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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프로이트 160712 본문

저서 & 기타(이근호)/80여명의 신학자들[부산강의]

프로이트 160712

정인순 2016. 7. 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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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한윤범


20160712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5-프로이트

(강의:이근호 목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1856~1939, 73년밖에 못 살았는데 그 사람이 정신을 분석한다는 겁니다. 정신을 분석한다는 말이 새롭게 들리는 이유는, 분석이란 말이 전에는 어디에 쓰였느냐 하면, 현미경에 안의 개구리를 분석한다든지 또는 금석, 물체를 분석하잖아요. 정신을 분석한다는 말이 상당히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왜 낯서냐 하면 정신이란 기본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에 들어오면 정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물질이 중요한 시대에요. 과학이 중요한 겁니다.

 

정신분석이란 정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서 인간이란 몸도 평범한 생물체에 지나지 않지요. 이 말은 그냥 밥이나 먹고 번식하면 그게 인생 다다. 아들, 딸 낳고 밥이나 먹고 살다가 나중에 힘 빠져 죽으면 끝. 그 외에 다른 의미가 없겠지요. 방금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정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지요.

 

인간이 산다는 기본이 인간의 신체라는 생물학적인 상황, 그것으로 분석은 끝난 겁니다. 특히 의학 같은 경우에.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몸 분석은 끝났잖아요.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니까. 아픈데 정신으로 다루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죠. 뒤에 두드러기 낳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습니까? 질문 자체가 성립 안 되지요. 여기 붉은 게 있는 정신적으로 문제 있습니까, 나쁜 짓했습니까? 이렇게 묻는 게 아니에요.

 

병원에 가면 나쁜 짓했느냐고 안 묻지요. 가만있어 보세요. 주사 한 대 맞으세요. 주사 한 대 맞으면 해결되는 것이고, 약 바르면 되는 겁니다. 그게 현대인들이 사는 기본이잖아요. 그게 좀 되고 난 뒤에 정말 할 짓이 없으면 정신이 무엇이냐? 인간은 어떻게 바르게 살고, 죽고 나면 어느 세계에 가느냐? 이것은 할 짓이 없을 때 심심할 때 돈 버는 일을 그만 둘 때 그때 여유로운 자가 하지 당장 급한데 주의 뜻이 어떠니 바르게 살겠다느니

 

급하다는 말은, 생물학적인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그 이야기가 전부거든요. 따라서 순서가 1순위가 인간은 생물적으로 인간 규명은 끝났다. 의학적으로 분석이 끝났기 때문에 몸 건강하면 기쁘게 살고 아프면 분석된 데이터에 의해서 약 먹고 주사 맞고 낫다. 여기서 더는 생각하지 말자. 이게 오늘날 과학적 인식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이란 게 인기 있을 리가 없지요. 보통 사람에게.

 

그런데 왜 정신분석학이 유명하게 되었는가? 약으로 주사로 병원에서 치료로 뭔가 해결되지 않다는 게 등장하면서 정신분석학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도 안 되는 게 있었어요. 불행하다든지, 나는 왜 우울하게 되느냐? 저 사람이 왜 그렇게 미우냐? 저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밥도 안 먹힌다. 너무 사랑해서 밥이 안 먹힌다고 병원에 가봐야 입맛 돋우는 것 잡수세요, 하고 끝난다 말이죠. 그것이 인간들이 요구사항에 합치 되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인간을 생물적으로 다룰 수 없는 다른 요소가 과학만능시대에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1페이지 위에서 세 번째 줄에 [참고로] 하고 나와 있지요. 신경증과 정신병인데 이것은 약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물론 이것을 오늘날 정신과에 다룰 때 약이나 주사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고 광기를 진정시키는 거예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에 머무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원인을 해결해 줄 순 없어요.

 

프로이트는 원래 정신과 의사입니다. [정신질환에 전공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 프로이트는 매일 신경증을 앓고 있던 사람들을 늘 만난다. 신경증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신경증이 뭐냐? 보통 정신과라 해서 정신병을 다루는데 신경증은 증세 좀 약한 것, 어느 정도 사회 적응이 가능한 상태고 정신병은 사회 적응이 안 돼요. 정신병은 정신과 치료로써 치료가 안 돼요. 진정하는 것이지. 정신분석학으로 정신병을 치료하지 못해요. 해명할 뿐이지 이유를 설명할 뿐이지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이 진리가 되는 이 사회에서 과학주의에 대한 수치심, 허점을 노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으로 의학으로 다 되는 게 아니구나. 문제 있구나.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가 인간을 볼 때 놓친 게 있다는 거죠. 인간을 해명하고 분석할 때 인간을 동물 실험하듯이 개구리 해부하듯이 인간을 낱낱이 해부했어요. 할 때까지 다 해보는 거예요.

 

프로이트 당시에도 두뇌를 해부했지만 프로이트가 거기에 알게 된 것은, 결국 남는 것은 두뇌에 대한 자극밖에 없더라. 어떤 자극을 했을 때 신경증, 정신병이 생기고 어떤 때는 생기지 않는다. 그것뿐이거든요. 그 과정에 대해서 왜 이런 자극에 대해서 나는 나폴레옹이다, 나는 대통령이다, 이런 형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의학이 관여할 바도 아니고 관여할 이유도 없고 그런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나는 대통령이라고 할 때 왜 동 서기라 하지 않고, 삼성그룹의 부장이라 하지 않고 대통령이라 하느냐? 그걸 모른다 이 말이에요.

 

과학이 자존심이 어느 정도 세냐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해명해야 과학주의가 진리답다는 자부심을 이 시대가 공유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이 세상에 과학적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까? 하면, 과학적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어,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되지, 라는 이야기를 해야 된다 이 말이요.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해명돼야 되는 거예요.

 

그럼 이 세상에 해결 안 되는 게 있습니까? 해결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다 해결 돼. 그러면 안드로메다는 가봤습니까? 그건 네 몫이야. 후손들이 앞으로 과학을 발달시키면 안드로메다에 우주선 보내서 연구할 거야. 그래서 과학이란 미지의 것이 남아있더라도 가능성을 열어둘 때 지금의 진리 값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과학이란 자체가 진리(과학=진리)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이야기할 건 없어요. 과학이라 왜 진리인지 증명해 줄 일만 생각하면 돼요. 연구를 못해서 모자란 것, 그래도 여전히 과학은 진리가 돼요. 그런데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데 과학으로 손댈 수 없다면 과학은 참지 못합니다. 용서가 안 돼요. 이것은 과학이 진리라는 명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과학이 틀릴 수 있다고 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납니다.

 

인간을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인간을 살리는 것만 아니고 죽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려버립니다. 내가 하는 과학적인 일이 진리가 아니면 오류가 되고, 오류는 이 시대에 악이 돼버려요. 의사가 하는 의학이 짓이 악마 짓이 된다고. 논리가. 그래서 과학이란 말이 단순히 종교도 있고 과학도 있고 문학도 있고, 이렇게 있는 게 아닙니다. 과학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과학이 모든 걸 다 접수하든지 아니면 과학 자체가 엉터리라든지, 도 아니면 모에요. 둘 중에 하나에요.

 

프로이트가 바로 그런 과학적인 인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의사들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신앙을 모르기 때문에 신앙을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거든. 의사가 만약에 예수 믿는다? 그런 일은 거의 없어요. 교회는 다니죠. 의사니까 대번에 장로도 되겠지요. 의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엉터리 예수를 믿든지 아니면 자신이 의학 자체가 죄라는 것을 인정하든지 둘 중에 하나 돼야 돼요. 의학도 옳고 예수도 옳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의사가 그걸 판단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로 과학의 전문가로 종사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기 자아성으로 자존심으로 굳어있는 입장이란 말이죠. 그래서 성경말씀이 의학과 다를 리 없다는 거예요.

