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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열매의 열매 210919 본문

주일학교 설교(이근호)/주일학교 설교

열매의 열매 210919

정인순 2021. 9. 19. 13:49

음성

 

열매의 열매 210919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예 여기 씨 뿌리는 비유, 씨 뿌리는 비유는 무슨 이야기냐? 천국 이야기입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이야기하는 거 믿지 마세요. 그건 지가 듣고 들은 풍월로 하는 것이지 서울에서 안 살던 사람이 서울 이야기하는 거 그거는 간접으로 들어 이야기고 직접 천국에 예수님은 천국에 그냥 사시는 분이 아니고 천국을 만드시는 분이에요.

 

이게 굉장히 차이점이 있어요. 천국에 그냥 천국에 그냥 사셔버리면 사는 것 자체가 완료가 돼 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 쪽에서는 아무것도 일을 안 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을 해왔었습니다.

 

처음에 에덴동산에 보면 처음에 나무가 두 개 중앙에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두 개인데 하나님은 뭘로 바꾸느냐 하면 한 개로 바꿨어요. 선악과는 없애고 선악과는 없애고 생명나무로만 있게 해요. 그럼 선악과는 어디 있느냐? 선악과가 확장돼서 그게 완성된 것이 지옥입니다. 선악과는 누구를 위해 만들었냐 하면 악마를 위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선악과에 대해서 다 세워놓으니까 악마가 거기에 찾아왔지요. 악마의 유인책. 그러니까 집에 쥐 있거나 개미 있을 때 박테리아 있을 때 유인하잖아요. 선악을 심판하는 겁니다.

 

선과 악 사이에 심판할 때 악마가 그 자기 자신을 향하여 심판하는 걸 알고 그 심판하는 기준 자체를 이렇게 찢어버리는 거예요. 찢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애한테 성적 발표 하려고 성적표를 성적 놔두니까 성적이 나쁜 애가 선생님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 성적 자체를 찢었어요. 선악과 자체를 찢든지 안 그러면 아담처럼 꿀꺽 목으로 삼키든지. 없다. 아무도 나를 판정할 수 없다. 왜? 나는 신이니까. 이게 마귀가 마귀는 최고의 신을 신을 추구했기 때문에 신이 된다는 말은 어느 누구로부터 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오늘날 인간을 그렇게 인간이 꼭 이 마귀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닮았는지. 아무도 나를 심판할 권한은 없다. 내 자체적으로 선과 악을 내가 판정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선악을 자기 내재화시킨다고 하는데 자기 내부로 집어넣었어요. 양심으로. 집어넣어 가지고 내가 옳은 것은 옳고 내가 나쁜 것은 나쁘다. 20개월 먹은 애가 태어났는데 내가 직장생활 하는데 좀 이렇게 잠이 모자라는데 야근하고 왔는데 애가 빽빽 울어요. 그러면 무엇이 옳으냐 하면은 애를 안 울게 하는 방법이 나한테는 선이 되는 겁니다. 애 집에 던져 버리죠. 그래서 20년 받았죠.

 

그래서 구형을 20년 받는 거예요. 저 잠 안 와서 짜증나는데 애가 우니까 집어 던져버린 거예요. 죽었어요. 옛날에는 많이 그랬거든요. 요새는 이제 법이 이상한 법이 돼 가는지 옛날에 처벌 하나도 안 받았어요. 내 애 내가 지키는데 니가 와? 니 아가? 내 애지. 내 소유인데. 옛날에는 자식을 나라 소유로 보지 않고 개인 소유로 봤기 때문에 애가 죽다 할지라도 나라에서는 찾지를 못했습니다. 조선시대 때 한 때 그런 일이 있어요. 그래서 양심이나 기준이라고 하는 선악은 시대 그때그때 달라요. 항상 이게 달라요. 너무 많이 다르거든요.

 

그처럼 선악과 따먹은 이 악마의 입장에서는 그냥 악마의 이야기는 그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 대로 살고 땅에서는 내가 땅의 신으로서 그냥 살고 제발 그냥 나를 내버려 두면 안 되겠습니까 하는 게 악마의 간절한 하소연이에요. 예수님 보고 하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당신이 뭔데 간섭하느냐 말이죠. 좀 상관하지 마라. 벌써 상관하려고 오셨으니까? 당신은 당신대로 살고 그냥 하늘에 살고 나는 나대로 살고. 둘이 좋게 삽시다. 우리 사랑 이대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똑같은 거예요. 제발 사랑하게 하옵소서. 해 주세요 이런 거. 나중에 보니까 배다른 남매 간이고 뭐 그런 거. 제발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 달라 이거예요. 그게 악마가 요구하는 게 오늘날 인간들이 요구하고 신에게 요구하는 거 똑 같아요. 좀 놔두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지금 만들어요. 하늘나라가 존재하는 게 아니고 만들어진 나라예요. 그 만들어진 나라의 핵으로 뭐가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핵으로 집어넣어서 새롭게 만들어요. 하늘나라를. 그러니까 기존의 하늘나라는 뭡니까? 하늘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아닌 겁니다.

