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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김창길
서울 의존교회140314a (모든사람)―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2장 1절부터 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나온 것 중에서 전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여기 뭐를 거론하느냐 하면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라 라고 되어 있어요. 이것은 단순히 전도를 장려하는 것뿐만 아니고 나중에 하나의 교파가 돼 버려요. 어떤 교파로서 이론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사람을 천국에 오지 마라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고 일단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만한 조건을 제시하되 본인이 싫다면 할 수 없지 않느냐? 본인이 싫다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만한 것을 분명히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싫어!’했을 경우 에는 그 사람은 구원에 탈락되고 “아, 구원받겠어요.”라고 하면 그 사람은 구원에 합격이 되고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께서 무엇에 관여를 못하느냐 하면 본인이 결정하고 선택하겠다는 그 점에 대해서는 하나님마저 그 영역까지 하나님이 침범하지 않고 우리의 의지에 그냥 맡겨둔다는 거예요. ‘너희가 알아서 해라!’이런 식으로 맡겨 둔다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만약에 나중에 그 사람이 지옥을 가더라도 그 사람은 ‘아, 그 때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그때 예수님이 구원한다고 할 때 예수 믿을 걸 괜히 뺐네, 역시 지옥 보낸 것은 할 수 없어 내 책임이야’자꾸 책임을 통감하면서 하나님의 결정에 수긍하게 되고 만약에 그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된다면 ‘야, 그 때 참 아슬아슬했어, 내가 그때 예수 안 믿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할 때 뻔 했어, 역시 나는 예수 믿기를 잘했어’라고 해서 구원받는 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천주교 그리고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교리입니다. 뭐는 빠졌었어요? 장로교는 빠졌죠. 그러면 숫자적으로 장로교가 수세에 몰리겠죠. 장로교 빼놓고는 전부 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결정하는데 까지는 관여하지 않고 그것은 우리한테 내 버려두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결정을 안 하는 영역에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인간이 자유롭게 인간이 어떠한 막강한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겁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결정하는데 있어서 마귀가 와서 ‘야, 예수 믿지 마! 예수 믿지 말고 우리같이 없이 산다고 보자!’ 라고 압력을 가한다면 이 사람의 결정은 이 사람이 나중에 지옥 가서는 ‘하나님, 저는 이게 제 결정이 아니고 마귀가 시켜서 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저 지옥에서 빼내어서 천국에 넣어주세요!’이렇게 나올 꺼다 말이죠.
마귀가 이렇게 유혹하더라도 ‘마귀야! 까불지 마라, 나는 내가 결정한다. 어디 내가 예수를 믿어야지, 내가 예수 믿을 거야!’라고 배책을 해야겠죠. 이 사람, 인간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도 관여 안 하고 마귀도 관여 안 하고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오직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만 자기의 몸이 결정되는 그런 인간상이 되겠죠. 마귀보다 누가 더 세다는 말입니까? 마귀보다 본인이 더 세고 하나님께서 설득을 해도 나는 하나님의 설득에 안 넘어갑니다. 저도 고집 있어요. 하나님 백날 죽으면 천국 간다고 하는데 천국 본 사람도 없고 나는 거부합니다. 하나님도 이 사람한테 결정의 관여 없고 마귀도 관여하지 않는 그런 독자적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게 문제가 되느냐 하면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노아 보내고 아브라함 보내고 모세 보내고 엘리야 보냈죠. 그거 다 그렇게 하지 말고 바로 예수님을 보내서, 저 예수가 메시야인데 믿을래? 안 믿을래? 바로 보내시면 되는 거예요.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바로 예수님이 따라와서 하는 겁니다. 마치 가게에 물건 사러 갔는데 물건을 사는데 정신 팔려서 우산을 놓고 왔을 때 바로 뒤에 쫓아와서 ‘우산 아저씨꺼죠?’ ‘어 우산 내건데요.’그래서 우산 가지고 나오면 우산 챙기는 거죠. 그런데 석달반뒤에 우산 아저씨꺼죠. 하면 내것인가? 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범죄하고 난뒤에 바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하지 않고 그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모세 등 복잡하게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지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메시야에요? 아니잖아요. 그러면 아브라함을 보낼 이유가 없고 모세가 메야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메시야를 바로 보내야 되는데 왜 구약성경에 긴 역사가 왜 있어야 되는지를 하나님께서 쓸데없는 일을 한 거예요. 그거보다도 더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이 구원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이 말이죠. 구원을 언급을 했으면 그러면 처음부터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지 말고 처음부터 에덴동산을 구원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여러분, 에덴동산이 천국입니까? 살기는 좋죠. 그런데 에덴동산에 살게 되면 그게 천국에 사는 걸까요?
천국 따로 있죠. 그러면 에덴동산에 가는 것이 구원입니까?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이 구원입니까?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이지 에덴동산에 살면 기껏 아열대 지방에 불과한 거예요. 요한계시록 22장에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거기에 강이 흐르던가요? 천국의 모습이 요한 계시록 2 2장 마지막에 나와 있죠. 거기에 선악과 있던가요? 선악과 없지요. 선악과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은 뭡니까? 해와 달과 별이 만들어 진 그 한 가운데 땅이 있지요. 그런데 천국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넣어주는 것을 구원으로 생각합니까? 천국에 넣어주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합니까? 천국에 넣어주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에덴동산 전체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야 되는 겁니다. 에덴동산과 더불어 이것이 다 허물어져야 되는 거예요. 왜냐 하면 에덴동산을 자꾸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졌거든요. 아담과 하와가 어디서 만들어 졌습니까? 만들어 져서 에덴동산에서 살았잖아요.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어디에 적합합니까? 에덴동산에 적합한 몸이지 천국에는 적합한 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해와 같이 빛나고 천사와 같고 시집도 아니 가고 장가 아니 가고 에덴동산은 이미 장가가서 부부가 생활하잖아요.
그러면 인간이 결정을 할 때 난 천국 갈 거야 또는 에덴동산 갈꺼야! 결정할 때 그 결정의 권한은 기껏 해 봐야 어디냐 하면 에덴동산 안에서 이루어진 결에 대해서, 쉽게 말해서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진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인간의 몸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몸이 기껏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인간의 몸에서 천국을 가도록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어요. 만들어 진 것이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아이고 살기 힘드네, 왜 자꾸 이마에 땀이 나지?’또 여자는 ‘애 낳을 때 왜 아프지?’그러면 기껏 인간이 원하는 것은 애 낳을 때 안 아프고, 이마에 땀이 나지 않고 흙의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 기껏 해 봐야 이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본인이 아는 것 이것밖에 모른다면 인간에게 결정을 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천국이라는 것이 구경한적도 없고 맛본적도 없어요.
지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과 천국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갈려요. 천국과 지옥이라 하는 것은 누구만 아느냐, 하늘에서 오신 누구만 아느냐 예수님만 아는 거예요. 예수님만 아는 것에 대해서 인간이 뭣도 모르고 알지도 모르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 하는 그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차근차근 이끌면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구약에 이스라엘을 결국 망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을 때 인간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만들어 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만들어 낸 이스라엘을 인정했습니까? 인정 안했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으려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믿으려고 하는 사람인데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기껏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인간의 선택과 결정의 마지막 최종점이 뭐냐 하면 기껏해야 이스라엘이에요. 율법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면 우리가 언제가 우리가 에덴동산이 회복된다, 천국갈 수 있다, 기껏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그 정도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작 그것을 인정했느냐 이 말입니다. 인정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인정을 안 했죠.
너희들이 바리새인들 보다 의가 더 낫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제시한 천국을 거부했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 보다 다 뒷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바리새인들 보다 못한 사람들이에요. 앞장 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거부했다면, 못 간다면 그 뒷사람도 역시 못 가는 거예요. 바리새인들이 제시한 그 구조를 하나님께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자신들이 우리는 천국간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다 나가! 어디 천국을 너희가 들어가! 백부장같은 사람이 차지하고 너희들은 다 나와, 너희들은 못가!’라고 했다 말입니다.
