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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레 3:1-5 / 화목제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레위기

레 3:1-5 / 화목제

정인순 2011. 1. 13. 10:47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04)화목제(레3,1-5).MP3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04)화목제(레3,1-5).hwp

 

 

4. 화목제(和睦祭)  (레 3:1-5)

 

  날이 갈수록 생활이, 살아가는 것이 혼란스러워 집니다.  세상이 아무런 질서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힘이 있다고 남의 나라를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켜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무서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최근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가 계속 이러한 일들의 연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한 손에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빵을 들고 있지만,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발포하는 것이 인간의, 그리고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가 행하는 이중적인 모습이고, 이러한 모습은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나 자신에게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엄격한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법이 있고, 나라들간의 국제법이 있습니다만, 그것도 다 인간들이 만들었기에, 흔들리는 인간에게 그런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오직 힘있는 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그런 세계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000년의 모습인 것입니다.  쓸데없는 희망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은 없습니다.  유토피아, 말 그대로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세상에 살다보니, 믿는 사람들조차도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고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엄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이 있는데도 갈피를 못 잡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목회자의 책임이 실로 큰 줄 압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렇게 어지럽게 살아갑니까?  왜 우리의 삶이 혼란스럽습니까?  그것은 바로 신앙이 제대로 서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절대 기준인 말씀을 제대로 붙들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니까, 우리의 삶도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원칙에 의해서 우리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무질서한 세상의 원칙에 말씀을 갖다 넣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로 바뀌고 말아서, 우리가 엉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러한 책임을 누가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그 책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습니까?  아마 어떤 분들은 그런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시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고 인간의 책임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옵니까?  바로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면서 에덴동산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것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속에는 뭔가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뱀을 통해서 그 허점을 찌르고 들어온 것입니다.

 

  마귀가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너희들 뭔가 불만이 있지? 하나님은 자기가 주인이라 하면서 매일 너희들에게 시키기만 하고, 너희들이 하나님이 한번 되어 볼래?"

 

  여러분,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입니까?  돈을 몇 천 만원  갖다 준다고 해도 눈이 '뿅!' 하는데, 하나님이 된다니 말입니다.  정말 이것은 인간이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는 유혹이었던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왜 그처럼 자기 이름 내기를 좋아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이 신(神)이 되고 싶은,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까닭입니다.  신만이 사람을 지배하지, 인간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왕들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신의 위치에까지 올라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 좋은 에덴 동산은 다 잃어버리고 지금 이 혼란스러운, 죽어 가는 인생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신이 되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 등은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은 신이 되고 싶은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꿈과 희망을 다 거기에다 쏟아 부어놓은 것입니다.  모두 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비극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지고 파괴된 인간을 벗어버리고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 라고 합니다.  즉,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본래적인 인간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말씀을 묵상하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은 바로 "화목제" 라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번제, 소제를 살펴보았고, 이제 세 번째로 "화목제" 라는 제사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서 우리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을 한번 발견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 제사는 인간이 알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기에, 분명히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제사에 제대로 동참한다면, 우리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빠져 나와서 제대로 된 에덴 동산의 그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리라고 하신, "화목제사"란 무엇입니까?  지금부터 설명을 해드릴 테니까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화목제사" 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에게, "너희들, 내가 잔치를 마련해 놓았는데 와서 음식을 좀 먹어 볼래?"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잔치 상을 잔뜩 차려놓고 우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맛있게 먹는 것은, 짜장면, 짬뽕, 탕수육, 순대국밥 등인데, 그런데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용의가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화목제사" 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맛있어도, 먹으면 뒤로 도로 나오는, 그러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음식 말고, 이제는 먹으면 천국 가는 영생의 고기를 좀 먹으러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사는 먹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번제" 라는 제사는, 짐승을 잡아서 불에 태워서 바치는 것은 똑 같은데, 그 번제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태워 드리는 제사이고, 이 화목 제사는 내장을 꺼내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지만, 고기는 드린 사람이 제사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제사입니다.  먹는 제사입니다.  먹고 즐기는 제사가 화목 제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먹는 것이라고 하면, '껌뻑' 하지 않습니까?  결혼식이고, 장례식이고 먹는 것을 빼버리면 별로 남지를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날씬하든지, 뚱뚱하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다 놓고 먹으라고 내 놓는 그 음식이, 하나님께서 직접 마련하고 준비해서 내 놓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그 제물이 음식으로 도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제사를 드리는 제물은 그냥 단순한 어린양이나 소가 아니고,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안수를 해서, 그러니까 그 짐승은 단순히 짐승이 아니라, 자기 몸을 바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바치는데, 그 바친 제물을 도로 내어놓고 먹으라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살을 먹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를 드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음식을 먹으라고 하니까, 좋다고 가서 먹으려다가 그 음식은 바로 자기가 바친 제물임을 알고 기겁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어떻게 이것을 제가 먹을 수 있습니까?" 라는 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화목 제사를 실제로 성경에 있는 그대로 드린다고 생각을 한번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제사 음식을 먹겠습니까?  아마 그리 마음이 즐겁지 않을 것입니까?  자기가 바친 짐승이, 제물이, 더 나아가서 자기 몸이 음식으로 나와있으니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먹으면 소화는커녕 체해서 소화제를 한 병은 먹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먹지도 못할 음식을 차려놓고 우리를 초청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살점을 뜯어먹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를 먹는다는 것은, 바로 "죽어라" 라는 것입니다. 

