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지팡이 201206 본문
지팡이 2012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모세 이야기, 많은 사람이 애굽에서 한꺼번에 빠져나오는 경우보다도 먼저 한 사람을 먼저 빼요. 한 사람을 먼저 빼는 게 그게 모세입니다. 모세가 먼저 빠져나올 때 모세가 빠져나오는 그 방식대로 그 외 뒤의 모든 사람을 주님께서 빼버립니다.
모세는 빠져나올 때 물에 들어갔다 물에서 건짐을 받는 거예요. 이름이 그래서 모세예요. 모세. 모세 어떻게 생겼는지 여러분 모르겠지요. 여기 나와 있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이 원래는 태어나지 못할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애굽 나라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죽여 버렸거든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모든 남자들은 다 죽였어요.
그러면 딸은? 딸은 안 죽였습니다. 딸은 사람을 생산하는 기계로 간주했기 때문에 여자는 애기를 계속 낳아서 인구가 증가해야 나라꼴이 되니까 딸은 안 죽였는데 남자는 다 죽여야 해요. 그런데 모세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이거든요. 반드시 법대로 죽어야 돼요. 나라 법을 따른다는 것이 신앙적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겁니다.
신앙이 먼저지 나라법이 먼저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나라 법은 무엇까지 나가느냐 하면 안 지키면 죽인다까지 나가요. 몸을 죽이는 것까지 나라 법이 적용 돼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한다까지 가는 거예요. 그러니 어는 게 더 무서워요? 몸을 죽이는 것보다 몸과 영혼을 죽이는 것을 더 두려워하라고 했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요게벳입니까, 모세 엄마는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은 너희가 아무리 목숨을 바친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 말 안 들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을 해가지고 자기 아들 모세를 빼돌렸습니다. 딱 빼돌리는데 나중에 애는 모르잖아요. 막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하니까 안 되겠다 해서 살리기는 살리되 빨리 피신시키는데 물에다 던지는 방법을 했어요. 물에 바구니에 해서 던졌습니다.
던지고 난 뒤에 그 뒤에 누가 따라가느냐 하면 모세의 누나가 뒤따라가는 거예요. 뒤따라가서 여차하면 어린 모세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고 어린 모세는 바구니 안에서 물위에 떠가니까 애가 기분이 얼마나 좋겠어요. 둥둥 뜨니까. 울지도 않아. 물 흐름 따라서 그냥 죽 가는 거지요. 워터랜드 같은 것.
갔는데 가다보니까 어디에 도착했느냐 하면 애굽 바로 왕가의 여자들이 목욕하는 그곳까지 딱 갔어요. 소위 요새 말로 하면 펜트하우스 사는 사람들이죠. 거기에 딱 갔다 말이죠. 가니까 애기가 보니까 너무 참하거든요. 그래서 바로의 공주가 내 양자 삼을래,라고 건졌습니다. 건졌는데 그런데 애 젖을 먹어야 하는데 “젖을 누가 먹이지?” 하니까 그 뒤에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나가 “제가 하겠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이 애하고 니하고 혹시 아는 사이 아닌가?” “절대로 아는 사람 아닙니다. 처음 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누나가 하는 게 아니죠. 엄마가 나섰지. 엄마가 나서가지고 모세를 친 엄마가 엄마라 말 못 하고 유모가 되어가지고 모세를 자기 엄마가 키우는 겁니다. 아침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요. 그래서 모세한테 계속해서 뭐냐 하면 우리 민족의 과거의 아브라함 이야기 이삭 이야기 하나님의 약속, 우리는 특별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계속 주지시킨 겁니다.
그런데 드디어 애굽 사람들이 죽이려고 작정했는지 노예로 삼아 고생을 하니까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리고 모세가 나설 때가 되어가지고 모세가 독립 운동을 하는 식은 아니지만 자기가 의분에 의해서 의분에 떠가지고 자기 가슴앓이 하면서 자기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죽여 버렸어요. 죽여 버렸는데 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으니까 자기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알았느냐 하면 히브리 형제가 같은 동포가 그걸 알았어요. 니가 우리 동포를 구해줘서 고맙소,라고가 아니라 “니는 잘 먹고 잘 사니까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 것도 모르지. 그래. 꼴랑 니가 우리 형제 살려준다고 애굽 사람 죽인 것 우리 동네에서는 소문났어. 내가 입만 벌리면 니는 왕족이고 뭐고 작살나는 거야.” 그 소리 듣고 겁이 나가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독립운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칩니다. 아까 이건 바구니에 담겼을 때 그 때 이야기고요.
그래서 어딜 가느냐 하면 나이 80에, 나이 40이 훨씬 넘어서 도망을 쳐서 자기가 장인 집에 가서 그 동네에서 양을 치고 목동으로 일을 합니다. 자기가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이렇게 살아왔거든요. 있는데 여기서 결정적인 게 등장합니다. 여기 있는데 나오네. 이 그림에 보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어요. 뭐냐 하면 떨기나무가 있는데 떨기나무가 불이 붙은 거예요. 그러니까 나무가 진짜일까요, 불이 진짜일까요? 이 질문이 수능에는 안 나오지만 이게 중요한 질문이에요.
