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이사야 52;1-2 / 거룩한 성 예루살렘 본문
140강-사52장,1-2,(거룩한성예루살렘)-isa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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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 예루살렘
2008년 5월 14일 이근호
본문 말씀: 이사야 52;1-2
(사 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사 52:2)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참 유다 나라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더불어 하나님한테 호되게 당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예루살렘은 다시 영광스럽게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그 시온에 합당한 가치를 빛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과연 이 예루살렘성은 영광스럽게 빛납니다. 보석같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영광스러움이 과연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2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예루살렘성을 화사하고 영광스럽게 단장하는 그 장소가 지상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부터 이미 완벽하게 영광스럽게 단장한 상태가 됩니다. 지상에서 새삼스럽게 손 댈 필요조차 없는 그런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성이 황폐하고 더러워진 것은 지상에서 인간들이 인간들의 방식으로 예루살렘을 단장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러한 역사들은 모두 ‘그림자’입니다. 예를 들면, 하늘에 일단의 구름 선단이 이동하게 되게 그 크고 넓은 면적의 그림자가 아파트나 도로나 빌라나 학교 운동장이나 가리지 않고 빠르게 덮으면서 지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그 그림자를 쫓아가는 것은 곧 실체인 구름을 쫓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 나오는 개념들은 신약을 위한 구름 그림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시온산, 즉 거룩한 성 예루살렘성도 그 그림자 일부에 해당됩니다. 그 그림자들이 어디에서 한데 모이느냐를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겁니다. 그림자가 모여서 실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체와 그림자가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를 따라가야 하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식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성이 일단 하늘로 올라가서 거기서 영광스럽게 단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지상의 예루살렘성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점에 관심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그림자를 실천에 옮기면 하늘 나라 실체로 변화하리라 기대했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고 예수님에게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갈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자는 오직 본인 밖에 없음을 염두에 두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고 말입니다. 즉 육이 아무리 애써도 영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마치 오줌발이 아무리 세차게 나와도 중력작용에 영향을 받아 얼마 안가서 지면에 맥없이 방울방울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림자를 모아서 영의 세계에 진입시키는 작업은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구약의 그림자는 예수님에게 모여져 십자가 안에서 영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영적인 그리스도 몸이 곧 구약의 모든 그림자를 남기게 한 실체입니다. 전에 유대 나라 사람들은 그림자인 이 예루살렘을 영적인 도성으로 변모시켜보고자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만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징벌 밖에 없었습니다. 호되게 파괴되고 수모와 수치 속에 놓였습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 방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영광을 달성코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온갖 더러운 것과 부정한 것이 우상적인 요소의 혼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을 도리어 더러운 우상의 도성으로 변모시켜 놓은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최종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남이 내가 아니고 내가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직 자기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을 만나 그 안에서 지내도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자아를 위한 계열들을 엮어냅니다.
사람이란 자기에게 부딪쳐오는 체험이나 경험들 중에서 자신이 관심두고 기대하는 것들을 따로 모아서 그것으로 엮어서 자기만의 기억의 계열을 구성합니다. 골프에 관심있는 자는 지난 4월 한 달 동안 골프 이야기로 엮게 되고, 바둑에 관심있는 자는 지난 4월 한 달은 자기가 보기에 큰 바둑 축제가 있었던 달이 되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다 나라가 아무리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예루살렘성을 소유하고 있다할지라도 그 관리와 유지에 있어서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투로 예루살렘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사랑하고 아무런 상관없기에 예루살렘성과 그 주민들을 혹독하게 징벌받아도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성도들을 고귀한 신분자로 간주해서 고귀한 계열을 엮어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라는 인간들을 자기 관리 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관리하에 두는 방식입니다. 즉 인간들은 본성으로 자신을 귀한 존재로 간주해서 자기 취향에 맞도록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치장에 나섭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치장하고 단정하는 것하고는 너무나도 거리가 멉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방향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능력으로 자신의 성도에게 손을 대십니다. 말씀으로 귀를 만들고, 말씀으로 손도 만들고, 말씀으로 입도 만드십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그리스도 몸이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하나님은 99마리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위험에서 건져내시는 열심을 보였습니다. 그것은 그 양 안에서 정말 하늘 나라에 귀한 것을 담아놓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는 자가 곧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내 마음에 맞는 인생이 되지 말고 말씀에 의해서 새로 생겨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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