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예레미야 23:33-36 / 사실과 현실의 차이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예레미야

예레미야 23:33-36 / 사실과 현실의 차이

정인순 2024. 7. 8. 16:22

음성 동영상 Youtube

 

사실과 현실의 차이 

 

이근호
2024년 7월 7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23:33-36

(23:33)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23:34)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에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23:35) 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23: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 하고

사람들이 선지자에게 와서, 확고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대답합니다. “네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요 저주다”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진실과 거짓 중에서 자신이 사는데 거짓보다 진실이 더 낫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는 진실보다 거짓을 더 선호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망하지 않으려하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남에게 지지 않으려하는 그 심보 자체가 이미 죄요 저주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지키려 한다면 출애굽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출애굽 정신을 훼방하는 것은 인간 본인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대들고 분노하고 반항하는 식으로 세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새 인간은 자신을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 오래 박혀있는 인간은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뽑아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약속의 땅에 들어왔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온 것은 도리어 자신이 이 약속의 땅에 살 자격이나 권리도 없음을 발견케 위함입니다. 즉 출애굽했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이고 도리어 출애굽이 무엇인지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부터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이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그 내막을 다 보여주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약속의 땅으로’ 떠난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면 ‘사실의 세계’와 ‘진실의 세계’가 따로 형성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사실의 세계란 ‘내가 여기 있음’을 충실하게 증명이 되는 세계입니다.

반면에 ‘진실의 세계’는 ‘예수님이 여기에 있음’을 증명하는 세계입니다. 이 사실의 세계와 세계가 차이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양쪽 세계를 다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코스가 바로 출애굽 코스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누구라도 제대로 출애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즉 인간은 사실의 세계에서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은 자기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곧 인간은 자기 있음에 관한 믿음이 우선입니다. 여기에 선지자가 투입됩니다. 선지자는 인간으로부터 불가능한 자리 이동에 관해 말씀으로 미리 예언해줍니다. 열왕기하 8:1-3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는 수넴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해줍니다.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즉 출애굽이란, 사실의 세계를 고집하면서는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을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진실의 세계로 옮겨놓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진실의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사실의 세계에서 얼마나 본인이 자기 위주로 살아왔는지를 목도케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렇듯 세계가 사실의 세계와 진실의 세계로 나뉘어지는 것을 우리 주님이 다녀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 의해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뽑힌 모든 신앙의 선진들도 주님께서 경험한 그것을 미리 느끼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전체를 보면, 전반부에 나오는 신앙인은 이 둘의 세계가 분명하게 나뉘어있음이 나타나 보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지상에서의 사태가 더욱 거칠고 파괴적 양상을 띱니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4-38)

이처럼 지상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이유는 예수님과 보다 가까이 시대적 거리가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곱게 자신을 지켜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그 경로는 험난한 이유는 인간들의 사실의 세계를 쉽게 포기할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혀 예상 못한 경로 이탈을 통해 주님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누가복음 2:9-14에 보면 들판에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는 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목동은 자기 노선을 천사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하는 그 말씀의 성취가 아기 예수님에 의해서 달성됨을 압니다. 지금 목동은 자기 처지나 신체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서 출애굽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실의 세계에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현실의 세계를 수립하셨습니다. 따라서 현실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 이 두 세계를 전부 경험한 자라야지만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세계에서의 삶은 성도에게는 주님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제대로 예수님의 나라와 의를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분리된 세계를 함께 경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