인간의 결정한 그 마지막 최종점이 결국 천국에 못 간다면 인간에게 스스로 선택을 맡겼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천국을 줘도 믿지 않을 그러한 수준밖에 되지를 안 됩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그 목적지가 에덴동산이 아니고 결국은 천국이 된다면 에덴동산에서 만드는 인간은 천국 앞에서 천국을 거부할 수 없는 그 시련과 실습을 예수님 당시까지 유대인을 통해서 그런 것을 다 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 까지 한 것을 정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노아와 모세와 아브라함, 그런 사람 분을 보내서 나를 만들었다, 아브라함의 약속대로 야곱 때에 와서 열두 아들 줬고 열두 지파가 되어서 이스라엘 마을을 만들었고 율법 주면서 그들은 기대에 부풀었고 그들은 그들의 선택을 신뢰했고 자신의 옳은 선택에 의해서 나라 잘되리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그 나라 가면 갈수록 망가졌고 결국은 주께서 멸망시켰고 멸망하고 난 뒤에 유대인들은 옛날 이스라엘처럼 만들겠다고 결심을 야무지게 했고 율법을 지켰는데 막상 천국의 주인공 메시야가 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살해했고 그래서 천국과 거리가 먼 존재라는 것이 이미 증명이 되고 확인되고 말았습니다.
구원? 인간의 선택이요? 그것은 이미 해 봤는데 그게 제시를 안했어요. 그러면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진리에 이르기를 원한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모든’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는 말이거든요.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는데 어떤 조건을 능가한 모든 이냐? 그 조건을 붙여 가는데 있어서 사도 바울은 뭐라 했느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여겼던 이스라엘이 정해 놓은 조건, 사도 바울 이나 주님이 모든이라는 말을 쓸 때는 너희들만이 아니야 했을 때 그 너희들만이라 하는 그 기준은 이미 실패한 유대인들이 일방적으로 우리만 구원받아 하는 그 경계선, 그것을 벗어나도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는 거예요. 자기가 스스로 백성이라고 자부했던 그들이 쳐놓은 모든 경계선을 하나님이 인간의 경계선에 구애받지 않고 그 경계선 밖에서도 구원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강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성경을 찾아보면 되는데요.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모든 슬픈 자를 위로’ 하죠. 여기 모든 뒤에 붙는 게 있어요. 모든 인간에게가 아니고 모든 뒤가 뭡니까? 슬픈 자를 위로 하죠. 모든 슬픈 자, 그러면 이 슬픔이라 하는 것은 누구 때문에 슬프냐 하면 하나님의 하신의 작용, 일 때문에 이 땅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든 자, 주님이 개입하셔서 이 땅에서 주님 때문에 슬프게 살아가야 될 모든 사람들을 내가 그 모든 사람을 살려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시작, 출발점은 어디 입니까? 내 선택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선택부터 출발하는 겁니까?
구원의 계시를 누구부터 합니까? 하나님부터 출발을 시키는 겁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아시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망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했는데 만약 이스라엘이 망했다면 하나님의 언약도 무효가 되는 겁니까? 이사야 55장 3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웠다고 했죠. 이 언약을 세우는 당사자가 누구에요? 우리 인간이 요청한 겁니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세우신 거예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언약을 세우시죠. 언약을 세우는데 이스라엘이냐 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니에요. 왜, 이사야 이 대목할 때에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밑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하, 우리 보고 이야기하는 구나1’이렇게 하는데 막상 하나님은 ‘너 아니야, 너 말고 언약을 내가 세우면 내가 만드는 이스라엘은 따로 있어’이러면 ‘이왕 만들어 주는 이스라엘 좀 살려 주셨으면 좋겠는데’ ‘글쎄,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니까’다윗 언약을 세워서 내가 진짜 영원한 이스라엘을 지키는 거예요. 지키면 그 다음 5절을 보면 오늘 강의 결정적인 근거가 나옵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른다는 거예요. 다시 이야기할게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나라를 세우겠다고 영원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했습니다. 그 일방적인 약속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아, 우리보고 이야기한 거야 역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릴 리가 없지’라고 하는 거예요. 역시 하나님은 우리끼리, 우리끼리 비록 죄를 졌지만 우리를 구원하실 거야, 라고 그들은 짐작을 했는데 5절에 보면 너희들이 안다? 모른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들이 주님에게 호출 받고 하나님의 언약에 해당되는 그 이스라엘에 합류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물어 볼게요.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일을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그러면 이스라엘은 왜 만들어 놨습니까? 애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습니까?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 이스라엘을 만들어 놓고 너희들은 아니거든, 차라리 이스라엘 없이 내가 가서 내가 부르면 다 온다! 이러면 될 텐데 왜 이스라엘을 만들어 놓고 너희들이 모르는 나라들이 사실은 다윗언약의 성취성을 보여 줄 것이다. 다윗의 누구조상이냐 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자손이에요. 그러니까 조상님이 누구냐 하면 조상님이 이스라엘 조상이 다윗이에요.
하나님이 누구한테 언약을 했습니까? 우리 조상님하고 언약을 했기 때문에 그러면 혜택은 누가 입지요? 그 조상의 그 자손들, 혜택은 당연히 누구한테 옵니까? ‘야, 우리끼리 오는 구나! 라고 생각할 텐데!’ 다윗에게 언약을 하고 맹세를 하고 반드시 이루리라 해 놓고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가 호출 받아서 가입되어 버리면 그들 이스라엘이 생각하기에 ‘주님이 일의 일관성이 없습니다.’주님 본인 하시는 이야기에 앞뒤가 맞지가 않는 거예요. 우리만 구원한다는데 왜 우리만 구원안합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우리가 네가 생각하는 우리가 아니고 나중에 모든 일을 마감했을 때 그 때 모인 우리가 우리라는 거예요.
문제는 이거예요. 하나님이 일을 우리에게 납득이 안 되도록 하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구원은 반드시 우리가 처한 상황이 우리가 구원을 요청할 입장이 못 되는 거예요. 죄 지었기에 마땅히 멸망받아야될 그러한 형편인 것을 경유해서 구원해 줘야 하늘나라 가서 자기 자랑을 안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구원하시는 겁니다. 긍휼이 뭡니까? 불쌍히 여겨주는 거예요. 불쌍히 여겨준다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나는 누가 뭐래도 나는 당당하게 구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을 삭제시켜줘야 돼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겨주는 공로로 구원 받는 똑같은 입장이 되는 겁니다. 똑같은 입장을 설명하는데 사람들이 죄를 안 지었으면 너 올라와, 너 올라와 되겠는데 이미 사람들이 죄를 지은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죄를 지었습니다. 하는 내용이 살아있어야 돼요.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늘 살아 있어 줘야 주님의 불쌍히 여김도 같이 살아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왜 먼저 만들었느냐? 이스라엘로 하여금 인간이 품고 있던 죄가 과연 어떤 죄인지를 이스라엘 그들의 활동성을 통해서 그 있는 죄를 모두 드러내는 실습교재로 주께서는 역사 속에 보여 준 거예요. 얼마나 교만한지를 먼저 구원받다고 해서 얼마나 자만을 떨고 자랑질을 하고 역시 나는 너희들 보다 낫다고 으스대는 그런 요소들이 인간에게 품어있다는 겁니다. 그 품어 있는 것이 우리가 미쳐 내가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그게 죄가 되는 거예요.
주님 앞에 잘난 척을 하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겸손하면 되잖아요. 겸손할 수 있는 근거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인간이 겸손하게 되면 겸손해 진 그 자체를 자랑하기 때문에 근거가 없어요.
제가 예를 들면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인간은 죄를 지을 수가 없어요. 성경에 보면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죠. 도둑질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날 배가 고파서 제과점 빵을 훔쳤어요. 그러면 본인은 그것을 뭐라 합니까? 내가 도둑질 하지 말라 했는데 도둑질 했다고 느껴지겠지요. 그래서 교도소에 갔습니다. 가니까 감방에 자기는 배고파서 빵을 한번 훔쳤는데 거기 가니까 돈을 100번이나 훔친 고수가 있더라 말입니다. 돈을 100번 훔친 사람이 죄를 더 알겠어요? 빵 한번 훔치고 회개하는 자가 죄를 알겠어요? 죄의 깊이를 알겠어요? 돈을 100번 훔친 사람이 죄의 깊이가 있겠죠. 그러면 그 사람이 뭐라 하겠습니까? ‘어이 빵 한번 훔친 사람 이리와봐, 나 정도 돼야 죄인이지 너는 죄 인문이지 죄의 깊이를 몰라’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예를 들면 그 자리에 천 번이나 죄를 지은 사람이 온다면 100번 했다고 그게 죄 지은거야? 천 번 지어봤어? 애가 엄마한테 거짓말 하고 난 뒤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그런데 부부가 거기에 대해서 용서를 해 주면 그 다음에 회개하고 거짓말 안 하는 게 아니에요. 그 다음에 두 번 짓고 세 번 짓고 자꾸 짓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그 애가 일부로 죄를 짓고 자 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도 모르는 죄의 깊이가 한번으로 끝날 죄의 깊이가 아니거든요. 죄의 깊이가 2미리가 아니에요. 2천5백 미터에요.