 

어떤 과학자가 예수를 믿는다? 이건 터무니없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과학자로 예수 믿는다는 경우 대표적으로 창조과학회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과학을 하면서도 예수를 믿는다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거짓말쟁이에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들은 핑계대기를 과학을 통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음을 증명해내겠다는 겁니다. 거의 미친 사람이 아닌지 저는 그렇게 보고 싶어요.

 

창조론이 뭐냐? 진화론의 일부에요. 진화론은 나쁜 게 아니에요. 솔직한 것이지. 인간이 꺼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진화론에 다 모았어요. 진화론 바깥으로 인간은 나갈 수 없습니다. 진화론에 안에 창조론이 들어있어요. 창조론이 진화론 반대해봐야 진화론이 약간 부풀어진 거예요. 그 경계선 밖으로 못 나가요. 세상에 하나님은 과학으로 증명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성경은 창조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지금까지 이야기한 거예요. 프로이트는 과학자이면서도 과학자의 자존심을 좀 꺾고 과학이 다가 아니란 것을 느꼈던 사람이에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할 때부터 이단 소리를 들을 각오가 돼있어야 되고, 과학에 한계가 있다는 말은 과학자가 할 소린 아니거든요. 모르는 게 있다는 건 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면 안 돼요. 과학은 한계가 없어야 진리답거든요. 갈 때까지 가보는 거죠. 아직까지 측정기구가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그렇고, 아직까지 연구가 약간 어설퍼서 그렇고, 세밀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기존의 과학을 전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부정하려면 삿갓 써야 되고 자동차 타지 말아야 되고 비행기 타지 말아야 되고 컴퓨터 부셔야 되지요. 시계 차지 말아야 되죠. 이게 모두 과학의 산물인데. 로켓이 목성에 가는 걸 보세요. 왜 과학에 대해서 시비 겁니까? 컴퓨터의 정확성 아니면 로켓이 목성에 못 가잖아요. 인간이 달에 서지 못하잖아요.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람과 화상통화를 못한단 말이죠. 이게 전부 과학의 힘이잖아요. 전등 있고 선풍기 켰잖아요. 과학의 힘이에요. 신발부터 해서. 땅 파면 이 옷 나옵니까? 안 나오잖아요. 전부 자연물 중에서 과학적으로 과정 거쳐서 옷을 입었던 말이죠. 과학을 모독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과학을 모독하려면 옷을 벗고 다니든지 그래야지요. 안경을 왜 씁니까, 아플 때 판피린은 왜 먹는데? 과학을 그렇게 싫어한다면 그냥 살다가, 기껏 원시인들 수명은 20~30이면 다 죽잖아요. 그렇게 죽어야지 왜 오래 살아요. 과학의 힘입니다.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신병은 왜 생깁니까? 과학이 진리라면 정신병을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 과학은 정신병, 신경증 해결 못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면서 신경증이 뭐고, 정신병이 뭔지 알아야 되겠지요. 신경증이란 말은 잘 안 쓰는데 노이로제라고 많이 쓰죠. 노이로제는 여러 가지 있는데, 히스테리는 아무 이유 없이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갑자기 턱이 돌아간다든지 눈이 돌아간다든지 갑자기 열이 난다든지. 어떤 증세가 없는데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걸 히스테리라 합니다. 흔히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하죠. 어떤 말에 대해서 과도한 행동을 나타냈을 때. 요새 아가씨가 말이야, 상사가 말하면, 갑자기 커피를 들이킨다든지, 누가 결혼한다는 소리 들으면 소릴 지른다든지, 이런 행동을 히스테리라고 해요.

 

정신병은 사회 적응이 되지 않는 것, 신경증은 그것보다 증세가 약해서 사회 적응은 되는데 몸은 본인이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강박증, 도착증. 뭔가 이상한 과정을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야 하는데 여자의 속옷이나 스타킹을 만지면서 흥분하는 것, 도착증이요. 주로 성적인 경험이 많지요. 우울증, 잘 아시죠. 좋으면 좋다고 까불고 싫으면 싫다고 죽고 싶어 하고. 공황장애. 혼란 상태인데 비슷한 것이 대인기피증, 마이크 쥐면 벌벌 떠는 것, 사람 앞에 서면 식은땀이 나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단순히 내 생각뿐만 아니고 신체가 반응을 나타낼 때 그걸 신경증이라 합니다. 사람 앞에 서면 긴장 돼, 라고 말만하면 이건 신경증도 정신병도 아니에요. 그런데 마이크 쥐면 갑자기 땀이 나고 자기가 자기 몸을 조절 못할 때 그런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히스테리 환자는 어릴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발생된다. 언어를 통한 자기 동일성이 불안정해진다.]

 

어릴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프로이트는 보고 있어요. 아기가 산에서 떨기나무가 불 붙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그 현장에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지요. 예수님뿐만 아니고 모든 아기를 태어날 때 그 현장에 아빠, 엄마, 아기 있지요. 그걸 삼자관계. 장차 신경증이 되고 정신병이 되는 모든 원인은 삼자관계에서 아이가 후천적으로 정신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방금 후천적이란 말했지요. 그럼 선천적인 것은 뭐냐? 아기는 동물, 물컹물컹한 신체덩어리에 불과해요. 도롱뇽이나 개구리 또는 고양이, 개, 소, 원숭이와 인간을 동급으로 보면 돼요. 이게 바로 과학적이에요. 제가 이 과학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인간은 정신이 위주지 신체가 위주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지요. 인간이니까 자존심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걸 북한식 용어로 하면, 최고 존엄성이 있고 싶지요. 그런데 아프면 어디 갑니까? 절에 갑니까, 교회 갑니까? 병원 가지고. 병원에서 의사가 뭐로 봅니까? 정신 소지자로 봅니까? 동물로 봐요. 전쟁터에서 의사가 없으면 수술을 누구한테 맡겨요? 수의사한테 맡겨야 되지요. 난 동물만 다룹니다, 이래서는 안 되잖아요.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미 정립됐어요. 인간은 정신으로 돼있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세포로 돼있어요. 아니면 우린 병원에 갈 필요 없어요. 인간은 약 60~70조개의 세포로 돼있습니다. 그것도 20조, 100조 하다가 그랬는데 지 마음대로에요. 인간의 두뇌 속에 쓰임새의 관계가 백조에요. 백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모든 수소 원자보다 많아요. 엄청나지요. 그걸 인간 신체의 신비라고 하는데.

 

인간이 신비롭다는 자체가 과학이 진리라는 뜻이에요. 20년, 200년 후는 모르고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는 해명이 안 된다, 신비로움이 남아있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그러니까 과학은 여전히 진리 값을 한다는 뜻이에요. 거기서 누락된 것이 바로 정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이야기했을 때 주위에 있는 모든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프로이트를 이단으로 간주해서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한 거예요. 프로이트는 그게 아니고,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프로이트보다 더 과학을 따돌리고 정신으로 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 제자 라캉이란 사람이 있어요.

 

어쨌든 프로이트 입장에서는 히스테리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발생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빠, 엄마, 자기, 삼자관계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삼자관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최초로 아기가 사랑하는 대상은 엄마입니다. 이게 사단의 시작이에요. 아기는 자기를 사랑할 수 없어. 태어날 때부터 의존적입니다. 이건 원숭이도, 개도 마찬가지에요.

 

의존적이란 말은 과학적으로 보면, 독자적이 아니다. 독립성이 상실됐다는 말입니다. 과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물리학에서 말하는 질점으로 봐요. 독자적인 점으로 본다고. 독자적인 점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다른 질점, 다른 사물과 물체의 역학적 힘을 논하는 것이 뉴턴의 만유인력이잖아요. 힘의 관계입니다. 거기서 과학도 나왔고 의학도 나왔어요. 의사가 환자를 볼 때 질점으로 봅니다. 이 세포가 문제 세포와 연결이 안 됐는지 이렇게 보지요.

