은 평생에 여호와 앞에서 헛된 짓만 한 거예요! 하나님을 붙잡고 싶고 어떻게 하고 싶어도 인간에게 붙잡히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모독하고 어떻게 비난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스케줄은 스케줄 대로 지장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냥 고고! 그냥 주께서 하시는 대로 일관성 있게 할 뿐입니다. 이걸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나라를 심판하십니다.
515강-YouTube강의(어린아이와 독사 이사야 11:8)20260421-이 근호 목사
제515강, ‘어린아이와 독사’. 어린아이와 독사, 어울리지 않죠. 어떻게 같이 어울릴 수가 있겠습니까? 독사는 독이 올라서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쏘아서 먹잇감으로 삼잖아요. 이사야 11장 8절에 보면 어린아이와 독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자, 여기서 젖 먹는 아이니까 방금 나왔던 인간이죠. 방금 인간이 된 존재가 젖 먹는 아이입니다. 그럼 어디에 물이 적게 들었나? 소위 인간들이 세상 살아가면서 요령부리는 그 모든 것들에 물들지 않은, 막 쪄낸 찐빵이란 말 있잖아요, 방금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기성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적게 물들었어요.
그런데 이 어린아이,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뭐한다고 되어 있느냐? ‘장난한다’ 했어요. 장난한다는 것은 어떤 비장한 각오나 계획 같은 그런 것을 마련하고 일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계획을 미리 기대하면서 추진하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그러나 어린아이한테는 그게 없어요. ‘이 땅에서 어떤 일을 벌여볼까? 은행 대출해서 사업 한 번 해볼까?’ 이런 게 어린아이, 갓난아이한테 해당이 안 되죠.
어린아이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해놓고 안 죽이셨잖아요. 안 죽이고 뭐를 경유한다 했어요? 선악과 따먹고 당장 안 죽었지요? 안 죽은 그 인간이 뭐를 경유하느냐 하면, 죽이긴 죽이는데 저주의 삶에 한껏 평생 동안 푹 젖도록 만들어놓고 그다음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이렇게 하셨어요.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죽어라, 인간아. 둘 다 죽어라.’ 이렇게 하실 수도 있는데, 아담의 그 긴긴 세월 동안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담이 기대했던 영생 또는 자기 성과, 내 행함,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어떤 대가, 내가 추진했던 계획에 어떤 열매, 이런 것은 다 손 떼고 이 땅을 떠나게 만듭니다.
결국 아담에게 인생이라 하는 것은 사는 게 아니고 ‘사라지는’ 거죠. ‘살아진다’ 이건 아니고요. 이건 트로트 노래 가사에 나오는 거고 ‘사라진다’에요. 인생이 사라지면서 무엇도 사라지느냐 하면 기억이 사라져요.
기억이라는 것은 내가 행했던 것, 추진했던 것, 염두에 두었던 것, 이것만큼은 뭔가 꼭 달성하고 싶은 것, 그런 게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엄마 같은 경우에는 자식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걸 보고 가겠다는 것, 또는 할아버지 같으면 뭐겠습니까? 반드시 대스타로 만들어서 훌륭한 영화배우 되어 인기 있어가지고 할아버지한테 집 한 채 사주고 뭐 차 사주고… 뭔가 은근히 노리고 있고 기대하는 게 있다고요.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 선악과를 따먹었을 뿐인데,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정녕 죽으리라’ 했잖아요. 따먹었는데 죽었다. 그럼 ‘따먹은 게 죄냐? 그럼 안 따먹도록 조치하면 되지, 따먹게 해가지고 죽일 일까지 뭐 있나?’ 이렇게 되겠죠.
지금 ‘따먹었는데 그게 죄가 되어서 죽었다.’ 이렇게 되잖아요. 그럴 때 주님께서는 ‘죽었다’의 그 깊이는 인간이 생각하는 죽음 말고 더 깊이 있는 죽음가지고 따먹었다는 죄 뿐 아니고 더 많은 범위의 죄를 이 땅에 살아가면서 경험케 하는 거예요. 뭘 경험하느냐? 죄를 경험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저주를 경험하는 거예요, 저주를.
이걸 누가 아느냐? 독사가 알아요. 뱀이 안다고요. 악마가 알고 있잖아요. 왜냐하면 악마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잘렸거든요.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잘렸으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답습하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한 거예요.
