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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예레미야 25:9-11 / 인류의 마감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예레미야

예레미야 25:9-11 / 인류의 마감

정인순 2024. 7. 21. 16:16

음성 동영상

 

인류의 마감

 

이근호
2024년 7월 21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25:9-11

(25:9)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25: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25: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약속의 땅은 번영과 풍족을 보장한 땅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 자체가 이스라엘의 지상 행복을 계속 유지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는 것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라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 희망을 토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줄곧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이 당연시 여기는 것에 초를 칩니다. 기간까지 확정해서 멸망을 선언해 버립니다. 늘 좋은 땅이라고 여겼던 이곳에 도저히 사람 살 수 없는 땅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변모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이 기대하는 것과 하나님의 단정지은 뜻이 다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확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인간 치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벌써 믿음의 주체와 대상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삽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신을 믿는 겁니다. 요지부동입니다. 아무리 신을 믿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자기를 믿는우회로에 불과합니다. 구색에 불과합니다.

자기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자기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지 그리고 막아서고 방해하는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겁니다. 이미 시편 82:6-7에서는 인간의 처지와 운명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

인간 치고 하나님 앞에서 안 엎어질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로서 출현된 존재이니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마땅한 처우를 제대로 받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 처리의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간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시편 2:7입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예수님은 출생부터가 인간하고 다르십니다. 성령으로 출생하셨습니다. 혈통으로 난 보통 인간과 다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별개의 인간을 준비해 두신 이유는, 인간 손이 아니라 예수님 손에 의해서 아버지의 뜻을 달성해내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존재를 통해서 인간은 애시당초 자신은 하나님을 믿거나 아는 자가 아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2:28-30에 보면,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시므온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눅 2:25) 그는 자신과 예수님이 바꾸어져야 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됨을 아는 겁니다. 이로서 참된 성령받은 성도는 자신의 행복이나 이익이나 생존을 위하여 하나님께 일하지 않음을 아는 겁니다. 성도는 자신의 육신과 몸이 어디에 매료됨을 잘 압니다. 인간은 공간 속에 있는 몸입니다. 이스라엘도 ‘약속의 땅’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자신을 파악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예레미야를 통해서 ‘공간 속의 몸’이 아니라 ‘시간 속의 몸’으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인간 세계의 멸망은 70년으로 굳혀 놓으셨습니다. 70년이 인류의 마감 기간입니다. 70년 지나면 인류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류를 마감짓게 하는 시간에 관한 예언은 예수님에 의해서 달성될 겁니다. 어떤 식으로요?

다니엘 9:2에 보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전에 이야기했던 70년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기뻐야 하지요? 세상의 멸망이 확정된 게 그렇게 기뻐요? 자신은 안 망하게 되어서 기뻐요? 아닙니다. 인류의 망함에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자는 다 망합니다. 그런데 성령받은 시므온과 오늘날 성도는 왜 그리 기쁘고 감사하는 겁니까? 그것은 자신의 이익차원이 아니라 말씀 차원에서 완성에 합류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용한 의사가 어느 말기암 환자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장담합니다. “이 환자는 6개월 지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과연 6개월 되는 날에 그 환자가 죽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이 용한 의사 혼자 신나합니다. 자신의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의사는 환자의 죽은 날을 기억할 정도로 자기 세계에서는 대단한 성과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이 망해서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므로서 하나님의 예언은 분명 성취됨을 나타나 보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죄성을 버리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 성과의 증거로 하늘나라에 걸어두는 겁니다. 필히 이스라엘이 망하고 필히 인류가 망하는 이 작업에 예수님께서 관여하십니다.

70년을 다니엘 9장에서 70이레로 세분화됩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5-27)

70이레로 말미암아 이제는 70년의 이스라엘의 멸망 모델에 모든 민족이 다 적용을 받게 다같이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이 이 예언에 관여하게 하시고 예수님도 이 일에 관여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70년, 즉 70이레의 의미가 함축된 존재로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은 ‘공간의 몸’에서 ‘시간의 몸’으로, 이제는 ‘예수 몸 안의 몸’으로 새로운 몸이 생겨나게 됩니다. 당연히 말씀 완성, 예언 완성이 취지가 살아있는 몸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몸의 연장과 지체로서 나타난 성도의 몸입니다. 이 몸은 곧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새겨지는 말씀 판이요 캔바스(화폭)가 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생산과 소비로 가득찬 세계 안에서 종말을 나타내는 예수님 안의 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