 

그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나라를 뭐라 하느냐 하면 천국은 이와 같은 것이니 하는 것이 바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 그러니까 이거는 너희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이 계신 나라하고 완전히 다른 나라예요. 만약에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게 하늘나라라면 인간의 땅에 있는 인간들은 땅에 살 권한을 소유하게 되는 겁니다. 아까 악마의 말 들었죠. 하늘은 하나님이 사시고 그냥 곱게 사시고, 땅은 우리끼리 살 테니까 간섭하지 마라. 이게 두 개로 고정화되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땅에 내려왔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그러면 안 되겠다. 이런 뜻이거든요 내가 그걸 그렇게는 안 봐주겠다. 땅을 접수하겠다. 그래서 씨 뿌리는 비유가 쭉 나오는데 씨 뿌리는 비유가 뭐냐 하면 천사를 보내가지고 이 땅을 불러서 심판하는 비유예요. 심판하는 비유인데 그러면 천국 백성 어디서 만드는가? 바로 가라지와 알곡 비유가 요 씨 뿌리는 비유 바로 뒤에 그게 나와요.

 

가라지와 알곡. “가라지 가만 둬라. 천사가 와서 심판할 테니까 가만 둬라.”예요. 집안 청소는 누가 합니까? 본인이 하지요. 본인들이 하지요. 일찍 퇴근한 사람이 하잖아요. 그러나 이 세상 청소는 인간이 하면 안 돼요. 이거는 천사한테 맡기세요. 왜냐하면 우리한테 맡기게 되면 나 빼놓고 청소해요. 나는 깨끗하다고 나는 빼놓고 청소한다고요. 청소기 들고 청소할 때 자기 얼굴에다가 청소 안하잖아요. 자기 빼놓고 자기는 뒤로 물러서면서 삐익 청소하잖아요. 왜 나를 왜 나를 이렇게 내 청소기를 내한테는 왜 안 대느냐 말이에요. 자체가 더러운데. 훅 빨리 가도록 왜 안 하냐 이 말이죠. 인간이 청소를 하면 안 됩니다. 천사한테 맡겨야 돼요. 맡길 때 주님께서는 그 청소를 그렇게 할 때 시작도 어떻게 하겠어요? 시작도 하나님이 시작하지, 인간이 시작하면 안 되겠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가 농부가 씨를 뿌리는 거예요. 농부가 씨를 다 뿌리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말씀을 뿌리는 거하고 똑같다는 겁니다. 다 뿌려놓으면 씨를 뿌려야 새가 그 현장에 등장하게 돼요. 우이요 후요 한 거 있죠. 새. 새가 딱 던져놔야 기다렸다는 듯이 새가 편대를 이루면서 쫙 오거든요. 내가 기다렸다. 이 새야. 먹어. 먹어. 먹어. 그러면 새가 와서 딱 먹을 때 그걸 주님께서는 카메라 가지고 찍습니다. 찍을 때 새가 또 이렇게 표정 한다고 웃고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새는 열심히 할 때 찰깍 찍어 놓고. 이게 마귀다. 내가 너희들이 시답지 않게 하는 이 말씀을 누가 귀하게 여기느냐 하면 악마가 귀하게 여겨요. 저걸 내가 먹어 치워야 이 땅에서의 통치자 이 땅에서의 정복자 악마가 그대로 인간과 같이 합세해서 나름대로 영원히 존재하고 견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쪽쪽 말씀을 쪽쪽 다 받아먹습니다.

 

그래서 옛날 부흥사 목사들은 말씀 전할 때 여기 한 종이 하나 있어요. 좀 존다 싶으면 “졸음 마귀가 와서 말씀을...” 막 쳐요. 근데 입장 바꿔서 본인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지가 잠 오도록 설교했어. 그래서 아주 청소기 가지고 자기를 못 뽑아내는 거예요. 말씀을 뿌릴 때 마귀가 와서 다 먹어버려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을 먹더라도 다 먹히지 않고 뭔가 하나가 땅에 떨어져 가지고 새가 다 놓치고 있는 그 대목 그런 씨앗을 만들어요. 그래서 이 구원받는 게 왜 기적이냐 하면요. 이 땅에서 악마가 없으면 구원받는 것은 별로 신기한 게 아닙니다. 내가 말씀 들으면 듣고 싶고 교회 가면 가고 이러면서 살지. 그렇지 않습니다. 악마가 미처 계산을 못하고 놓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악마가 뭐라 하느냐 하면 “아 참. 아 그 사람. 사람을 놓쳤구나.” 악마 귀신한테 왜 그 사람을 놓쳤냐. 정신 바짝 차려라.