죄가 2미리짜리 같으면 ‘아이고 아이고 한번 짓고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데 한번 죄를 지으니까 죄를 지은 계기로 해서 그 보다 더 교묘하게 엄마를 속일 수 있는 그런 아이디어가 그 밑에 쫙 있다 이 말이죠. ‘아 다음에 죄 지을 때는 더 완벽하게 죄지어야지’라는 아이디어가 일단 죄를 한번 지어봄으로써 비로소 두 번째 세 번째 죄를 유발할 동기, 모티베이션이 되는 겁니다. 사기 치는 사람이 다들 한번 당해 봤기 때문에 사기 치는 겁니다. 그냥 맨 정신으로는 사기를 못쳐요. 당한 만큼 복수한다는 식으로 저 사람한테 사기당해 놓고 저는 저쪽에다가 3배, 4배나 사기를 치는 겁니다.
왜? 사기 당함을 통해서 사기를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쁜 짓을 당하면 그 사람 속에 잠자고 있는 나쁜 짓, 본성이 드디어 깨어나요. 잠자고 있는 마귀가 깨어나서 나는 나쁜 짓 못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하면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잖아요. 죄가 깨어난다고요. 나는 착하고 싶지만 죄가 더 세서 착한 나를 완전히 코너로 몰아세웁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선배이기 때문에 다 해 내야 돼요.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이스라엘이 망해도 못 지은 죄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나님을 살해하는 죄를 또 지어야 돼요. 여러분, 물어 봅시다. 유대인이 하나님을 살해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 갑니까? 못갑니까? 간단한 문제를 냈는데요, 1번 천국 간다. 2번 천국 못 간다.
다 천국 못갑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천국 가는 사람이 있어요. 너희들이 십자가 못 박아 죽였다고 베드로가 이야기하니까 그 유대인들이 뭐라 합니까? 우리가 어찌할꼬! 했죠. 예수 믿고 십자가 피를 믿으면 내가 죽였습니다. 하는 그 십자가에 내가 죽인 게 아니에요. 오늘 강의에서 어려운 대목이 그 대목인데 내가 죽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죽인 거예요. 우리가 죽였습니다. 할 때 우리가 어찌할까요할 때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면 뭐합니까? 구원을 받네요. 천국가네요. 뭘 죽였는데? 하나님을 죽였는데 죽인 하나님이 도리어 죽인 우리를 건져내내요. 건져낼 때 우리를 어떻게 건져내느냐 하면 처음부터 너는 죄인 이였다고 해서 건져내시는 거예요.
원래 죄인이라서 너 힘으로 구원을 못 받는데 네가 나를 죽인 것은 내가 처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하는 티를 냈던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우리가 처음부터 죄인인 것을 티내기 위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고 그 십자가 앞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점을 우리가 수용을 하게 되면 그 십자가에 달렸던 피해 입은 그 분이 가해자를 도로 용서하는 효력을 우리가 함께 십자가를 수용하니까 수용한 그 자리에서 그래서 나를 죽인 죄마저 내가 용서해 줄게 하고 용서를 해 버리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왜? 인간은 죄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를 몰라요. 죄의 바닥을 몰라요. 어설프게 죄를 짓는데 아직 멀었어요. 진짜 죄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마저 죽여야 그게 죄가 되는 겁니다. 그럼 유대인들은 뭐냐? 유대인들은 우리를 대표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구원받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인유대인들이 구원받았다면 사실 12제자들도 유대인이잖아요. 유대인들이 구원받았다면 무슨 말이 성립되느냐 하면 모든 사람이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죽였던 사람을 죽였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이 이르는 그거에요. 방금 모든 이라는 것은 100%를 받는 것이 아니고 앞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죠. 그 사건에서 유발된 모든, 어떤 사건? 십자가 사건과 가담된 모든 사람을 향하여 모든이 돼요. 유대인들이 십자가 사건에서 예수님을 죽였을 때 유대인들이 왜 죽이게 되었느냐 하면 바로 우리들만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져서 우리들만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부했죠.
이사야 55장에 보게 되면 그림으로 설명을 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었죠. 언약을 맺었는데 이 언약의 노선이 두 개가 되어서 한 쪽은 오해를 했죠. 여기 혈통적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이야 다윗이니까 우리 후손은 마땅히 구원받는다고 노선을 이쪽 노선을 이야기한 겁니다. 왜, 자기들은 혈통으로 이스라엘을 주장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들 혈통 구원 못 받는다! 그러면 언약도 취소됩니까? 언약은 취소 안돼! 언약이 취소 안되면 우리는 구원 받죠. 언약이 취소가 안되면 우리는 구원받고 언약이 취소하게 되면 우리도 구원 못받고 저들도 구원 못받고 이게 논리가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언약을 했는데 너희들은 말하기를 언약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아니고 언약에서 뭔가 점선으로 미지의 완성된 이스라엘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따로 있는데 있으면 유대인들이 그럼 따로 있는데 그들이 누구입니까? 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언약에 집어넣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다윗 조상되는 우리가 후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주님께서는 장차 오실 그분이 다윗언약에 오실 다윗이라면 그분은 거꾸로 소급해서 구원받을 사람을 건져내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대대로 우리가 흘러오면서 택한 백성이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결정한다. 예수님이 창세전에 이미 이스라엘로 택정한 사람이 따로 있음을 그 내용을 담고 이제는 너희들 보기에 구원받지 못할 백성이라도 창세전에 이미 정해 놨다는 이유 때문에 건져 뽑아내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에- 우리 끼리만이지, 이방인들이 왜 들어옵니까?’너희들이 오해한다. 너희들이 오해했다는 거예요. 다윗 언약의 계통이 예수님과 통하는데 그들은 누구를 통한다고 합니까? 자기들을 통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자기들을 통하기는 통하는데 그들은 인간의 죄의 극단을 보여 주는 그러한 기능으로 통하죠.
이것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시켜 봅시다. 성령을 받아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믿었는데 어떤 사람이 같은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갑자기 이스라엘이 돼요. ‘나는 구원받아서 이렇게 방언을 하는데 저 사람은 아무리 기도해도 방언이 안 터지지?’그러면 방언하는 쪽이 구원받은 사람인지 방언 안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것인지 결정과 선택을 해야 되는데 일단 자기는 방언을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 만약에 방언 안하는 쪽이 구원을 받으면 누가 자진해서 탈락을 돼요? 구원 받았다고 우기는 내가 탈락이 되잖아요.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지요. 판정을 내가 내리니까요. 일단은 나는 내가 먼저 구원받았다고 친다면 나와 닮아야 구원받고 나와 안 닮으면 구원 안 받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게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떤 소식을 들으면 일단 자기를 경유하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와 곡해가 모든 이에게 다 발생되는 거예요. 그것을 선배격인 이스라엘이 먼저 보여 준 거예요. 이러면 이제 골치 아프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지요.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지요.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예수님 말씀이죠. 자 먼저 된 자가 나중되었습니다. 여기 봅시다. 여기 이 사람이 먼저 앞서니까 먼저 된 자이고 뒤에 따라 오는 사람이 나중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으로 가고 나중된 자가 먼저 오고 이렇게 되지요. 그러면 조금 지나면 누가 먼저 된 자에요? 여기 미에로 화이바가 원래 나중이고 원래 착한 비타500, 그냥 비타 500도 아니고 착한 비타 500이 이게 먼저 된 자잖아요. 주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하니까 그 소리 듣고 둘 다 얼릉 자리를 바꾼거예요. 이 사람이 먼저 되고 싶어서 나중되려고 밀어냈어요. 그러면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는 말은 갑자기 여기서 취소 돼야 됩니까?
이 미에로 화이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 지금 나중될 자리에 있거든요. 어이 바꿔 바꿔 또 바꿨어요. 그래 또 왔어요. 백날 해 보세요. 구원 됩니까? 안됩니까? 구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두 사람 가운데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 할 때에 둘다 먼저 된 자를 합쳐버립니다. 그러면 나중된 사람은 예수님이 나중된 자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이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자기를 경유해서 실천에 옮긴다고 생각하는데 주님의 말씀은 사람을 실천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본인을 경유해서 본인이 실천해 버린 거예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은 예수님 자신보고 이야기한 거예요. 너희들이 나를 밀것이고 나는 너희들이 싫어하는 십자가라는 수치스런 곳에 갈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사흘만에 부활시킬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중 된다 할 때 주님이 이 매직이라면 주님은 위에 가버려요. 따라 올라면 따라오라!
