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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레 1:1-2 / 사랑의 제사 / 2001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레위기

레 1:1-2 / 사랑의 제사 / 2001

정인순 2011. 1. 13. 10:26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01)사랑의제사(레1,1-2).MP3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01)사랑의제사(레1,1-2).hwp

 

 

1. 사랑의 제사 (레 1:1-2) 

 

구득영   2002-05-08 

                                                                                  

2001, 3, 11

 

*  본 설교는 이근호 목사의 설교테잎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교회의 성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보통 별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만 저만 별난 어른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집에 계시는 그런 시어머니는 비교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얼마나 따지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예민하시고, 날카롭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이젠 우리는 죽었다" 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분을 닮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닮기는 닮으려고 하는데 엉뚱하게 닮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지,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인고 하니,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에게 엄청난, 별 희한한 능력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바닷물을 가르고,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는 이런 능력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스승으로 삼아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배워서 자기도 한번 멋있게 써먹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성경은 하나님을 닮아간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교만이고 욕심이고,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고 이용하려는 불신앙의 대표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닮아간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마음, 그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만들어 간다는 뜻이지, 밖으로 드러나는 어떠한 기적과 같은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보통 힘들고 어려운 분이 아니데, 성경은 이상하게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이 사랑을 빼버리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사랑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닮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닮는 신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선악과를 먹은 모습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죄악의 모습이고, 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분의 사랑을 닮아간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본래 모습을 회복해 가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그 사랑을 품고 변화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이 바뀌어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싫어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마음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말짱 도루묵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이 무슨 마음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사랑' 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공의' 이라고도 하고, '긍휼' 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그러한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나 자신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남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 사랑이라고 하니까, 듣기가 좋지만, 실제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고, 만들어 가는, 아주 적극적인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남을 미워하지 않는 그러한 차원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나 자신의 삶을 베풀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나는 오늘 주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서 우상을 안 섬겼다', '나는 거짓말 안 했다',  '나는 도둑질 안 했다',  '나는 사람을 안 죽였다'  라는 차원에서 보통 이 말씀을 지킨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계명이 말하는 것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있듯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 그래도 내가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저들처럼 허랑 방탕하게 술에 취해서, 노름에 빠져서, 여자에 빠져서 살아가지를 아니하고, 그래도 이렇게 주일에 예배 드리니까, 내 모습이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괜찮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제점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세상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괜찮은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정말로 괜찮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기억이 나지 아니합니까?  "나는 저 세리들과 죄인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런 태도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그 얼마나 책망을 받았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서 흐뭇해한다면, 그런 유대인들과 지금 우리와 무슨 차이가 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책망을 예수님으로부터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 무엇을 안 했다" 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태도를 보시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네가 남을 위해서 희생,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면서 살았느냐?" 라고 묻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얼마나 남을 생각하면서 살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최일도 목사처럼, 거지들을 모아놓고 밥 퍼주자는 것이 아니고, 오세웅 신부처럼 '꽃동네' 라는 마을을 만들어 거지들을 보살펴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사실 이웃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자기 사랑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것을 해야 자기 마음이 만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그것도 우리는 전혀 못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너 자신보다도 얼마나 이웃을 생각하며, 사랑하며 살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가난한 이웃에게 밥을 퍼주는 일도 될 수 있지만, 몽둥이를 가지고 때릴 수도 있고, 거지에게 돈 만원을 주는 것 보다, 가지고 있는 술병을 빼앗아 깨뜨려 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돈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싫어하는 그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돈을 주고 나서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경우에는 돈을 받아서 돈 값한다고 앉아 있는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차라리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빼앗아 버리고, 뺨을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이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살아갈 수도 없고 말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과소비를 해서도 안 되고, 또한 돈이 없다고 해서 기가 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보고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엉터리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담지 않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희생, 봉사하지 못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분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가슴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야 기껏 해 봤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보아야 할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보아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지금 내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을 닮아 가는, 그분을 따라가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르는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남들이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해서, 즉, 집을 팔아서 구제 사업을 한다든지, 불 속에서 아이들을 건져낸다든지 하는, T.V 에도 막나오고 신문에도 대문짝 만하게 나는, 그런 쇼킹한 일을 생각할지 몰라도, 그러나 성경이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 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러시아의 톨스토이라는 사람은 실제로 자기의 많은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서 많은 칭송을 받았지만, 그러나 그 내면에는, 그는 가정에서는 완전히 엉망이었습니다.  아내를 북어 때리듯이 때리는 폭력남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아는 손양원 목사님, 그분은 자기 아들을 총을 쏴 죽인 자들을 대신 자기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서 얼마나 우리가 존경을 합니까?  하지만, 그 일로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은 정신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사랑하라', '희생, 봉사하라', '구제하라' 라고 하실 때,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음을 알고서 시작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다가는 내 집안이, 가정이 박살이 나고, 엉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키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 베풀어주신 것을, 우리는 받은 그것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날마다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 레위기를 시작하는 첫 시간인데, 바로 레위기가 보여 주는 것이 '사랑' 입니다.  이 레위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보여 주고 있는데, 그 제사가, 오늘 설교 제목도 그러합니다만, "사랑의 제사"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레위기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알아야, 그래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혼돈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의 특징인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 중에서 제일 큰사랑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인 것입니다.  한 평생을 뼈가 어스러지도록 일해서 다 자식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얼마나 헌신적입니까?

