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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딤전 1:18 / 사단 / 140214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디모데전서

딤전 1:18 / 사단 / 140214

정인순 2014. 2. 16. 16:24

 

 

음성1                 음성2

 

동영상1                  동영상2

 

녹취:김창길

서울 의존교회140214a (사단)―이 근호 목사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 한 내용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왜 복잡하고 난해 하느냐 하면 일상생활에서 사단이 등장할 수 있는 그런 활동의 장이 이 세상의 평소에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어떤 경우에 사단이라는 말을 거론할 수 있는 환경이 될까요? 내 몸이 아플 때 사단이 들어왔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이 그것에 동의 해 줄까요? 바이러스가 사단입니까? 감기가 바이러스에 의해서 감기가 되는 겁니다. 바이러스라는 그 감기 바이러스가 왔을 때 내 몸에 사단이 들어온 겁니까? 병원에서 어이고 사단 들어오셨네요! 그렇게 이야기합니까? 아니죠.

 

이것은 바이러스가 들어왔기 때문에 쉬시면 됩니다. 또는 세균에 감염이 되었을 때는 세균이라는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을 때는 항생제를 쓰면 병이 낫거든요. 그러면 세균에 감염된 것이 사단이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항생제는 사단을 이기는 즉효약이 되어 버리죠. 그래서 사단이라는 말을 언급할 때는 일상생활에서 사단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함부로 쓸 수 없는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이 사단에게 내어준, 악마에게 내어주었다 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우리가 일상에서 시장 통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그러한 세상판 말고 다른 판을 깔았다고 보면 돼요.

 

씨름할 때는 모레를 깔아야 되지요. 씨름할 때에 야구 베이스를 깔아놓으면 야구하는 건지 씨름하는 건지 잘 모르잖아요. 씨름할 때 잔디를 깔면 안 되잖아요. 씨름할 때는 씨름할 때 맞는 판을 깔아야 되듯이 사단을 딱 들어내게 하는 그 판이 되려면 그 사용되는 용어들이 사단의 정체가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의 그러한 주변 환경이 그렇게 짜여져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상식이라면 사단이라는 것은 천사입니다. 천사인데 악한 천사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대적했던 악한 천사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천사가 같이 공유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소치 올림픽? 올림픽에 스케이트 타다가 사단이 역사해서 우리나라 사람끼리 반칙해서 자빠지고 넘어지고 그런 겁니까?

 

소치 올림픽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을 위해서 만든 인간의 올림픽이지 거기에 천사를 섬기겠다. 또 천사를 협력자로 보태서 인간과 천사, 모두를 위한 올림픽, 그렇게 하지는 않지요?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어느 종목에 천사가 참석했습니까? 컬링? 어디에서는 천사들이 선수단을 파견했지요? 천사에서 보낸 선수단이 없지요? 없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천사 선수단을 안 보냈으니까 천사가 금메달을 땄을 때 시상하는 시상대도 필요 없고 결국은 소치 올림픽의 모든 장치나 설비는 뭐를 배제하는 겁니까? 천사를 배제하는 거죠. 천사를 배제하면 뭐도 배제한다? 사단이라는 완전히 배제하고 소치올림픽을 감행한 겁니다. 따라서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면 유엔 본부에서 여는 회의는 거기에 천사의 자리가 따로 있습니까? 없지요

 

남극에 탐험을 한다. 남극을 탐험할 때 탐험원들이 번호! 하나, 둘, 셋, 다섯 명, 여섯 번째요 천사가 여섯 번째 이야기합니까? 아니죠. 자칫하면 남극에서 천사가 얼어 죽는 수가 있어요. 제가 하는 말은 이 세상에 어떤 조직과 제도를 가지고 천사까지 포용해서 천사를 같이 넣어서 줘서 천사와 더불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기관이나 단체는 인간의 힘으로 성사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사될 수가 없지요.

 

그러면 악한 천사를 언급한 사도 바울의 현실감은 뭐냐?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의 세상 관에 동조가 돼야 되지 상대방은 천사도 인정하지 않고 사단도 인정하지 않는데 여기에다가 불쑥 내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그를 사단에 내어 줬다 이렇게 이야기해 버리면 듣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인생관, 어떤 세계관 가지고 그 말을 진위를 수용할 수 있느냐 말이죠. 수용할 수가 없지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송파경찰서에 내 줬다 이게 이해가 되잖아요. 신호위반으로 사기죄로, 그런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게 내줬다, 사단이 강북에 있어요? 강남에 있어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따라서 사람들이 이것을 볼 때 마다 평소에 사람들은 천사와 사단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입장에서 이 말을 불쑥 해 버리면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억지를 부리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내가 살고 있는 기존세계관을 유지 하면서도 천사가 있을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우기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거짓말이죠. 천사 하나가 들어가거나 천사가 나가도 전혀 달라질 것이 없는 일상의 우리의 세상관, 그것을 고수하는 거예요. 천사가 왔으니까 내 세계관을 바꿔야 되겠다. 그런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사 지가 뭔데? 네가 뭔데? 천사 너 때문에 내 세계관을 왜 바꿔야 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들어오던 말든 나는 내 세계관을 고수하겠어! 이러한 입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게 내어줬다는 것은 전혀 먹힐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세계관 속에는 나는 천사를 고려하고 내 세계관을 구상했을 경우에만 이 말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될 겁니다. 내 세계관 속에 천사를 고려할 때 그러면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우리 인생관부터 뭐를 고려해야 된다? 천사가 활동함을 고려한 내 인생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러면 그 인생관은 수능에 나옵니까? 초등학교에 나옵니까? 중학교에 나옵니까? 거기에 안 나오죠. 천사 이야기, 요정이야기는 옛날 전설과 신화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말이에요.

 

별에서 어떤 사람이 왔는데 4백 년 동안 늙지를 않아요. 그러면 우리나라 대통령을 그 사람한테, 김수현한테 맡길까요? 별에서 온 그대에게 다 맡길까요? 천사가 활동해 봐야 대한민국은 영원하다 이래 되잖아요. 천사가 왔다고 해서 인생관이 달라진다는 것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양보할 마음조차도 없는 그러한 식으로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게 내어줬다고 아무리 협박조로 이야기해 봤자 나한테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바로 그 점을 사도 바울이 지적하면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너희들처럼 그런 식으로 평소에 그렇게 안일하게 살아 왔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희들은 천사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 사람들, 장바닥에서 장사하는 그런 사람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유지 하면서 어디를 가? 천국을 가? 세상관 유지 하면서 천국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애굽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겠다고 시도 했던 모든 사람들, 두 사람 빼놓고 다 실패했지요. 맞잖아요.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는 실패했지요. 그들이 왜 못 들어갔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읍시다. 그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왔는데 멋들어진 경험을 했어요. 놀라운 경험입니다.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했으니까요. 실제로 목격하는 체험학습을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만나를 먹었고 생수를 마셨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느 땅에 못 들어갔어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잖아요.

 

왜?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 까요? 왜 못 들어갔을까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그들은 기존의 자기 세상관, 인생관을 사수하면서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계획과 계시가 합쳐질 수 있다고 오해한 겁니다. 애굽에서 살던 그 일상의 모든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해는 동쪽에서 뜬다. 그런데 이제는 구원받았으니까 해는 서쪽에서 뜰 것이다. 자, 구원받기 전에는 해는 동쪽에서 떴지만 구원받고 난 뒤에는 해가 서쪽에서 떴다 이거 맞아요? 틀려요? 틀린 이야기죠. 동쪽으로 뜨나 서쪽으로 뜨나 동서남북은 이미 구원받기 전에 갖추어진 우리의 세계관이라 이 말이죠.

 

그러면 구원받기 전에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지만 구원받고 난 뒤에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는 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다면 뭐가 틀려버려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을 그것을 알아도 그것이 진리입니까? 진리 아닙니까? 진리가 아니죠. 그것은 진리가 아닌 게 돼요.

 

터무니없는 예지만 들겠습니다. 키워준 엄마하고 낳아준 엄마하고 드라마 보면 나오잖아요. 출생의 비밀에요. 어느 날 어린 딸하고 키워준 엄마하고 수학문제를 풀고 있어요. 그때 갑자기 딸을 낳은 엄마가 들어와 이제부터 내 딸을 내가 키우겠습니다. 이 딸을 내가 키우겠습니다. 내가 낳았기 때문에 나도 권리 있습니다. 그동안 키워준 것은 고맙지만 이제부터 내가 키우겠습니다. 할 때에 그 키워준 엄마가 딸에게 의견을 물어봅시다! 하고 둘이 합의해서 숙제하고 있는 딸보고 ‘딸아, 새로운 낳았다는 엄마 따라갈래? 아니면 지금 까지 10년 동안 키운 날 따라 갈래?’라고 물으니까 그 딸이 하는 말이 ‘그러니까 7곱하기 6은 42맞는 거죠?’라고 이야기했다 합시다.

