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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말씀 발견 210411 본문

주일학교 설교(이근호)/주일학교 설교

말씀 발견 210411

정인순 2021. 4. 11. 13:44

말씀 발견 210411

 

음성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 제목은 여기 나와 있듯이 ‘잃어버린 책을 찾다’ 했는데, 사실은 잃어버린 책을 찾는 게 아니고 없는 책이 나온 거죠. 잃어버렸다하는 것은 뭔가 기대를 할 거예요.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이렇게 산다, 그리고 지금 이 사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다, 이것 하고요. 그래서 제대로 살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어떤 진리가 있을 것이고 그 진리를 내가 찾아서 내 것으로 가져오게 되면 나는 그 진리로 인하여 내가 살 수 있다, 이런 것은 잃어버린 걸 찾는 거고. 아예 없는 것은 찾을 생각도 안 하겠지요. 아예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 요시야 왕, 열왕기하 22장 23장에 나오는 요시야 왕 이야기거든요. 요시야는 유대 16대 왕이란 말이죠. 26살 때 왕이 된 사람인데 이 사람이 크면서 뭘 봤느냐 하면 그 나라 전체가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겼는데 자기는 왕이고 백성들과 신하들은 우상을 섬긴 거예요.

 

그러면 우상을 섬겼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모든 백성들이 우상 섬기는 거기에 끌려 빠졌다는 뜻입니다. 다 빠져있는 거예요. 여기 있는 왕도 인간이고 백성들도 인간이라면 인간은 별 게 있나? 니 생각이나 내 생각이나 동일하다, 이게 인간들이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니는 별 게 없어. 우리 생각이나 니 생각이나 동일해. 따라서 우리가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정당성이 있다는 겁니다.

 

요시야 왕도 어쩔 수 없지요. 백성들이 그렇게 섬긴다는데. 민주주의가 그렇잖아요. 표 많은 사람이 이기잖아요. 표 많은 사람이. 그래서 이렇게 세상이라는 것은 이게 원래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하나님께서 원래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아니야. 아니야. 저건 아니야,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인간은 지금 있는 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게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니 편하고 같이 안 놀아, 한다고 그게 자동적으로 그 사람이 정의의 편에 선 사람이 아니에요. 이것 아니다, 그것뿐이지 이것이라는 것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그쪽의 근처에 떠돌아다니는 별 같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청소를 하다가 신하 중의 한 사람이 뭘 발견했느냐 하면 율법 책을 발견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책. 여기서 귀한 일이 벌어졌지요. 책이라 하는 것은 서점에 책들이 많이 꽂혀있어요. 책들이 촘촘히 꽂혀있거든요. 그러면 옆에 있는 책 앞에 있는 책, 그 책들 ABC 책들이 있단 말이죠. 그게 전부 다 고만고만한 책들이에요. 전부 다 책들이라고요. 책이지 금덩어리는 아니잖아요. 전부 다 책이라 말이죠. 도서관에 많은 책 중에서 요시야 왕이 쉽게 말해서 뭘 하나 발견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율법 책을 발견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책을 발견했다 이렇게 보면 돼요.

 

그 책을 요시야 왕만 봤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봤겠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뭐라 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쓴 책이구나, 끝. 끝이지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데 요시야는 그렇지 않았어요.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목숨을 바꿔치기한 겁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저 말씀 지켜서 내가 살아보겠다고 자기도 포기 안 해요. 나는 이제부터 다른 사람은 바알 섬겨라. 나는 이제부터 말씀으로 나는 살겠다. 그래서 나한테 이익이 되도록 하겠다. 이런 생각이 있는데 요시야는 그게 아니에요. 이제는 나를 생각하는 자체가 말씀에서는 용납이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이게 바로 진리를 발견한 사람들의 특징이고 공통점이에요.

 

나는 원어를 많이 안다. 신학을 했다. 성경을 100독 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이야기하거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었나보다.” 그건 진짜 할 일 없는 거예요. 진짜 말씀을 알아버리면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고 말씀이 살아가지고 나를 강제로 납치해가는 거예요. 말씀 속으로. 말씀 속으로 납치해 가는 거예요. 영화에 그런 거 있잖아요. 게임하는데 게임판 속에 벌칙하다가 주인공이 빨려 들어가가지고 희한한 세계에 밀림의 모험을 당하는 그런 영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처럼 요시야는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 버려요. 말씀의 세계로. 얼마나 신기해요. 다른 사람에게는 이게 딱딱한 문자고 딱딱한 가죽으로 된 물질이에요. 그러나 요시야는 말씀의 세계라 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고 그 안의 세계는 이 세상보다 더 넓은 세계가 말씀의 세계고 그 말씀의 세계에 누가 있느냐? 바로 여호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여기 우상을 섬기는 이건 뭐냐? 결국은 자기 왕의 입장에서 체험하지 못한 말씀 세계에 들어오지 못 했기 때문에 자기 복 받기 위해서 그냥 빈 거예요. 따라서 요시야는 왕이잖아요. 왕 같으면 자기 하나님이 왕으로서의 할 일이 주실 것이라는 거지요. 그 주시는 일이 뒤에 나옵니다.