악마가 작살나는 것처럼 인간 너도 한패 되었으니까, ‘악마가 어떤 죄를 품느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내가 스스로 신 노릇하기 위해서 무엇, 무엇, 무엇이 필요한가’ 악마가 갖고 있던 그 마음을 그대로 인간에게 전이시킨 거예요. ‘전이시킨다’는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전염시킨다’, ‘오염시킨다’.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로 넉넉하면 살맛난다. 두 번째는 종교적으로 하나님께 기적과 도움을 받으면 살맛난다. 이것은 인간의 도움보다도 하나님의 도움이 더 화끈하다. 더 큰 기적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이걸 알게 되면 살만하다. 세 번째는 그 결과로서, 하나님이 도와준 결과로서 부귀영화, 이 세상의 영광을 누리는 것, 그걸 확보하면 살만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부귀영화가 바로 마귀가 펼쳐놓은, 마귀의 손아귀에 장악된 문화와 문명이잖아요. 그럼 인간의 욕망은 어디서 그것을 골라잡습니까? 세상에 펼쳐진 부귀영화에서 저게 마음에 든다, 이게 마음에 든다 하는 것을 모아 모아서 자기 안에서 꽃다발처럼 역량껏 모아놓고 ‘이만하면 내 인생 성공한 인생이잖아.’라는 자부심을 갖겠죠.
경남 김해 근처에 진영이라는 조그만한 이름 없는 마을이 있어요. 그 마을에서 올라온 청년이 서울에서 개그맨 시험 쳐서 합격했을 때 그의 포부가 뭐냐? 내가 강남맨이 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는 거예요. 강남맨. 강남맨이 되고 싶다 해서 집도 월세로 강남에 하고, 테니스 치는 것도 타워팰리스에 테니스장이 있는 모양이에요, 거기서 테니스 치고, 차도 P로 시작하는 외제차 그것도 타고 다니면서 ‘이만하면 나 성공했잖아.’ 외제차 타고 고향에 가서 조그마한 동네니까 배기통 소리내면서 한 바퀴 돌았답니다. 어릴 때 꿈이 외제차 타는 거였대요.
이게 바로 뭐냐? 자기가 계획한 게 있잖아요. 추진한 게 있고. 드디어 추진한 대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다 그렇게 그렇게 답습하듯이 카피하듯이 그렇게 살아온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아담으로 하여금 따먹자마자 죽인 게 아니고 저주를 통과해서 죽게함으로 말미암아 이 죽음 안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담긴 죽음이다. 왜 그러냐? 그것이 악마를 영원히 지옥에 보내는 죽음이기 때문에 그래요. 악마에 대한 심판이 저주받은 죽음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거치게 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을 손대지 않고 그 부인에게 손을 대죠. 부인 이름이 하와,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 생명에서 젖먹이 아이가 나오죠. 마지막 때는 이미 생명이 완료가 되면, 인간이 이 땅의 삶을 통과하면서 장차 올 천국을 미리 앞당겨서 이사야 11장 8절에서 묘사해주는 겁니다.
안 맞아요. 젖먹이 아이가 독이 있는 독사와 어울리는 것은 안 맞아요. 독사에는 독이 있어서 젖먹이 아이는 즉사하는 겁니다. 그런데 젖먹이 아이와 독사가 장난치며 논다는 말은 독사에서 뭐가 빠졌다는 말입니까? 독사에서 독이 없는 거예요. 독이 해소된 거예요.
독이 해소되었을 때 그 마음은, 아무 내 행함을 주장하지 않는, 아무 내 계획도 없이 그냥 누리기만 하는, 마치 젖먹이 아이가 장난치듯이 인생을 심각하게 보는 게 아니고 그냥 젖먹이 아이가 자기 하고 싶은 것, 자기 원하는 것 다 누리며 장난치듯이 살아가는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는 그 때가 바로 주께서 준비해놓은 천국의 이미지고 천국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이 젖먹이 아이가 자기 계획이 없죠. 그러면 오늘날 성도, 독이 해소된, 물어도 죽지 않는 영생을 얻은 자의 특징이 뭐냐? 간단하죠. 굳이 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지요. 그럼 뭐하면 됩니까? 장난치면 되죠, 세상에서. 장난치듯이. 이것은 옳은 것이고 이것은 그릇 것이다, 그런 걸 고려하면 안 되죠. 이러면 나한테 손해가 오고 이익이 오고, 그런 걸 고려할 필요 없어요. 그냥 방금 영생에서 막 출시된, 새 생명 그 자체를, 우리 안에 주님 주신 생명 자체를 마음껏 누리면 되겠죠. 누리면. 그걸 왜 못 누리는가? 독사가 물까봐.
그러니 이사야 11장 이 말씀은 구약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것이 아니고 나는 사라지는데 내 안에서 주님이 살아졌습니다. 단어 주의해야 되죠. 내가 사라지면서 어린아이 같은 주님이 살아지니까 ‘나는 이 땅에서 한 모든 기억은 생각나지 않고 그냥 장난치듯이 평생 살았습니다.’ 이런 고백이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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