 

그럼 7곱하기 6이 42라는 그 점이 그 딸의 운명을 결정 할 결정적인 발언입니까? 지금 묻는 게 뭐에요? 제가 아까 터무니없는 예라 했지요. 지금 성경 자체가 우리 세대에 안 맞아요. 우리의 세대는 애굽의 세계이고 지옥 갈 세대에요 그런데 우리는 지옥 같은 세상에 살면서 죽어서는 좋은데 가려하는데 그 자체가 이 세상에서 조작해서 만들어낸 악마가 그렇게 가르쳐준 그런 기독교거든요. 질문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거든요.

 

난데 나 죽어서 어디 가면 됩니까? 라는 질문 자체가 우리가 만든 애굽 같은 세상에 성립이 우리입장에서 성립이 되는데 하나님에게는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왜냐 하면 이미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 마땅하죠? 이런 질문이 돼야 될 텐데, 내가 뭐하면 죽어서 천국 갑니까? 라는 질문 자체가 아직도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이야기할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잖아요. 애굽에서 나왔는데 광야를 거쳤다 말이죠. 그들은 만나를 먹었고 생수를 마셨는데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잖아요. 못 들어간 것을 히브리서에서는 그것을 믿음의 내용과 믿음이 화합하지 않아서 그들이 믿는 것과 주님이 주신 믿음이 일치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것은 신약의 이야기이고 구약의 그 당사자에게는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면 애굽에서 나왔던 우리는 구원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약속의 땅이 마땅하다 왜? 우리는 이스라엘이니까 그러니 이제 물이 없다, 물만 주시면 되겠고 양식이 없다, 양식주시면 우리는 양식 먹고 물 먹고 들어가겠습니다. 했는데 막상 어떻게 됐습니까? 물먹고 양식 먹으니까 들어갔습니까? 못 들어갔습니까? 못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 신명기 8장에 보면 그 양식은 그 양식이 아니라는 거예요. 애굽에서 먹었던 입으로 깨물면 단백질, 탄수화물 그런 양식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병이어에서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배불렸잖아요.

 

배불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떠났어요. 6곱하기 7은 42인데 그 딸의 운명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분명히 숙제는 해야 되는데 6곱하기 7은 42가 맞아요. 하지만 그것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했습니까? 아니죠. 예수님 때문에 배불렀어요. 예수님 때문에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 운명이 그것으로 결정됩니까? 안 된다. 이 말이죠. 교회 와서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 병이 나았다고 합시다. 병이 나은 것이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됩니까? 사업이 어려워서 교회에서 기도 했는데 사업이 잘돼서 부자 됐다 그러면 그 사람이 운명이 그것으로 결론된 거예요? 안되지요. 자기가 자기의 욕망과 욕구에서 나오는 질문을 자기가 처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의 욕망과 욕구는 살고자하는 욕망이거든요. 이런 질문 자체가 결국은 기껏해야 내 집구석 내 가족, 내 식구만 챙기겠다는 자기 부인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긍정 자기 확장 그것을 노리면서 하나님을 자기 기회에다가 끌어당기려는 그런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식으로 나는 지금 까지 이 세상에서 살아왔음을 자백해야 돼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나라에 왔다고 이야기 했죠. 가까이 왔다고 했잖아요. 그 다음에 세례요한의 조치가 뭡니까? 하늘나라 가까이 왔다, 그 다음에 세례요한은 잘 있어라, 나는 떠난다. 그러고 말아요? 일을 했죠. 요한 앞에 뭐가 붙죠? 무슨 요한 입니까? 세례요한이잖아요. 그러면 요한은 이 땅에 뭐하러왔습니까? 세례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왔죠. 요한이 물세례인데 세례라는 것이 이 땅에 마트에서 물건 사는데 세례가 필요합니까? 물건 사는데 세례 받고 삽니까? 공무원 시험에 세례 받아야 합격합니까? 아니죠. 전혀 관계없지요.

 

일상에서 물건사고 일상에서 취직하는데 세례가 필요치 않잖아요. 그러면 세례는 어디에 필요한 거예요? 회개하라 천국이 어디에 있다? 천국이 가까이 왔죠. 그러면 세례라는 것은 이 지상생활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는 데는 하등에 필요치 않은 거예요. 따라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무엇을 다 빼야합니까?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다 빼 버리고 어디 에 필요한 것? 천국에 입성할 때 필요한 것만을 제공해야 그게 합당한 교회 맞잖아요. 그러면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다고 되어 있습니까? 쉽다고 되어 있습니까? 어렵다고 되어 있어요? 어렵다고 되어 있죠. 왜 한국교회는 천국 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죠? 제 질문 자체가 잘못됐습니까? 왜 한국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쉽게 하는 게 더 어렵게 왜 만들어요? 왜 부자 되게 만들어서 전부 다 천국 옷가게 만들어요.

 

꼭 부자 돼야 부자가 아닙니다. 부자이고 싶어라‘I want 부자’ 나는 지금 보다 더 상대적으로 지금 보다 더 부자 되고 싶다! 그것은 요한은 세례요한이 아니고 부자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지만 부자 요한은 그리스도와 연결이 안돼요. 천국을 간다고 사기를 쳤지만 사실은 보이스피싱이고요 전혀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과 점점 더 멀어져가요. 삼십 즈음이 아니고 교회 즈음이 됩니다. 교회 보면 점점 더 천국과 멀어져 가요. 진짜 배나 지옥백성 만드는 거예요. 왜? 그래야 교인들이 모이니까요. 교인들은 딱 두 가지에요 병 고치는 것과 부자 되는 것, 두 가지 빼 놓으면 뭐 있습니까? 그것 두 가지 빼 놓고 뭐 있어요? 승진도 돈과 관련 있는데요. 공부 잘하는 것도 돈과 관련 있고 돈과 병 고치는 것 외에는 뭐가 있어요? 없잖아요.

 

세례 주려면 교회 온 사람들을 전부 다 어디다 몰아넣느냐 하면 자기의 가족과 일가친척을 다 버리고 그들을 어디다 집어넣느냐 하면 가까운데 여기 한강 있잖아요. 여기 또 안양천, 너무 얕아서 안 되겠네요. 한강에 가서 물에 다 집어넣어버려야 돼요. 물에 들어가게 되면 자, 물에 들어갔다고 봅시다. 물에 들어갔을 때 통장하고 도장하고 물에 다 젖지요? 소용없지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왔잖아요. 애굽을 나올 때 뭘 건너왔습니까? 바다를 건너왔지요. 그들은 바다를 건너왔지 바다 속에 난 길을 건너온 게 아니란 말이죠. 하나님은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치는 거예요. 그런데 본인들은 뭐를 생각하느냐 하면 바다를 건너오면 물속을 건너온 게 아니고 물속에 난 길을 건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한 번도 바다를 건너온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죽음을 통과한 적이 없는 거예요.

 

그 뒤에 바다 건너오고 난 뒤에 있었던 만나와 생수는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죽은 자들에게만 이미 애굽에서 생활은 나는 죽었다, 따라서 이 만나라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애굽의 그 양식, 그 물, 그 생수가 아니고 이것은 신명기 8장의 말씀처럼 약속의 땅에 필요한 그러한 말씀이다. 말씀이 양식화 되어 있고 말씀이 말로 변화된 것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신명기 8장에 보면 그 양식을 먹을 때 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을 낮추는 거예요. 신명기 8장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너희에게 만나라는 말씀을 준 것은 뭐를 낮추게 함이라? 마음을 낮추게 함이죠. 그렇다면 목사가 설교를 할 때 그 설교는 결국 우리를 어떻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약속의 천국에 부합되도록 나를 낮추는 거예요. 그만큼 세상은 그들이 나왔던 애굽은 사람을 낮추는 세상이 아니고 반대로 어떤 세상입니까? 사람을 높고 높이고 더욱더 높이게 하는 성향 그런 분위기로 갔던 그런 세상이란 말이죠.

 

그런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세례요한은 물속에 집어넣었고 진짜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마음을 낮추도록 다시 말해서 부자 되고 싶다 오래 더 살고 싶다 하는 그런 마음을 낮추도록 하는 거예요.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 남을 이기고 싶다 하는 마음을 낮추도록 하는 거예요. 교회에 부흥해서 다른 교회보다 헌금이 많이 나온다. 그런 마음을 낮추도록 우리 목사는 인물이 잘났다 우리 목사는 노래를 잘한다. 그런 마음을 낮추도록 노래 잘해 가지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고백 노래 부른다고 됩니까?

 

그들이 먹었던 양식이 마음을 낮추는 양식이라면 그 말을 달리 해석하면 그 양식을 먹을 때 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저 물에 빠져 죽어도 마땅한데 오늘도 이 양식을 주셨군요! 하면 그 양식을 먹고 ‘야, 배부르다’ 이게 아니고 이 양식에 배부름에 의미를 두지 말고 배 안 불러도 되는데 배부르게 하셨으니까 그만큼 나한테 과분하다는 마음을 낮추는, 과분하다는 뜻은 마음을 낮췄다는 뜻이잖아요. 나한테 과분하다하는 그 마음을 낮추는 그런 생활이 천국에 부합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한번 정리하게 되면 사탄이 등장하는 그런 환경은 어떤 환경인가? 사단은 천사라 했어요. 그러면 천사가 등장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는데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천국에 못 들어가고 약속의 땅에 못가는 것을 우리를 들어가게 해 주신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 쪽에서 오신 분이 들어가게 했다 할 때에 겸해서 같이 등장하는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사단입니다. 구원에 대한 방해, 공작을 하기 위함입니다.

