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문제삼지 말라 211003 본문
문제삼지 말라 211003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 씨 뿌리는 비유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죠. 그리고 농부 비유, 농부 비유 기억하시죠. 땅 속에 보물이 있는데 세상에 농부가 그걸 몰래 입 다물고 그걸 자기 거 만들기 위해서 집주인한테 그 사실 이야기 안 하고 나중에 싱글벙글 하면서 땅 파내가지고 보물을 홀랑 가져갔다는 그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 세상에 돈을 얼마나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거예요. 그것은 예수님을 내가 갖고 있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나를 안다는 거예요. 창세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그 사실에 본인이 너무 감격한 거예요.
그래서 뭘 아느냐 하면 내가 나서서 내 구원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분이 구원에 대한 일에서 나는 손 떼고 다른 분이 나를 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중에 오늘 예가 뭐냐 하면 바로 오늘 배를 타고 제자들에게 배 타고 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여기에 비유 가운데서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아마 이런 이야기 하면 제자들 가운데 “나도 알아. 나도 어부 했어.” 했을 때 “고기를 잡을 때 어떻게 하더냐? 너희들 잡은 고기 다 시장에 팔더냐, 아니면 뭔가 그전에 분류 작업을 먼저 하고 난 뒤에 파느냐?” “그거야 그러면 나쁜 고기는 도로 하지요.” “그러면 나쁜 고기는 어떻게 하지?” “나쁜 고기는 그냥 잡은 거 갖다 다시 바다에 돌려주고.” “좋은 고기는?” “좋은 고기는 가져야지요.”
바로 그와 같이 하나님이 어부가 되어 가지고 할 때 이 세상에 고기를 잡을 때 나쁜 고기도 잡고 좋은 고기도 잡지만 나쁜 고기는 버린다는 것, 하나님께서 사람을 버릴 수도 버릴 자격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쁜 고기도 잡아요.
그 나쁜 고기만 재수 더러운 거예요. 이게 어떤 용도냐 하면 버린, 이런 자들이 버림받는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알게 만들어버려요. 예수 알고 버림받고. 한쪽은 예수님 알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만약에 현장에 있었으면 “그래. 이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한 데 대해서 니가 꼽냐? 니가 기분 더럽고 그래?” 이러면 “그래도 기분 더럽네요. 버림받는 입장에서 더럽죠.” 하면 처음의 원칙이 있잖아요. 구원은 누가 한다? 하나님이 혼자서 한다는 그 원칙과 모순되잖아요.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진짜 제대로 제대로 믿고 진짜 주님은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 같은 것하고 의논하지 마세요.” 진짜 그렇게 먹었다면 버림받은 자가 버림받는 것에 대해서도 짝짝짝 “잘 하셨습니다.” 이렇게 돼야 되는데, 말 생각은 지식은 “예. 하나님이 하시죠. 우리가 못합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요.” 이렇게 해놓고 버린다 하니까 “아. 그럼 버린 자 입장도 좀 고려해 줘야지. 버림받은 놈은 이건 뭐 튕겨버리면 지가 억울하잖아요.” 궁지렁 궁지렁 그 사람이 누구예요? 가룟 유다예요. 가룟 유다가 12제자에 들어왔죠. 최종 합격 못하고 버림받았잖아요.
베드로한테 맡겨놔도 베드로도 마찬가지요. 땡땡 탈락이에요. 왜냐하면 마귀가 베드로를 덮치려고 했거든요. 근데 베드로가 열심히 기도해서 벗어난 게 아니고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손대지 마라. 내 사람이다. 손대는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손대는 거 아니야. 내 사람이야.”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니까 베드로가 그것 때문에 배신해도 결국은 주님께서 건져내잖아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일은 실수가 없고 착오가 없습니다. “아이고 잘못 건졌네.” 이런 거 없어요.
반드시 아버지가 택한 자에게 정확하게 택하고 그러니까 주님께서 힘들어 죽겠다. 그냥 가자, 보니까 아버지께서 택한 자가 남아 있는데 주님께서 신경을 못 써 가지고 놔두고 그런 거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는 건질 자를 다 건지는 챙길 거 다 챙기고 도장 찍고 이마에 도장 다 찍고 반드시 데려갑니다. 그러니까 구원 못 받을까 걱정하는 것은 괜히 쫄고 하는 것은 괜히 우리가 믿음 없는 우리가 그런 헛수고 한 거예요. 주의 일은 함께 있는 주의 일은 실수나 오류가 없다는 거. 거기에 대해서 이제 감사하는 거죠. 그게 이제 예수님 비유였습니다.