 

인간은 세포덩어리에요. 단백질덩어리로 보는 거예요. 단백질덩어리를 수술해놓고 아저씨 수술 잘됐습니다, 라고 하지요. 이 아저씨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진짜로 말하면 아저씨라고 하면 안 돼요. 물질덩어리 수술 잘됐습니다, 라고 해야지요. 그러면 기분 나빠하지요. 왜 기분 나빠할까요? 물질덩어리 아니에요? “선생님, 수술 잘됐습니다.” 이러면 기분 좋아하고. 거기에 ‘나’가 있지요.

 

프로이트는 나 자체를 공격하지요. 나는 후천적이라는 거예요. 이걸 2차지형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1차지형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인간의 정신 내부에 1차지형과 2차지형이 있다는 거예요. 후천적, 2차 이런 개념은 1차 있고 이미 선행적인 것이 있지요. 그것이 과학적인 동물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정신분석을 하지만 과학자가 맞는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기존의 과학에서 놓친 것을 내가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히스테리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은, 사랑이란 말은 선천적이 아니고 후천적이에요. 아기는 엄마 의존적이에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은 엄마에 예속된 거죠. 이 말은 분리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기는 자아라는 게 없어요. 엄마가 자기 자아를 대신하고 있고 대신하면 되는 거예요. 자아성이 분리되지 않는 겁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제삼자가 볼 때 두 사람이죠. 그런데 아기는 한 사람이에요. 아기는 자아성이 없기 때문에 엄마와 한 덩어리로 있는 겁니다. 이게 선천적이죠. 자연스러운 거죠. 그런데 커가면서 엄마 따로 자기 따로 되잖아요. 그럼 이게 문제 있는 거예요, 정상적인 거예요? 이게 비정상입니다. 인간 자체가 비정상이에요. 동물에서 인간 된다는 자체가 비정상이에요. 태어나면서.

 

그렇다면 인간의 정상은 뭐냐? 프로이트는 다시 무기물로 돌아가야 된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이게 정상이에요. 프로이트는 과학자기 때문에 인간은 물질덩어리입니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거예요. 아무리 인간이 살아서 뛰어봐야 비행기 타봐야 나중에 하늘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죠. 인간이 비행기란 과학적 도구를 사용해도 다시 땅으로 돌아오잖아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보약 먹어봐야 죽음이죠. 프로이트는 죽음의 욕동, 죽음의 충동이 인간의 가장 선천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다. 그렇게 봐야 과학이 진리라는 우리 바운더리 안에 유지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프로이트에 대해서 욕하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그게 싫은 거예요. 너무 정확하고 과학적이라서 싫은 거예요. 프로이트는 그 사람을 왜 욕합니까? 너는 과학이 진리라고 하면서 왜 일관되지 못하느냐? 사람을 죽인 것이 죄가 된다. 그게 왜 죄가 되지요? 나무 치고 책상 치는 것은 죄 아니죠. 그런데 사람 치는 것은 왜 죄가 됩니까? 이미 과학을 떠난 거예요. 사람은 세포덩어리죠. 세포덩어리를 친 거지 사람을 친 게 아니잖아요. 왜 일관되지 못해요.

 

급할 때는 병원에 오면서 최고 존엄성을 왜 주장합니까? 인간에게 존엄성이란 게 없어요. 없는데 왜 얼토당토않게 주장하느냐 말이죠. 그게 다 정신병이란 겁니다. 특히 라캉이 주장해요. 인간이 자기 존엄성, 가치를 주장하는 게 정신병이에요. 다시 말해서 정신병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게 정신분석학이에요. 인간의 정신병 중에 하나가 제사 지내는 거예요. 예배드리는 것. 세상에 보이지도 않은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이런 망상이 어디 있습니다. 완벽한 망상증이에요. 왜 망상증임에도 불구하고 아닌 걸로 치느냐 하면, 거기서 돈이 나오고 권력이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그 권력은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 나를 위한 능력이에요.

 

나는 어디서 나왔는가? 나 자체가 정신병자에요. 나는 엄마와 분리되면서 나가 생긴 거예요. 이때부터 우리는 반항의 기질이 있습니다. 벌써 내가 엄마와 하나 되지 않고 엄마 따로, 나 따로, 아빠 따로 될 때부터 사단 났어요. 문제 터졌어요. 한 평생 지옥 생활해야 돼요. 사람이 괴롭다. 왜 괴롭습니까? 자아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냥 이슬 먹다 죽지. 왜 괴로운가? 사드 때문에 괴롭다. 칠곡 주민들 사드 때문에 데모하고 있거든요. 내가 사는 땅에 사드 있기 때문에.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고?

 

모든 것이 나의 의미로 환원되지요. 교회 나간다, 예수 믿는다, 왜? 천당 가려고. 이게 정신병이라니까요. 사단 난 거예요. 전부 다 히스테리 환자들이에요. 이유도 없이 도끼 들고 남 죽이고. 분노조절장애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욱하는 성질 없습니까? 있지요. 참는 거예요. 참는 것은 치료가 아닙니다. 그냥 진정하는 거지요. 아까도 이야기했지요. 정신병은 치료되는 게 아니고 약물로써 진정하는 거예요.

 

프로이트는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엄마가 있었는데 그 둘을 쪼개는 사람이 등장했으니 아버지라는 겁니다. 같은 성을 가진,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엄마를 경쟁자로 삼고, 딸은 엄마와 동일시해서 아버지를 경쟁자로 삼는 삼자관계가 일어나는데 그 모든 것이 리비도, 충동에서 일어납니다. 충동은 생물학적으로 일반 짐승들과 똑같이 갖고 있는 생존의 본능과 또 하나 죽음의 본능. 힘들면 죽고 싶고 좋으면 살고 싶은 것, 여러분 정신분석 끝났습니다.

 

인간은 뭐냐? 인간은 없어요. 기분 좋으면 살고 싶어 하고 존재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기분 나쁘면 죽고 싶어 하는 그 괴물이 나중에 교육 받기를 그걸 인간이라고 외부에서 교육받은 거예요. 정신분석학 참 쉽지요. 인간이라는 자존심만 포기하면 정신분석학은 쉽습니다.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분석학은 이해하기 힘들어요. 내가 난데없는 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분석학만큼 쉬운 게 없어요. 왜 괴물인가를 증명하는 게 정신분석입니다. 한시도 사람인 척하는 건 용납되는데 사람이라고는 하지 마라. 이게 정신분석학이 요구하는 겁니다. 정신이 돌았거든 정상이고, 멀쩡하거든 비정상인 줄 알아요. 그게 정신분석학이에요. 그러니 프로이트가 욕 안 먹을 수가 있겠어요? 모든 면에서 욕 얻어먹는 거예요.

 

사랑받지 못했다는 말은, 사랑이란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쁘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기는 자기 자신이란 게 없어요. 아빠와 엄마의 투쟁 사이에서 거기서 같은 성을 따라서 골라잡습니다. 아이가 보니까 아빠는 남근을 갖고 있어요. 음경, 생식기. 아빠와 엄마, 삼자관계에서 뭔가 차이점을 발견합니다. 아빠는 생식기, 음경이라는 게 있는데 여자는 음경이라는 게 없어요. 원래 있는 게 정상인데 없는 걸 삭제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걸 정신분석학에서는 거세라 해요.