 

사단이 어떤 지점에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느냐 하면 나는 한 것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피로 용서해 주셔서 그 용서의 피로 그냥 공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그렇게 외치는 그 지점에 비로소 사단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식으로 비로소 그때 등장하는 겁니다. 이번 대전 강의에서 했죠. 뱀의 후손은 어디에 등장한다고요? 여자의 후손이 등장할 때 겸해서 같이 등장하는 겁니다. 일종의 겸상이에요. 상은 하나인데 마주 보면서 식사하듯이 같이 등장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건 속에는 사단과 하나님이 같이 등장하는 거예요. 이것을 바로 하나님의 의와 죄가 같이 등장한다. 이렇게 보셔도 되는 겁니다. 죄와 의가 같이 등장하셨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사단은 구원을 방해하면서 뭐라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 세상이 그 세상이다.’이 세상이 그 세상이고 그 세상이 이 세상이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직 그 하나밖에 없는 다른 세상이 없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세상에 몽땅 다다, 영어로 하면 all, 전부 다 모든 세상이 이것밖에 없다,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 합니까? 애굽 따로 있고 뭐가 따로 있다? 약속의 땅은 따로 있다. 그렇게 되지요.

 

제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면 그 광야에서 갈렙과 여호수아 빼놓고 광야에서 죽었던 그 모든 사람은 약속의 땅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죠? 그런데 약속의 땅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경험한 적이 없지요. 사람이 경험한적이 없으면 결국 없는 거죠. 그렇찮아요.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그들이 발을 딛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본인이 경험하고 들어가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 세계는 결국은 그들에게는 없는 세계에요. 없는 세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은 있는 세계에요? 없는 세계에요? 있는 세계였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같이 믿었잖아요. 그러니까 있는 세계이니까 그 세계에 들어갔고 이쪽에 있는 다른 사람은 가봐야 안다는 거예요.

 

가봐야 알겠다는 그런 발언, 그런 인식은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계속 애굽이 엿가락처럼 등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돼요. 그러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등짝에 애굽이 연결된 것이 아니고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약속의 땅에 그런 요소가 등짝에 연결되어 있지요. 방향이 한 쪽은 과거에서 현재로 붙어있지만 저쪽 하나는 오지 않은 미래가 이미 앞당겨서 자기와 더불어 있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고린도후서 1장에서는 보증금이라 해요. 아파트 살 때 보증금 미리 주잖아요. 아직까지 잔금을 치루지 않았지만 이미 보증금을 끊었다는 것은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 것이 됩니까? 당신 아파트 됩니다. 하고 보증금 걸잖아요. 그 보증금으로 오신분이 누구라고요? 그게 성령입니다. 성령이 왔다는 것은 성령이 오게 한 그 세계로 당신을 질질 끌고 가겠다는 의지입니다.

 

가기 위해서 천국에 부합되는 생각과 삶을 위해서 지상 있던, 그동안 살아왔던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냐 하는 것을 이제부터 당신은 혹독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이에요. 우리가 성령이 왔다고 해서 깊은 기도원 산속에 간다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 살면서 달라진 게 뭐냐 하면 이 세상이 왜 지옥일 수밖에 없는가를 분명하게 새로운 미래의 체험을 하게 하는 거예요. 만약에 남편이 예수를 안 믿는다, 그러면 전에는 남편 없이 못살아 했는데 이제는 남편과 헤어질 준비를 하는 거예요. ‘당신은 가봤자 지옥이다. 아휴 고소해’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갈 길이 달랐다, 너는 하행선, 나는 상행선 갈 길이 다른 거예요. 그 교차 지점이 광야입니다.

 

똑같은 만나를 먹었죠. 똑같은 생수를 먹었습니다. 한 쪽은 애굽이었고 한 쪽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런 차이점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은 인간이 설친다고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면 인간이 설치지도 않았는데 왜 그 나라에 가느냐? 그것은 천사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영적으로 만들어 진 나라, 인간이 아닌 다른 분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 나라에 우리가 건방지게 인간으로서 거기에 참여한다고 믿는 거예요. 그런데 애굽에서 온 사람들은 뭡니까? 인간이 하지 않고 되는 일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인간이 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어느 세계에 속합니까? 인간의 나라입니다.

 

인간의 나라에서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다른 나라는 생각지도 않고 결국 천국 가는 사람들도 자기가 열심히 잘해서 자기 공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천국은 죄송합니다만 없습니다.

 

성경에 사단 나온다고 기존에 있는 인간의 세계에다가 사단이 하나 들어와도 우리 인생관 안 바뀝니다. ‘인간 세계에 귀신이 들락날락해 빨리 꺼져라 귀신아!’이럴 뿐이지 왜 귀신을 꺼져라 합니까? 왜 귀신보고 굿해서 나가라고 합니까? 귀신의 세계가 좋다? 나쁘다?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세계가 좋다는 겁니까? 현재 지금 하고 있는 이 세계가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단도 천사라 말이죠. 천사가 왔다 하는 그 세계도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저 내가 했기 때문에 계획대로 딱딱 진행돼서 내가 기대한 결과가 나오는 그 세계가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 외의 다른 세계는 일체 별로 마음이 가지고 않고 관심가지도 않고 그런 것은 관심 갖기도 싫어요. 왜? 몸이 익숙해 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자꾸 뭐를 이야기 하느냐, 성령을 이야기합니다. 성령, 천사, 악마 전부 다 어디에 속해요? 인간에 속하지 않고 어디에 속합니까? 영의 세계에 속하잖아요. 영의 세계에 속합니다. 여러분들이 변화산에서 모세하고 엘리야하고 이야기할 때 모세, 엘리야, 예수님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들의 몸이 뭐같이 빛났습니까? 해 같이 빛나지요. 우리의 세포가 단백질로 되어 있거든요. 단백질이 해 같이 빛나려면 어떻게 됩니까? 태양의 표면 온도가 6천도에요. 6천도의 불에 타지 않는 단백질, 세포 뭐 그런 분자가 다 있어요?

 

출애굽기 3장에 떨기나무가 있었죠.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잖아요. 그 떨기나무가 탔습니까? 안 탔습니까? 재도 없어요. 떨기나무가 타지도 않으면서 불이 붙은 거예요. 원래 재료가 타야 그게 산소와 결합해서 불꽃을 피워내잖아요. 그런데 타지도 않았는데 불이 피웠다, 모세는 그것을 뭐로 봅니까? 이상한 일로 봤죠. 그래서 모세의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된다니까요. 그게 이상한 일이죠. 왜 모세에게 이상한 일이었냐 하면 애굽에서는 인간들이 인간들에 의해서 운명이 진행되는 이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없으니까 그것은 귀이하게 보이고 이것은 이상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하늘나라에서, 미래에서 보게 되면 미래에서 온 그들을 보는 입장에서는 애굽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그것은 폐기처분해야 돼요.

 

악마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애굽이 악마의 나라라 하는 것은 이미 영의 세계를 다 봤을 때 악마의 나라지, 막상 영의 세계를 인식 못하고 애굽에 사는 사람은 악마나라 라고 하면 자기 보고 욕하는 줄 압니다. 그게 실제인데 자기 보고 욕을 심하게 하십니까? 이렇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보고 이야기하기를 목사님 설교나 강의는 부정적이라 하는데 부정적 아니에요. 왜냐 하면 반드시 뒤에 감사가 나오는데 왜 부정적입니까? 부정 안하고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내 덕이라 하는 것이 그게 감사가 되겠어요? ‘나 같은 인간하게 과분하게’이렇게 해야 감사가 되잖아요.

 

모세는 떨기나무 보고 참 귀히 여겼습니다. 그냥 무서워했죠. 그런데 주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 신을 벗어라! 이제부터 네가 가야될 길이 바로 이런 길이다. 그동안 애굽에 너무 익숙해 있었고 이 세상에 너무 익숙해 있었어요. 천사나 악마나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그것은 비현실적이고 비실제적인 것처럼 이미 차 버리고 그런 것을 신경을 뚝뚝 끊어버리고 살아왔던 그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천사나 악마나 예수님 복음을 다 버리고 남는 게 뭘까요? 그것은 내 힘으로 나의 세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그것만 남잖아요. 내 힘으로 내 세계를 꾸려나가겠다. 거기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뭐라 합니까?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게 내어줬다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당장 이 이야기를 듣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되게 분통 하고 원통하고 절통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그러겠죠. 네가 뭔데 나보고 사단에 넘겨줬다니 마니 나는 그대로 살고 있는데 하루 네 끼 먹다 한 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대로 사는데 이것을 가지고 사단과 엮여 버리면 그러면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단에 엮기게 되는 셈이잖아요. 그러면 사도 바울에게 당신은 왜 세계관이 삐딱하냐? 이래 나오잖아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된 것은 구원받은 것은 주의 은혜다. 그리고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 내어줬다는 이 말은 이 편지를 보고 있는 교회들이여, 당신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차이점이 뭐가 있습니까? 라고 사도 바울이 묻는 거예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사단을 찾아 다녔습니까? 아니죠. 저 광야에 있던 사람들이 애굽의 바로 왕을 찬양했습니까? 사실은 그들이 애굽 나라로 돌아가자 했죠. 사단에 대해서 경배하고 사단 찬양 했습니까? 아니죠. 평범했죠. 그냥 평범해도 너무 평범해요.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일하고 자고 전혀 독특한 게 없어요.

