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사기 7:12-14 / 기드온의 칼 본문
이근호
18강-삿7장12-14(기드온의칼)-jdg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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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칼
2008년 2월 10일
본문 말씀: 사사기 7:12-14
(삿 7: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삿 7:13)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자꾸만 이 성경의 경우를 흉내를 내고 주인공 노릇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즉 이 기드온의 상황 속에 자신이 놓여 있다고 가상하고 그 속에서 자신은 믿음으로 큰 승리를 일구어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승리는 이런 행동을 보이라고 주신 승리가 아닙니다.
기드온은 자기에게 들이닥친 상황에서 아는 것은, 이미 승리가 통째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겁니다. 단지 기드온 자신은 거기에 참관인으로 초빙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관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죄와 전쟁을 벌려서 반드시 ‘하나님의 의’가 승리한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의’는 결코 인간이 만들어내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이 지상의 성도나 그 어떤 성자라도 이 ‘하나님의 의’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의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의’로부터 공격당해야 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기드온의 전쟁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미디안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공박하고 계시는 겁니다.
기드온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태 속에서 하나님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더라도 빨간 우체통은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죽 서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그 어떤 사태가 일더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구조, 즉 ‘하나님의 의가 죄를 공격한다’는 구조는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이 변함없이 확고한 구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치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 구조는 오늘날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뭔가 자기에게 위기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들이닥치면 소위 ‘믿음으로 이기자’하는 식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도 또한 심각한 죄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나타났다고 봅니다. 따라서 ‘의인은 믿음으로만 삽니다’. 여기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인간이 뭘 해야되는 것을 의미하는 않습니다. 즉 각가지 행함 가운데 더 하나 보태서 ‘믿습니다’라는 행함을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또 자신을 여전히 의지하는 죄를 보여주는 바가 됩니다.
이 기드온이 참여 하게 된 전쟁은, 기드온이 자기 의견을 개진하거나 개입해야 될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이 어떻게 완료된 상황에서 죄에 대해서 승리하게 되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완료된 승리’를 구경하게 됩니다.
평소의 우리 성도의 생활도 이러해야 합니다. 우연히 툭툭 불거져 나타나는 사건들은 ‘미리 정해진 사건’들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을 미리 예상해도 실제 현실은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형편에 따라 쉽게 없이 상상하고 공상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현실을 폅니다.
성도도 이런 점에 대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쉽새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는 불신앙과는 달리 그 우연한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일관된 뜻이 뭉쳐져서 알게 됩니다. 그 뜻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한 것을 자기 성도에게 주신다는 점입니다.
즉 성도가 새삼스럽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중 나가서 받아 챙겨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료된 승리’가 낯선 사태와 사건을 통해서 덮쳐짐으로서 구원이 된다는 이 일관성을 성도는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이 뭐든지 자기가 하는 행위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주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의 주장은 성경에서 말하는 뜻과 다릅니다. 기드온 전쟁에서 기드온은 자신이 예상한 사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전쟁이 진행됩니다. 즉 기드온은 이번 전쟁에서 자신의 자랑거리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난데없이 밀려온 사태를 기드온은 그냥 맞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매사를 자신이 책임져서 그 좋은 결과를 자기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하여 자꾸만 자기 행위를 개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기 중심을 항상 불안과 좌절을 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미디안 군대는 은연중에 기드온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꾸었던 꿈을 가지고 미리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본인들이 미리 예상하고 우려했던 상황을 따로 상정해 놓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이란 사태를 호전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 외에 달리 시도할 것이 없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기드온 전쟁을 통해서 똑같은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해변에 가보면 파도는 쉴새없이 밀려오고 또 밀려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일을 걱정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잠잠하다 싶으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밀려옵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과오를 범합니다. 즉 “이번 어려움을 또 다시 기드온처럼 믿음으로 극복해야지”라고 말입니다.
결코 기드온 전쟁은 믿음으로 극복한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전쟁은 인간이 믿음이라는 행함을 첨가해야 승리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아예 처음부터 승리가 보장된 채로 밀려들어온 전쟁입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봉사하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봉사했다고 구원받느냐?”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성도에게 있어 봉사하는 것은 그 봉사를 행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가 보장된 사태가 자신에게 덮쳐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을 보고, 비아냥거릴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같이 '그리스도의 의‘의 승리를 쳐다 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새삼 구원받기 위해서 살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주신 승리를 찬미하게 위하여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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