 

거세나 삭제 같은 것이 삼자관계 속에서 자기는 엄마와 하나지요. 자아는 없어요. 엄마가 자기 자아를 대신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맞은편에 아빠가 등장한다면 아빠한테 엄마가 눌리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의 남인 아빠가 아기의 남이 돼요, 안 돼요? 엄마와 하나기 때문에 남이 되겠지요. 남이 된다는 말은 동물에서 자기가 아닌 제삼자는 자기를 공격하게 되지요. 여기서 윤리도덕이 생겨나는 거예요. 너 내 말 안 들으면 엄마처럼 잘라버린다. 라는 거세의 위협을 받게 돼요. 얘한테 그런 소리하면 안 된다? 얘가 없다니까요. 얘는 엄마에서 일시적으로 나온 어떤 부산물로 생각하면 돼요. 얘는 자아가 정립 안 된 상태에요. 인간의 자아는 1년 6개월에서 3년 내에 생기는 거예요. 라캉에 의하면 거울단계에서. 자아라는 게 없어요.

 

아기가 엄마를 처음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엔 그게 아니고 엄마가 아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엄마의 욕망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는 겁니다. 엄마가 뭘 욕망하는 줄 몰랐는데 아버지를 보니까 아버지는 있는데 엄마한테는 없는 게 있어요. 음경이죠. 그러니까 얘가 생각하기를 엄마가 나를 아빠처럼 생각해서 욕망한다고 오해하게 되죠. 그러나 오해란 말은 잘못된 말인데 원래 진짜가 있고 다를 때 오핸데 얘는 진짜라는 게 없어요. 가르친 대로 올 뿐이에요.

 

이 모든 가르침, 내 말 안 들으면 거세해 버린다는 위협과 폭력, 양육, 이것을 사랑이라 하는 겁니다. 이게 왜 사랑이냐 하면, 사랑은 좋은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다, 포근한 것이라는 그런 느낌의 사랑이 아니라 그들은 부모로부터 이걸 사랑이라고 받았기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채우는 거예요.

 

그런데 사랑의 개념이 결국 뭐가 되느냐 하면, 영원토록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이 되겠지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붙드는 거죠. 태풍이 오면 배를 육지의 말뚝에 묶든지 바다 속에 닻을 내리든지 해야 되겠지요. 이게 없으면 정신병이라는 거예요. 프로이트에 의하면. 아기가 되던 어른이 되던 반드시 의존하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이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죽고 난 뒤에 이런 행동이 옳을까, 그를까 물을 사람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친구라는 게 사랑의 추에요. 사랑의 핵심이라니까. 그게 없으면 사람은 노이로제와 정신병에 걸리는 겁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우리가 알기 전에 흔히 상식적으로 정신병자는 자립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잘못된 생각이에요. 인간의 외심이라고 표현하는데, 외심이란 이상한 말이죠. 바깥에 있는 심지? 인간 속에 있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핵심추가 사실은 바깥에 있는데 그게 인간 내부에 자리 잡을 때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거예요. 믿는 구석이 있는 거예요. 믿는 구석이 있으면서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신분석학에서 치료할 때 잃어버린 삼자 관계, 특히 아버지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하는데 테베의 라이오스란 왕의 아들이 오이디푸스에요. 델포이에서 아폴로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는데 뼈를 준 자를 죽이고 살을 준 자와 짝이 준다는 계시를 받습니다. 뼈를 준 자니까 아버지고, 살을 준 자는 어머니죠. 오이디푸스의 아버지가 신탁을 받고 난 뒤에 아기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술 먹고 실수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의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서 아기를 죽이려고 했어요. 오이디푸스란 말이 발목이 부었다는 뜻이에요. 아기를 나무에 매달려고 했는데 집행자가 요셉처럼 애굽에 20냥에 팔아먹듯이 고린도에 팔아먹었어요.

 

그러다 스핑크스 만나고, 수수께끼 풀고 오이디푸스가 죽지요. 오이디푸스가 죽는다는 말은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풀었던 수수께서 속에 해석자가 수수께끼 속에 포함돼있기 때문에 푼다는 신화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수수께끼가 푸는 것이 제삼자가 풀어서 굴복시킨 게 아니고 푼 인간이 수수께끼대로 운명을 살 수밖에 없는 곳이 포함되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결국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 신탁, 고린도에 가서 배다른 동생이 어디서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느냐, 이런 식으로 하니까 자기 아버지와 엄마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 신탁을 받으러 테베로 올라가다가 길에서 자기 아버지를 만나서 죽였지요. 자기도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까 신탁, 신의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신화에 나오는 비극이란 말이죠. 오이디푸스의 비극,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를 차지한다는 그 내용이 비극이라면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이야기에요. 모든 인간은 비극으로 태어나서 마지막에 비극으로 끝나는 거예요. 잠복된 정신병자들이에요.

 

아무리 독립하고 싶지만, 오이디푸스가 독립했잖아요. 자기가 왕이니까. 왕은 최고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만큼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없어요. 최고의 자리지만 최고의 자리가 가장 비극적인 자리에요. 오히려 최고의 자리가 인간을 대표해서 인간은 왜 울고불고, 부처가 이야기했습니까? 생로병사의 비극, 모든 비극의 원인은 이미 태어난 환경 자체가 운명 자체가 비극적인 거예요.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것을 프로이트가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봅시다. 콤플렉스는 방해, 장애란 뜻이죠. 뭔가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거침돌을 내부에 장착하고 있는 것. 내부에 빼내고 싶어도 빼내지 못하는 장애물.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내 몸의 가시 빼달라고 기도했지요. 주님이 그 은혜가 네게 족하다. 사단의 가시에요. 사단이 있어야 인간이 된다는 말. 인간이 사단 없이는 천국 가는 사람이 못 된다는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인간 자아는 천국에 못 가요. 새로운 자아를 부여받아야 돼요. 나는 사탄과 단짝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자만 천국, 아들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아들의 주되심은 반드시 죄인이 없이는 주가 못 되기 때문에. 죄인을 의로 바꿔줘야 주가 되거든요. 프로이트가 그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히스테리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렇고, 강박증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히스테리는 자기가 성공했다고 만족하는 경우가 없어요. 항상 불만이라. 그런데 강박증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너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너무 완벽해. 그래서 지하철 타고 난 뒤에 손을 열댓 번을 씻고. 나는 완벽하니까. 나는 완벽해야 돼. 조금도 흠집이 나면 안 돼요. 오류가 있으면 안 돼요. 억지스러운 인생. 양쪽 다 억지스러운 거죠.

 

[도착증 환자는 그는 거세(부모의 강제적 관여)를 거부하고 기본적인 환상 속에 빠져버린다.] 부모 자리에 부모를 대신한 물체나 사물을 채워서 허점을 메우려는 하는 게 도착증. 우울증은 자기애를 충족시킬 대상을 상실한 것을 못내 아쉬워서 자기 자신한테 애도하면서 과도한 알레르기 면역체제, 그러니까 일종에 알레르기 현상이에요. 자기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게 자기 학대와 자기 제거, 실제로 죽어 버릴까. 난 나쁜 놈이야.

 

정신병은 이유도 몰라요. 신경증은 뭔가 자기가 어떻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신병은 그것조차 안 돼요. 정신병은 두뇌가 고장 나서 치매, 간질은 줄기세포로 바꾸든지 증세를 완화시키는 수술을 하면 되지만 심인성, 정신적인 문제의 정신병은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이 있는데 편집증에는 의처증, 의부증 같은 게 있습니다.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이 어떻게 다른가?

 

[정신분열증은 모든 기표로서 하나의 개념 혹은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증세.] A, B, C, D, E, 이런 것들을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여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나폴레옹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나폴레옹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 된다. 정신분열증, 기독교 신자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구원받기 위해서 일어난 일, 주께서 하신 일. 비슷하지 않아요?