이 나무가 불을 피우게 했을까요, 아니면 나무에 불이 와서 이렇게 닿았을까요? 덮쳤을까요? 어느 쪽입니까? 나무가 불이 붙으면 나중에 나무가 없어져야 하는데 나무는 없어지지 않고 불도 계속 있는 것 봐서 나무가 있는데 불이 왔잖아요.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모세이어야 하고 오늘날 우리들이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모습은 꼴랑 보기에 모세 같은 경우에 도망쳤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거예요. 이게 떨기나무예요. 오늘날 성도의 모습이에요.
내 실력 내 능력 발휘하게 되면 그건 남한테 팡팡히 집니다. 안 돼요. 하지만 주님께서 목동이라도 주님께서는 세리라도 창녀라도 그 사람의 나무를 보지 않아요. 그 사람 둘레에 무엇이 덮쳐있는가를 보는 거예요. 주님의 능력이 덮쳐 있으면 그건 오케이입니다. 합격이에요. 구원에. 학교에서는 맨날 실력치려고 하는데 주의 능력을 보이라 그런 학교 없지요.
모세가 떨기나무 보면서 떨기나무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렇게 덮치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모세가 그걸 인정 안 하고 “저는 못 합니다. 못 합니다.” 맨날 못 해. “나는 안 됩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많은 백성을 건져냅니까? 아무리 내 아이디어 짜내봐도 그런 계획은 나올 수 없습니다.” 할 때 주님께서 출애굽기 4장에 보면 “모세야. 니 뭐 갖고 있느냐?” “지팡이 갖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팡이가 너를 가질 것이다. 니가 지팡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가 너를 가지는 것은 떨기나무가 지 능력으로 불을 피우는 게 아니라 불이 떨기나무를 타지 않으면서도 없어지지 않으면서도 덮치는 것처럼 지팡이가 너를 이끌어낼 것이다. 니는 지팡이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라.” 그래서 모세의 능력은 버리고 모세가 쥐고 있는 지팡이가 모세를 이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지팡이는 뭐냐 하면 지팡이에 모세가 이끌려감을 당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지팡이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지팡이와 너의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팡이를 던지라 했거든요. 지팡이 던지면 지팡이 되지 뭐가 될까 싶어서 던져보니까 이게 뭐가 되어있어요? 그림에. 뱀이다. 뱀이다. 뱀이 된 거예요. 세상에. 내가 지팡이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지팡이가 나를 쥐고 이끄는 거예요. 지팡이가.
전에는 내 소유였던 것이 이게 아니라 내 소유였던 것이 내가 그의 소유가 된 그런 겁니다. 내가 주님 믿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나를 주님의 소유화시킨 거예요. 그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모세에게. 내가 결정해서 예수 믿기로 결정했다, 첨에는 내가 예수 믿고 부처 안 믿고 예수 믿을 거야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라 예수님이 너를 믿게 했어가 되는 거예요. 주인과 주객이 바뀌어야 되는 겁니다. 내가 교회 왔어가 아니고 교회 보내게 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지팡이가 이렇게 용한 지팡이가 있으니까 모세가 겁이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안 나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여기 그림 나오지요. 그림 보세요. 지팡이 던지고 난리 났지요. 이 그림 보세요. 여기 강물에 지팡이를 담그니까 강물이 무슨 물이 되는가? 피가 되었지요. 여기도 지팡이로 지시하니까 온 개구리 다 나오지요. 개구리뿐만 아니고 여기 메뚜기 나오지요. 독종 나오지요. 날 벌레 나오지요. 사람들이 종기 나서 앓아눕지요. 전부 다 이건 뭐냐? 모세가 지팡이의 지시에 따라서 지팡이를 사용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마지막 재앙이 뭐냐? 마지막 재앙이 이 그림 보세요. 그림 얼마나 잘 그렸습니까? 이 유대인이 사는 집집마다 공통점이 있어요. 그 사람이 아이큐가 80, 90 되어도 관계없어요. 공통점이 있어요. 공통점이 집집마다 뭐가 발려있습니까? 여러분 그림에 뭐가 발려있어요? 피가 발려있지요. 이게 무슨 피냐 하면 어린 양의 피가 발린 거예요. 양의 피가 집집마다 있으니까 이 동네와 왔던 천사는 더 이상 다치게 할 게 없어요. 손댈 게 없어요. 그래서 천사들이 하는 말이 “가자. 넘어가자.” 넘어가서 유월절이 되었어요. “이 동네는 그냥 패스. 이 동네는 패스. 패스! 심판할 게 없어.”
하나님 보시기에 심판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어린 양의 피 보고 넘어가는 거예요. 간단하지요. 이 피가 어린 양의 피로 오신 분이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누구냐? 바로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한다고 히브리서에 보면 나와 있어요. 성경에.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의 피 외에는 우리가 자랑할 게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니 아버지, 옛날부터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질 줄 몰랐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발랐던 그 예언이 이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다 이루었으니 그 이루어진 것에 우리가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주일학교 설교(이근호) > 주일학교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율법 주심 201220 (0) | 2020.12.20 |
---|---|
되풀이되는 일 201213 (0) | 2020.12.13 |
요셉의 희생 201129 (0) | 2020.11.29 |
야곱과 이스라엘 201122 (0) | 2020.11.22 |
에서와 야곱 201115 (0) | 2020.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