 

그런데 사단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다른 세계관에서 천국이라는 세계관에서 볼 때에 이게 사단으로 보인다는 거죠. 이 말씀을 한 것은 현재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도대체 어느 관점에서 우리 자신 바라보느냐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묻는 겁니다.

 

제가 문제를 하나 드릴 테니까 여러분들이 알아 맞춰보세요. 어떤 사람이 여기 있는데 한사람 앞에 A라는 생명의 길이 있고 또 B라는 죽음의 길이 있다 할 때 그런데 가려져 있는 이쪽에 있는 사람은 어느 쪽이 생명의 길인지 어느 쪽이 죽음의 길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에 천사 둘이 등장해요 한 쪽은 악한 천사이고 한 쪽은 선한 천사에요. 천사 둘이 있는데 이것을 가와 나라합시다. 둘 중에 하나는 악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요.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거짓말하고 또 한 쪽은 참말을 해요. 그런데 이 인간이 진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두 번 묻는 게 아니고 이 사람들에게 딱 한번만 묻고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됩니다. 어떻게 물어야 될까요? 이게 질문입니다.

 

뭘 어떻게 물어야 되는지 누가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길이 생명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회는 질문 하나밖에 없어요. 질문 하나를 던져가지고 이렇지 생명의 길이 이거구나! 단방에 알아냈다면 어떤 질문을 던졌기에 그 생명의 길을 알아내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질문은 제가 답변을 요구하는 게 나쁘죠. 이 사람은 생명의 길, 죽음의 길을 일단보류하고 거짓 말만하고 참말만하는 이분과 상대해야 됩니다. 상대할 때 이 둘 사이에 내분을 만들어, 둘이 싸우게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질문 한 개를 던져가지고 둘이 싸우게 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다른 쪽이 어느 길이 안전하다고 말하는가?”이렇게 질문을 하면 이 둘 사이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둘 사이가 서로 싸우겠죠. 둘이 싸우는 것을 보면 무엇을 판단할 수가 있어요? 생명의 길이 판정 나는 거예요.

 

지금 이 예를 든 이유가 성도가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자기가 결정하는 말고 생명의 길을 안다는 이쪽에 모든 질문을 그쪽 질문으로 맡기자 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 쪽으로 맡기게 되면 사단에 대해서 우리가 사단이라고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가 사단에게 ‘너 사단 맞지?’하면 사단이 맞는다고 이야기합니까? 아니죠.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사단이라고 나왔다고 해서 ‘혹시 목사님, 사단입니까?’ ‘미쳤어?’얘기 안한다 말이죠. 그러니까 사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 쪽 길에 맡겨 버리는 거예요. 맡겨버리면 인류의 역사가지고는 안되고 성경에 나오는 흐름을 가지고, 사단과 예수님이 싸웠던 흐름, 그 흐름을 제시하는 쪽이 진짜 주님 쪽이 되는 겁니다.

 

당신이 구원 받는데 이것을 알면 구원받습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100% 사단이에요. 당신이 나하고 거래하면 당신은 구원받습니다. 하는 이것은 틀린 이야기이에요. 우리는 몰라요. 사단을 진짜 아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기 때문에 주님이 사단에 포위되어서 어떤 경로로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는가를 보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주님 근처에서 사단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일을 주님한테 맡기지를 않으려고 해요. 왜냐 하면 주님에 의해서 지옥가면 자기가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맡긴다고 해 놓고 반드시 꼭 끼어들어요. 제가 뭘 해야 됩니까? 믿어야 됩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꼭 끼어들어요. 그러면 마귀는 ‘그래, 네가 믿어야 돼!’ ‘그런데 믿어야 되는데 어떻게 믿어야 됩니까? 치매 걸리면 믿음유지 안되는데?’믿는다, 믿는다. 백날 믿는다 하다가 나중에 안 믿는다! 되어 버려요. 어떻게 알아요. 결국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믿음 조차도 누구한테 맡겨라? 주님한테 맡겨라! 그러게 뭐냐, 의인은 뭐로 산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거예요.

 

의인이 믿음을 갖는 게 아니고 믿음이 인간보다 우선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것을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라! 입니다. 행함에서 믿음이 나온 것도 아니고 믿음에서 행함이 나온것도 아니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른다는 이 말은 이미 믿음이라는 것을 인간이 손댈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받아들이기 만하면 돼지 믿음이 형성하는데서 인간이 어떤 기여한 바가 없다 이 말이죠.

 

하나님의 복음이 나타났으니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이미 결정됐으면 우리는 그 믿음에 의해서 살 뿐이지 내가 믿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죠. 나의 믿음을 포기 하는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거예요. 왜냐, 나를 접을 때 나를 접어버릴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눈에 띄니까 그게 믿음으로 사는 거예요.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그게 믿음으로 사는 거잖아요.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 할지라도 그 열매가 없어도 당당한 이유가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내 행함이 관여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첫 번째 시간에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애굽과 광야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 애굽과 약속의 땅이 광야였다는 인식을 가져야 될 텐데 그게 아니고 자기가 여전히 애굽 친화적, 계속해서 애굽에 있던 속성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애굽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사느냐 비교대상에 애굽을 잊어야 되는데 잊지를 못하고 있어요. 우리 몸이 그래요.

 

내가 예수 믿고 난 뒤에 모든지 잘 돼야 되는데 왜 예수 믿기 전보다 더 못하냐? 하는 것은 바로 대표적인 애굽 성향적인 것입니다. 천국은 이 몸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몸이 바꿔져서 들어가는 거예요. 천국은 이 몸 가지고 못 들어가요. 이 몸은 죽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천사가 같이 해서 들어가는 겁니다. 거기에 부합되려면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이미 죽은 자가 돼야 돼요. 내가 살아있으면 살아있는 나를 천국에 보내주지를 않습니다. 내가 죽어버리면 내 믿음, 내 소망, 내 사는 것 같이 다 죽어야 돼요. 뻔한 겁니다. 이것은 어렵지 않아요.

 

세례요한에 의해서 물속에 들어갈 때에 물속까지 신용카드 들고 들어간 게 아니고 그것 다 버리고 그냥 죽으러 물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성령세례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는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이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내 삶이 아니고 주님의 삶이 되고 내 인생이 아니고 주의 인생이 되어서 우리는 바뀌어져서 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사단이 앞으로 어떻게 구약을 통해서 전개하는지 그것은 두 번째 시간에 하겠습니다.

 

 


서울 의존교회140214b (사단)―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은 난해 하지만 아까 예로 다시 해 볼게요. 인간세계는 나쁜 짓은 있지만 나쁜 사람은 없어요. 다시 말합니다. 인간세계에서는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어요. 혹시 가정형편상, 또 환경상 나쁜 짓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비양심적이고 처음부터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있어요. 남들 보기에 악한 사람도 만약에 내가 우연히 그 사람과 같은 유대감을 가지고 같은 친구의 친구고 아는 친척이고 같은 동향이고 하면 이 사람은 갑자기 동정표가 가기 마련이거든요. ‘그래 사람은 성질나서 욱해서 술 한 잔 먹고 했지, 근본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면 얼마나 잘해 주는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사에서는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까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악마와 천사, 악마와 예수님, 그리고 A와 B의 관계에서 하나님 세계는 근본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어요. 악함이 있어요. 사단이 있듯이 사단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오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우리 인간들이 보기에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만든 세계에 오점이 있고 그 오점을 하나님조차도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보인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보기에는 하늘나라가 불쌍해요. 인간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데 왜 저쪽은 싸우느냐 이 말이죠. 그래서 생명의 길인가 죽음의 길인가 할 때 물어보는 것은 오점이 있는 그 자체의 모순점 속에서 둘이 싸우게 만들고 나온 결과를 우리가 선택하면 된다는 이런 생각이 들지요.

 

여기서 난해 한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늘나라에 오점이 있고 인간 세상에 문제점이 있다고 여기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늘나라에서 진정으로 악마가 자리 잡은 그 자리, 그 세계가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구약에 보면 많은 나라들이 나옵니다. 성경은 어느 나라 중심입니까? 이스라엘 중심이죠.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의 인구수가 중심이 될 만한 숫자입니까? 중국만큼 13억 돼요? 아니죠. 그냥 소수이죠.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주인공이지만 실제로 세계역사에서는 이스라엘은 소수이고 역사에서 빠져나와 있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있으나 없으나 그만인 그런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흔히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나라가 이스라엘 시대 역사를 크게 장식하는 거예요. 그 중에 큰 나라가 뭐냐, 두 나라가 있어요. 압수르가 있고 또 하나는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있어요. 그 주변에 많은 나라가 있어요. 압수르에 의해서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에서 남쪽 가나가 망합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에 대해서 바벨론 자체는 우리가 어떤 나라인지 몰라요. 그런데 바벨론에 이스라엘이 정복당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나라 내부가 파헤쳐져요. 파헤쳐질 때 그 바벨론나라는 뭐냐 하면 인간으로 구성되는 나라의 절정, 막장, 최고의 자리가 바벨론입니다.