 

편집증은 하나의 의미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 좀 비슷하지요.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하나로 모으는 거고, 나는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걸 전부 다 강제로 설명하는 것. 내가 말하면서도 여러분이 차이점을 알았는지 의심돼요. 내가 누군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로 모아질 때 정신분열증이에요.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나폴레옹이어야 돼.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하느냐, 할 때 이건 편집증. 네가 약국 앞에서 어느 남자와 바람피웠지? 남자가 의처증이 있을 때 그 여자가 어떤 행동을 해도 자기가 정당함을 내가 너를 의심하는 게 정당함을 증명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정신분열증이 편집증보다 심하다고 보면 돼요. 내가 나폴레옹이다가 아니고, 나폴레옹이 나다, 이래 보면 돼요. 같은 말인가. 내가 나폴레옹 돼야지, 그게 아니고 그건 편집증이고. 나는 없어. 내가 나폴레옹 돼야 될 이유도 없어. 왜냐하면 처음부터 내가 나폴레옹이기 때문에. 흔히 말해서 미쳤다. 미쳤다고 하는 것은 정신분열증을 말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10분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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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2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5-프로이트

(강의:이근호 목사)

 

 

2페이지부터 봅시다. 양이 많아서 붕붕 뛰지만 빠진 것 없이 하겠습니다.

 

프로이트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항상 동물적인 충동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걸 아시고 동물적인 충동이라 할 때 인간이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인간의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예요. 내 안의 충동이 나라는 껍데기를 사용해서 말을 하는 거예요. 말하면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교육받은 것이 담겨있는 거예요. 교육받았다는 것은 자기 곁에 누가 있다는 거잖아요. 교육과 정신은 그냥 맹탕이 아니고 반드시 누가 관여한 거예요.

 

누가 관여하느냐 하면, 전통적으로 조상과 선조, 아빠, 엄마가 혈통적으로 관여한 거란 말이죠. 엄마로부터 태어난 게 정신으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냥 세포덩어리로 태어나게 했고 엄마, 아빠가 강제로 교육을 시키고, 강제란 말은 어폐가 있지만 자연스럽게 교육을 시키는데 그 교육이 아이의 충동과 마주하겠지요. 그러면 아이는 빈 몸인데 엄마가 들어온 걸 다 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 속에 충동이 있는 거예요.

 

그 충동은 뭐냐?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기분 좋으면 좋고, 슬프면 죽고 싶고. 그것뿐이에요. 그러면 교육할 때 말 안 들으면 때리죠. 맞으면 아프잖아요. 아프면 불쾌하지요. 불쾌하게 되면 불쾌한 것을 없애는 방법을 터득하겠지요. 그 터득이 정신 발생이에요. 드디어 요령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내 몸에 쾌락은 늘이고 불쾌는 줄일 수 있는 반응을 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 말 잘 들으면 젖 줄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기쁨, 쾌락이 이상스럽게 신체 가운데서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더란 말이죠. 이걸 욕동이라 합니다. 또는 본능. 어떤 특정 기관을 통해서 강성해져요. 태어나서 6개월에서 1년까지 입술 근처에 쾌감이 와요. 쾌감이 오면서 덩달아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도 동반하겠지요. 이것을 성적 욕망이라 합니다. 욕망은 욕망인데 성적으로 구분지어지는 욕망이에요. 프로이트는 이걸 구순기라 해요. 입술을 통해서 정신이 발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프로이트에서는 성적 발달과 동반해서 정신발달이 이뤄지는 겁니다. 질문을 이렇게 해야 돼요. 정신발달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성적 발달을 토대로 해서 이뤄집니다. 왜? 이게 과학이니까. 신체성이니까.

 

그 다음에 구순기에서 항문기라 합니다. 배변이 안 되면 기분 나쁘다가 배변이 되면 시원하죠. 오줌 쌀 때. 그게 1~3살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뭐든지 만지는 것마다 입으로 가져가고 그리고 엄마의 젖꼭지에 대지요. 살아야 되니까. 그런데 아기가 살아야 된다고 합니까? 아니에요. 이것은 젖먹이동물이 다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동물이라 보면 돼요. 동물은 분리되지 않아요. 어릴 때는 엄마 신체의 일부에요. 그냥 한 신체라 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사랑의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신체의 일부란 말은 엄마는 아기를 사랑하고 아기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와 하나 되는 겁니다. 아빠는 어디 있느냐? 아기에게 아빠는 필요 없어요. 엄마가 최고에요. 엄마가 젖 주니까. 아빠의 젖꼭지 빨고 그러지 않습니다. 정신적으로 엄마와 분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요.

 

그 다음에 3~5살을 남근기, 여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주어지게 되는 겁니다. 입술 근처에서 기쁨, 항문 근처에서 기쁨 다음에 본격적으로 음경 근처에서 성적으로 쾌락과 불쾌가 발생되는 겁니다. 다섯 살이 끝나면 잠복기에 들어가요. 사춘기에 다시 드러나면서 모든 정신발달은 사춘기에 끝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발달은 결국 신체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을 억압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러면 억압은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억압하느냐? 인간의 불쾌, 유쾌를 억압하는데 여기 제삼자 관계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처음에 억압하겠지요. 지금 5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교육이 이러면 아빠, 엄마가 싫어해. 이렇게 아빠, 엄마가 억압하잖아요.

 

프로이트는 인간을 두 개의 지형도로 이야기로 해요. 1차지형도는, 의식과 무의식과 전의식으로 나눕니다. 의식과 무의식은 무의식이 억압당한 상태에서 의식이 되고, 의식에서 강제로 눌린 것을 전의식이라 합니다. 전의식은 의식에 포함돼요. 무의식은 아무리 끄집어내려고 해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 이걸 원억압이라 하는데, 용어들을 계속 만들어내니까 용어 설명하게 되면 강의가 매끄럽지 못해요. 여러분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전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용어에 대해서는 대충만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도저히 의식할 수 없는 잠재돼있는, 잠재돼있다는 것은 전의식이고, 잠재돼있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원 억압은 리비도, 그냥 동물적인 충동, 불쾌, 유쾌라는 근본적인 충동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이래서는 안 돼, 여기선 조용해야 돼, 라고 억누를 때 전의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의식을 자꾸 무의식으로 오해하는데 전의식은 의식에 속하지 무의식이 아니에요. 전의식은 잠재의식이 정확한 말이에요. 불쑥 튀어나오는 것.

 

평소에는 기분 나쁜 사람이라도 참아요. 참다가 술 한 잔 먹고 한국의 민중들은 개나 소밖에 안 된다고 나왔을 때 그게 잠재의식이 의식화 된 거예요. 아시죠, 그 사람이 누군지? 교육부에, 뉴스의 초점이 된. 그건 무의식에서 나온 게 아니고 잠재의식, 전의식에서 나온 거예요. 이런 지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억압하느냐? 어릴 때 아빠, 엄마와 삼자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육이 강제하겠지요. 커서는 친구, 학교 가니까 교사가 있고, 교회에선 목사가 있지요. 사회, 직장에는 상사가 있을 거고, 군대 가면 고참이 있을 거고.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내가 이 자리에서는 처신을 잘해야 돼. 행동 똑바로 해야 돼, 라고 스스로 자기를 억누르겠지요. 그렇게 생긴 것은 슈퍼에고, 초자아라고 해요. 초자아와 이드, 알 수 없는 괴물과 그리고 에고, 현재 나라는 이 세 가지를 2차지형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을 이렇게 보는 겁니다.

 

정신을 이렇게 보면서도 우리가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생물학적인 충동에서 유발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거죠. 인간은 어떤 자리에서 점잖은 체하고 잘난 체하지만 환경이 가장 기본적인 동물적인 극한환경에서는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종교, 신앙이라든지 믿음, 소망, 사랑,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그저 내가 잘 되고 싶다는 것도 없어져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있을 때 나가 있습니까? 혼자 있을 때 나가 있어요, 없어요? 혼자 있을 땐 나라는 게 없어요. 나가 없는 게 아니고 나란 행세를 안 한다니까. 나란 행세는 타자, 타인 앞에서 그 순간 구성하게 돼있어요. 급조하죠.