 

뭐냐 하면 여기에 힘센 사람들, 공무원들 동원해가지고 뭘 하느냐 하면 이 우상을 다 부수는 겁니다. 산천초목에 높은 산당에 있던 우상들을 낱낱이 오함마 들고 깨는 장면 나오지요. 다 깨지요. 깰 때 누가 반발하겠습니까? 바로 백성들이 반발하겠지요. 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인데 왜 니 주장만 옳다 하고 우리 주장은 왜 이렇게 무시하느냐? 니가 그렇게 독선적이야? 니가 옳다는 근거가 어디 있어? 왜? 사람은 남의 의견을 존중해 줄줄 알아야 품위 있고 인격 있고 덕망 있는 왕이 되지, 이렇게 깡패도 아니고 들고 와가지고 다 때려 부숴버리고 이게 뭐냐?

 

백성들의 생각은 이거예요. 우리는 백성이고 너는 왕이니까 백성들과 왕이 의견을 합치하게 되면 우린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살기 좋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면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한테 원했던 그 상황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편하게 살아야지 맨날 싸우고 부수고 그렇게 살까? 사람의 행복은 편하고 무탈하고 이렇게 평화롭게 사는 것이 그게 사는 낙이지 그렇게 속쓰럽게 살면 되겠어, 라는 것이 그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요시야는 달랐어요. “이곳은 너희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너희들이 그 증거를 대봐라. 너희들이 삶속에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여기 있다는 그 증거를 너희들이 한번 대 봐라.” 백성들이 “당신은 증거 대봐라.” “내가 증거 댈게. 오함마 가져와. 거짓 신을 때려 부수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증거다.”

 

그러면 지금 우리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가까운 데 동화사 가가지고 오함마 들고 가가지고 다 때려 부술까요? 여러분 구약은 하나의 드라마예요. 하나의 영화예요. 연극입니다. 무대에 올려진 연극입니다. 인간들의 한계, 인간들은 아무리 하나님이 도와줘도 인간들 내부에서는 우상 섬기겠다는 본성을 스스로 자기가 지울 수가 없다는 그것을 보여주는 게 구약 이스라엘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나중에 요시야도 선지자가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해가지고 죽어요. 그게 한계입니다.

 

신약에서는 누굴 패고 작살내고 부술 필요가 없어요. 왜? 오함마 들 수 있는 자격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낙산가 가가지고 부수고 그럴 필요 없어요. 낙산사 여승, 미륵보살 같은 여승이 있거든요. 그거 부수고 하면 또 지을 걸요. 또 짓습니다. 그것 부수지 말고 예배당 부수든지 해야지. 거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인데, 복 받겠다고 빌겠다는데,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거든요.

 

좀 나를 좋게 해달라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면 안 되겠어요? 하나님! 이런 뜻이에요. 하나님이여, 내 뜻을 그렇게 묵살해서 되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덧나요? 이거라 말이죠.

 

하나님은 말합니다. “너를 부숴버려라. 니가 우상이야. 니가. 부숴줘?” 십자가 뾰족한 곳 있죠. 그거 쿡 쑤셔서 부숴버립니다. 날마다 십자가로 우리 자신을 부숴주는 것, 이게 신약 성도에게 주신 주님의 혜택이고 복이에요. 아까 낮에 오전에 설교한 것처럼 죽을 때는 모든 걸 놓고 시체 놀이 하는 거예요. 아침 되면 일어나고.

 

주님께서, 율법 책을 발견함으로서 지키는 게 아니고 바꿔치기 하는 거예요. 지키는 게 아니고.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 하여금 말씀 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 그 도구로 사용했다는 자체를 영광스럽게 정말 감지덕지하게, 세상에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느냐? 로또보다 더 큰 것, 로또 종이 쥐지 말고 성경 주시면 “이 성경이 오늘날 저를 있게 했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께서 사건으로 택한 백성 남겨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만 쳐다보며 살다가 이제는 어떻게 말씀을 위하여 오늘날 내가 되었느냐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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