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예레미야 10:23-25 / 진정한 왕 본문
진정한 왕
이근호
2023년 9월 3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10:23-25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10: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10:25)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선지자는 당황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 이스라엘의 운명이 붕괴되기 직전입니다. 선지자는 이 징계에 본인도 포함되어 있음을 간파합니다. 그 징계를 너그럽게 해 달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 징계의 특징은 선지자를 비롯해서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는 징계라고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하실까요? 친히 세우신 나라요 그동안 이끌어오신 나라인데 왜 이 나라를 굳이 제거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나라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신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차별화됩니다.
이 차별화는 모세를 통해서도 애굽나라에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10가지 재앙 중에서 네 번째 재앙, 곧 파리 재앙부터 히브리인들이 사는 땅에는 재앙이 없었습니다.(출 8:22)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왕의 영웅적 혜안으로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 속에 괜히 인간이 끼어들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왕되심이 가려집니다. 여기에 비해 이방나라는 신을 섬기면서도 인간 왕이 도입이 정당하게 여겼습니다. 즉 왕이 눈에 보이는 신, 혹은 신의 아들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나아가는 것은 곧 눈에 보이는 왕에게 나아가는 것으로 대신하게 됩니다. 신이란 모든 힘의 결집이요 중심처를 뜻합니다.
이것은 인간 왕이 독점해 있는 겁니다. 그런 결과, 이방나라는 너무나도 강대국이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당부했습니다. 아무리 이방나라가 강대하더라도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 인간 왕이 대신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가 진척되면 될수록 그들은 자신들에게 왕이 있음이 더 안심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삼상 8:5) 왜 인간은 인간 왕을 원할까요? 그것은 인간들은 힘을 항상 찾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자기 걱정하고 자기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지키고 싶은 겁니다. 당연히 힘 가진 자가 필요로 합니다. 힘과 힘들을 모아서 그 안에 자신이 놓여 있다면 그 사람은 안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왕이 없습니다. 이는 곧 자신이 원하는 힘을 자기 방식으로 얻을 수없음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독자적으로 자기 뜻을 구현될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점에 불안과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인간은 자율성을 지니고 늘 자기로 인해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율성을 포기해야 함을 뜻합니다.
종이라는 것이 과연 불행한 사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의 종이 된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주인님이 따로 계시다는 뜻입니다. 주인은 종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종은 그저 주인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살면 그만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게 싫은 겁니다. 각 사람들이 본인 소견대로 살고 싶은 겁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2:25) 이 말씀은 왕이 있으면 사태가 호전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들 이스라엘이 각자 하나님을 다 버리고 난 뒤에 그 어떤 대책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친히 하나님께서 각자의 인생을 인도하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다움이 사라집니다. 이방나라와의 차이점이 없습니다. 이방나라의 국가 만들기는 왕에게 절대적 권력을 주므로서 왕 중심으로 결집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런 구조들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훼방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만 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강력한 벌칙을 내리므로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의 왕되심을 강력하게 지켜보려고 했는지를 드러내십니다. 에스겔 9:6에는,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2:20에 보면,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이까”고 되어 있습니다. 즉 양식이 다 떨어져서 자기 자식을 먹기까지 합니다. 이 참혹한 광경은 곧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를 내고 계시는가를 이스라엘에게 알리십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영히 버리시는 걸까요? 오늘 본문 25절에 보니,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 직접 왕으로 오시는 그날을 하나님께서는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것이 신약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최후로 심문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그 당시에 실질적으로 유대나라의 최고 통치자로 와 있기 때문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에 있어 왕은 당연히 가이사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구분지었습니다.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 22:21) 그러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보고 질문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예수님은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고 했습니다.
과연 이 답변이 옳은 걸까요? 본디오 빌라도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왜 너의 백성들이 너를 버리느냐고 말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보이지 않는 나라의 보이지 않는 왕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주의 나라로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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