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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510강 / 511강) 하나님의 간섭 / 닫힌 하늘과 열린 하늘 / 251216 본문

유튜브 강의(이근호)/유튜브 강의

(510강 / 511강) 하나님의 간섭 / 닫힌 하늘과 열린 하늘 / 251216

정인순 2025. 12. 17. 09:27

510강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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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강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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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이하림

510강-YouTube강의(하나님의 간섭 베드로전서 4:15)20251216-이 근호 목사


제510강, ‘하나님의 간섭’. 하나님께서 인간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은 창조에 하나님 본래의 뜻과 목적과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들어놓았는데 만들어낸 그 본래의 목적은 챙기겠다는 거죠. 그냥 만들어놓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창조하신 목적을 뽑아내십니다.

창조한 목적을 뽑아내는데, 인간이 로봇을 구입하거나 만들 때 목적이 있잖아요. 로봇은 인간이 쓰다가 쓰다가 부속 낡아지고 밧데리 떨어지면 갖다버리던지 해서 끝나는 거예요. 로봇이 인간에게 달려들진 않잖아요. 달려들진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만들어놓고 그것에서 목적을 끄집어내는 절차에 있어서 마귀가 하나님께 대들었다는 것, 마귀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신에게 감히 대드는 그 피조물의 존재를 허용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마귀가 인간이 만들어낸 에덴동산까지 침투해서 가만있는 것도 아니고, 침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을 유혹했고, 유혹할 수는 있죠, 유혹할 수는 있는데 유혹에 드디어 성공해버려요.

하나님은 그동안 왜 방치하느냐 이 말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만든 인간을 유혹해서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주께서는 사전에 아무런 조치를 안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어떠냐 하면,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하나님이 도와줘서 뭐 ‘사탄아 물러가라. 어딜 감히 내 사람 건드리냐!’ 이렇게 돼야 드라마가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줘서 마귀에 빠지지 않게 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그게 마귀 생각이라는 겁니다. 그게 마귀 생각이죠. 그게 마귀 생각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 근거는 하나님께서 인간이나 악마가 생각 못한 다른 생각을 해주신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의 등장’이에요.

다시 처음부터 정리하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뭐냐? 여자의 후손의 등장이에요. 여자의 후손의 등장. 여자의 후손이 해야 될 일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피조물 중간에 피조물은 영원히 피조물로서 감히 창조주의 뜻 쪽으로 본인이 알아서 온다는 것이 저지당하는 조건을 부각시키는 거예요. 그 조건이 인간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그 선을 자를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그걸 잘라버리면 인간은 하나님께 못 가잖아.’라고 되죠? 골로새서 1장에도 나오지만 로마서 11장 35절, 36절에 보면 바로 이 창조의 원리에 대해서 나와요. 모든 것이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 ‘주’는 이 땅에 오신 인간이에요. 인간으로 오신 그 분이 주가 되는 겁니다.

그럼 인간이 두 종류가 생겨버려요. 창세기에서 만든 인간. 악마에게 후다닥 속히 넘어가버린,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무 조치를 안 하고 넘어간 대로 넘어가도록 해놓고 기껏 하나님의 조치는 뭐냐? ‘나가.’하고 추방하는 그 대상으로서의 인간. 그 인간에게 담겨있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서 악마의 마음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 인간과 주께서 창세전의 비밀로 준비해둔 제대로 된 인간.

주님과의 대조와 비교를 통해서 이 땅에 진정한 주님, 인간의 몸으로 된 주님을 주께서 마련하기 위해서 모든 피조물들은 만들어졌다. 이게 골로새서 1장 16절에 나온 말씀이에요. 모든 만물은 오로지 주를 위하여 주께서 친히 만들었다. 그럼 그 중에 누가 포함되었느냐? 보이는 인간뿐만 아니고 사물뿐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들까지 다 주님을 위해서 그들은 만들어졌고 그들의 활동이 허락된 거예요. 허락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간섭이라 할 때 마귀로 넘어온 인간의 입장은 뭐냐? ‘하나님이여, 간섭해주옵소서.’ 이게 무슨 뜻일까요? ‘왜 방관하십니까? 좀 도와주시죠.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데. 눈 수술 받아서 눈이 퉁퉁 부었는데 빨리 낫게 해주시든지 하지.’ 매사에 대해 하나님이 간섭해주셔서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나타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뜻은 뭐냐 하면, 네가 남한테 간섭하지 말라는 뜻으로 전달됐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5절 보면 이런 말씀 나와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살인하지 말라. 당연히 나쁜 짓 안해야 되죠. 도적질 안해야 되죠. 악행 안해야 되죠. 그런데 살인, 도적질, 악행과 같은 리스트, 항목으로 옆에 나란히 끼어들만한 일이 ‘남의 일 간섭하지 마라’.

