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사기 17:1-6 / 축복과 저주 본문
이근호
32강-삿17장1-2(축복과저주)-jdg0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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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
2008년 6월 1일
본문 말씀: 사사기 17:1-6
(삿 17: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삿 17:2)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일천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삿 17:3) 『미가가 은 일천일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삿 17:4)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삿 17:5)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람 속에 악마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안 믿을려고 합니다. 사람이 출생하면서부터 이미 본성상 악마의 본성을 타고 났습니다. 어느 누구나 날 때부터 천사로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환자들 중에서 병원에 가서 자기 사정을 엑스 레이 사진 촬영을 찍어본 사람은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사람에 속합니다.
그렇지 않고 환자이면서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병에 들어와 있는 줄 모르는 것이 더 큰 화근입니다. 이처럼 성경이란 모든 인간 속에 악마가 어떤 사고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성경을 덮고 사는 사람은 자신이 아주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아무런 심각한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펼치는 사람은 자신의 본 모습을 여기 저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미가라는 사람의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본 모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즉 성경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미가 가정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정작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6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즉 인간들 각자가 마치 왕인처럼 행세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자신을 지적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단단한 방어막을 갖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미가 가정의 처신은, ‘자기가 보기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그 결과라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미 왕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 사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악한 것인가를 압니다. 흔히 성령을 운운하면서도 악령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겸하여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은 반드시 악령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령의 하는 일은, ‘인간이 전적으로 죄인인 것은 아니다’는 이론에서 출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천주교입니다.
천주교는 인간에게도 여전한 선한 요소가 있고, 그 선한 요소는 신에 집어넣어준 선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있는 선한 것들을 발굴하고, 그것은 장려하고 성숙시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비록 성당에 안다니고 절에 가고 그 인간이 인간인 이상, 신의 피조물일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선하다는 겁니다.
그 선한 존재가 다른 선한 존재를 돕는다든지 구제한다든지 하면 그것이 곧 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되어서, 나중에 패자부활전 같은 연옥에 가서 잠간 고생하면 천국으로 재진입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더구나 설사 안 믿고 죽어도 자손들 간에 천주교 신자가 있다면 이미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드려서 하늘에 있는 성자들에게 손 좀 써달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고 그 성자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압력을 넣어서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공덕’ 사상입니다. 즉 공덕을 많이 쌓으면 복이 오고, 공덕이 없거나 너무 적으면 저주가 임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이 바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악마적인 축복과 저주관입니다.
이러한 공덕 사상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미 악마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덕관을 거부하는 사람이 도리어 희한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미가 가정이 어떠한 축복관을 나타내는지 봅시다.
미가라는 분의 어머니 은 1100개의 재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도둑을 맞아서 없어졌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 물건을 가져간 자에게 여호와의 저주를 임하기를 빌었습니다. 여기서 ‘왕이 없어 자기 마음의 옳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저주관’이 나옵니다. 이 저주관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즉 ‘나는 선하다. 따라서 나의 재물도 신이 내린 축복이다. 그런데 어떤 자가 신의 축복으로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가져갔다. 그렇다면 정작 지니고 있을 자격이 못된 자가 지녔기에 거기에는 저주가 임한다’라는 논리가 설치되는 겁니다. 이 저주가 단순히 본인의 이름으로 저주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직접 저주하기를 빌었기에 자기 힘으로 철회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 미가는 솔직하게 자신이 그 돈을 가져갔다고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미가 어머니는 여호와의 저주가 임한 아들에게 염려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끼는 자신이 저주를 받는 것을 좋아할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도 저주를 풀리기를 원하지요.
여기서 ‘자기 소견에 옳다고 여기는 대로’ 실시하는 축복관이 나옵니다. 저주에 대해서 신의 축복으로 커버하겠다는 것입니다. 우선 미가가 모친은 신상을 하나 만듭니다. 이름은 여호와라고 해둡니다. 즉 여호와라는 신도 역시 모양새 없이는 허전해서 못 믿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신을 섬기는 방식도 ‘공덕’ 사상으로 도배를 합니다.
훔쳤다는 그 돈은 몽땅 여호와 앞으로 다 드리고 그것도 모자라도 제사장 복장을 한 어떤 어린 자를 하나 고용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할 일은 보나마나 저주를 풀려서 신의 축복의 대상이 되기를 밤 낮으로 비는 일을 해야할 종교 고용인이 됩니다. 축복과 저주가 이런 식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모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그 결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과연 이런 풍경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강력 변호하기를 오늘날 교회들은 이런 짓을 안하고 일부 극소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이런 사상을 잠시 갖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잘못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립 재단의 교목이나 병원의 원목이나 군대의 군목이나 회사의 사목들의 업무가 바로 이런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기 교회 부흥을 외치는 ‘회목’도 있습니다. 이런 목사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나 집단의 번영과 발전과 축복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주가 풀리기를 기도하면서 새벽제단을 쌓습니다.
참된 목화자란 오직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즉 십자가 복음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며 공덕이란 오직 예수님만이 지녔음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예수님의 덕분으로 이같이 악마가 뒤덮여있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축복과 저주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확정되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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