이게 같은 선이 아니고 같은 레벨이 아니고 위에 올라가버리면 이 자리 예수님을 따라 오려면 이 자리에 가봐야 만날 수평적으로 왔다 갔다 하니까 이 자리 가서 하나님이 죽이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 죽이시는 죽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흘 만에 부활한 것처럼 이 사람들은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이 죽이시는 죽임을 당해야 예수님과 합류가 되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죽이는 죽음이 뭐냐, 십자가 죽음이고 그 십자가 죽음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산다. 이것이 성령이 임할 때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이 위에 비타 500을 나란히 보고 이 위에 가 위 오른쪽에서 성령을 줘 버려요. 성령을 주게 되면 이제는 수평으로 네가 잘났네 하다가 이 사람이 갑자기 이 사람이 위로 올라가 버려요. 죽고 위로 올라가는데 이 사람을 보니까 이 사람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게 아니고 오히려 망하는 길로 간 거예요. 예수님이 갔던 그 길, 누구도 환영받지 못하고 누구도 천시하는 그 길, 너무나 약한 자가 되어서 실패한 자가 돼서 거기로 가버린겁니다. 이런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입니다. 살인강도가 구원받을까요? 못 받을까요?
그것보다도 같은 이야기입니다마는 요한복음 8장에 간통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보기에 그 사람이 구원받을까요? 구원 안 받을까요? 누가 봐도 구원 안 받습니다. 왜? 이것은 율법에 어긋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율법 어긋났기 때문에 누구도 구원 못 받고 그리고 간음한 여인은 자기가 구원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왜? 본인이 뭘 알아요? 나는 율법에 유효한 여인인 것을 알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위에 가 계신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용서했다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죄를 사하노라!
옆 사람이 사해도 소용없어요. 이근호가 사해도 소용없고 김명현 목사님이 사해도 소용없어요. 어느 날 예수님께서 네 죄를 십자가를 통해서 사하노라! 하는 그 음성이,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그 때부터 우리는 간음안하고 도둑질 안하고 착하게 살아도 우리는 졸지에 뭐가 됐어요? 야, 내가 남들 보기에는 죄인이 아니지만 주님 보시기에 나는 잠재적 죄인 맞구나! 그런데 나를 죄인 되게 하신 이유는 내가 이미 언약 안에 창세전에 놓이도록 조취가 된 사람이라서 언약을 통해서 비로소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구나! 이 사람들은 언약 관계없이 자기 윤리 도덕으로 악하다고 생각하는데 구원받은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자체가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 주기 위해서 언약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죄인인 것을 깨달을 때 바로 그 능력이 그 사람을 의인되게 만드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경에 예수 안에서 라고 해요. 그것을 다른 말로 언약 안에서 라고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다윗의 언약에 속한 이스라엘, 진짜 다윗의 언약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이미 언약 적으로 합류된 사람이라는 그 표시가 그렇게 십자가를 통해서 증명이 되는 겁니다. 지금 까지 설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면 여기서 모든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적 관점에서 ‘모든’ 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디모데전서에서 말하는 모든 이라는 말을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이 모든 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거기에 대해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요한복음 12장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그 다음에 뭡니까?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 로 끌고 오고자 함이라 그러면 이 말씀을 12장 32절에서 찾았지요. 요한복음 11장 52절에 보면 또 그 민족만 위할 뿐만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뭐가 되게 하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죽으신거죠. 흩어진 사람을 모으면 그게 모을 때는 모든이 되지만 이게 모아놓으면 뭐가 돼요? 하나가 되죠. 그 하나를 대표하는 인물이 누구다? 예수님 본인이다 말 이죠.
예수님, 나라는 숫자, 영어로 one, one이 지상에 깔리면 언약에서 나온 ‘모든’이 되고 그 모든 사람을 끌어 모으게 되면 모든으로 남는 게 아니고 다 같이 어디로? 하나되게 함이라 그 하나로 응축이 되는 거예요. 그것을 옛날 이스라엘사람들이 그것도 알았어요? 몰랐어요? 이것을 알았어요. 알았는데 문제는 그 하나 됨을 이스라엘 혈통의 하나로 이해를 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디에 있더라도 모아서 하나 되게 한다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을 이해한 거예요. 그런데 그 나라 망했죠. 언약을 받기는 받았는데 오해를 한 겁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 혈통적 하나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은 혈통적 하나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언약이 하나에요. 그 하나 되신 분이 누가 등장하느냐 하면 예수그리스도 하나에요. 하나 안에서 여러 사람이 있더라도 전부다 하나에 속한 겁니다. 그 하나가 땅에 퍼지면 언약적으로 모두가 돼요.
이스라엘 백성은 말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습니다. 말은 맞는데 그 뉘앙스가 어떤 뉘앙스냐 하면 혈통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이기 때문에 절대로 버림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이 벌써 하나를 이야기할 때는 혈통을 근거로 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상에 있는 혈통 말고 너희가 높고 낮고 그런 혈통말고 주님은 위에 계신분이거든요. 위에 계신분, 천국에 계신 천국을 만드신 그분이 말하는 하나라는 것은 혈통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어디 갑니까? 이방인 백부장이 본 자손들은 천국에서 쫓겨나고, 마태복음 8장 이야기입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어디 차지요? 유대인들이 쫓겨난 그 천국을 이방인 백부장이 차지합니다. 그래 놓고 이사야 봤던 구절이 내가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나의 호출로 인하여 그 하나에 가담된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보기에는 너희들끼리만 구원 받는다고?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너희들이 배타시 하지만 하나님은 너희들이 쳐 놓은 경계선 밖에 주께서 원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거예요.
여기 모든 앞에서 다른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원하신 자의 모든 이라고 분명히 사도행전에 언급되어 있어요. 아무리 거리가 멀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를 모두 살리시는 거예요.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그 다음에 뭡니까? 다 내게로 오라! 했죠. 아까 이사야 61장에 보면 모든 슬픈 자를 구원한다고 했죠.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 쪽에서 언약적으로 조치를 취하니까 구원받을 사람이 이 땅에서 슬퍼하고 무거운짐이 되는 거예요. 그런 자를 구원하는데 마태복음 11장 25절에 보면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이렇게 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보낸 자가 아니면 내 말을 못 알아 듣는다 알아 듣는 사람있어? 다와! 앞에 조건을 먼저 걸었어요. 예수님이 하나잖아요. 예수님이 하나 됨을 구성하기 위해서 이미 창세전에 예정된 자들은 예수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는 그 모든 자들은 다 오는 거예요. 출발을 하늘에서 언약부터 출발을 해야 되지 지상에서 자기들끼리 모아놓고 우리 모두다 하나님의 사랑 받기를 원한다. 이런 식으로 출발하면 안돼요. 그 출발점이 이런 식으로 하면 안돼요.
그래서 모든 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 전에 하늘에서 이미 조건을 걸어놓고 그 조건이 이스라엘조건이 아니고 주님의 조건에 의해서 걸어놓고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어떠한 타락을 하거나 아무리 도망쳐도 내가 반드시 다 건지게 되어 있어! 결국 그렇게 되면 하나 됨에 있어서 모자람도 없고 빠짐이 없어요. 만약에 95명이 구원 받는다고 하면 한 사람이 안 왔다 하면 하나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 사람 때문에 하나가 안되겠죠. 하나 되려면 택한 백성을 다 건져봐야 하나가 되는 거죠. 그거 빠지면 0.99쯤 됩니까?
주의 하나 됨이라 하는 것은 바로 주께서 모든 말씀을 성취된 상태로서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실수하거나 실패리가 없는 그리스도의 하나 됨에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미 하나님의 정하신 사람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것이지 새삼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에요. 어디에 계십니까? 부르는 거예요. 혹시 서기 계십니까? 오깽기데스까? 혹시 거기 하나님의 백성 잘 계십니까? 제가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할 테니까 누구든지 어떤 죄를 졌든지 모든 사람은 십자가 마을에 모두 응답되게 되어 있습니다. 언약이 그거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그거니까 자기들끼리 아는 정보가 있어요. 똑똑한 사람은 숨기시고 누구한테는 나타낸다? 어린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계시고 있거든요.
따라서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숨기시고 오직 어린 아이에게만 하는 거예요. 만약에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한다면 숨긴다는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왜 숨깁니까? 그대로 다 구원받죠. 이것은 숨기시고 오직 택한 백성에게만 알리시는데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차별도 구애받지 마시고 다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냥 사람을 건진 거예요. 그냥 복음만 전해 놓고 복음에 대해서 놀랍게도 성령 받은 사람은 반응을 나타내고 반응을 받게 되면 바로 처음부터 당신은 거기에 선택되기로 작정된 사람이라는 것을 통보를 해 주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작업이 신약성경에는 왜 이러한 언급을 해야 되는가를 10분 쉬고 두 번째 시간에 해 봅시다.