잠언서에 보면 남에게 보증서지 마라. 남의 일에 보증서지 마라. “네 보증이 있어야 내가 대출 받을 수 있는데 보증 좀 서줘. 내가 갚아줄게.” “그래, 보증 서줄게.”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보증하지 마라.” 어떤 일에? 남의 일에. 그럼 무슨 뜻입니까? 직접 그 각 개인을 다룰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나이어야 하지, 주제넘게 내가 그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네가 끼어들지 말라.

결혼해도 마찬가지에요. 남편, 아내도 마찬가지에요. 심지어 자식도 마찬가집니다. 이 이야기는 길어지고 상당히 어려운 이야긴데요. 간단하게 줄여서 이야기하게 되면,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부모-자식을 만든 적이 없어요. 하나님의 자식을 만들죠. 내 자식, 내 손자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부모는 그냥 생산기구에요.

붕어빵을 붕어빵 틀이 만듭니까, 붕어빵 주인이 만듭니까? 붕어빵 주인이 살아있으니 만들죠. 붕어빵 틀은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틀이에요. 인간의 신체구조는 그냥 기계에요. 세포란 이름의 기계입니다. 세포란 것이 돌아갈 때는 거기에 자연법칙의 적용을 받아요. 에너지를 최소화해서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 법칙에 의해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기계입니다. 단백질도 아미노산이 레고처럼 착착 맞춰져 있는 거예요. 3차원구조로 맞춰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네가 주제넘게 남의 일 간섭하지 마라.” 간섭하지 마라는 것은, 너나 잘하세요! 어느 영화에 나오는 대사잖아요. 니나 잘하세요. 주님과 직접 교제하는 게 필요하지, 자꾸 남의 일 간섭하는 것은 하나님 제키고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마귀적 의도, 낌새가 거기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의 공작, 조작,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법칙을 벗어나려면 남의 일에 대해서 주제넘게 간섭하지 말고, ‘나 오늘 이런 은혜 받았다.’하고 약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저 주님과의 관계를 그들에게 피력하세요. 그게 주의 뜻입니다.


511강-YouTube강의(닫힌 하늘과 열린 하늘 창세기 28:12)20251216-이 근호 목사


제511강, ‘닫힌 하늘과 열린 하늘’. 아…, 이것은 상당히 복잡해요. 복잡한 것을 짧게 한 문장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공간은 시간이 문이 되어 닫아버립니다.’ 공간은 시간 자체가 문이 되어서 폐쇄구조로 만들어버려요, 시간이. 그게 창세기 1장 내용입니다. 8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뭔가 서랍 같은 것, 칸막이 같은 게 시간에 의해 짜여졌습니다. 그럼 그 시간에 의해 칸막이 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만들어진 공간이 곽이 짜여서 각자 하나의 각설탕처럼 택배상자처럼 따로따로 자체적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늘은 만들어질 때부터 열린 하늘이 아니고 닫힌 하늘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닫힌 하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다섯 째 날에 공중에 독수리가 만들어지잖아요. 독수리가 날다 날다 나중에 열린 하늘까지 납니까, 안 납니까? 못 날아요. 독수리는 닫힌 하늘까지만 날아요.

공간을 곽 짜는 그것은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시간의 칸막이에 의해 이미 확정되고 마는 겁니다. 그 시간의 칸막이가 열리는 순간은 어느 순간이냐? 제7일 순간이에요. 일곱 째 날은 무슨 날이냐? 쉬는 날이에요.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손대지 마라. 손대면 안돼. 왜? 주님께서 그것을 친히 만들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만들어진 것에 대해 ‘그것을 만드신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는 것에 집중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헌신하는 날이 안식일이죠. 그리고 그 날이 몇째 날이라고요? 7. 7은 공간에 속하지 않아요. 1,2,3,4,5,6,7은 어느 공간에도 그런 공간이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에 속하는 거예요. 시간.

그럼 여기서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끝나면, 다른 말로 할게요, 안식일이 완성되면 어떻게 할까요? 그럼 칸막이 진 공간은 뭐로 교체되는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교체가 됩니다. 그러면 기존에 있던, 칸막이 치기위해서 있는 시간, 그리고 칸막이 당했던 공간, 그 공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의해 대체가 돼요. 대체가 됩니다.

그럼 이방민족 같은 경우에는 이런 창세기 중심, 여호와 중심이 아니죠. 안식일 중심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안식일 중심이 아니라면 그들이 1,2,3,4,5,6,7, 7일 째 놀겠어요, 안 놀겠어요? 놀 이유가 없죠. 아니, 내 밭에 내 논에 농사 더 지으면 수확이 더 나는데 내가 왜 놀아요? 누구 눈치보고? 눈치 볼 사람이 없어요. 내 건데. 눈치를 못 보죠.

그러면 1,2,3,4,5,6, 그들에게는 칸막이 친 뭐가 없어요? 시간이 없으니까 칸막이 쳐진 공간도 없죠. 그럼 그들은 공간에 갇힌 존재가 되죠. 그러면 공간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지하에 사령부를 차려놨던, 본부를 차리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던 하마스를 바깥 위쪽 부분의 이스라엘이 점령해버려서 안에 바닷물을 집어넣던지 폭탄 터트리던지 하면 단단했던 그 지하본부는 어떻게 돼요? 그대로 무너지겠죠.