 

나중에 자식들 결혼시킬 때 상견례하고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들 보세요. 가관입니다. 점잖은 체한다고. 그 위치에서 나는 이런 행동을 해야 한다. 그때 나는 상황에 맞게 급조한 거예요. 여기서 잘못 보이면 내 딸, 내 아들이 결혼해서 트라우마가 될 수가 있어요. 행동 조심해야 돼요. 자기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있는 폼, 없는 폼 다 내야 돼요. 끝나고 나면 한복 벗어던지면서 힘들어서 두 번 다시 못하겠다고 하지요.

 

초자아가 자아를 늘 의식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드가 또 당기죠. 초자아가 현실에서 타협해서 내놓는 것을 현실원칙이라 해요. 리비도는 쾌락원칙. 그래서 프로이트는 현실원칙과 쾌락원칙의 균형을 맞추면서 인간은 그때그때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산다고 보는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니까 그렇다면 지옥에 있는 공자, 맹자 또는 석가모니,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인간이 착하게 된다는 것, 바르게 된다는 것은 뭘 해야 돼요? 초자아는 자기보다 월등한 전통이라든지 윤리와 도덕을 말하거든요. 윤리도덕에서 자아가 정신 바짝 차리고 그걸 지켜내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된 인격적인 인간답게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본받는 의와 거룩과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게 아니냐고 생각하겠지요. 맹자나 공자나 석가모니나 성화론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이 보이죠. 그런데 프로이트는 애초부터 그걸 거부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노골적인 정신병이 된다는 겁니다. 왜? 안 되는 걸 억지를 부리니까.

 

그게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근본을 속이면 안 돼요. 근본은 뭐냐? 쾌락원칙이거든요. 착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힘들게 산다는 것. 직장에서 넥타이 바짝 매면 숨도 못 쉬어요. 목사들이 개척교회 할 때 장점 중에 하나가 설교할 때 넥타이 안 매고 남방 걸치고 하는 것도 포함돼있다니까. 그냥 편안하게 하는 것, 서서 안 하고 앉아서 하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쾌락을 위해서. 까짓 것 주 안에서 자유인데, 뭐. 이것도 안 한다고 지옥 가고, 한다고 천당 가는 것 아니잖아요.

 

이런 윤리나 모든 도덕이 아무리 칭찬이 주어져도 자아는 점점 더 통합되기보다 균열이 심해져요. 균열된 이것을 주체라 하는 겁니다. 자아가 아니고 주체. 자아는 자꾸 통합하려 하고 주체는 갈라지게 하는 거예요. 자아는 자기가 다루지면 주체는 자기가 다룰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어요. 그래서 자아는 늘 주체를 숨겨요. 그러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위선자에요. 기만하고 위선적이고 연극배우고, 자기가 자기를 연출하고 꾸미고.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들통 나는가? 3페이지에 보면, 잠잘 때 드러나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잠잘 때 드러나는데 정신과 오는 환자들은 평소에 대낮에 길거리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까 남한테 피해를 주잖아요. 요즘 말로 하면 환자가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환자 따로 있고 정상인 따로 있잖아요. 혼자 잠자면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문제는 대낮에 그런 짓하고 몽유병 환자처럼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이런 게 문제가 된단 말이죠.

 

프로이트는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 자유연상이라고 일종의 최면 비슷한데 환자의 얼굴 보면 안 돼요. 비스듬히 앉아서 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마음대로 끄집어내세요. 대낮에 꾸는 꿈이라고 보면 돼요. 최면도 꿈이니까. 속에 있는 꿈을 마음대로 발설하게 합니다. 발설이란 말은, 그 매개가 언어에요. 말을 하게 합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지요. 인간은 자아가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이드,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놓고도 우리는 남들 앞에서 내가 말했습니다, 내 뜻은 이렇습니다, 라고 거짓말해요. 나라 할 때 나가 뭡니까? 이드에요, 슈퍼에고에요? 이드지요. 충동이죠. 그런데 사람은 자꾸 나라고 위장하잖아요.

 

사람이 정신 바짝 차린다 할지라도 그래서 이성적으로 제대로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노이로제에 의하면 삐질삐질 땀이 나고 긴장이 된다는 말은 지금 내가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중이라는 걸 표하고 있는 거예요. 목사들 설교할 때 편하게 합니까, 아니면 정신 바짝 차리고 합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하잖아요. 예배시간에 설교와 그냥 평소에 편하게 하는 말투가 다르잖아요. 설교시간에 막 농담하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치료방법이 뭐냐 하면, 잃어버린 아버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시 박아주는 거죠. 사람이 남한테 피해줄 정도로 정신병이나 신경증이 되는 것은, 흔히 말하는 환자가 되는 것은 본인을 잡아줄 수 있는 추가 없어요. 남들이 자유롭게 웃으면서 사니까 자기도 모방해서 웃으며 살면 되는 줄 아는데 이게 흉내 내다가 정신병이 더 도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도끼로 쳐 죽였어요. 왜 죽였느냐고 하니까 남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거예요.

 

결국 타인을 투사해서 자기 자신을 가져오는 거예요. 행복해 보인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웃는 모습이 유쾌했잖아요. 그런데 유쾌할 수 있는 이유가 어릴 때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죠. 이제는 엄마가 늙어 죽었는데 또는 지금은 엄마가 치매 걸려서 요양병원에 가 있는데 옆에 있더라도 귀찮은데 짐이 되는데. 이제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남한테 간섭받기 싫고 내 일은 내가 결정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것은 초자아한테 배운 거예요.

 

예를 들면, 입사면접장에서 면접관이, “바이어와 일을 처리할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저는 엄마한테 물어보고 할 거예요.” 그러면 입사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안 물어보게 되면 정신병자 된다니까요. 물론 엄마든 아빠든 대상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쨌든 여전히 이드 안에 이드는 그것, 그냥 괴물, 괴물에서 점잖은 내가 되기 위해서 초자아한테 간섭받고 사는 거예요. 간섭받는다는 것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어요. 그러면 취직도 안 되는데. 어른이 됐으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맞아요. 내가 알아서 하는데 그 원칙 안에 옛날 엄마, 아빠한테 배웠던 대로 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지금 강의하면서 이해됐는지 헷갈려, 정말.

 

이야기 쉽게 합시다. 회사에 입사했는데 이번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우리 회사는 창조성을 강조하니까 당신의 창조력을 발휘보세요. 그래서 작업할 때 바로 대학교에서 교수한테 배운 거잖아요. 영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토익학원 가서 배운 거잖아요.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게 다 외부에서 배운 거잖아요. 그리고 남을 대할 때 웃으면서 공손하게 대한다. 이것은 일곱 살 때 엄마, 아빠 살아계실 때 계속 배운 거라니까요. 내가 어디 있어요. 초자아가 뒤집어씌운 거지.

 

과장님, 제가 알아서 했습니다, 라는 말은 그 초자아의 두께를 나름대로 선택했고 타협했고 그걸 변형시켜서 일을 했다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잖아요. 초자아에 의해서 내가 교육받고 산다는 자체가 정신분석학을 깊이 들어가면 그게 전부 다 정신질환, 정신병이란 거죠.

 

그 일을 해서 과장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때려치우고 싶다. 무엇 때문에? 건강검진해보니 암이 발견됐데. 암이 발생한 것은 스트레스 받았다. 스트레스 받았다는 말은 내 안에 초자아가 너무 강한 거예요. 회사 가면 숨이 막혀. “김 과장, 이 프로젝트. 김 과장, 이 프로젝트.” 이번 연말에는 획기적으로 해서 우리 부서가 일등 해봅시다. 그래프 그리고. 옆에 있는 회사는 이런데 우린 이게 뭡니까? 이게 초자아잖아요.