이번에는 뭐냐 하면은 우물가의 여인. 노래가 막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물 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그 다음 가사가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헛되고 헛된 것 속에 포함되는 게 손흥민의 이야기예요. 대선 이야기예요. 홍준표 이야기고 윤석열 이야기가 헛되고 헛된 것들. 땅 던져놓고 땅값 오르는가 보고. 그거 계산하는 유튜브 초회수 얼마나 나오는가 그거 보는 거죠. 전부 다 헛된 거. 월급 얼마나 올라 얼마 받나 이런 거 있잖아요. 저마다 헛되고 헛된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이 헛된 걸 구한다는 말은 그것만이 자기에게 헛되지 않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본인이 근원적으로 헛되다는 생각을 못하고 지금에 와서도 헛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자, 이런 식이에요. 근본 자체가 근본 자체가 헛된데 그건 생각 안 하고, 지금이라도 정신 바싹 차려서 헛 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지, 이렇게 하니까 그게 역시 헛됨의 지속이고 연장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우물가의 여인이 물 길러 왔다는 데다가 주님께서 초점을 맞춥니다. 물 길러 왔을 때 주님께서 “여인아?” “왜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고. “물 왜 길러? 물 왜 길러 왔어?”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 했으면요 예수님 물 한 바가지 썼습니다. 씻고 밥 해야지. 그래 이거 정말 이 말도 안 돼. 물을 길러 와야 밥을 먹고 살 거 아니냐 이 말이죠. 그럼. 만약에 그렇게 나오면 주님께서 “밥 먹어서 뭐 하는데?” “밥 먹어야 살죠.” “살아서 뭐 하는데?” “살아서 뭐 하느님께 영광 돌리고. 영광 돌리고.” 이래 하는데. 그러니까 주님께서 “솔직히 해라. 살아서 뭐 영광 돌린다고. 살아서 뭐 밥 먹는다고?” “예” “니 남자하고 연애하려고. 네가 물 길러 와. 너 지금 다섯 번째 하고 사귀고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고 여섯 번째 남자 사귀고 있잖아.” 여자가 그때 움찔 했죠. “어찌 알았지?”
주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는요 이미 바닥을 다 아시고 하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이거 지켜라 저거 지켜라가 아니라 “내 니 엑스레이 찍어봤다. 다 알아. 자 딴 소리 하지 마. 다 알아.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고.” 그러니까 여자가 이제 쫄아가지고. 그렇다면 아휴 그렇다면 헛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나도 그리심산에 가가지고 예배드립니다. 그리심산 교회에 가가지고 그리심산 교회에 가가지고 예배드립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교회 가서고 하는데 둘 중에 어느 게 맞습니까?”
주님께서 “둘 다 아니다. 둘 다 아니다.” 어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그 예배는 니 자신을 헛되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 자체가 헛된 거예요. 예배 하는 내가 헛되다는 것을 알게 하는 예배가 진짜 헛되지 않은 예배예요. “그러면 예배 어떻게 합니까?”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그 전에 주님께서는 이야기합니다. “내가 더 이상 물 길르러 오는 이 헛된 짓이 이게 왜 헛된 짓인가를 내가 알게 해줄게. 이게 왜 헛된 짓인가를.”
그러니까 물 기르는 것이 헛된 짓 맞죠. 주님께서 헛된 짓이에요. 헛된 짓인데 헛된 짓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만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우리는 굶자.” 이래 안 나왔어요. 그 전에는 헛된 줄 모르고 헛된 짓을 했고 이제는 헛된 일을 알고 헛된 짓을 하고.
그 우물의 물 길면서 전에는 “이거 먹고 힘을 내어서 또 남자 사귀야지. 일곱 번째 또 준비해야지.” 이래 했다면 이번에는 “주여” 이것조차도 내가 이 물을 마시는 것도 주께 예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 이게 예배구나. 감사하는 게 주님께 감사하는 게 예배구나.” 왜냐하면 그동안 나의 헛된 잘못된 생각이 주께서 주신 그러한 모든 혜택을 우리가 가로막고 있었던 거예요. 내 힘으로 물 길러서 내 힘으로 산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나님 앞에 신세 지고 살면서도 자기가 신세 진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 자체가 헛된 거예요.
우리도 앞으로 세상에 나오면 마찬가지일 거예요. 순간순간 악착같이 살아서 내 성과 이루어야지. 그래 살 거예요. 하지만 성령도 주님께서 오셔가지고 계속해서 우리를 지적하게 되면 그 순간에 헛된 짓을 헛된 짓으로 알게 하는 이 기쁨이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 더 놀랍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 놀라운 그것이 우리를 기쁨이 되게 하는 그 물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 자신을 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삼아서 계속해서 세상 물 말고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생의 물이 솟는 샘물이 되게 하는 거예요. 샘물. 그래서 김씨는 김샘물 이씨는 이 샘물 박샘물 움직일 때마다 샘물이 성령이 움직여. 그래서 그 이야기가 이제 이 그림으로 나와 있습니다. 여자 보니까 이 그림에 여자가 예쁘죠. 남자 7명 6명 사귈만 하지요.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형식이고 이뻐서 여기서 중요한 중에 하나가 남자 6명 갈아치워도 천국 가는 데는 아무런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늘 제목은 문제 삼지 않는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문제 안 삼는데 내가 나의 인생을 시비 걸고 문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피흘림을 우리는 은연중에 모독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나에게 문제 삼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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