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사기 6: 1-6 / 미약한 이스라엘 본문
이근호
15강-삿6장1-7(미약한이스라엘)-jdg0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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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한 이스라엘
2008년 1월 20일
본문 말씀: 사사기 6: 1-6
(삿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삿 6: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삿 6: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삿 6: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삿 6:5)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삿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이 또 악을 행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악을 행해도 악인지를 모릅니다. 그 이유는 나름대로 악과 선을 구분지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관리할 만한 것만 골라 악이라고 붙잡아놓고서는 그 악을 짓지 않을 자신감을 내심 보입니다. 하지만 악은 그것 뿐만 아니라 그 외부 전체가 다 악입니다.
즉 인간이 선이라고 여긴 것도 모두 악이 됩니다.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해놓은 악은 맞은 편에 결정지어놓은 선과 대비가 되어서 악이라고 규정을 해놓았는데 만약에 그 선이라는 것도 역시 악임이 드러나는 순간, 그 사람이 구분지은 그 경계선 자체가 의미없게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악을 짓고 또 악을 짓는 것은 마음에 결심이 약해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쉴새없이 선과 악을 가름하는 경계선 만들기에 나서게 됩니다.
즉 더 이상 악이 자기에게 쏟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악이 계속 쏟아진다면 자신은 자신이 기대한 자아보다 너무 형편없이 못된 존재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자기가 보기에 너무 실망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와같은 의식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가운데 비롯됩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점에서 뭘 해도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이 선과 악을 나름대로 구분짓는다는 것이 우스운 노릇입니다. 성경은 자기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 누가 은혜를 주고 계신가에 관심갖도록 하십니다.
로마서 5:20에 보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이라는 것을 인간에게서 끄집어내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미되고 부어지게 되는 그 무엇에서 찾고 있습니다. 은혜가 선이고 그 선이 성도에게 닿게 되면 성도는 “나는 무엇을 해도 죄이다”라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개별자 의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뭘 해도 항상 그 의미나 결과는 본인의 가치 측정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개별자 의식은 곧 악이며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고등학교 학급에 15번 학생과 36번 학생이 있습니다. 이 두 학생을 맨날 티격태격 싸우게 됩니다.
이 두 학생이 각자 느끼는 선과 악은 각자 상대와 비교하면서 생각합니다. 15번 학생은 36번 학생을 두고서 자신이 덜 악하고 더 선하다고 여기고, 36번 학생은 15번 학생을 의식하면서 자신이 덜 악하고 걔보다 자신이 더 선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어느날 15번 학생이 화장실에 담배를 피우다가 담임선생님에게 걸려서 호되게 혼나게 됩니다.
15번 학생이 선생님에게 대들기를, 자기만 담배피운 것이 아니라 36번 학생도 담배 피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자신만 나무래냐고 불평을 합니다. 선생님과 학교 당국은 생각은 이러합니다. 어느 개별 학생이 잘못되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학교 분위기 자체가 흡연하는 분위기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해로운 흡연은 결국 인간에게 나쁜 것이 되고, 이 나쁜 습관이 나쁘다고 그 학생에 훈계하려고 하는데 15번 학생은 말하기를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불평을 해댑니다. 그 학생은 나름대로의 선과 악의 기준이 있어, 자신이 호기심을 갖고 있는 흡연은 자기 보기에 악이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학교를 걱정하고 있는 시선에서 보면 그것은 옳지 않는 철없는 의식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룰 때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니,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이 곧 의로운 일이다’라는 식으로 이해를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은 은혜가 드러나니 얼마나 의로운 일을 행사하고 있느냐 하는 식으로 기어이 자신의 옳음을 내세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근본 취지는 특정 개별자가 착하냐 의로우냐가 아니라 너도 은혜를 주시는 그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져라고 하는데 있습니다. 즉 예수님 빼놓고서 모두다 죄인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고 나머지 모든 인간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최종 관심을 두고 삽니다.
바로 이점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미디안 군대를 동원시켜 이스라엘을 치게 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평소의 버릇대로 오직 자신이 자기를 지키는 방식으로 버텨봅니다. 하지만 미디안의 기세는 맹렬합니다. 도저히 이스라엘이 자력으로 버텨내지 못할 지경입니다.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총체적으로 동원해도 당할 수 없는 사태를 당했음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현존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기에 인간에게 압박을 가해서 평소에 인간들이 얼마나 개별자적인 의식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잘남만을 챙기면서 살아오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자를 세우시되 인간들이 평소에 우습게 본 자신들과 꼭같은 인간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세웁니다. 그렇게 되면 결코 구원자라는 자가 자기보다 더 월등히 능력이 있고 우수한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구원자가 되리라는 평소의 상식이 깨어져 버립니다. 처음부터 하나님만이 구원자였고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오로지 자신들의 개별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는 죄를 범해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만났을 때, 모세는 평소에 자신이 늘 다니던 지역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곳은 거룩한 공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사는 특정 누구에게 특별히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은혜에 관심을 갖기를 원해서 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자식이라고 여기기에 징계를 합니다. 그 징계란 곧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아니된다는 그 취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늘 우리 인생이 와해되고 그 한가운데로 하나님께서 현존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서 우리 자존심을 위한 우리 인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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