 

초자아한테 간섭받으면 전에는 내 능력으로 하다가 내가 사업을 할까? 내 일을 해볼 생각을 하지요. 도피지요. 왜 도피합니까? 불쾌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불쾌하면 죽잖아요.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마찬가진데 개인 사업이나 하다 죽을까. 청년들 회사 취업도 안 되고, 취업해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뛰쳐나올 걸 차라리 동업해서 벤처 기업해볼까, 그런 생각.

 

이 스트레스 받는 것으로 정신과에 찾아갑니다. 정신과 의사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세요. 부장, 과장 욕하고 다 나옵니다. 그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입니다. 꿈을 해석해서 당신이 잃어버린 옛날에 참 좋았던 것, 아빠, 엄마한테 사랑받고 보호받고 또는 간섭받던 그 시절, 그래서 내가 누군지 몰랐던 것을 다듬어가는, 형태로 잡아주는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요. 그 시절이 좋았기 때문에 어른 되도 힘든 거예요. 그때를 잊을 수 없어서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 고향의 푸른 잔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때는 뒷동산에 누워있어도 누가 간섭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어 뒷동산에 누워있으면 회사에서 부르지요, 집에서 딸들이, 아들들이 아빠 어디 있느냐고 부르지요. 혼자 가만두질 않아. 힘들어요. 혼자 있을 때는 주는 밥이나 먹으면 되지 지금은 자기가 돈 벌어야 돼.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라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그게 아니에요. 초자아와 이드에 끼어버렸어요. 폭발할 지경이라. 이걸 풀어야 되겠지요. 풀면 내가 사랑했던 대상자가 내 자리를 잡아주는 거예요. 쉽게 말하겠습니다. 어릴 때 내가 아니면 불쾌해요. 어릴 때 나를 다시 되찾아주면 유쾌해요. 그때 내 자아가 처음 생겼기 때문에. 그때 그 시절이 좋은 겁니다.

 

여자가 아이들이 귀신 인형 가지고 놉니까? 그런 특이한 얘는 없고 보통은 백설 공주나 바비 인형 갖고 놀지요. 바비 인형을 왜 갖고 놀지요? 엄마가 줬잖아요. 아이가 인형을 입에 대면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 하잖아요. 여자 아이가 칼 쥐면, 여자는 그런 것 하는 것 아니야. 인형 갖고 놀아야지. 인형은 엄마를 닮았지요. 예쁘지요. 그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말합니다. 남자,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고 사회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켰다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서 여자는 조신해야 돼, 라는 집안의 풍토가 초자아로 작용해서 그로 하여금 조신해야 되고 여자가 바지 입고 돌아다니면 안 되고, 여자는 치마 입고 예쁘게 해서 나중에 좋은데 시집가고. 그게 자기 정신의 구성요소로 들어오는 거예요.

 

여기 봅시다. 3페이지 밑에. [여기에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응축(압축), 치환(대체), 대리 표상이 그것이다. 첫째 과정 ‘응축’은 나타나는 꿈이 숨겨진 꿈보다 내용이 적어지는 것인데, 숨겨진 내용의 일부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얼굴은 A 같은데, 옷 입은 건 B 같고, 걸음걸이는 C인데 실제로는 D의 역할을 하는 경우다. 이건 네 사람이 한 사람으로 응축되어 나타난 것이다.]

 

분명히 꿈에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옷은 중국옷을 입었다. 빵을 먹어야 되는 예수님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더라. 이게 바로 중첩된 거죠. [마치 여러 개의 사진을 한 장의 필름 위에 찍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는 말을 ‘축 결혼’이라는 말로 압축한 전보문과 같다.] 이처럼 꿈은 그렇게 돼있다. 꿈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이 나온 거예요.

 

그 다음에 치환인데 숨겨진 요소가 관계없는 다른 것, 비슷한 것으로 치환되는 거예요. 샹들리에 부딪쳐서 피를 흘렸는데 샹들리에가 둥글게 생겼지요. 평소에 대머리 되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꿈에 샹들리에란 사물로 대체되어 꿈에 나온 겁니다. 인간은 자기 신체가 피해보는 것을 기피하는 식으로 꿈으로 대체함으로써 나는 대머리 안 되겠지, 라는 자기 본성, 쾌락원칙에 맞추어서 꿈에서 한 대 맞았는데 이제는 대머리 안 되겠지. 평소에 대머리 안 됐으면 하는 것이 꿈속에 샹들리에로 걱정근심이 나온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꿈의 내용이 이런 거예요. 그냥 대체에요. 안 됐으면 좋겠다, 또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미리 당겨서 온 거예요. 개꿈입니다.

 

[셋째 과정인 대리표상은 ‘어리석다’나 ‘서두르다’ 같은 개념은 시작각인 영상으로 바꿔놓는 것을 말한다.] 너무 어리석어도 안 되고 서둘러도 안 되고 둘 다 나한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방법으로 꿈은 본래 내용을 왜곡하고 가공하고 변형한다. 이것은 ‘꿈의 검열’ 때문에 일어난다.] 검열해서 나온 것이 의식이고, 검열되지 않은 것은 무의식입니다.

 

그래서 평소의 인간의 행동은 꿈속에 나타나는 무의식이 있는데 낮에서 그걸 자꾸 검열해서 그래서는 안 돼, 그러면 회사에서 쫓겨나, 아빠, 엄마한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야. 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이것이 계속해서 검열하는 모습으로 나오지요. 그런데 검열을 계속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겠지요. 억압이 과도가 넘치면 그것이 신경증이 되고 노이로제가 되고 정신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걸 잡아줄 필요가 있어요. 6페이지 봅시다. 위에서 세 번째 줄에. 잡아주는 것을 승화, 뭔가 위로 상승하는 요소. 불안을 승화로 바꾸는 거예요. 승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뜨개질, 예술, 스포츠, 이런 것은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익이 되겠지요.

 

유럽 사람들이 축구에 빠져있지요. 광적이죠. 포르투갈 이겼다고 좋아하고. 프랑스 졌다고 울고 있으니까 위로해주고. 정규리그 5연속 1등한 삼성이 꼴찌 되니까 삼성팬은 화납니다. 스트레스 받아 치킨과 맥주 더 먹게 됐어요. 이유가 뭐냐? 동일성, 동일시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삼성 라이온즈가 이길 때 잘한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임창용 선수가 마무리할 때 칭찬을 마구 했습니다. 도박하기 전까지는. 오승환이 있을 때 그렇게 칭찬했어요.

 

그 칭찬이 어디서 나왔는가? 어릴 때 엄마, 아빠로부터 칭찬받았던 그때 사랑 안에서 내가 소멸되고 싶어요. 중요한 겁니다. 인간의 본능은 뭐냐? 사랑 안에 내가 소멸되면 에고, 내가 없어지고 사랑만 남을 때 그것이 극단의 최고의 기쁨이고. 주이상스(향유)라 하는데 이건 라캉의 용어입니다.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그러니까 성 테레사의 희열이라고 있지요. 마더 테레사의 희열, 성모 마리아의 희열. 성화, 향유, 무엇을 근거로? 자아의 소멸을 근거로.

 

갑자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2장에 내가 삼층천에 올라갔을 때 나인 줄 몰랐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이 나타났지요. 베드로가 자기가 무슨 소리하는지 몰라요. 내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겠다고 할 때 베드로가 말을 했는데 내가 말한다가 아니지요. 그냥 말이 자기를 통해서 나와 버렸지요.

 

희열. 극단의 희열. 의사들은 그걸 엔돌핀이 돌았다고 해요. 정신적인 도파민을 활성화시켰다. 이걸 주사로 해서 도파민을 활성화시키면 이런 희열이 와요. 희열의 연속을 그리워해서 멕시코에서 올라오는 마약을 비싼 돈 주고 사서 주사 맞으면 젊은이들은 그때마다 삼층천에 갔다 오는 거예요.