 

  아니, 사람이 죽으려고 음식을 먹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음식을 먹는 것은, 모두 살려고 먹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잔치 상을 벌려놓고서 음식을 먹으라고 하시면서, 죽으라고 하시는, 정말 희한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죽지 아니하고는 안 되는, 죽어야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잔치를 열되, 죽어야 하는 잔치가 아니라, 사실은 장례식을 열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에는 다섯 종류의 제사가 있는데, 그 중에도 이 화목제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깊은 의미가 이 제사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원리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은 무엇을 보여 주는 것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 그리고 이러한 인생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복하다고, 잘 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불행입니다.  아니, 죽어 가는 몸을 끌어안고 살아가면서 뭐가 그리도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인생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래 산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 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오겠습니까?  안 옵니다.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면 죽으라는 소리 밖에 안 하니까 말입니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내어놓고 먹으라고 하니까, 어떻게 올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안 오는 것이 이상해 보입니까?  아닙니다.  안 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어떻게 옵니까?  이 세상 잔치에 가면 맛있는 것을 얼마든지 차려놓고서 오라는 데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교회에 나옵니까?  오늘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혹시나 세상 사람들이 어디에 놀러 가는 사람들처럼, 잔치 집에 가는 것처럼 교회에 나오지는 않습니까?  아마, 이런 분은 없을 줄 압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는 아무리 교회에 다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구약의 의미로 말하면,  자기 몸을 제사로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나왔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한 모습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마 하나님이, 그 바친 나의 몸을 도로 내어놓고 먹으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나와도 그 고기를 먹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내 살을 먹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교회에 나온 것은 살려고 왔지, 죽으려고 교회에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몸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살려 주실 줄 알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죽이고, 또 그것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도무지 믿음이 없는 이 세상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만 죽을 줄을 알고도 하나님께 나아옵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 성령을 받은 사람만 교회에 나와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목 제사를 드렸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14장 22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막 14: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떡을 나누어주시면서 자기의 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날, 제자들을 모아 놓고 최후의 만찬을 벌이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자기의 살과 피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이 구약의 제사를 제대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백성들이 화목제물을 먹으면서 자기의 몸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나중에 십자가의 사건에서 다시 조명해 보니, 자기들이 먹은 그 음식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잔치 상을 벌이신 것입니까?  하늘 나라의 아주 좋은 소를 잡은 것도 아니고, 양을 잡은 것도 아니고, 천도 복숭아를 내어놓은 것도 아니고, 바로 자기 아들을 제물로 잡아서 잔치를 베푸시고, 우리들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잡아서 잔치 상을 준비했습니다.  그 잔치 집에 가서 우리가 잘 살기를 바랄 수 있습니까?  그 아픈 하나님의 희생 앞에서, 사랑 앞에서 우리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헌금을 많이 했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까?  좋은 옷 입고 왔다고 폼을 잡을 수 있습니까? 

 

  그냥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를 살려달라고 하겠습니까?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 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인 죄인임을 온전히 깨달을 때, 그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웃고 떠들면서 그 화목제물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숨을 죽이고 말 한마디 못하고, 벌벌 떨면서 그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때에 그들은 그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 인줄은 몰랐지만,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제사의 동참함으로, 그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자기 자랑을 안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내 이름이 없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의 이름만이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만이 있고, 그래서 그분이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죽은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서,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지, 밖에 있고서는 천국에 도무지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꿈틀거리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데서 살리시고, 없는 데서 새로운 것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의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요, 천국 가는 영생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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