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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히브리서 7:20-22 / 맹세와 율법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히브리서

히브리서 7:20-22 / 맹세와 율법

정인순 2024. 10. 13. 16:44

음성     동영상     Youtube

맹세와 율법 

 

이근호
2024년 10월 13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7:20-22

(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7: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보증이란 최종성에 담보를 두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의 보증은 고린도후서 1:22에 나옵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성령님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즉 최종 상태가 되도록 조치하셨다는 겁니다. 최종 상태에 나타난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최종 승인한 인간의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그 최종성을 위해 중간에 들어선 겁니다. 갈라디아서 3:17-18에 보면, “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이렇게 투입된 것은 처음 인간이 망가졌다는 겁니다. 선과 악에 대해서 그 어떤 지식이 없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담은 마귀에 꾐에 빠저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고 단호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정녕 죽으리라’입니다.(창 2:17)

하지만 인간들에게는 ‘정녕 죽으리라’로 이미 확정된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이미 알아버린 선과 악의 지식을 활용해서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내가 뭐가 나쁜데?”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이런 인식은 자신이 마치 살아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인식입니다.

인간 세계 전체가 이런 법적인 질서체로 짜여져 있습니다. 거미망처럼 촘촘한 법적 체계 속에서 인간은 법을 붙들고 자신을 살만한 가치 있는 인간이양 여기면서 거저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하나님편에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 어떤 인간도 이 율법에 철두철미한 준행자가 되지 못하면 필히 저주가 주어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으로 인해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위들이라는 말입니다. 즉 율법 행위가 인간 구원의 최종 보증이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미 인간들의 육신 자체가 ‘정녕 죽으리라’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는 육신적 행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인간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율법 말고 맹세가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점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4:22-26에 나와 있습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즉 아브라함에게는 두 명의 자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육신의 자식은 이스마엘 하나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이 살아있다고 치고 그 산 육신과 관계를 맺은 육신이 바로 하갈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난 겁니다. 그런데 그 이스마엘은 저주받아 지옥가야 될 자라는 겁니다.

아브라함 육신의 생산물이 저주받는다는 것은 아브라함 육신이 당연히 저주받을 육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언약(맹세)를 통해서 이삭이 죽은 사라의 몸에 의해서 태어나게 됩니다. ‘약속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이 약속의 아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곧 아브라함에 있어 두 개의 자아가 성립된다는 뜻입니다.

저주받을 육신에 언약이 주어지면 여기서 천국 갈 새로운 자아가 발생되는 겁니다. 이것은 곧 율법이 주이진 이유를 보여주는 육신과 성령을 받아서 생긴 새로운 자아의 나타남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율법에 의해서 저주받을 자임이 드러나고 약속에 의해서 천국에 들어갈 자임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율법이 주어진 시내산과 예루살렘이 같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같은 장소가 둘로 나뉘어져 하나는 하늘로 가고 다른 하나는 그냥 땅에 남겨진다는 겁니다. 누구는 천국가고 누구는 지옥가고 아니라 동일한 한 인간에 언약이 주어지면 그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게 되면 이런 자가 곧 약속의 증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면서 율법의 그물망에 갇힌 채 살아가게 됩니다. 법의 목줄이 목숨보다 더 셉니다. 즉 자기를 선과 악의 지식에 의해서 잘난채 하는 바로 그것이 자기 목숨을 묶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이란 바로 이런 법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 체제에서 맹세 차원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예가 구약 에스더서에 나옵니다. 바사 나라의 혼인법에 의해서 아하수에로왕 왕비로 간택된 에스더는 그 나라의 혼인법보다 더 능가하는 무엇을 발휘하게 됩니다. 에스더 3:2에 유대인 모르드개는 당시 권력 2인자 하만에서 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법 위에 다른 법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분노한 모르드개는 모든 유대인을 진멸하기 위해 또 법을 동원합니다.(에 3:13) 모르드개의 입장은 마치 애굽 나라에 꿈으로 휘저었던 요셉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꿈의 초법적 활동을 보여주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해서 인간 법망에 구멍을 뚫어내십니다.

왕과 왕비 사이에 있었던 법, 즉 왕이 먼저 초청하지 아니하면 왕비라 할지라도 왕을 알현할 수 없고 그것을 위반하면 왕비라도 죽는다는 국가법마저도 에스더에 의해서 뚫립니다. 그 힘은 바로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능력은 세상에 설치된 모든 법을 찢어버리고 탈출 구멍을 만들게 됩니다.

이 죽음이 나타내는 맹세의 위력에 하만을 법으로 처단을 내리려하지만 도리어 그는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서 집안에 거들납니다. 진멸을 하려던 계획은 왕의 반지를 넘겨받은 모르드개에 의해서 도리어 유대인의 적 75,000명이 죽게 됩니다. (에 9:16) 그리고 유대인들은 인간법을 이긴 나를 기념하면서 잔치를 벌리게 됩나다. (에 9:22)

소위 살았다고 하는 자들의 잔치를 ‘하나님의 죽음’에 동참된 자들의 잔치로 바뀌어집니다. 바로 이 최종적 현상이 미리 들어온 자들이 오늘날에 성령받은 예수님의 증인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24시간 온종일, 세상이 얼마나 십자가를 가리고 조롱하고 모독하고 있는지 파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