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대신 죽음의 효과 230212 본문
대신 죽음의 효과 230212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지난 시간에는 불타는 가시덤불 이야기를 했었어요. 모세는 나무하고 이야기하죠. 불타는 나무. 그런데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목소리는 모세 그리고 불타는 여기 이 가운데서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체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음성으로 일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되게 되면 같은 물체인 인간은 그 소리를 엿들을 수가 없어요.
사울이라는 사람에게 부활하신 예수님 찾아왔을 때 사울이 혼자 갔을까요, 여러 명 갔을까요? 여러 명 갔었어요. 여행 갈 때. 갔는데 사울아 사울아 니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 하는 그 예수님의 음성을 그 여러 명 가운데서 누구만 알아들었냐 하면 사울만 알아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그 목격담을 들어보면 그때 약간 천둥이 쳤다, 뭐 이 정도. 뭐 소리 나긴 나는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다, 이 정도밖에 안 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컴퓨터 칠 때에 책에 있는 내용을 이렇게 화면 안 보고 책에 있는 책만 보면서 막 치잖아요. 딱 치고 화면 딱 보게 되면 영어로 쫙 되어있는 거예요. 이게 뭐로 안 바꿨냐 하면 영한을 키를 안 눌러가지고 실컷 쳐놓고는 이거 다시 다 지우고 다시 쳐야 되듯이 주께서 인간의 개인적인 마음 자체도 옆 사람이 치팅 컨닝하지 못하도록 딱 그 사람에게만 이야기를 해버려요.
그러니까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를 전부 다 자기 사람으로 철저하게 사용해 주시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남의 흉내 내지 말고 남의 신앙 모방하지 말고 니는 니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일들이 있는 겁니다. 지문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일은 다 달라요.
그렇게 해서 가시덤불로 갔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거 지난 시간에 잠깐 언급했지만 모세의 이름 자체가 물에서 걷어내듯이 모세를 따라 나와야 될 모든 사람들도 물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을 나중에는 이걸 알게 되죠.
그때는 모르고. 모세는 무엇의 탈출을 시도했느냐 하면 세상 권력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 겁니다. 소위 말하는 모세는 엄마한테 교육을 받아가지고 서서히 안중근 의사가 되어가는 거예요. 우리 민족의, 민족주의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민족주의가 피어나려면 지금의 이집트 애굽의 권력에 있었기 때문에 권력에서 벗어나려면 그보다 더 센 권력으로서 힘을 키워서 전복 엎어버리고, 엎어버리고 나와야 된다. 그렇게 하려면 엎어버리려면 테러를 자행해야 된다. 그래서 모세가 테러를, 사람 죽였어요. 모세는 사람 죽인 사람입니다. 살인자예요. 죽여 놓고 아무도 안 봤다고 여기고 모래 위에다가 덮어버렸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사람 죽이는 것을 보게 만들었어요. 누가 봤느냐? 같은 종족 히브리인들이 봤어요. 모세의 약점을 쥐게 된거죠. 모세가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혁명 일으켜서 해방해야 됩니다, 하니까 살인자 주제에 뭐가 잘 났느냐? 그 소리 듣고 들켰구나. 그때 씨씨티비가 있었구나 해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지명수배 당해가지고 원티드, 저걸 잡는 사람은 이만 불의 현상금을 걸어가지고 불이 나게 도망쳤어요. 안 죽은 의사가 도망치는 거 봤어요? 만주로 도망쳤어요. 도망 도망쳤어요. 그리고 모세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두 번 다시 민족 해방하면 나는 개다. 내 주제에 무슨 해방이 돼. 내 주제에 뭐가 해방이 돼? 내가 뭐 도와주지도 않는데, 하나님도 안 도와주는데 내가 뭐 할라고 나는 양이나 치자. 해가지고 이제 마지막 여생을 팔십 넘어서 여생을 양 치는 데까지 다 간 거예요.
그런데 모세가 몰랐던 게 있습니다. 세상 권력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거든요. 내 힘이 세상 힘을 이겨내야 세상 권력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내가 갖고자 하는 힘도 세상 권력이고 저쪽에 있는 나를 압제하는 것도 똑같은 동질의 같은 질의 세상 권력이거든요. 세상 권력에서 빠져나와봐야 세상 권력이에요. 둘 다 이거는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온 것은 인간 자체의 권력, 내가 사모하는 권력 내가 출세하고자 하는 나의 의욕과 욕구 그 자체로부터 찢어버리고 거기에서 끄집어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 방식은 간단해요. 니가 죽었다고 치고 살아라. 세상을 어제부로 하직했다고 치고 살아라. 그러니까 말씀 듣다가 조는 것도 괜찮아요. 왜? 죽었다고 치고. 항상 기본은 이렇습니다. 나는 이미 죽었는데 말씀이 오게 되면 그제사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포장지로 잡아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내가 하는 사명을 살리기 위해서 주께서 나로 하여금 철저하게 나를 부리고 있다는 그 의식이 있어야 줘야 돼요. 자칫하면 내가 사는 게 돼요.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이거는 삑이에요. 이건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고자 일을 하시는데 필요하시다면 하나님께서 살리든 죽이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돼야 되는 겁니다.