 

희열에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마조히즘, 얻어맞는 데서 오는 희열과 사디즘, 때리는 데서 희열. 얻어맞고 때리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사회심리를 설명한 사람이 에리히 프롬이에요. [소유냐 존재냐] 책을 쓴 사람. 그 사람은 프로이트 사상으로 사회는 정신분석으로 다 설명된다. 때리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때리는 쪽이 맞는 쪽이고 맞는 쪽이 때리는 쪽이고. 사기 당한 자가 사기 치고. 사기 치는 자는 전에 사기 당한 적이 있고.

 

희열을 한 번 맛 본 것이 인간에게 크나큰 불행이 되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음주 측정할 때 경찰이 뭐라고 합니까? 더, 더, 더, 더 하잖아요. 전에 기도할 때 이렇게 했는데 희열이 덜 돼요. 그러면 꿇어앉아서 하게 되죠. 깍지를 끼면 아프겠지요. 더 아프게. 전에는 그냥 기도원에 왔다갔는데 이제는 소나무 뿌리를 뽑는다든지. 전에는 두 시간 기도했는데 세 시간한다든지. 세 시간했으면 네 시간을 채운다든지. 헌금을 할 때 십일조 했는데 십의 이조한다든지. 전에는 교회 한 번 나갔는데 두 번 나간다든지 새벽기도에도 나간다든지. 전에는 성경 석 장으로 끝났는데 이제는 다섯 장, 열 장 읽는다든지.

 

자학적인 방법과 피학적인 방법, 남을 때리든지 나를 때리든지. 그렇게 해서 뭘 얻고자 합니까? 나를 잊어버리고 사랑해 준 대상만 있던 그것과 동일시하고 싶은 그때가 그리워. 정신병 아닌 사람이 누가 있어요. 다 정신병이지. 모든 게 정신병이에요.

 

왜 교회 나옵니까? 만회하려고. 희열, 나를 잊을 정도로. 이 세상의 어떤 고통도 아편 먹은 것처럼, 그것도 아픈 거야?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주님의 사랑에 완전히 뒤집어써서 내 기쁨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건 도 튼 사람이고 처음 온 사람은 기쁨의 대상을 돈으로 와요. 잃어버린 건강과 잃어버린 돈을 빨리 만회해서 보상받아서 옛날 돈으로 즐거웠던 시절로, 아픈 것 없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고 나중에 죽어서 천당 가겠다는 이런 목적을 갖고 교회에 온단 말이죠.

 

그리고 도가 좀 트면, 우리 교회는 기복신앙을 일체 부정해. 오직 주의 성령의 충만함으로 희열한다. 성령의 충만도 희열 아닙니까? 충만의 정도를 측정해보자. 65, 70, 77, 나중에 안 되면 남에게 때리라고 하면 변태니까 스스로 자기를 때리는 식으로 굶어가면서 처음에는 양심이 있다고 39일까지만 굶어요. 예수님이 40일했는데 건방지게 어디 40일을 해. 나중엔 그것도 없어요. 40일도 합니다. 돌파기념 뷔페 가서 먹고. 그 다음에 역량 키워서 45일까지. 어디 에베레스트 올라갑니까?

 

산에 올라가는 짓, 누가 올라갑니까? 엄홍길, 왜 올라갑니까? 그게 미쳐서 올라가는 거예요. 공무원들 왜 자꾸 진급시험 칩니까? 왜 승진을 바라봅니까? 미쳐서 그래요. 삼성그룹에서 아이템 끄집어내고 돈을 왜 그렇게 버는 거예요? 미쳤어요. 부목사하기 싫어서 개척 교회하는 것 미쳐서 그런 거예요. 교인 하나 오면 목사가 좋아서 입이 벌어지고 두 달 만에 나가면 설교시간에 짜증내고 왜 그래요? 미쳐서 그래요. 미쳤다는 말이 듣기 싫으면 인간이 원래 그래요. 이건 아주 부드럽죠.

 

이제 마지막 결론 내리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주장이 옳다는 근거를 대라고 할 때 언어로써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 의식에서 과학이 나왔기 때문에. 과학에서 해명할 수 없는 게 따로 있다. 그게 무의식이다. 그걸 언어로 통해서 안다. 언어가 뭐냐? 꿈 해석이라든지 말실수를 통해서 한다. 과학이전에 말이라는 것은 말할 때부터 그냥 말 안에 정신이 들어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게 사후적이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나중에 해석하는 걸 사후적이라 합니다.

 

아기가 6~8개월에 어쭈어쭈, 하면 엄마가 해석해요. “맘마 먹고 맛있다는 그 말이지.” 그런데 아기는 그냥 어쭈어쭈 했을 뿐인데 엄마가 의미를 부여한다니까요. 그 의미가 모여서 그 가정에 착한 아이,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납니다. 그 의미를 얘가 되돌려 받아요. 그러면 그 얘는 그 집안에 착한 아이가 되는 거예요. 나는 착해야 돼요. 엄마, 아빠가 시킨 훈계조건 하에 착한 아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 착한 것이 남의 집에서는 착함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쪽 말을 들어야 착하게 돼요. 그 회사의 말을 들을 때.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규정한 자아가 저쪽에서 먹히질 않아요. 힘들어요.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결국 말 해석과 관련돼있어요. 말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 되는데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요. 땅에 속한 자는 땅의 말을 하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말을 하지요. 요한일서에 나오고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오지요. 하늘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 말을 하지요. 땅에 속한 땅에 속한 말을 하지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열두 제자잖아요. 베드로가 마지막 예수님 잡힐 때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지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요. 그게 권력에 매였기 때문에 그래요. 어둠의 권세에 매여서 그래요. 지금은 어둡다. 네가 어둠에 속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이렇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내가 대신 값을 치러주겠다. 이겁니다. 이미 해답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창세전에 해답은 끝났어요. 십자가 진다는 것은 이미 해답이 끝났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후에 창조가 시작되는데 창조의 모든 것은 십자가가 왜 복음이고 진리고 답일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서 천지창조가 시작되었고 마감까지 진행되는 겁니다. 이 사실은 바로 성령이 와야 알 수 있는 거예요.

 

성령은 십자가를 통해서 옵니다. 우리가 잘 나가라고 성령이 오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성령의 모든 임무는 마감되는 거예요. 못난 우리를, 동물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정신병자로 사는 우리를, 말도 안 되는 우리를, 천국 갈 수 없는 우리를 어떻게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시는가? 이미 들어가게 해주시고 확정된 상태에서만 성령이 오게 돼있어요. 성령 받은 사람은 이미 구원이 된 상태에서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죄, 이런 죄 때문에 주께서 미리 가져가셨다고 감사하고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감사와 기쁨밖에 없어요. 자기가 스스로 자기 과거와 비교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복음 안에서 희열을 느낄 뿐이에요. 누구 때문에? 내가 믿었기 때문에? 아니요. 예수님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주신 믿음. 예수님 때문에 믿음이고, 예수님 때문에 소망이고, 예수님 때문에 사랑이지 예수 믿는 그게 사랑이 아니고, 예수 소망한 게 소망이 아니고 주님 자체가 믿음, 소망, 사랑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아는 사람이 프로이트를 하는 이유가 뭐냐? 바로 오늘날 교회에 오는 교인들이 어떤 심보로 오는지를 정신분석학을 미리 알아서 그들의 고백이라든지 말에, 행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된다는 거죠. 성령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적으로 희열을 맛보기 위해서 이 정도로 나는 돈을 미워했습니다. 자기 신앙 자랑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그걸 목표로 삼고 남과 경쟁해서 신앙에서 안 지려고 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게 육이거든요. 육과 성령을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정신분석학을 외면할 수 없는 거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과학적으로 따져도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문제가 있습니까. 하지만 이런 문제를 안다는 자체가 이미 성령께서 십자가 복음을 알려 주였사오니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써 세상을 향하여 복음 전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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