 

그런데 당사자는 그냥 뭣 모르고 그냥 뭣도 모르고 성령 받고 뭣도 모르고 말씀을 들었을 뿐이에요. 여기 얼마나 그 마귀가 말씀 못 듣게 활동하는지 모르고 “그냥 그냥 듣겨요. 그냥 믿어져요.” 이러고 있다 이 말이죠. 그냥 믿어진 게 아니고 굉장히 성령과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치열하거든요. “걔만 손대지 마!” 뭐 이런 식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그것도 몰라요.

 

톰과 제리에 나오는 만화 영화처럼. 톰과 제리는 서로 까불면서 지금 이 자기 동네가 뉴욕에 빌딩 고층 빌딩 공사 중 꼭대기인 줄 모르고 그냥 막 허공을 막 걸어간다. 걸어가니까 여기서 철빔이 와가지고 막 발을 딛는데 철빔이 와가지고 딱 해 가지고 지는 “지금 뭐? 내가 뭐 잘못했는데?” 이러고 있는데 보니까 벌써 안전하게 다른 건물로 옮겨가고 있어요. 공사 잘하는 사람들 막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데 천사들은 “쟤 안 되는데. 가기 되면 또 주께서 준비해 놨다 말이죠.

 

그렇게 해서 말씀을 받았는데 그 말씀 받은 사람 가운데서 또 뭐가 있느냐 하면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기뻐했는데 그 다음에 뭐가 기다렸냐? 고난이 와요. 고난이 오니까 다시 말해서 옛날에 선악 기준에 의하면 저주받는 경우가 발생되는 거예요. 그러면 제일 먼저 뭐냐? 내가 전에 는 행복했는데 내가 뭐가 잘못 되어서 이렇게 불행하냐? 이 말씀에 대해서 신경 썼구나. 그래서 내가 이 말씀을 빼버리면 옛날처럼 다시 행복해질 수 있잖아. 그래 빼자. 이게 바로 그 말씀이 땅에 들어가는데 열매 맺지 못하게 해서 큰 바위 덩어리가 뿌리 있는 거기다가 더 뿌리에다가 바위를 내놓으니까 이게 말씀을 계속 공급받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밑에서 공급이 안 되니까 위에서 시들시들 해가지고 뭐와 같으냐 하면 말씀 없다. 말씀을 안 받았던 그때 그 시기로 그대로 돌아가 버리는 거예요. 잠시 피고 시들어서 열매 없는 거나 휭 하고 악마가 새가 와서 먹은거나 결과가 동일한 결과가 와버린 거예요.

 

세 번째 경우에 예수님은 뭐냐 하면 이제는 바위에서도 빠져나왔어요. 바위에서 빠져 나와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말씀이 세상에 가니까 이번에는 고난이 아니고 반대로 부귀영화가 찾아왔어요. 하는 일이 너무 잘 되었어요. 사업도 잘 되고 사업 잘 되니까 아쉬운 게 없어요. 태평성대를 이룬 거예요.

 

이게 구약의 왕들을 보면 그래요. 잘 될 때 그들은 선지자를 죽이고 이랬습니다. 아무 일이 없으니까. 모든 게 순조로우니까. 그런 거예요. 좋은 데 취직하고 이래가지고 아무 문제없어. 가만있는데 이거 재벌 집 아들이 와가지고 결혼할까요? 뭐 이런 것. 뭐 그런 일은 별로 안 나타지만. 아무 일도 없는데 세상적인 것이 왔을 때 “그래. 챙길 때 챙겨놔야 돼.” 이래가지고 그만 말씀은 내가 이미 구원받은 거고 그 다음에 챙겨야지. 이러니까 그 열매는 세상 열매가 맺혔고. 말씀을 받을 때나 안 받을 때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예요. 그것도 나중에 열매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이게 잘려버려요. 열매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마지막에 있는 게 뭐냐 하면 그 알이 무사히 통과해가지고 옥토에 있어가지고 돌멩이도 없고 그럼 가시덤불도 생길 이유도 없고 그냥 몽땅 그 씨앗이 내포돼 있는 안에 내용물이 몽땅 뭐로 이루어져 있느냐? 열매로 하늘나라 열매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긴 분, 그 분은 누굽니까? 바로 예수님 본인이에요. 예수님 본인만이 유일하게 뭘 할 수 있는가? 30배 60배 100배 105만 배 2억 5천만 배. 그 예수님 열매의 가지에 맺혀 있는 열매. 열매에서 나온 열매. 그 분이 바로 오늘날 성도라 하는 거예요. 성도는 본인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대신 열매를 맺은 결과가 성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한 건 없었는데 주님이 던진 말씀운 스스로 말씀이 되셔서 열매를 맺었으니 그 십자가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감사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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