 

제가 성경구절을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사야 14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보시는 여러분들이 듣던 이야기일거에요.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이것은 이사야 14장에서 바벨론 제국에 대해서 언급하는 겁니다. 거기에 바벨론 제국에 대해서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이렇게 되어 있어요. 아침은 하루가 시작하는 날이고 그 시작 할 때, 초장부터 최고로 쳐주는 제국이 바벨론입니다. 그 바벨론 제국이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땅 끝, 저 밑에까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올라갔다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올라갔다가 떨어졌다는 이 예언을 누가 하느냐 하면 바벨론보다 더 센 나라가 하는 게 아니고 바벨론에게 도리어 포로 잡혔던 유대나라에 선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권투시합을 하는데 한쪽은 권투를 너무 잘하고 한 쪽은 아마추어 수준으로 너무 못해요. 그래서 1회전에 10초도 안돼서 한방 쳐버리니까 실력 없는 선수가 완전히 코피 질질 흘리면서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졌던 선수의 코치가 하는 말이‘어이, 이긴 선수! 너 실력이 왜 그리 없어!’ 이렇게 할 잽이 됩니까? 안됩니까? 안 되지요. 방금 권투 시합해서 끝났잖아요. 그러면 말을 어떻게 해야 돼요? ‘야, 세기는 세네!’ 이렇게 이야기해야죠. 그렇게 해야 되지, ‘실력이 왜 이리 없어!’ ‘그러면 너는? 저쪽 선수보다 실력이 더 없네요’

 

제가 지금 사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성경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단이 뭐냐를 설명하는 겁니다. 첫 번째 시간에 이야기한 것은 사단이 어디에 나타난다? 예수님이 십자가, 예수님 복음이 나타날 때 나타난다 했죠. 그러면 구약은 뭐냐, 구약은 이미 이스라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는데 애굽에서 나오면 뭐합니까? 약속의 땅에 못하면 애굽에서 안 나온 것과 똑같은 샘이 되는데요. 나와 봤자 들어갈 곳에 못 들어가면 나와서 가출한 것밖에 더돼요? 제대로 못가면 그것은 덜 나온 거예요. 덜 나왔어요.

 

왜 그들이 약속의 땅에 못 갔다고 했죠? 그들의 바탕에는 장차올 메시야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어요. 애굽에서는 배부르고 편하게 살면 그게 인생의 행복이에요. 행복이 최고이고 우리 잘되면 된다 하는 것이 애굽의 사고방식이었고 그 사고방식은 어디에 부합되지 않는다 했던가요? 약속의 땅에는 부합되지 않아요. 그 약속의 땅은 어떻게 부합된다고 했습니까? 약속의 땅은 저한테 왜 이렇게 과분한 조치를 내리십니까? 이게 천국, 약속의 땅이라 했잖아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했죠? 그런데 한국교회가 천국에 못 들어가게 만드느냐 말이죠. 부자를 복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왜 그런 소리를 해서 전부 다 부자를 지향하게 만들고 부자가 돼야 교회이고 부자 되게 만드는 교회이고, 왜 그렇게 선전해서 사람들이 몰리게 하느냐 말이죠. 다 가짜인데요. 그래서 부자 못 되면 사단이 짓이라 하고요 사단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사단은 십자가, 그리스도 되신 천국 가는 원리와 더불어서 같이 나타나는 게 사단이지 세상사람 만드는데 사단이 왜 등장합니까? 가만히 놔둬도 사단인데요. 가만히 놔둬도 지옥 가는데 사단이 신경 쓸 필요가 없지요. 온 가정마다 아이를 지옥 보내려고 전부 다 교육 다 시키고 있는데 사단이 거기 개입할 문제가 뭐가 있습니까? 없지요.

 

이스라엘 역사가 자기 딴에는 애굽에서 나왔다고 여기는데 끝까지 애굽에서 덜 나왔어요. 결국은 마지막에 바벨론에 포로 잡히니까 그들은 어느 나라를 의지 했는가? 애굽의 힘을 의지 했습니다. 애굽의 힘을 의지 말라고 당부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에스겔, 예레미야를 비롯해서 전부 다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 선지자를 어떻게 조치했습니까? 죽여 버렸습니다.

 

탄압했고 핍박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 가야됩니다. 라고 언급을 했던 그 선지자, 선지자의 목소리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장차 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죠. 그 복음이 있는 선지자를 제거 하고자 했던 것은 신약적 입장에서 보면 벌써 사단의 작업은 이미 이스라엘 내부에서 작용되고 실시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사단이 요즘도 있죠. 복음 반대하면 다 사단이잖아요. 복음을 안 외치니까 사단이 안 등장하는데 복음만 외쳐보세요. 같은 집안 식구가 원수라니까요. 사랑하는 남편이 복음의 원수라니까요. 요새 남편도 별로 없지만 남편이 복음의 원수입니다. ‘대충 대충 믿어라!, 왜 그리 별나게 믿으려하냐?’

 

악마에 대해서 언급할 때 이스라엘 중심이 아니고 제국 중심, 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재편하겠다! 하는 것이 그게 바로 힘이 작용하는 이 세상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바로 사단이 우리 인간에게 지배해 왔던 그런 원리였습니다. 힘 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죽는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이 소리가 다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힘이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리고 자기 보기에 자기만큼 힘 있는 제국이 없어요. 그런데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시간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에 접근했습니다. 사단이 되려면 높아졌다가 낮아져야 돼요 . 이 과정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주님 되려면 낮아졌다가 높아져야 됩니다. 십자가 죽기까지 복종해야 그 분이 바로 주가 돼요. 경로가 다르지요. higher higher, 더 높이 더 높이 방향성이 하늘 끝까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계속 나가는 것, 그것은 바로 떨어지기 위해서 높아지는 겁니다. 더 낮은 곳, 더 낮다는 말은 돈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왜 죄인이냐, 우리가 세상 어떤 것보다 죄인 중에 괴수이니까 더 낮게 낮게 그것은 바로 주께서 친히 높여주려고 그렇게 낮게 가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는 높이 가고 하나는 낮게 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마련돼야 되겠죠. 이게 뭐냐, 바로 사단이 만든 힘의 세계가 높은 자를 높게 만들고 낮은 자를 낮게 만드는 그런 모든 필요한 구비요건이 갖추어진 세계가 바로 사단이 만든 세계에요. 그러니까 사단을 이 세상을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안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만들어야 돼요. 사단이 만든 세계에 우리가 누구든지 거기는 살아야 되고 누구하나 뛰어들어야 되고 심지어 예수님마저, 예수님마저 사단이 만든 세계에 주저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사단이 만든 세계가 되지 아니하면 천국과 지옥은 분류되지 않습니다. 전제 조건이 그거에요. 사단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통과했는가가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는 분류 조건이에요. 구비 조건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의 문제가 여러분들이 해결할 것이 ‘나는 사단을 믿습니다.’라고 하면 구원받아요? 그것가지고 구원 안 되지요? ‘예수를 믿습니다.’ 하면 구원됩니까? 몇 마디 했다고 구원됩니까? 구원이 안돼요. 그러면 ‘예수를 안 믿습니다.’하면 구원 안 되는 겁니까? 구원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사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면 구원 안 되는 거예요? 구원 안 된 것도 아니에요.

 

이 말은 사단이 만든 세계에서 무엇이 의미가 없느냐 하면 개인의 독자적인 의미는 전부 다 묵살 당한다는 겁니다. 묵살당하면 너는 어느 짐승에 속해 있느냐, 어느 나라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관건이 되는 겁니다. 이 사단의 세계에서는 패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패권이라는 말은 결승전에서 튀었던 것을 패권이라 합니다. 그냥 각자 각자 살아가는 것은 패권이라 하지 않습니다. 패권주의자라 하는 것은 붙자는 거예요. 누가 최종적인 승자냐 티를 한번 내보자 하는 거예요. 그것을 패권주의라 합니다. 평화롭게 사는 것은 패권주의자가 아닙니다.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고 우리 평화롭게 지내자 하는 것은 이것은 패권주의가 아닙니다. 결국은 패권주의는 패권으로 몰리게 되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결국은 1등은 이상화이고 2등은 네덜란드 선수이고 이게 패권에요. 이상화는 한국에서 스케이트타고 네덜란드는 자기 나라에서 스케이트를 재미나게 타면 돼요. 이 세상은 한국에서 좀 탄다며, 좀 타, 나는 네덜란드에서 좀 타는데 한번 붙어볼까? 어디서? 소치에서, 그래서 그게 올림픽이에요.