서울 의존교회140314b (모든 사람)―이 근호 목사
첫 번째 시간에 제가 이야기한 것은 여기에 모든 이라는 말을 누가 여기서 이야기해 하거든 이렇게 하세요. 집사님, 여기에 모든 사람은 4절을 아무리 봐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여기 모든 사람은 세상 모든 인간이 다 구원받는 길이잖아요. 라고 이야기 하거든 이렇게 하세요. 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나는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되어 있죠. 이방인이 나오죠. 이방인이라는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유대인들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경계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너희들도 저거는 구원 못 받아, 하는 가운데서도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너희들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할 때 나는 이방인의 사도의 자격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방인, 오늘날 생각하는 모든 인간은 동일한 인간이라는 그런 관점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저쪽에서 이방인을 개라고 하니까, 그렇지 않다 이방인도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 너희들만 구원받는 게 아니야 왜?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이방인에게 보내진 내가 사도이기 때문에, 그 이방인의 사도의 입장에서 모든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들만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제시한 그 중보자는 너희들, 이스라엘만 데려가는 중보자가 아니고 이방인도 데려가는 중보자라는 그런 중보자가 된다는 겁니다. 거기까지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가 돼요. 아, 이방인 사도이니까 유대인들을 의식해서 이방인들도 구원받는 구나! 왜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 완성차원에서 하기 때문에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둘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거예요. 10명이 다 10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천명이 다 천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천명을 해 봐야 한 분에 의해서 되는데 그 한 분이 언약대로 시행하시는 한 분이에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한 분 중보자를 통해서 구원하는 겁니다. 거기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5절에 나와요.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가 두 분입니까? ‘한 분이시니’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하나의 언약가지고, 화투에서 일타쌍피하고 같아요. 양발치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중보자를 통해서 구원하거든요. 중보자는 언약에 해당된 이스라엘에게 먼저 주어진 중보자란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은 그 중보자는 우리만 구원하는 중보자라 하니까 ‘일타쌍피’내가 바로 이방인의 사도야! 너희들만 아니고 언약대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맞는데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데 언약대로 구원받는데 그 언약은 바로 너희들이 배척했던 이방인도 포함해서 그 중보자, 한 분의 입장에서 구원받는 거예요. 중보자가 한 분이라는 말은 그냥 중보자 없애고 ‘나 하나님이 다오!’ 이게 아니라니까요. 중보자를 통해서 언약을 통해서 언약대로 시행되는 그 사람들만이 천국 가는 겁니다.
흔히 말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데 자기가 알아서 선택해고 하는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두 번째 시간에 중요한 것은 이게 구원론이냐 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 삼촌이 어떻게 구원받고 고모는 어떻게 구원받아요? 구원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국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이라는 것은 이 사람들이 구원받습니까? 구원론의 입장에서 보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쪽으로 그렇게 뒤에 설명이 돼야 될 텐데, 그렇지 않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왜? 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아니에요. 그 뒤에 보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론이 아니고 이미 구원기로 되어 있는 받는 사람들이 너무 쓸데없이 학대나 핍박을 받지 않도록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본의 아니게 진짜 예수 믿는 진짜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임금들이나 높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구원론 입장이 아닙니다. 기도 하되 하나님의 정해진 택한 백성들에게 너무 심한 학대가 오지 않도록 주께서 그들을 적절하게 잘 조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뜻이에요. 그 말은 그들이 구원받다 는 뜻이에요? 당신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뜻이에요? 아니죠. 그들은 정당하게 그들의 활동을 해 주시고 보조적인 역할을 해 주시기바랍니다. 그런 뜻입니다. 드라마에서 보조 엑스트라가 연기를 잘하면 그 다음 회에 주연급 시켜 줍니까? 아니죠. 드라마에서 반지 돌린다고 그 다음부터 그 반지 돌린 사람이 김수현 되는 게 아니잖아요. 반지 돌린다는 것은 ‘별에서 온 그대’ 내용입니다.
칼싸움 잘한다고 하지원이 남편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건 기황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왜? 지금 목적은 예수님이 이방인의 중보자가 된다는 것이 그게 주연 급이고 핵심이지, 예수님이 누구신데? 이방인들도 구원한데, 그게 뭔데? 그게 언약의 완성이야.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지 저쪽의 임금들 구원받으라고 있는게 아니에요. 그들은 보조 역할만 하면 돼요.
그렇다면 그 다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으라고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세상에 국가라는 것은 왜 존재해야 됩니까? 그 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있을 때 약속의 땅에 갔을 때 이방나라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싸우다가 패배했죠. 이방나라가 패배했죠. 저 애굽하고 이스라엘이 싸워서 누가 이겼습니까? 처음에 출애굽할 때에? 이긴 사람 없어요.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요. 이기지도 않았어요. 이기지도 않았는데 패배한 나라가 있어요. 누구입니까? 애굽입니다. 애굽군사 수만 명이 바다물에 빠졌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동이에 물퍼서 빠져 죽으라고 물 부었어요? 어딜 따라와 하면서 빨리 양동이 가져와 저 사람들 물에 빠지도록 물 더 버야돼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퍼 부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멍청하게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들은 승리가 뭔지 몰라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그들은 예상치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못했습니다. 도달해 보니까 이쪽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죽음의 바다를 건너왔고 도달해 보니까 그렇게 큰 소리 치고 빨리 잡아라, 하고 외쳤던 소리는 바다 파도 소리와 함께 어디 갔는지 종용해 졌어요. 조용해 졌어요. 그 뒤따라오던 애굽군의 말 발굽소리는 어디에 묻였습니까? 바다에 묻혔죠. 그러면 바다하고 애굽이 싸워서 애굽이 졌습니까? 애굽 군사가 미쳤어요? 바다하고 싸우게요. 패배한 애굽군사의 적은 누구입니까? 히브리인들, 이스라엘로 봤죠.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은 승리한 줄도 모르고 그들은 바다 물에 잠겨서 다 몰살 당했습니다. 그러면 승리한 분은 누구입니까? 승리한 분은 바로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이시니 그 이름이로다! 말도 어려워요 이름이라는 말은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하신 어떤 하나님, 동행하신 어떤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의 특징이 뭐냐 하면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대로만 실시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준다? 안 들어준다? 일체 안 들어줍니다. 그것을 들어주게 되면 애굽으로 도로 돌아가요. 출애굽이라는 것이 성사가 안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있는 그 나라를 보내주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준 언약에 맞춰서 그들을 데려갈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물어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함축해서 성취된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이 세 개가 함축해서 성취된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그게 바로 새 언약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성취된 거거든요. 아브라함의 언약은 아버지가 아들을 잡았죠. 이삭의 언약은 이삭이 원하는 대로 축복해 주지 않고 이삭이 싫어하는 아들에게 복이 넘어갔죠. 야곱의 언약은 야곱에게 사랑하는 독자, 좋은 옷 입히고 특별대우했던 요셉은 어디 갔습니까? 짐승에게 물려서 죽어버렸어요. 그러니 야곱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그러니까 세 가지 언약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아버지가 진짜 사랑하는 아들은 죽었다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식이에요? 사랑하는 자식이에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했죠.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 하는 자죠.
왜 사랑하는 아들과 왜 기뻐하는 자를 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십니까? 무슨 장난칩니까? 뭐 그런 하나님이 다 있어요? 좋은 게 좋잖아요. 나의 하나님이다. 받으소서! 얼마나 수월합니까? 하나님이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바치기로 만반의 준비가 다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내부에서 알아서 해 버려요. 내부면 누구입니까?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그 일을 돕기 위해서 성령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돕지요.
그게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진짜 하나님의 구원 작업인 겁니다. 우리가 예상한 구원작업이 아니에요. 가인처럼 받으소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헌금 받으소서! 이런 방식이 아니에요. 그 방식으로 해 봐야 지옥 가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하는 방식을 이스라엘에게 적용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승리하느냐 하면 항상 누가 승리해야 되느냐 하면 이스라엘이 승리하면 안되고 이스라엘의 내부에 계신 하나님이 승리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 승리의 방법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는데 그게 바로 희생제물이에요.