모세가 이제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그 수준까지 이르러야 돼요. 그거 하기 전에 일단 모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물가에 수장하여 죽입니다.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죽는다, 산다? 죽는다. 이거 묻는 내가 잘못이죠. 그런데 얕은 물에 가면 살죠. 근데 바다예요. 홍해 바다, 깊은 물이에요. 깊은 물에는 물고기는 살아도 사람은 죽이는 겁니다. 사람 죽이는 쪽으로 하나님께서는 몰아세웠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즉각적인 자기의 본능을 드러냅니다. 니가 우리를 죽이려고 했구나. 모세야. 모세 니가 우리를 죽이려고 했구나. 요새 같으면 윤석열, 집단으로 우리를 죽이려고 했구나. 이거는 아니지. 이거는 아니야. 하나님이여. 제발 좀 모세 좀 말려주세요. 이래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소리 듣고 모세가 기분 좋았겠어요, 흐뭇했겠어요? 안 그러면 고민이었겠습니까? 모세는 그 중간에 끼어 가지고 대략난감, 어쩌지 어찌 이 사태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자꾸 극한으로 몰아넣는 거예요.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보고 해내라 하니까 이게 바로 난감한 일이에요.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또 혹시 그런 학생 있잖아요. 시험 치면 100점, 그런 학생 봤어요? 있잖아요. 경험해봤잖아. 그럴 때 제일 난감한 게 뭐냐 하면은 니가 어떻게 백점을 맞았어, 할 때 뭐라고 설명해야 됩니까? 곶감이 곶감 맛이라는 걸 뭐 어떻게 설명해야 돼요? 시험 보니까 다 아는 것 나왔는데 그걸 일부러 틀릴 수도 없고 미치겠네. 이게 일부러 틀려요?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아는 거 나와서 아는 거 했는데 그게 어떻게 내 실력입니까? 나는 모르겠고 출제한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무조건 쟤 아는 것만 내자 이래가지고 출제 냈는데 나하고 의논한 적도 없고. 그러니까 백점 맞은 사람은 진짜 입장 난처하게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홍해 바다 보냅니다. 모세의 입장은 일단 자기가 손해 볼 거 없죠. 왜냐하면 이미 내가 죽어 죽었으니까. 이름도 모세잖아요. 물에서 물에 담갔다가 끄집어 낸 거예요. 쉽게 말해서 사체업자한테 걸려가지고 삽으로 땅에 묻었다가 모가지만 내놨다가 그때 주인공 나타나가지고 파내가지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살아나온 것처럼 이게 담가버려? 담갔는데 거기서 빠져나왔듯이. 모세는 이미 죽은 몸이기 때문에 빠져나왔고 백성들은 모세한테 대들고.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지팡이” 뭐 딴 소리하지 않아요. “지팡이!” “예” 지팡이 사용처를 알지요. 모세가 설명서니까. 지팡이를 가지고 지팡이를 물에 댔더니 물이 자크 열리듯 저기까지 쫙 열렸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해 보세요. 물리학적으로. H2O에 지팡이 금속 구리 금속을 댔더니만 물이 쭉 갈라졌다. 이거 화학적으로 설명해 보세요. 118 가지의 원소 가지고 설명해도 됩니까? 안 되지요.
모세나 백성들이나 지금 모세가 대략난감 한 것이 지금 인간으로 설명 안 되는 일을 한 거예요. 갈라진 그림 한번 보세요. 갈라진 그림입니다. 전에 물속을 걷는 것보다도 어린 아이보다는 별로 떨어지지만 일단은 이걸로 만족합시다.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엄연히 물이 갈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이건 바다가 아니었다. 바다가 말랐다가 아니라 지금도 바다고 그때도 앞으로도 바다일 거야. 바다, 바다는 죽음이거든요. 인간은 죽으니까. 죽음 속에 길을 내는 거예요. 죽음 속에 길을 내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유월절 어린 양으로 해서 대신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 양이 죽으면 진작 죽었다 이 말이죠. 어린 양을 대신 잡았다 하는 그 대신의 효과가 대신 죽음의 효과가 앞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순간마다 여기에다가 그게 효과가 적용되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천국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단일한 단일 사건의 효과를 세상 끝까지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이 유월절의 어린 양의 대신 죽음의 효과가 바닷물도 갈라지게 하는 겁니다. 왜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가느냐? 그거는 애굽 사람과 차이 나게 하는 거예요. 여기는 그림이 안 나왔지만 이들이, 그림 나오네. 내가 실수할 뻔했다. 여기 뒤에 뭐가 있습니까? 지금 전차 타고 애굽 군사들이 활을 쏘려고 오지요. 이 두 집단의 차이를 보여주는 거예요. 두 집단의 차이. 천국 가는 쪽과 지옥 가는 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 차이가 둘 다 달리기를 잘한다, 헤엄을 잘 친다가 아닙니다. 한쪽은 뭐냐 하면은 이미 이 사람을 죽은 자로 간주했다. 이쪽은 아직 본인들이 죽은 걸 모르고 나는 펄펄 살았다. 살았으니까 할 도리 다 한다하는 요 주의와 우리는 대신 죽으심에 힘입어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요 집단과 이 집단의 차이점, 이 차이점 속에서 어린 양의 대신 세상 죄를, 어린 양의 그 기능만 밝혀보이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실력이 누가 뛰어나냐, 누가 머리 좋으냐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서 불신자와 신자 가운데서 무엇이 가로놓아야 돼요?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예수님의 피가 가로놓인 이것을 인정하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자랑할 것은 내 실력이 아니고 나의 출세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뿐인 것을 같이 고백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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