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사기 14:1-4 / 사랑과 법 지키기 본문
이근호
27강-삿14장1-4(사랑과법지키기)-jdg0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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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법 지키기
2008년 4월 13일
본문 말씀: 사사기 14:1-4
(삿 14: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삿 14:2)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삿 14:3)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삿 14:4)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에 대해서 많은 교인들이 선입감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삼손이 특이점을 압니다. 머리가 길고 그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오는 희한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여자나 밝히다가 그 여자에서 배신당해서 신세 망친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삼손이 사사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사사란 인간들이 자력으로 구원받지 못할 지경에서나 나타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나타났다는 말은 곧 현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인간도 우리를 구원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누군가를 보내주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시대라면 메시아나 사사가 오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기 직전에 예수님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 메시아가 잠시 사라지고 물러가게 되면 이 세상의 본색을 뚜렷하고 나옵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작렬하는 때가 됩니다. 이런 때에는 모든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한 통속이 되어 움직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이 세상에서 신자도 없고 따라서 참다운 교회가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선지자나 사사나 메시아는 이런 기분으로 이 세상에서 사셨던 분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 외에는 아무 것도 믿거나 의지만할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시대에 그들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기준의 사람들은 이 사사나 선지자나 메시아에 대해서 곡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너만 잘났나’하고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게 됩니다. 삼손이 태어날 때에 천사가 와서 계시를 먼저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준 계시에 의해서 계신에 준해서 삼손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이 삼손이 자신의 근본적인 법 관념마저 갈아엎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진리라고 익히 아는 그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는 줄 알았습니다.
삼손을 이해하기에 기존 이스라엘은 너무 무기력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뒹굴고 같이 어깨동무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지금 자신의 따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생각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 넓은 길로 좋아라하면서 달려갑니다. 그들과 격리되는 것이 무섭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를 사람들은 정상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여기에 삼손이 등장해서 예상 밖의 행동을 하게 되면 가까운 부모부터 삼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우선 자신의 결혼문제부터 끄집어냅니다. 사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부모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다른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혼인을 통해서 현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는 블레셋 나라의 약속을 공격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삼손은 그 뜻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그것을 이해못합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의 법을 익히고 있다고 여깁니다.
즉 이스라엘 법에 의하면 결코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그 이방여인으로 인하여 우상이 이스라엘 내부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직 같은 종교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 내부에서 배우자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 부모의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일 때는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시행한다고 해서 거기서 구원의 능력도 덩달아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비단 적의 진영 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의 정신 세계까지 다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기껏 법적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전략으로 다가오시는 겁니다. 그 전략은 바로 인간의 바탕마저 뒤엎어버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농부가 쟁기를 들고 자기 밭고랑을 매는 것은 즐겁게 용납해줍니다. 하지만 아예 자기 밭으로 지하철 공사하기 위해 다 뒤집어 엎는 것은 도저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이렇습니다. 자기가 구축해 놓은 정신의 바탕까지 하나님께서 나서서 뒤집는 것을 즐거워할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아께서는 그렇게 하시고 선지자나 사사는 그렇게 해버립니다. 무기력한 이스라엘의 율법적 관점을 하나님은 삼손을 보내어 갈아엎으려고 하시는 겁니다.
과연 이로서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성공할까요?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구원에 나서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자기 안에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죄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은 알지 못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구원과 병행해서 삼손 본인도 하나님으로부터 바탕이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신학교 처음 입학하게 되면, 앞으로 그 어떤 수모와 모욕을 받더라도 그것조차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고생을 달게 받겠다고 나서다가 신학교 졸업할 즈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께서 헌신하고자 자진해서 나선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아라는 쓰레기통을 껴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자신의 주의 종이나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해도 자신만큼은 힘들게 하지 말고 수월케 인생 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삼손이 바로 그런 오류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여인하고 혼인을 시작했지만 막상 그 때부터 그 여인을 통해 삼손 본인의 자존심이 살아나게 됩니다. 삼손의 바탕도 하나님으로부터 뒤엎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아과시용으로 삼는 오류를 법하는 것이 됩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복수심은 전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다가 조금만 지나만 구원받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삼손 속에는 우리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바탕이 예수님 사랑 쪽으로 바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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