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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사사기 16:4-6 / 삼손과 들릴라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사사기

사사기 16:4-6 / 삼손과 들릴라

정인순 2013. 10. 4. 10:54

이근호

30강-삿15장4-6(삼손과들릴라)-jdg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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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들릴라

 

2008년 5월 18일

 

본문 말씀: 사사기 16:4-6

 

 

(삿 16: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삿 16:5)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일백을 네게 주리라』

(삿 16:6)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삼손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사요 종인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보통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점을 복음을 알고부터 알지만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손은 처신에 거리낌없이 행동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여자를 밝혔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이 궁극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식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생식 본능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것입니다.

 

 

마치 콜라 마개가 없는 콜라병이 허전해보이고, 덩그라니 콜라 마개만 있는 것도 서글퍼보이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남자가 여자를 찾고,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것은 지극한 당연한 현상입니다. 삼손도 지금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불륜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비록 하나님께서 낳게 하셨고 창조하셨지만 부모를 통해서 낳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죄성이 고스라니 넘어오게 됩니다. 처음 아담은 흙에서 만들었기에 처음에는 무죄한 상태였으나 아담 이후의 자식들은 부모의 죄 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의 확산이요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손이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우리는 예외라고 여기시면 안됩니다. 사람이 겉으로는 하나님의 종입네하면서 막상 세상 살아가는 것보면 부모의 죄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에게 나오는 죄성이란 바로 그 여자를 ‘나의 여자’로 여겼다는 점입니다.

 

 

‘나의 여자’라는 관점으로 인해 본인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덮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최종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인간이란 자기 즐거움으로 모든 것을 마감시켜 버립니다. 즐거운 일이면 계속하고 즐겁지 아니하면 그 일을 중지해보립니다.

 

 

교회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결코 발길을 끊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것이 즐겁지 않고 재미없다는 항상 발길을 끊을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자기 즐거움이란 성향에서 스스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이 여자를 밝히는 것은 그것이 재미있게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돈 버는 것도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힘들고 고생해도 재미를 느낀다고 그 고생마저 극복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처럼 삼손은 자기 즐거움에 빠져 있습니다.

 

 

이 즐거움을 가지고서는 신자와 불신자, 하나님의 종과 사람의 종이 분간되지 않습니다. 이 분간되지 않는 공통의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노리는 바를 얻고자 서로를 이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회사든, 교회든, 가정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즉 즐거우면 그 즐거운 것만큼 값을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쪽에서는, 삼손이 여자를 좋아한 만큼 여자쪽으로 향하여 뭔가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삼손이 진정 하나님의 종 답게 처신했다면 자기 즐거움을 포기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원래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사랑 경향’은 비단 개인적인 성격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오로지 나 잘 되는 식으로 돌아가야 옳다는 쪽으로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젊은 엄마가 어린 남매를 남편에게 맡겨놓고서는 남편의 횡포에 못이겨 가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난 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오로지 그 남매를 다시 자기 품으로 되찾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했습니다. 돈만 모르면 도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20년이 지나서 헤어진 사람 찾아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남매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과년한 남매는 자신들을 낳아준 어머니 만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과거를 들먹여서 뭐 할거냐는 겁니다. 인간이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입니다. 그동안 이 남매는 새 엄마를 만나서 화목하게 잘 적응해서 살고 있습니다. 이 고요한 평화에 난데없이 낳아준 엄마를 끼어 넣어 풍지풍파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동안 이 여인은 헛물만 켠겁니다. 일방적으로 세상을 본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리라고 본 것입니다. 자기 정성과 열심이 있다면 하늘로 자기 편이 되어 줄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오로지 ‘자기 사랑’ 밖에 없습니다. 비록 남매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자기 사랑’의 연속일 뿐입니다.

 

 

삼손은 ‘내 여자’라는 인식이 강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패배를 자처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의 약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이름으로 상대의 양심에 호소했습니다. 사랑한다면 모든 비밀을 불어야 된다는 논리입니다. 삼손은 나름대로 하나님이 종임을 유지하게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신의 힘의 근원은 처음에 그는 7줄의 칡넝쿨로 제어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다가 그 다음에 새 줄로 묶으면 된다고 했다가 세 번째 자기 머리카락을 말뚝에 매달게 하면 된다고 했다고 결국에는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바치운 종, 나실인이라서 머리카락에 의미가 있다고 발설하고 맙니다.

 

 

그러나 복음을 싫어하는 상대방에게 관심있는 것은 나실이라든지,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 신앙심이 아닙니다. 오로지 삼손에게 힘을 빼서 여전히 자신의 나라인 블레셋 관리 하에 두는 일이었습니다. 삼손은 비록 여자를 사랑하는 자기 사랑에 머물러 있지만 나실인의 비밀에 담겨 있는 십자가 비밀은 삼손의 무능에서 결코 무능하지 않고 발휘됩니다.

 

 

즉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참으로 어리석은 복음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을 들게 되면 졸지에 화를 내고 원수지간이 되는 겁니다. 곧 저주가 임하는 겁니다. 따라서 믿는 자 안에서는 사랑의 절정이 되는 십자가가 바깥 세상에 나갈 때는 그들을 화를 돋우어서 지옥보낼 수밖에 없는 바탕이 됨을 잊지 맙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십자가 복음이 들어가면 원수가 되는 이 비밀을 알게 된 것을 고맙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