 

내가 누구냐, 혼자 우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고 같이 붙어가야 돼요. 나는 수학교사다, 나도 수학 교사인데 한번 붙어보자, 졌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세상 원리는, 사단이 만든 이 세계는 오직 힘의 패권주의자, 누가 최종적으로 짐승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 누가 최고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 짐승이라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가 힘이 제일 센 나라이냐, 그렇게 되지요.

 

그래서 다니엘에 보면 짐승이 여러 마리가 나옵니다. 첫 번째 짐승은 두 번째 짐승에게 꺾기고 두 번째 짐승은 세 번째 짐승에게 꺾기고 결국 마지막 짐승은 네 번째 짐승에게 꺾이는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아무리 꺾기더라도 그 네 마리의 짐승 모두는 첫 번째 짐승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말입니다. 다니엘에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성경에 보면 누가 지배한다고 했습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짐승이 지배하지요. 짐승이라 하는 것은 그 밑에 많은 숫자가 그 짐승한테 복종하게 되어 있지요.

 

그 말은 인간이 그리워하고 그렇게 얻고자 하는 그 힘은, 그 힘의 최종 누군가가 쥐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어요. ‘네가 뭘 원하지?’힘을 원하지? 그러면 네가 원하는 힘은 누가 한 손에 쥐고 있다는 겁니다. 그 자가 바로 짐승이라는 거예요. 사단이죠. 악마입니다. 용이고 옛 뱀이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단이라 하는 것은 아까 천사라 했죠. 그런데 그것이 구약을 들어오면서 악한 천사가 실제적으로는 힘을 패권주의적인 제국의 이름으로 이미 이 지구상에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활동해 왔다는 것을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짐승은 추상 명사가 아니라는 거죠. 짐승은 그냥 관념이고 희미한 게 아니고 실제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악마가 뭐 뿔이 있어요? 뿔 아니에요. 피가 흐르는데 녹색 피라고요? 아닙니다. 사단이니 짐승이니 하는 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성경을 덮어버리세요. 성경을 덮어버리면 성경을 모른다고 치고 없다고 치고 기독교도 없다고 치고 교회도 없다고 치고 교회 있으나 마나이지만 하여튼 교회 있어도 괜찮아요. 성경만 덮어버리면 이 세상에서 세상이라는 것은 결국은 무엇의 싸움 입니까?

 

교회 두 군데 있습니다. 어느 교회 갈 거예요? 권력이나 돈이 많은 교회 갈 거예요? 비리비리한 신월동 어떤 교회 갈 거예요? 어느 교회 갈 거예요? 쪼그려 앉아 디스크 다나가서 허리 아프게 만들었는데 어느 교회 갈 겁니까? 성량이 이미 우리 몸이 익힌 성량이 어느 쪽이에요? 역시 힘이 많아야 한다는 겁니다. 헌금이 많아야 구제도 좀하고 아프리카 아이들도 후원하고 북한 선교용으로 하고 일을 많이 벌려놓잖아요. 그게 짐승들의 성량입니다.

 

그렇게 해서 노리는 게 뭡니까? 여러분 이렇게 해서 구제하고 선교해서 내일 모레 망합시다. 이렇게 합니까? 그렇게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더욱더 우리교회를 부흥시켜 주시고 3년 내에 부흥케 하시고 키워주시겠죠. 이게 패권주의에요. 이게 짐승의 속성입니다. 그렇게 사단이 보고 싶습니까? 교회가면 세상 다가 사단의 세계인데요. 우리는 거기에 길들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지사로 여기는 거예요. 이것을 짐승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장담을 하느냐 하면 사단이라는 신약에 용어가 나오기 전에 그리고 짐승이라는 신약적 용어가 나오기 전에 요한계시록에 나오기 전에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 하지 않는 이방 나라와 둘 사이에 어떤 충돌과 어떤 연관성을 맺어있는가를 공유하는 역사가 아니에요.

 

이사야 14장에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바벨론아 네가 유다나라를 침범할 것이다. 유다나라 선지자가 독도는 아니고 다케시야입니다. 하면 안 되지요. 선지자가 애국심을 발휘해야지 안 되잖아요. 독도는 일본 땅이라 하면 그거 선지자 안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어떤 목사가 여러분 수년 내에 우리나라가 일본한테 점령당합니다. 이렇게 하면 국정원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여러분, 망합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지배받습니다. 하고 이야기한 사람이 누구라고요? 이사야 선지자에요. 초반부터 그래요. 우리나라 다 잘려버립니다. 심지어 10분의 1남는다고요? 천만의 말씀, 10% 안 남고 다 잘려버리고 기껏 남는 것은 그루터기 밖에 남지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잡혀 죽어도 당연하지요. 지금 이야기해 보세요. 잡혀 죽지요. 여러분, 망합니다. 하는데 잡아 죽지요. 성경을 볼 때에 제대로 보세요. 선지자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애국주의 아닙니다. 망해야 산다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데요. 이 무대 장치를 사단보고 시킨 거예요. ‘사단아, 너 무대한번 만들어 봐라!’세상, 인간 세상을 점령케 하도록 허락하셨고 그래서 이 세상을 인간의 세계를 사단이 지배하는 세계로 만들라고 했어요. 만들게 해 놓고 일종의 프리즘인데 빛이 굴절하는 그런 프리즘을 만들어 놓고 그래서 짐승의 힘은 날로 더 높은 데로 계명성아, 저 높은 하늘 뭇별까지 하나님 계신 곳 까지 올라가도록 그것을 장려하는 세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십자가 지기까지 복종하는 분과 같이 디디면서 진짜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유대나라에 다윗의 언약은 바로 십자가로 내려가는 그 분이였기에 모든 다윗의 언약을 다 짊어지고 가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거기서 인간이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이 이루지 못한 것을 거기서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신 거예요.

 

따라서 악마가 만든 세상은 환경이 필수조건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그러면 개인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는 그 힘 앞에 맥도 못 쳐요. 바벨론 자체가 힘인데 여러분, 이제 금 신상을 섬기는데 나팔을 불면 다 고개 숙입니다.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천하에 허벅지 굵은 이상화도 태극기 올라가니까 눈물을 흘리잖아요. 나라 사랑이 울컥 올리잖아요.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 땄을 때 러시아 사람들이 기뻐 할 때 많은 국민들이 자괴감을 느끼잖아요. 저 메달 우리껀데 안현수 메달이 우리껀데 괜히 안현수 얻어 터져서 삐져 저기 가서 선배한테 얻어맞아 삐져 러시아로 귀화해서 금메달 땄단 말이에요. 전부 다 이 세상에서는 뭔가 따야 인정받아요.

 

모태범, 하나도 못 땄는데, 응원은 하지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지요. 이 세상에는 힘이 진리로 통하는 세상 힘이 있어야 사람대우 받는 세상인데 거기에 다 젖어 들었는데 거기서 뭐 사단을 찾아요? 무슨 사단을 찾아요? 힘 장땡인데 무슨 사단을 찾아요? 그거 찾아 뭐할 건데요? 공부 잘하는 놈에 최고에요. 공부 잘한 게 돈 되고 그래요.

 

뭐 너 아침의 계명성아, 어찌 하늘에 떨어지니 아니 떨어져도 좋으니 한번 올라가기나 해 보자,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일단 한번 올라가보고 서울대학 한번 가보고 나중에 취직 안 되도 할 수 없지만 일단 자식을 서울대 사법고시로 합격 시켜 보겠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잖아요. 부모 말고 여자의 마음은 일단 명절에 전 구운 것을 가방에 집어넣는데 집어넣은 가방이 명품가방이에요. 명품가방에 전을 집어넣더라도 명품가방을 사고 싶데요. 시어머니는 명품인지도 모르고 집어넣더라도 명품가방은 사고 싶다 이 말이죠.

 

프라다, 악마는 뭘 입는다? 악마가 줘도 받겠다는 거예요. 악마하고 한 통속인데 한 통속이 무슨 악마를 싫어해요? 그저 예쁘장한 참한 악마죠. 우리는 악마를 선호하고 있고 악마가 그리워지고 악마를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말이죠. 왜? 악마는 곧 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힘없이 못살고 힘은 악마가 다 쥐고 있고 따라서 악마한테 빌더라도 힘을 얻어서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광야에 있을 때 마귀는 자신만만하게 세 가지를 제시한 겁니다. 돌을 떡덩이 되게 하라 굶어서 무슨 메시야를 하냐? 밥이 들어가야 메시야하지 일단은 네가 배부른 상태에서 해라, 두 번째로 메시야가 되려면 사람들한테 인기 끌만한 요소가 있어야지 그게 뭐냐, 병 고침입니다. 기적이다. 뛰어 내려라! 손만 데면 유투브 해서 뜨기만 하면 당신은 훌륭한 주의 종으로 뜬다, 뛰어내려봐라 천사가 받아줄 것이다. 세 번째로 나한테 절하면 내가 갖고 있는 것 줄게, 그게 힘이다. 당신은 힘을 원하잖아, 당신은 힘 빠지는 것을 원해? 힘 갖는 것을 원해? 힘 갖는 것을 원하잖아? 내가 이 세상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예요. 이 세상은 짐승의 나라이고 철저한 짐승의 나라이고 짐승만이 통치하고 짐승이 벌주고 짐승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짐승이 우리를 재판하는 그런 세상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재판받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도살하는 양같이 말입니다.