그러면 이방나라라는 것은 결국 뭐에요? 이방나라가 구원받는 말입니까? 구원받지 않는다는 겁니까? 애굽이 구원받아요? 안 받아요? 애굽은 구원과 관계없어요. 애굽은 이스라엘을 내놔야 됩니다. 보내도록 해야 돼요. 모세가 뭐라 했습니까? ‘바로 왕이여!’ ‘그래, 왜 찾아왔는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그래, 여호와 이름이 왜 너를 나한테 보냈데? 보낸 이유가 뭔데?’ ‘내 백성을 데리고 나에게 찾아온 여호와께 제사 드려야 되겠습니다.’ 애굽왕이 처음에는 보냅니까? 안 보냅니까? ‘미쳤나 여호와가 누구관대’ 하죠. 그러면 출애굽할 때 이슈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정복시키고 혁명을 일으킨 이슈가 아니고 단비 뭐에요?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 가서 하나님께 뭐 하겠다? 제사 드리도록 당신의 협조를 부탁한다했는데 애굽이 협조를 했습니까? 안했습니까? 협조를 안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몽둥이로 10번이나 애굽을 때리잖아요. 그 때린 이유가 뭡니까? 구원받으라고 때립니까?
애굽 나라 바로가 구원받으라고 때렸어요? 협조 안한다고 때렸잖아요. 얻어맞고 협조했어요? 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가라! 제사하든 네 마음대로 가라! 이렇게 했다 말이죠. 그 사건을 이 시대에 반복하겠다는 것이 디모데전서 2장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여! 이방민족, 국가로 하여금 진짜 하나님의 백성 천국인 이들이 누구를 섬긴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섬기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그들이 쓸데없이 방해 놓거나 해방 놓지 않도록 기도해라 이 말입니다. 그들을 구원하라고 임금이 구원받으라고 한 게 아니고 높은 사람 구원받으라고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천국을 이루는데 천국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한 보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협조 공문보내서 협조요청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옛날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옛날 애굽당시에도 그들이 히브리인들 발목을 잡았다가 그들이 수십만, 수만 대군이 홍해바다 에 빠졌습니다. 똑같은 현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자,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 누가 함께 동행한다? 중보자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함께 안 되하여 동행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은 가나땅을 찾아온 이방인들은 어떤 자세와 어떤 태도로 나와야 됩니까?
기생라합이 있죠. 기생 라합이 정탐꾼 살려줄 때 살려준 취지가 뭐죠?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있어서 광야 통과하면서 어느 민족도 당신을 당해 낼 재간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가운데 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모시기 때문에 당신의 소문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당신의 이스라엘을 누가 막으리오, 어떤 민족도 당신을 감히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데 있어서 동의하고 인정할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정탐꾼이 왔을 때 기생라합이 그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숨겨준 거예요.
기생라합의 가족을 빼놓고 나머지는 전부 다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적대적 관계이죠. 그런데 기생라합은 특이하게 여기에 협조가 된 겁니다. 그래서 여리고성 무너질 때 누가 구원받습니까? 기생 라합만 구원받는 거예요. 기생 라합이 마태복음 1장 5절에 보면 살몬은 어디에서? 라합에게서, 이미 족보가 달라져요. 족보가 혈통적 족보가 아니고 언약으로 조정이 된, 언약적으로 조치가 가해 진 그런 족보가 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는 드디어 마리아가 누구를 임신합니까?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지상의 존재와 하늘의 존재가 접속이 되지요. 그것을 뒤에서 소급해 보면 하늘의 족보와 땅의 족보가 접촉이 되는데 그것을 소급해서 보면 이미 그러한 징후와 그러한 조치가 이미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었죠. 그럴 때 이게 교회되는 거예요. 이게 진짜 교회 혈통으로만 이어지는게 아니고 그 혈통의 외부의 요소가 자꾸 가미되는 거예요. 마리아에서는 성령이 임했지만 그전에는 이방인에게는 외부에서 왔다는 표시로 도저히 구원받지 못할 이방여인을 통해서 이게 오게 됩니다.
라합에게서 그 다음에 나온 게 누구에게서 입니까? 라합에게서 그 다음에 룻에게서, 룻이 무슨 여인입니까? 룻이 거저 건진 여인이에요. 룻이 모압여인이에요. 아브라함의 혈통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고 이방여인이거든요. 그 다음에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우리아가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이방인입니까? 이방인이에요. 그러면 마지막 네 번째 마리아에게서 인데 마리아가 이방인입니까? 유대인입니까? 에이, 마리아는 유대인이네, 마리아는 하늘나라 보기에 이방인이에요. 나늘나라 보기에 앞에서는 이방인 유대인, 이방인 유대인 대조가 되죠. 마지막 진짜 주님 오실 때는 마리아 자체가 하늘나라 이방인을 대표해서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늘나라 갈 수 없던 언약대로 하면 도저히 갈 수 없는 자들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특별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하나님만이 사는 그 하늘나라에 넣어준다는 표현이 이런 역사적 표현으로 표현한 거예요. 역사가 너 같은 인간도 구원받아! 라고 그것을 증명하는 역사의 장, 역사의 흐름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혈통적 족보로 잃지 말고 혈통과 이방인이 섞이는 그런 조건으로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이땅찾아 왔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그게 납득이 되고 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되는 거예요. 이러한 라합에게서 그 다음에 룻에게서 우리아의 아내에서 할 때 누가 강력하게 반대하겠습니까? 바로 자칭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자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겠죠.
예를 들면 원래 의존교회 교인이 아닌데 날아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말이 있죠. 한윤범 목사님이 다음 주부터 의존교회 온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미아 선생님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태양이 둘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거예요. 우리보고 생활을 감당하라는 말인가?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왔잖아요. 오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제가 의존교회에 등록하면 누가 반대하느냐 하면 한윤범 목사님이 ‘어디서 날아온 돌이...’ 이렇게 나옵니다. 보세요. 사람이 참 이상하죠. 분명히 자기가 이방인 되어가지고 덤으로 하나님 약속의 구원을 받았으면 자기가 옛날 올챙이 시설을 생각해서 이방인을 수용해야 되는데 일단 사람이 턱하고 자리를 잡게 되면 이게 더 미워요. 더 못됐어요. 자기의 올챙이 시절을 생각 못하고 또 오는 사람을 반대하는 거예요.
인간은 한번 자리를 잡아놓으면 그게 이방인이라 해도 이미 유대화 되어 버리는 겁니다. 굳어져 버린 거예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그래서 또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만날 이런 꼴이에요. 일체 이것을 아예 애초부터 없애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구원론으로 보면 안돼요. 너 구원받았어? 안 받았어!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어디를 경유하느냐 하면 위로 올라가야 돼요. A라는 사람 있죠. B라는 사람 있죠. A라는 사람이 구원받았냐? B라는 사람이 구원받았냐? 이렇게 서로 따질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구원론되어 버립니다. 모든 한국교회 문제가 구원론이 이렇게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구원론하지 말고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에게 소속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하나라는 말은 우리의 중보자가 두 명이 아니고 세 명도 아니고 오직 하나다 말입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밖에 없듯이 이 교회에 머리되시는 분이 두 분의 목사가 아니고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 밖에 없는 겁니다. 어디서 왔던지 인천에서 왔든지 부천에서 왔던지 그것을 따진다는 것은 나만 하나라고 고집을 부릴 때는 너는 둘이야, 저 사람은 셋이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만 하나가 될 때 나도 예수님을 경외 하니까 예수님 안에서 하나라면 당신도 예수님을 경외하면 나와 똑같은 하나가 되고 하나 더하기 하나 해서 7이 되고 8이 되는 것이 아니고 1+1=1이요 1+2=1이요 1+1+1+1=1이요 백날 더해도 전부 다 한 몸이고 한 세례 받은 것이고 한 소망이고 한 지체이고 한 믿음이고 한 주고, 그리스도로에요.
그럴 때 한 언약이 성취 되었기에 바로 이런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만약에 남편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아내도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둘이 분명히 그 집안에 호적에 2명이죠. 강아지 빼고 2명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경유하게 되면 1+1은 2가 아니고 하나가 돼요. 둘이 되어버린 하면서 노래 나오잖아요. 투투가 부른 노래에 이렇게 반쪽같은도 아니에요. 하나라니까요. 그게 한 몸이에요. 둘이 착하게 바르게 사랑한다고 한 몸이 아니고 예수님만 경유해 버리면 다 하나가 되어 버려요. 그것을 이스라엘은 혈통의 하나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혈통, 다윗혈통이 아닌 사람은 전부 다 이방인 취급을 해서 성전에서 이스라엘들 따로 있고 그 밑에 여자들 따로 있고 그 밑에 이방인들이 따로 있어서 이방인들은 나가 놀아라! 해서 전부 다 배척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구역 정리를 인정했습니까?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그냥 주워먹는 거예요. 누구든지 나한테 붙으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하나가 되고 강도도 나한테 붙으면 하나가 되고 창기도 나한테 붙으면 하나가 되고 소경도 나한테 붙으면 하나가 되고 그리고 문둔병도 나한테 붙으면 하나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너 율법지켰어? 안지켰어? 십일조 했어? 안했어? 안식일 지켰어? 할례행했어? 그들은 나름대로의 율법가지고 전부 다 쪼개는 거예요. 그래서 너는 계급이 이 정도이고 나는 상사이고 너는 하사이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주님은 그게 없어요. 전부 다 붙으면 다 하나가 되는 거예요.