그럼 이방인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닫힌 하늘, 닫힌 공간 그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공간의 궤멸과 더불어서 그대로 저주 안에 폭싹 주저앉습니다. 그 자들이 오늘날 이 시대에 불신자들입니다. 그들의 인식은, 지난 낮 설교의 제목이었습니다, <협소한 관점>. 협소한 관점을 약간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편협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협소하다고 한 것은 그 범위만 잡아서 한 거예요. 협소한 관점.

울고불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왜? 이유가 뭔데?’ 맨날 물어요. 어려울 때 묻고 ‘왜 하필 나에게?’ 묻는데 물어봤자 그 질문 자체가 성립 안돼요. 답변을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협소한 갇힌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답변이나 질문이나 둘다 닫힌 공간 안에 있는 한 그것은 소용없는 질문과 답변이 되겠죠.

그럼 해결점은 뭡니까? 닫힌 공간이 뭐로 바뀌면 됩니까? 열린 공간 되면 되잖아요. 열린 공간. 그 열린 공간을 바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그게 창세기 28장 12절에 나와요. 창세기 28장 12절을 여러분이 보면서 무엇이 협소한지, 협소함의 반대말이 광대함인데 무엇이 협소함을 벗어난 넓은 범위의 관점인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여기 누가 등장해요?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이렇게 되어 있죠.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사는 자취방이 어디죠? 그 주거지가 어디입니까? 일산이에요? 파주? 안 그러면 강원도? 대구? 어딥니까? 그들이 만약 미국에 있어도 그것은 협소한 공간이에요. 닫힌 공간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은 어디에서 나와요? 닫힌 공간을 능가합니다. 닫힌 공간을 닫힌 공간이라고 규정하는 데서 하나님의 언약이 오죠. 언약이 주어집니다. 천사가 내려오죠. 사닥다리라 했는데, 사다리가 있다는 게 우리가 상상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참 편리하게 해주셨어요.

사닥다리라 하는 것은, 오페라 보면 무대가 있는데 좋은 오페라 보면 아래층만 있는 게 아니죠? 관람료는 약간 싸고 보기엔 힘들지만 위층이 있죠. 위층에서 쌍안경 들고 보는 거 있잖아요. 위층. 아래층 있고 위층 있고. 천사의 지정석은 위층. 인간의 지정석은 아래층. 아래층에서 일어나는 것은 위층에서 착착 이미 확정된 사실만 아래층에서 펼쳐집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 눈 왔잖아요. 오류동처럼 높은 언덕 있을 때 미끄러지고 난리도 아니죠. 넘어져서 정형외과 가서 환자들 많아지니까 정형외과 수입 막 늘어나고. 그런데 그 눈은 어디서 왔습니까? 눈 공장에서 만들어낸 거예요? 위에서 왔죠. 올 때 회의해서 ‘너희들한테 눈 내려도 되나, 안 되나?’ 물어봤어요? 안 물어봤죠. 안 물어봤어요. 인간은 아래층 거주민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언약은 왔다고 했죠. 그럼 언약이 언제까지 올 것인가? 언약의 마지막 도달 순간은 어디냐? 아까 시간이 끝나야 되잖아요. 시간이 끝나야 아래층의 한계가 다 드러날 거 아닙니까? 그게 바로 마가복음 1장 10절에 나옵니다. 제가 여러 번 했는데 다시 여기서 또 말씀드릴게요. 예수님 세례 받는 대목입니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그다음에 “하늘이 갈라”진다고 되어 있죠? 원뜻은 찢어지는 거예요. 이것은 갈라지는 자동 기계가 있다는 의미의 갈라짐이 아니고 아예 완전히 봉쇄되어 있고 틈이 전혀 없는데, 틈이 없는 데서 강제성을 띌 때 어떻게 돼요? ‘아, 이거 문이네.’ 이게 아니라 강제로 찢어졌다는 거예요.

강제로 찢어졌다는 것은 우리 밑에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닫힌 하늘 위에서 강제조치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 강제조치로 갈라지면서 거기서 누가 내려옵니까? 성령이 비둘기같이 한 분께 집중해서 내려오죠. 내려오면서 무엇과 같이 겸해서 내려오느냐? 하나님의 음성이 같이 내려옵니다. 그 음성이 11절에 나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협소한 관점, 편협한 관점이 아니게 되려면… 바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도 너 잘났다, 나 잘났다 할 수 있는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는 그런 문제는 모조리 협소한 관점에 속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늘이 찢어져서 뭐가 내려오는가 그게 중요하지, 인간과 인간끼리 너 나한테 잘못했잖아, 이런 것에 인생을 피곤하게 그거 감안하면서 지치듯이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