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열왕기상 8:62-66 / 가연성 존재 본문
가연성 존재
이근호
2025년 3월 26일
본문 말씀: 열왕기상 8:62-66
(8:62) 이에 왕과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을 드리니라
(8: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8: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8: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 칠 일 합 십사 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
(8:66) 제팔일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 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어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제사를 성립하는 데 있어 성전은 ’태우는 기능‘을 보여줍니다. 희생 제물을 태우는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추잡고 더러운 존재들과는 함께 하실 수 없음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제사라는 것이 인간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발상이 아닙니다. 이방민족들의 제사를 받기 않으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사는 모세언약, 즉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 자신의 생각입니다. 이는 인간들이 진리를 찾기 위한 애씀이나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제사는 솔로몬 왕에 의해서 ’언약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겁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로지 ’언약‘만 즐겨 받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그 언약실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소 22,000마리와 양 120,000 마리가 성전 안에서 불태워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총 제사장의 숫자는 38,000명이었습니다.(대상 23:3) 그 중에서 대략 10분의 1이 근무조로 투입될 것이니 대략 2,000명 내지 3,000명의 제사장이 동원되어 14일 동안 제물처리에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모세 언약과 다윗 언약이 주어졌지만 신약에 오면 새 언약에 도달됩니다. 새 언약과 옛 언약의 차이점 중의 하나는, 옛 언약이 객관적이고 형식적이고 사물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은 바로 이런 객관적이고 형식적이고 사물적인 것과 단절된 언약이 됩니다.
단절되는 이유는 객관적이고 사물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바로 인간의 육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는 겁니다. 소 동원하고 양 동원해서 구현하고 표현하려는 것이 결국 에는 한계에 이르고 또 다른 언약이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의 주관을 겨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과정이 솔로몬 이후에 멈추지 않고 신약 시대의 새언약으로 달려가는데 그 와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관된 원칙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로서 나타나셔서 제물을 태우는 방식으로 제사를 받으시는 이유는 항상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2:7에서 나타난 인간의 근원은 ’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인간의 본디의 사람 주관이 더럽혀졌고 그 결과로 나타난 맨 처음 현상이 옷을 만들어 자기를 가리고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창 3:7)
성전이나 성막에 불이 준비되어 있고 제물은 필히 그 제단불 속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의 ’붙태우심의 정당성‘ 때문입니다. 이 정당성만 계속 남기고자 하시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 역사 내내 불태움의 장치와 기능을 더불어 가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보는 하나님의 원래 입장과 관점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 솔로몬이 대규모로 드린 제사는 화목제입니다. 레위기 7:15-17에 보면, 화목제나는 감사제와 서원제나 자원제로 되어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희생의 고기가 제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특히 화목제가 여타의 제사와의 차이점은 제사드린 자가 불을 경유한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과 더불어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화목제는 모든 제사는 마감하는 취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제나 소제나 속죄제나 속건제의 제물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먹을 수 없지만 화목제물에 대해서 허락이 됩니다.
모든 제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흡족하고 수용되었다는 점이 화목제 의의 안에 담겨 있는 겁니다. 신약에 오게 되면 이 제사들의 의미가 한 인격으로 함축이 됩니다. 그 분은 다음의 두 가지 화목제 요소가 부각되는 분입니다.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레 3:17)
’기름+피‘가 가능한 분은 기름부어진 메시야와 그 분의 피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목제물‘이라고 신약 성경은 알리고 계십니다.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요한일서에서는 이 화목제물을 하늘이 내려주신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왜 인간의 육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실까요? 그것은 ’육에서 영‘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육은 불질러져야 마땅합니다. 실제로 객관적이고 형식적이고 사물적인 것으로 언약을 표현한 구약시기에서 다니엘 세 친구는 실제로 불 속으로 들어갑니다.(단 3:22) 이것은 양이나 짐승으로 대체되든 제물이 직접 인간의 몸으로 대체될 경향이 보이는 식으로 최종 언약, 최종 화목제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 1:11)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7-8)
마태복음 3:2에서는 세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온 것은 어떤 인격분이십니다. 곧 예수님의 육신이 나타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육신에 나오는 피와 살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고 하십니다.(요 6:53) 인간의 육 속의 주관은 예수님의 주관에 나오는 영으로 불태워져야 합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 2:2-3) 오늘날 성도의 삶은 이미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자리 속에 사는 삶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서 육의 소욕이 성령님에 의해서 일체 거부당하고 있음을 주관적으로 경험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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