12이라는 숫자는 하나가 이 지상에서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12를 줘 놓고 12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겁니다. 12명이 투표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기로 작정했습니까? 아니죠. 12명의 특징이 뭡니까? 12명의 특징은 전부 다 12이 됐다는 겁니다. 베드로의 말을 요한이 들었습니까? 아니에요. 그러면 벌써 두명이죠. 가룟유다의 말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동의했습니까? 아니죠. 벌써 3명 됐죠. 야고보의 말을 베드로가 순종했습니까? 아니죠. 벌써 4명됐죠. 요한의 말을 베드로가 인정했습니까? 아니죠. 벌써 5명 됐죠. 12은 아무리 헤아려도 12이에요. 가룟유다 빼놓고 11명은 아무리 헤아려도 11명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하나 되게 한 것은 무엇이 왔기 때문에? 오순절에 무엇이 왔어요? 오순절에 성령이 불같이 오니까 이 불은 내 불입니까? 저쪽 불은 네 불이고 이쪽 불은 내 불이에요? 다 하나에서 나온 불이죠. 그 성령의 불은 뭡니까? 전부 다 그 전체를 하나 되게 만든 거예요. 여러분 일곱 교회가 어느 손에 붙잡혀있습니까? 주님의 오른 손에 붙잡혀있죠. 일곱 교회가 일곱 교회로 놀 때 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교회가 예수님을 경유해 버리면 일곱 교회라는 자리는 그대로 있고 그 자리의 멤버만 교체될 뿐 이에요.
붕어빵 틀이 칸막이가 10개라합시다. 그러면 10개 굽고 집에 갑니까? 어떻게 합니까? 10개 구웠네 집에 가자! 이것은 꼭 바보 같아요. 바보한테 시키면 이거 다 구워내라 하면 엄마 10개 다 구웠어! 하면서 갑니까? 10개 굽고 나면 무슨 자리가 있죠. 그 빈자리는 쇳덩어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안 사라지죠. 거기에 반죽 넣고 앙꼬 넣으면 또 붕어빵 찍어내면 되잖아요. 그게 144,000인거예요. 10이라는 자리에서 계속 찍어내면 그건 천 번이나 찍어내면 144,000 되는 겁니다. 그 10은 어디에서 모아지는 겁니까? 하나에서 모아진거예요.
예수님의 하나 됨을 증거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특징이 있어요. 모두다 누구의 이름으로 구원받았다?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일이 없고 모두 누구의 이름입니까? 자기 목사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의 특징이 오직 예수의 이름만 불러요 자기 목사 이름 부르는 게 아니에요. 어느 목사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이런 소리 안 합니다. 십자가 지신분의 이름을 불러요. 피로 불러주신 분이 그리고 그들이 유대인들이 유리바다 건널 때 누구를 찬양합니까?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시다. 이방 나라의 역할이 뭡니까? 이방 나라는 이미 너희들 말고 하나로 굳혀진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 쓸데없이 까불다가는 너희들이 당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말은 기도 하면 구원받는 구원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구원받은 그 나라를 하나님이 알아서 잘 지켜 잘 보존하고 지켜 주는 보조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이방 높은 자에게지 그렇게 한 거예요.
이제 부터 약간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가야바한테 재판받았습니까? 빌라도 에게 재판받았습니까? 사형언도를 최종 내릴 자격자가 누구에요? 그게 가야바입니까? 빌라도입니까? 그게 빌라도이죠.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내가 너를 잡을 권세도 있다. 유대인들이 너를 고소한 것을 들어봐라, 많은 증거, 많은 혐의점이 올라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버지의 뜻이 없다면,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뜻이 없다면 절대로 너희는 나를 체포해 둘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냐 하면 내 나라는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내 나라는 이곳에 없다는 거예요. 맞지요? 제 말이 맞지요? 내 나라는 이 손에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묻습니다. 성도의 나라는 어디입니까? 지금 성도들은요 직접 예수님이 하나님과 관계하지 말고 예수님과 아버지가 의논한 것에 우리가 참여해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것을 자꾸 놓쳐버려요. 이제 내가 예수 믿었으니까 직접 상대한다는데 직접 상대하지 마시고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에 있던 대화에 우리가 참여하는 식으로 구원받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나도 안 속해야지 그렇게 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내실꺼에요. 왜냐? 내가 주체가 아니고 누가 주체이기 때문에? 누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님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님이 발설한 그 내용대로 그대로 우리에게 덮쳐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이 세상 사람이 되고 싶어도 안돼요. 그게 되지를 않아요. 그게 되지를 않아요. 이게 얼마나 귀한 이야기인지, 강의 처음 할 때 예수 믿고 안 믿고를 누가 결정한다? 마귀야 저리가! 예수 믿을 거야! 이거 누가 결정한다했습니까? 제가 처음 강의한 것 해 보니까 예수님의 언약, 언약 안에서는 예수님께 이루어진 그 일이 우리의 동의와 상관없이 그냥 우리에게 덮쳐 버린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죠. 우리가 그것을 지킬까요? 우리가 지킬 문제가 아니고 반드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기까지 이해되지요? 그 다음이 어렵습니다. 그 다음이 뭐냐 하면 우리로 하여금 빌라도 앞에 세웁니다. 어떻게 할까요? 목사님 왜 우리를 빌라도 앞에 세운다고 합니까?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잖아요. 마태복음1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제가 첫 번째 시간부터 지금 까지 이야기한 것은 국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조하는 그냥 고요하게 평안한 생활하라고 했죠. 그런데 막상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당했습니까? 예수님이 고요했습니까? 예수님이 환영받았습니까? 대접받았습니까? 예수님이 특별대우 받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주 온아하게 삶을 살았습니까? 아니죠. 여기 말씀대로 그들을 공회에 넘겨 채찍질하죠.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에이 남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이건 옛날 제자들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러분 숫자 하나, 예수님 둘이 되어버려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제자들이 있으면 제자들까지 셋이 되고 그러면 이게 하나가 안돼요. 우리가 진짜 나 하나, 예수님 만나면 하나, 제자들 만나면 하나, 하나가 된다면 예수님께서 일어난 상황이 그대로 우리에게 언약적으로 덮치게 돼요. 덮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이름이 아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저한테 멱살 잡고 따지지 마세요. 이것은 주께서 그렇게 하세요. 왜? 하나 되기 위해서 내가 당한 고난도 너희도 당해야 돼요. 주님 마신 쓴 잔을 우리가 마셔야 돼요. 여러분을 지금 무섭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요. 내가 복음을 전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질려버렸다고 하는데 이것은 질리든 안 질리든 그 문제가 아니고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을 제시하는 거예요. 그럴 때 뭐라 하느냐 하면 그럴 때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합니다. 왜 필요 하느냐 하면 그때 너희가 말을 할 때 너희들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성령이 말하게 한다. 그런 상황이 되려면 그 앞서 준비된 장치들이 있어야 돼요. 그 준비된 장치들이 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을 핍박한 그 권세자들이 그 다음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채찍에 맞고 공회에 끌려가는 모든 준비되었을 때 그럴 때 비로소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누가 말한다? 성령께서 말하는 거예요. 타이밍이에요. 이 타이밍이 마태복음10장에 나와 있으면 그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운명이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그 이야기는 맞는 것 같는데 제가 지금 까지 한 평생 살면서 저는 경찰서 한번 가본적도 없고 국정원에 끌려간 적이 없는데 그러면 마태복음 10장의 상황이 안 일어났으니까 나는 예수님의 신자, 혹시 신자가 아닌게 아닐까요? 라고 묻고 싶어서 근질근질 하시지요?
