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사기 1:8-10 / 유다 자손의 임무 본문
이근호
03강-삿1장8-10(유다자손의임무)-jdg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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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자손의 임무
2007년 10월 28일
본문 말씀: 사사기 1:8-10
(삿 1: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삿 1: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삿 1: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었더라』
예수님도 활동하셨던 그 유명한 예루살렘 땅도 원래는 이방민족들이 기거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성을 이제 유다 자손이 치게 됩니다. 이방민족 너희들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제 3자가 보면 매우 불공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방민족이 소유하면 나쁘고 저주받을 짓이고, 하나님 백성이 기거하면 선이요 축복이요 은혜로 간주하는 것이 일관성이 없어 보일 것입니다.
오늘날 실 생활에서 똑같은 행위를 이방인들이 하면 죄가 되고 성도가 하면 축복이 되는 법칙이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요? 그것은 성도가 아닌 자들은 어떤 것이든 ‘자기 소유’라는 의식에서 갖고 있는데서 비롯됩니다. 즉 이방인들은, 무엇을 가져다 다 자신이 애쓴 자기 노동의 열매라는 겁니다. 여기에 비해 성도들은 무엇을 가져도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이해합니다.
그러니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왜 성도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과잉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과잉’ 혹은 ‘잉여’ 혹은 ‘여분의 것’, 혹은 ‘남아도는 것’으로서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나의 것으로 전환하려고 애쓰고 애써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 소유성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과잉입니다. 쉽게 말해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더 넘치는 겁니다.
이 ‘더욱 더’ 부분을 사람이 자기 소유용도로 전환시키지를 못합니다. 미처 잠그지 못한 소도꼭지에서 물이 철철 넘쳐나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의 분량을 능가하십니다. 그야말로 잉여로 나타납니다. 시편 51편에 보면, 이 예루살렘성은 은총으로 세워지게 된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민족들은 이 예루살렘성을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은 어떤 형태로 나타납니까? 흔히들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받는 자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고 여기시겠지만 실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오게 되면 그 은혜가 그 사람을 가만있지 않게 만듭니다. 즉 ‘기능적으로 역사하는 은혜’입니다.
그 기능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유다지파자신이 맹렬하게 적들과 전쟁을 벌리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와 축복이라는 것이 유다지파 이외의 지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간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지파는 힘들게 전쟁하고 다른 족속들은 재미나게 구경만 하니 다른 지파에게만 은혜와 축복이 아니겠느냐 여깁니다.
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다윗지파 그들이 지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힘들다, 아니 힘들다, 수월타, 고되다 여부로 은혜가 판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일을 맡겨주셨다는 그 고마움과 자부심이 은혜로 이어집니다. 남들에게 안 맡긴 일을 나에게 맡겼다는 말은 곧 하나님이 보호 지배 아래에 놓여있는 증거가 됩니다.
창세기 49:10에 보면, 거기에 유다 지파가 장차 되어야 될 신분이 나와있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모세가 마각 지파에게 예언하는 말씀으로 축복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유다 지파는 왕가가 되어야 팔자입니다. 무엇 무엇이 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창조의 발현입니다. 창조란 기존의 것의 폭파를 전제로 하는 일입니다. 유다지파는 왕가가 되기 싫어도 되어야만 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이 왕가 의식은 소유의식이 폭파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이 전제 폭파를 위하여 유다자손만을 친히 전쟁터에 나서야 헸습니다. 앉아서 받기만 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기존의 소유의식이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 곧 은혜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만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머리만 구원받는다”라고 했을 때, 무엇이 행함에 속하는가 하면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구원받을 자는 이미 대머리돤 상태로 “제가 구원받을 자입니다”라고 손드는 자입니다. 대머리 아닌 자가 구원받기 위해 대머리 된다고 해서 구원되는게 아닙니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해 유다지파는 전쟁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된 자로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서 유다지파는 소유의식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에 의해 벌어지는 전쟁은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는 전쟁입니다. 자신이 폭파되는 과정을 겪는 것으로 구원됨이 확인됩니다.
요한복음 16:21에 보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때면 자기 몸은 폭파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이가 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몸이 손상되고 찢어집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여자를 볼 때는 소유의 대상으로 봅니다. 마치 음식을 앞에 두고 음식 자체에 대해서 존경하고 감사하지 않듯이 남자들은 여자를 먹이감으로 보고 삼킬 궁리만 하다고 일단 삼키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는 존재로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 뱃속으로 들어와 버렸으니 말입니다. 있으나 마나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여자가 자기 존재성을 드러내면 남편에게 의견을 제시할라치면, “어디 여자가 하늘같은 남편에게 대들기는 … ”하고 엄포를 놓습니다. 더 이상 여자는 남자에게 대상이 아니라 남자이 차고 다니는 부속품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여기에 맞대항하여 여자들도 남자를 자기 소유물로 간주해서 항상 부려먹을려고 하지만, 매번 결국 양보하는 쪽은 약한 여자 쪽입니다. 이렇게 양쪽도 자기 소유성을 들고 나오면 ‘잉여 사랑’을 찾을 길이 없어집니다. 남아도는 은혜는 가정에서 사라지고 마치 꼭끼는 바지를 입은 것처럼 집안에 여유가 없게 됩니다. 늘 위기사항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자에 해당되는 여자에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기를 가질 때나 놓고서나 놓고 난 뒤에도 얼마동안 여자는 망가집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몸은 찢어지는 아품을 가집니다. 곧 몸의 해체입니다. 그런데 그 해체를 뚫고, 그 안에서 생명이 탄생됩니다. 이로서 여인은 새생명의 창조자가 되어버립니다.
여자는 자기 소유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모든 가치가 자기 낳은 자식에게 제공하려고 합니다. 자기는 죽어도 자식은 살리려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아기로 인한 폭력입니다. 하지만 그 폭력은 축제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만사가 소유의식으로 뒤덮여 있는 세상에서 은혜가 출몰하게 되는 그 은혜와 소유 사이에는 폭력이 오고갑니다.
디모데전 2:15에 보면, “여자는 해산함으로 구원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남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해산되면 우리는 축복이 주는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 고통을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는 겁니다. 자아 깨어지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은혜로 주신 기능을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수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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