 

세상의 힘을 그리워하면서 예수를 같이 믿는다? 세상에 어디 그런 거짓말이 있어요? 힘 좋으면 힘 좋다고 해, 괜히 예수, 예수해도 갑자기 힘 들어오면 예수 차 버리고 우리는 힘 따라 가게 되어 있어요. 우리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게 되면 개과 천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하고 상대 안 해요. 성령은 우리와 상대 안 해요. 우리를 지휘하고 있는 마귀하고 상대하지. 우리는 마귀도 못 이기는데 무슨 ‘성령이 오십니까? 아이고 성령님 반갑니다. 기다렸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마귀가 가만히 있을 줄 압니까? ‘면회시간 끝!, 다시 와 성령이 원했던 게 아니야, 다시와’취직했으면 회사에 충성해야지 무슨 교회를 간다고 가지마! 처음에는 사장이 명령하지요, 나중에는 사장이 명령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나한테 명령해요. 취직했으면 잘못보이면 잘리니까 알아서 교회 안가야지, 자기가 알아서 예수 안 믿기를 작정했다니까요. 그 정도로 우리는 길들여져 있어요.

 

여러분, 지도자가 욱 한다고 지배하는 줄 압니까? 밑에 사람이 알아서 기어주니까 지배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까지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고 그리고 예뻐하는 우리 학생들도 앞으로 그 세계에 살게 됩니다. 대화 내용은 오직 힘밖에 없어요. ‘얘야, 오늘도 힘 좀 가지고 왔나?’ ‘엄마, 오늘도 힘가져 왔어!, 받아쓰기 100점이야!’이게 힘이거든요. ‘아이고 잘했다, 주의 축복을 받았구나! 내가 기도 했더니 기도 발이 들었구나! 그래 다음에도 잘해라 맛있는 빵 사줄게’

 

우리가 아는 세상은 사단이 만든 세상이지만 사단을 빼버리고 그냥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단이 안 만들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이며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은 일체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잘 사는 것이 목적이고 힘 가지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고 이것은 너, 나 모두다 힘을 찾고 힘을 부지런히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이 세상, 철저하게 우리는 짐승에게 예속된 세상입니다.

 

개인의 권리요? 없습니다. 개인의 명예심? 없습니다. 우리는 힘 앞에 양도되고 다 포기 하겠끔 훈련당하고 있습니다. 체면이요? 위신? 돈 힘 앞에는 체면이고 위신이고 그런 것은 일시적으로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에헴, 하고 양반인 척하다가 나중에 사돈하고 상견례하면서 ‘우리 양반 집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고 까불다가 ‘사돈양반 차하나 사드릴까요?’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갑자기 꼬랑지 내리죠. 녹차도 차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이것을 알고 있어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유명한 말이죠. 망하는 세상 중에 나도 일원이었습니다. 개인이 아니라니까요 그냥 망하는 세상에 나도 같이 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자기 본토 아비 집에서 끄집어냈죠. 갈 곳이 없어요. 그냥 이 땅의 사람의 대표자에요. 하나님의 사건 상에 수시로 사건을 유발시킬 때 비로소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와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깜짝 깜짝 놀라요. 내가 아들을 죽이다니 아들을 죽여줘야 돼요. 그래야 장차 오실 예수님과 지극히 높으신 분과 관련성이 있음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게 언약이에요. 그게 복의 근원입니다.

 

그게 없으면 그냥 세상 사람과 똑같이 되어 버려요. 뭔가 주입되는데 그 주입되는 게 뭐냐, 높으신 분이 도리어 이 땅에서는 낮아지는 모습입니다. 낮아졌거든 그 분이 높은 줄 알라 이 말입니다. 힘 가진 자를 찾는다면 반드시 악마고 있는 힘도 버리거든 그분이 메시야인줄 알라 이 말입니다. 왜냐 하면 짐승의 나라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가치를 바꿔서 진행되도록 주께서 그렇게 의도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받는다고요? 아까 이야기했죠. 간단했죠. 망하면 구원받아요. 이스라엘은 망함으로서 구원받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망한 정도가 아니고 이미 죽었어요. 망한다는 것은 희망은 있죠. 아예 우리는 죽어버렸어요. 어떻게? 십자가에서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에게는 이제는 따로 나의 성공이라는 것을 끄집어낼 건더기조차 이미 날아가 버렸어요. 죽은 자가 성공한 것 봤습니까? 시체에 화장하는 거예요? 시체에다가 메이크업하라고 있어요? 이런 시체는 예쁜 시체가 되는 거예요?

 

주께서 소급해서 우리로 하여금 뭘 보게 하느냐 하면 사단의 세계와 사단의 힘과 사단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그것은 어떤 혜택이 있느냐 하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 십자가 사건의 의미, 내막을 비로소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된 자에게는 십자가 사건 배후에 악마가 작용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 주는 겁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죽일 때 어떻게 죽였습니까? 권총 갖고 자기 의견으로 죽였습니까? 아니면 돈을 받고 죽였습니까? 누구를 의식해서 예수님을 죽여요? 베드로도 마찬가지만 가룟유다는 지금 예수님이 기성 권력에 대해서 대드는 것을 고려해서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배신한다고 하죠.

 

배신한다는 것은 배신한 이후에 자기는 어느 편에 속했다? 사실은 나는 여러분 보기에 예수편이지만 사실은 예수편이 아니고 나는 기존 세력의 편에 소속되어서 예수의 무리를 내가 소탕하기 위해서 저를 사용하셔야 됩니다. 라는 조로해서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거든요. 팔아서 죽음에 넘겨줬거든요. 우리가 평소에 가룟유다만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 평소의 모습이 뭡니까? 내가 예수 믿고 착하다고 칭찬 받는 것은 사실은 내가 노리고 있는 이 땅에 필요한 돈 힘, 그런 것을 예수 믿는 것에 보탬이 될까 취직하는데 보탬이 되고 어떤 대인관계에서 예수 잘 믿는 것이 보탬이 될까 하다가 안 되면 예수를 버리는 것이나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는 것이나 대동소이한 마음의 결정입니다.

 

예수 복음전해서 교회한다고요?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신참 목사들, 그것을 햄 목사라 합니다. 복음을 알아서 복음전하면 교회 목회한다고요? 철도 없어요. 해 보세요. 목회가 되는가? 될 일이 있습니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게 먹혀들어요. 말도 안 되죠. ‘여러분 우리 다 같이 낮아집시다.’ 이게 일부로 들으러 오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원하는 힘을 이렇게 하면 주십니다. 많은 선배들이 해 봤는데 되더라, 그대로 믿으니까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니까 되더라, 여러분들이 그대로 믿으면 여러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 하나님이 힘으로 도와 줄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이래야 된다니까요. 이래야 그 사람들이 돈낸 보람이 있죠. 은혜 많이 받았다고 돌아가잖아요.

 

무슨 십자가 이야기를 왜 해서 초칠일 있습니까? 거기다가 십자가 이야기를 왜 합니까? 초치는 것은 회 먹을 때만 하는 겁니다. 복음 전해도 교인 안 생겨요. 16년 동안 복음 전해도 교인 안 생겨요.

 

에스겔 28장 봅시다.

겔 28: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8: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찌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나는 신이라 나는 바다 중심에 앉았다’ 누가 이야기했느냐 하면 두로가 이야기했어요. 두로가 그렇게 이야기한 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아까한 것을 복습해 봅시다. 모든 이 세상의 짐승나라는 힘의 원리이죠. 힘을 가진 자가 패권을 쥔 겁니다. 그러면 바벨론이 제일 힘이 세지요? 바벨론이 힘이 센데, 큰 나라가 세지만 여기 두로라는 이 나라는요? 크지는 않지만 잘 살아요. 그러니까 미국은 나라도 크기도 하고 국민 소득도 3만 불 되고 홍콩은 어떻습니까? 홍콩은 중국 대륙 끝에 붙어있으면서도 국민 소득이 4만 불이 넘어요. 싱카폴도 마찬가지고 덴마크, 스웨덴 나라가 큰 나라입니까? 안 크잖아요. 벨기에, 스위스, 스위스는 5만 불이 넘어요. 큰 나라 입니까? 안 크죠. 안크지만 잘 살지요. 살사니까 힘의 나라의 원리에서는 모든지 비교하거든요. 비교해 보니까 전부 다 자기는 뭇별 위에 올라가 있잖아요.