간증 집회가 그만큼 위험한 거예요. 그래서 그 점을 제가 설명해 드린 겁니다. 이스라엘 속에 누가 있습니까? 묻고 답해야 이해돼요. 이스라엘 속에 누가 동행한다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동행하죠. 그러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를 공격해요? 함께 계신 하나님을 공격하는 쪽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지요. 만약에 이스라엘이 갈렙과 여호수아에서 믿음이 있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정탐꾼을 보냈는데 10명이 뭐라 했습니까? 우리는 메뚜기 같고 저쪽은 장대 같아서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고 그냥 대성통곡하고 울어버렸어요. 울어버리니까 하나님께서 우는 사람들 다 죽였어요. 그러면 적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적이었습니까? 동행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적이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들의 생존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적들 보다 더 센 분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존재한다고 주체를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는 주님을 봉사하는 하나의 종으로서 자기 자리를 잡은 거예요. 그래서 여호수아가 나섭니다. 여호수아가 자기를 믿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더니만 이것은 뭐 적들이 다 넘어지네요.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태양이 지다가 말아요. 태양이 눌러도 안 져요. 꾹꾹 눌러 담아도 지지를 않아요. 이게 여호수아가 힘이 세서 이렇게 눌렀습니까?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분이 따로 있죠. 그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그 상황을 일단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그대로 반복을 해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한테는 반복을 합니다. 그러면 아까 여러분이 질문하신 것, 목사님 저는 형무소도 안가고 교도소도 안가고 파출소도 간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죠. 이것을 생각해 보세요. 아까 이스라엘의 적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내부 사람이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때 바로 직접 블레셋이 적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동시에 누구를 죽입니까? 같이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적이 하나님을 생각 안하는 우리가 적이 되지요. 그러니까 옛날 출애굽 당시 애굽을 쳤던 그 경우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 돼 버린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평소에 늘 생각하지 않다보니까 형무소 갈일도 없고 파출소 갈 일도 없어요. 혹시 가더라도 이것은 벌금 물러가는 것이지 복음하고 상관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복음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안 좋아하고 말씀도 관심이 없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같은 편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조용하게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생각한 순간 난데없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나님의 적이 우리를 향하여 달려듭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는 날이 일 년이 두 번, 하나는 설날이고 하나는 추석 때입니다. 왜 그런지 알아요? 집안 어른들 모이면 종교 이야기 끄집어냅니다.
종교 이야기 끄집어낼 때 그 쪽에서 눈치도 없이 십자가 복음 이야기해 보면 그렇게 정 많던 동서 형님도 갑자기 발작을 일으킵니다. 너희 이단 아니야? 너 누구한테 배웠어? 한국교회가 그러면 다 엉터리야? 너만 구원받고 다 지옥 간다 말이야? 갑자가 오바적인 발상이 일어납니다. 그런 경우 없었다고요? 그러면 본인이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본인이 스스로 속으로 하나님이 가만히 계세요. 입장 난처하게 만들지 말고 오늘 추석입니다. 분위기 왜 깹니까? 지금 일타쌍피해서 돈 따려고 하는데요. 돈 따고 있는데 그런데 십자가로 쳐 버리면 이 쪽이 화가 나서 이겨버려요. 일단 돈을 따고 그 다음에 이야기하든지
평소에 우리가 너무나 세상을 협상과 타협 쪽으로 간 거예요. 이유가 뭐냐, 내가 편한 것이 진리이고 내가 말씀 없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우리 육신이 나를 가르쳐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용해 해라! 조용한 것이 좋은 거야. 이미 그런 식으로 습관화 되어 있었어요. 사모님이 물건 팔면서 ‘어서 오세요. 십자가 믿으세요.’ 아무도 안 옵니다. 십자가는 한윤범 목사님한테 듣고, 지금은 애 공부하는 게 중요한 거고 돈 버는 게 중요하지. 십자가는 나중이다 말이죠.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과격하게 나오라는 말이 아니고 이게 때가 있어요. 때가 있을 때 이렇게 하세요. 주님이여 저는 절대로 주님의 종이 될 수 없고 주님의 말씀에 관심조차 없는데 주께서 마태복음10장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난처한 입장을 몰아세우니 감사합니다. 그때 내가 불쑥 복음 이야기한 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요 제 속에 그리스도 영께서 그리스도 스스로 저쪽 적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분과 직접, 너 빠져 내가 싸울게 라고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적들과 마주쳐서 적들을 공격하는 그 작업에 그냥 쓰이게 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것도 1초 내지 2초 하고 훅 지나가요. 늘 24시간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럴 순간이 반짝하는 순간이 와요. 마태복음 10장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빌라도 이야기해 볼게요. 빌라도가 너는 내가 놓을 권세가 있다 할 때에 이런 경우는 우리가 매일 당해요. 사장이 종용히 불러서 지금 수출 없고 하는데 교회라고 그렇게 마음대로 가면 돼요? 지금 회사상황을 알아야지, 왜 이러세요? 회사 한 두해 다니고 사표 낼일 있습니까? 지금 잔업하고 오늘 일요일 이것까지만 하고 다음에 내가 마음대로 교회가게 해 줄게 라고 할 때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굴복합니다. 에이 빌라도여 감사합니다. 우리를 살리니까 감사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성령의 일을 한다?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는 굴복할 마음자세가 되어 있어요. 예수고 뭐고 입 안 떼기로 마음에 작심을 했어요. 우리가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를 주께서 자꾸 상황을 만들어 냄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어찌할꼬! 나 같은 죄인을 어찌할꼬, 이미 아시고 빌라도 붙여주신거예요. 우리 힘으로 세상을 이긴다? 미쳤어요? 무슨 수로 이겨요? 우리 힘으로 짐승을 이긴다? 아예 언감생심 그런 마음갖지도 마세요. 우리는 못 이겨요. 그런데 누구는 이깁니까? 우리 안에 계시는 분이 그런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용서가 용서답기 위해서 우리보다 센 세력들을 평생 동안 우리 주위에 깔아 놓으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이스라엘 옆에 블레셋 모압, 암몬, 구약성경에 뺑 돌아가면서 울타리 옆에 온 강적들은 다 있죠. 앗수르 바벨론 왜 있습니까? 망해야 그 망한 자리에서 메시야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죽이다니 어찌할꼬! 할 때 걱정하지 마라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그 십자가의 피가 그런 너희의 죄도 하나님을 죽인 죄도 용서해 주신다고 이미 약속해 주신 거예요. 따라서 이 말씀듣고 나 빌라도 만나 멱살 잡을 거야! 그러지 마세요. 이제는 사장한테 한 소리 할 거야! 그러지 마세요. 왜 여러분들이 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왜 하세요? 주의 뜻이 있는데 그러면 굴복할까요? 굴복이 여러분의 재주 아닙니까? 기껏해 봐야 굴복하는 재주밖에 없잖아요.
송재원씨 계약할까요? 하면 좋아가지고 벌써 100만장 팔린 줄 알지만 우리 육신은 그런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아, 내가 바로 주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과 행복만 챙겼습니다! 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그 죄를 십자가로 용서하는 그래서 조용히 다시 한번 주께 감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자들도 그랬고 제자들이 용감한 사람 아닙니다. 다 도망쳤던 사람들이에요. 그 도망치는 일들을 또 다시 우리로 하여금 되풀이해서 만날 우리는 도망치는 것밖에 모르고 우리는 닭이 울던 말든 세 마리 울더라도 조류독감 다 걸려버려요.
닭이 울어도 우리는 나만 챙기고자하는 이런 마음, 일부로 그렇게 만들어서 주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한 세력이 옆에 보호한다고 했죠. 과연 보호해 줄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보호받아서 안 죽었습니까? 로마에서 오래오래 살았습니까? 목 잘려 죽었다는 전설이 있잖아요. 자기는 그렇게 임금들을 위해서 기도 해 놓고 기도 응답이 왜 안 됩니까? 사도 바울은 약한데서 내가 강함이라 나는 이 세상에 사는 것 보다 하늘나라가 더 좋아 그런 마음을 강한 도저히 먹히지며 않는 그런 세력에 둘려 쌓일 때 사도 바울은 주님만 생각했습니다. 그 형편이 지금 성령을 통해서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똑같이 반복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면도 우리에게 뭐라 합니까? 그래도 기도 하라! 왜? 저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누가 계시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모를 네가 경험해 봐라! 이런 뜻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복음 전하는 것을 굴복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섰던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회상되는 겁니다. 맞아 내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지, 사장한테 굴복하고 파출소장한테 굴복하고 굴복하는 것밖에 할 줄 모름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것을 기도 하는 가운데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감히 우리 그리스도를 모멸하다니 라고 말씀대로 기도 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내가 소속이 어디인가가 더욱더 분명해 질 겁니다. 또 그렇게 기도 하게 하실 거예요.
기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이 당했던 그 환경이 변함없이 지금도 마귀 앞에서 실시되고 있고 애굽에서 빠져나오면서 고생했던 그 출애굽 백성들처럼 주님께서 동행하지 아니하면 구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잊었습니다. 이제는 실 생활가운데서 때 마다 네가 하늘에 속한 사람이고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같이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