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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열왕기상 8:56-61 / 언약 속의 인물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열왕기상

열왕기상 8:56-61 / 언약 속의 인물

정인순 2025. 3. 19. 22:05

음성 동영상

 

언약 속의 인물                        

 

이근호
2025년 3월 19일                 

 

본문 말씀: 열왕기상 8:56-61

(8:56)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8:5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옵시며 버리지 마옵시고

(8:58)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그 모든 길로 행하게 하옵시며 우리 열조에게 명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8:59) 여호와의 앞에서 나의 간구한 이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 대로 돌아보사

(8: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8:61)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

솔로몬의 자신감 넘치는 기도가 나옵니다. 현재 자기 시대에 이스라엘이 태평스럽다는 겁니다. 이는 곧 하나님 말씀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현 이스라엘 상태는 모세 율법에 의해서 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복으로 덮혀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겁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율법을 제대로 지키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와도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 이스라엘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일치되어서 하나님께서 극히 만족한 가운데 주어지는 축복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넉넉하게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만족해서 자기 백성과 더불어 계시면서 태평스러운 상태를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솔로몬은 덧붙여 기도하기를, 우리 이스라엘은 이 축복된 상태를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 율례를 위반하지 않으면 된다는 겁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기도는 모세 율법의 체제 안에 합당한 조건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인간의 소유의 넉넉함이 본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부합되도록 완전하게 살았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일이 자기 백성의 풍족한 삶에서 멈출까요? 욥의 경우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께서 더 추진하고 싶은 일이 더 있습니다. 특히 소유의 넉넉함을 곧 복받을 만해서 받는 복이라는 인식에 변화가 일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5에 보면,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의 최고 관심사가 소유로 가득 찬 자기 모습입니다. 그런데 소유의식이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려는 율법의 지속적인 취지를 방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소유의식을 피하고 인간의 죄악된 마음에 직접 다가서십니다. 소유가 넉넉하게 되면 마음도 덩달아 훌륭할 것이라는 오해를 낳게 마련입니다. 만사가 형통하면 하늘에서 보기에 자신의 마음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리게 됩니다.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가 엉망이 된 것은 솔로몬 때에 누렸던 그것을 당연하게 소지할 자격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이후에 선지자들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관심이 멀어졌음을 전제로 선지자들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모세 율법에 대한 최종적 위반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는 민수기 16장-17장에서 고리 자손의 반란으로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민 16:2-5)

즉 고라 자신들이 주장은 이러합니다. 자신들도 다같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만이 자신들을 다스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너는 되고 우리가 왜 안 되는데?”라는 논리를 들고 나오는 겁니다. 이런 태도는 율법의 근원에 도전하는 동시에 율법 안에 어떤 특정 인물이 살아 있음을 노출시키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마치 이 세상 많은 사람 중에 아브라함만을 선택해서, 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기준으로 삼는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다윗언약에 의해서 주어진 복입니다. 개인적으로 율법을 지켜서 개인적으로 결과적인 복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국가적인 단위의 복은 다윗 언약에 준해서 등장하는 특별한 인물에 의해서 성사됩니다.

마치 어떤 가정에서 선천적으로 눈이 먼 언니와 둘이 멀지 않는 여동생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면서 부모는 그 둘 눈을 감기게 한 상태에서 훈련합니다. 눈에 뜬 상태에서는 들릴지 않는 특수한 음을 감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가 다윗에게도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소년일 때, 하나님은 다윗을 다음과 같이 사용하셨습니다.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 16:22-23) ‘악신이 나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족스러운 상태를 위해 일하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다른 이는 못하고 오직 한 사람, ’다윗‘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다윗의 뿌리는 모세 계통, 모세 라인이 아닙니다. 다른 줄기입니다. 곧 ’이새의 줄기‘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 11:1-2)

이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그 분의 일하심으로 인해 극히 하나님의 만족을 충만한 세계상이 다음과 같이 펼쳐집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이러한 상태는 인간의 소유성에서 기대할 만한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끄집어낸 것은 그들로 하여금 율법 안에 갇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인 것임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율법 안에서 무자비한 저주의 힘이 작렬하게 됩니다.

그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자비한 힘과 같이 작용하는 ’무한한 자비‘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 겪으신 분이 바로 새언약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온 그들이 이제는 율법에서 빠져나옵니다. 죄인으로 드러난 채로 말입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5-16)

즉 예수님의 피만이 하나님을 만족하시고 하나님의 안식하시는 온전한 세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소유로 자신을 꾸미려고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