 

바론만 짐승이 아니고 그 새끼 짐승들도 많지요. 그들이 하는 말이 에스겔 28장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나는 어디에 앉았다? 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고 하는 이야기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두로가 까불다가 교만하다고 이렇게 해석하면 안돼요. 안되고 어떻게 하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두로를 어떻게 했다? 높여주신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합니까? 낮게 하신 거예요. 왜? 구원의 자리가 어디에 있기 때문에? 바로 이스라엘을 통해서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이 허락한 이 세상 자체가 힘의 세계, 짐승의 세계입니다. 사단을 개인적으로 만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개인으로 사단을 상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속된 자로서 상대하지 개인의 자격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격으로 사단을 상대하는 분은 오직 한 분밖에 없어요. 누구겠습니까?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돼야 돼요. 그리고 어떤 사람 붙들고 사단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개인의 자세로 사단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힘을 지향하는 나라에 소속된 거죠. 사단은 영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를 않아요. 하지만 그 밑에 수하에 나타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에요.

 

성도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는 누구 소속입니까? 예수님의 성령에 의해서 붙잡힘 봐 된 사람입니다. 오늘 두 시간을 통해서 사단이 뭐냐를 확실히 규명하고 들어가야 돼요. 처음부터 하게 되면 사단이라 하는 것은 일반 우리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사단이라 말한 것은 다른 세계를 깔고 한 거예요. 십자가의 세계를 깔고 하는 거예요. 십자가의 세계는 숫자로 6곱하기 7은 얼마냐? 42다 맞았어요. 참 잘했어요. 그게 진리입니다. 하는 이런 세계가 아니에요.

 

사단은 우리가 일상 중에 필요한 것들, 원하는 힘들의 세계에서 나타나지 않아요. 그냥 힘이 있는 세상은 원래 그랬고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이 세상이라는 것은 힘 가진 자가 행세하는 세상, 그리고 힘 가졌으면 나는 하나님처럼 된다. 뽐내고 욕망을 해 주고 박수 짝짝 보내주는 그런 세상이에요. 사단이 왜 등장합니까? 천사가 왜 등장해요? 인간의 힘에 의해서 자기 힘으로 축적해서 성공하는데 우리가 시기 나고 질투 나서 그런 겁니까?

 

하지만 여기에 반대로 사시는 분이 나타나요. 인간은 힘이 있으면 신을 저항하게 되어 있는데 반면에 하나님 자신이 도리어 인간이 기피하는 누도 가지 않으려는 그 십자가, 죄인의 자리까지 완전 롯케트 쳐 박히듯이 달려오시는 분이 계셨다 이 말이죠. 여기서 뚜렷한 두 개의 흔적이 분명해 집니다.

 

하나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과 한 쪽은 아래에서 올라가는 것, 가인의 자손 라멕이 뭐라 했습니까? 누구든지 내 말을 거역하면 가인에 의해서 칠백이면 내 말을 삐딱하게 들으면 벌이 77배, 라멕에 의해서 벌이 77배입니다. 그게 라멕보고 욕합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 라멕의 세계가 더 정상이에요. 임금하고 왕인데 왕 받는 것과 일반인이 받는 것하고 벌이 같으면 안 되지요. 한 일국의 원수인데요. 왕인데요. 그리고 그 말은 뭐냐 하면 우리는 힘이 있는 자에게 항상 복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는 자세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강제로 힘을 발휘한 것도 되지만 우리가 원하는 힘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쪽에서는 우리가 자진해서 고개 숙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힘을 일부 나의 힘으로 끌어당겨서 최고의 자리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우리의 본성을 우리가 속이거나 숨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애굽이니까 우리는 애굽에 살고 애굽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리고 애굽만이 전부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애굽 외에 다른 세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국, 그것도 애굽의 연장이고 확대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천국은 그렇게 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갈렙와 여호수와의 경우를 보세요. 갈렙과 여호수와 같은 경우 에는 약속의 땅의 입장에서 본거예요. 약속의 땅에 누가 부합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들은 힘이 세고 장대 같은 것은 하나님 약속의 땅에 부합되지 않다고 본겁니다. 이게 나중에 구약에 들어가면 이런 원리가 있어요. 할례를 받는 자만이 약속의 땅에 살 권리가 있고 할례 없는 자는 약속의 땅에서 추방돼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신약성경에 보면 할례가 육신의 할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곧 할례를 이야기하고 십자가 아는 사람만이 천국에 살고 모르는 사람은 모두다 지옥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그냥 하면 되는데 사단은 왜 등장하는가? 이것이 개인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수십 번 이야기합니다.

 

결국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뭘 따내서 개인적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어디에 소속돼야 돼요. 그런데 그 소속이 되려면 우리 힘으로는 소속이 안돼요. 왜? 이미 우리는 소속된 게 있어요. 우리는 짐승에게 소속되어 있고 힘에게 눌려있고 힘을 부러워하고 애굽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소속된 자가 거기에 천국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계신분이 담을 타 넘고 와서 집 주인 되는 사단을 잡아요. 우리는 사단을 잡습니까? 오히려 사단을 존경합니까? 우리는 사단을 존경하지 잡지는 않아요. 나보다 부자인 삼성그룹이 나를 안 도와 주니까 싫어하지만 만일 삼성그룹이 ‘목사님, 손잡읍시다.’ 하면 우리는 갑자기 삼성그룹이 천사보다 더 좋은 사람 돼 버려요.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힘에서 내가 벗어날 생각도 없고 벗어날 이유도 없고 벗어나고 싶지도 않고 뭐 없어서 안달이지 주시기만하면 ‘고맙습니다.’ 할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담 타 넘고 온 도둑놈 같은 우리주님께서 집 주인을 묶어놓고 ‘네가 좋아하는 주인, 네가 친하게 주인, 나한테 잡혔다, 너는 이제 나한테 보쌈 당했어! 너는 나의 세계로 가자!’ 할 때 그것을 가지고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마태복음 12장 28절에 쭉 나온 겁니다. 그게 성령의 역사에요. 인자를 부인하는 자는 사함을 받되 오는 세계까지 지배하는 성령을 부인하는 자는 오는 세계에도 사함이, 용서함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성령은 너하고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너를 붙잡아두는 악령과 상대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악령에 잡혀있는 그런 되지도 않는 존재를 하늘나라 가고자 하는 마음이 어떻게 하나님께 들었느냐? 그것은 바로 십자가 달린 취지입니다. 십자가의 피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서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마지막 살려내는 그 작업의 연장으로서 우리가 거기에 걸려든 거예요. 내 소원으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소원이 임해서 구원받기 때문에 앞으로 천국 가는 길도 수시로 주의 소원이 작렬할 겁니다.

 

어제 누구를 만났는데 그 집 얘가 초등학교를 3월에 들어갑니다. 그게 자기 뜻입니까? 부모 뜻 입니까? 그 아이가 유치원 가야 하는데 목사님 왔다고 놀고 싶다고 유치원 가지도 않았어요. 울면서 ‘유치원 가기 싫어!’ 하니까 엄마가 막 뭐라 하다가 계속 우니까 오늘 만큼은 봐줄게 이렇게 된 거예요. 얘는 유치원도 싫고, 초등학교도 싫고 그냥 하루하루 노는 게 좋아요. 그러면 그 아이를 그냥 뜻대로 놀게 하면 안 될까요? 아니에요. 그러면 바보가 되니까 그 아이를 3월에 초등학교 보내는 것은 누구 뜻입니까? 부모 뜻이죠. 우리는 이 세상이 좋아요.

 

우리는 이 세상 견주었던 돈이 좋고 돈 많은 부자 되는 게 좋아요. 우리는 기껏 행복은 부자 되는 것에서 모든 것이 다 충족되는 것, 우리는 기껏 하는 것이 그 정도에요. 천국은 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낯설어요.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의 용서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손을 끌면서 강제로 천국으로 집어넣는 작업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제 말을 여러분 들을 일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믿는 것은 안 듣더라도 성령께서는 강제로 끌고 간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말을 잘 들어서 가는 게 아니에요. 말을 안 들어서 맵매 하면서 가는 거예요.

 

맵매하는 도중에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다. 몸이 아프다. 이러면서 가는데 하여튼 맵매하면서 가게 해요. 우리는 사단이 그렇게 치부해요. 진짜 사단만한 친구가 없어요. 지 좋아하는 것 지 좋아하고 지 좋아는 것 내가 좋아하니까 돌이 돈이 되고 기적을 베풀고 세상 부귀영화를 누린다는데 누가 그것을 마다 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최고의 친구잖아요. ‘친구야! 도와줄게!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잖아!’ 내가 못하는 것을 다 해 주는데 내 소망을 들어주는데, 네 소원을 말해 봐! 내 소원을 들어줘! 이것은 허경영이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사단이 다 해쳐놓은 거예요. 우리는 지금 궁둥이 때려도 싫어요. 때려도 싫은데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그것을 용서받은 자만이 합류되는 그 세계를 아직도 잊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단의 정체를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무용지물 만드는 전략,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겠다는 제의 우리가 거절할 수 없는 그 모든 제안들, 푹 젖어 한 통속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죄인 중에 괴수의 모습인데 성령이 오셔서 십자가 이야기해 주고 용서가 과분한 조치인 것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이제는 천국이 세상보다 더 낮다는 것을 날마다 일깨워 주시는 주의 은혜가 끊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