 

  그러나 왜 그런 사랑을 베풉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지, 남의 자식에게는 전혀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의 자식의 것을 빼앗아서 자기 자식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남의 자식에게 그런 식으로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쳐서 희생하는 부모를 보셨습니까?

 

  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부모이니까 가능한 것이지, 남의 부모에게는 그렇게 못합니다.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자기의 부모님에게도 제대로 하지를 못하지만 말입니다.

 

  깡패의 세계도 보면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을 '의리' 라고 하는데, 그들의 세계에서는 두목이 시키는 것은 반드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시켜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는 일은 우리가 보기에는 남을 해치는, 도저히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자기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의 사랑이 없으면, 그 조직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를 나누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리잡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사랑이라고 말해도, 우리는, "아니야!"  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라고 하다가, 6절에 보면,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러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해야 사랑이지, 자기들끼리 무엇을 한다고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그 가운데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는 열성이 있어도 말입니다.

 

  그러면 이 진리는 무엇입니까?  아니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만이 진리이고, 그 주님을 이야기하는 말씀만이 오직 진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는 사랑이란 다 거짓이고 엉터리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사랑을 우리는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중심으로 모입니다.  다른 것들은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끼어 들 틈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도 바로 이런 사람들만 모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이란 바로 주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그래서 주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만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올 수도 없지만, 설령 와 봤자, 아무런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성경은 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씀합니까?  왜 그분만이 사랑이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쉽게 초를 가지고 사랑에 비유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너무나 사랑의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초가 불을 밝힐 때에는 그냥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녹입니다.  즉, 자기가 없어지면서 불이 빛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남을 사랑하라고 할 때는 반드시 자기의 모습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없어지고 마모되어야만 합니다.  자기의 것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으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왜, 부모와 자식간의 그 희생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 들지를 못하고 세상적인 사랑에 그칩니까?  그것은 바로 부모의 희생이 자기 자식에게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서 없어지는 만큼 자식에게는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따져보면 손해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방적으로 베풀어주는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뭔가 대가를 바라고 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들이 못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정말 원수 된 자요, 마귀의 종들이었습니다.  불순종의 자식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참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고, 그 대신 자기 아들을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전부를 다 내어 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바 되는(롬 8:32), 다시 말씀드려서, 자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쓰레기통에 완전히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을 위해 자기 아들을, 아니 자기의 전부를 다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정말 믿을 만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을 완전히 내어 맡겨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님을 바로 보면서, 우리는 오직 이러한 참 사랑을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레위기서가 제사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뭐 드실 것이 없어서 양을 잡아 바쳐 라고 하셨습니까?  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설이나 추석이 되면 제사를 드립니다.  평소에는 술에 취해서 사는 사람이라도, 이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되면, 온갖 정성을 다해서, 목욕을 하고, 그렇게 드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위 봉안, 참신, 강신, 헌작, 독축, 삽시, 합문 등의 순서로 한다고 해서, 또 음식을, 홍동백서, 생동숙서, 접동잔서, 어동육서 한다고 해서 참 제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가짜 하나님께, 즉 우상에 바치는 것입니다.  참 제사란 매일 양을 잡아서 그 피와 살을 바치면서, "바로 제가 죽어야 하는데, 오늘도 그 대신 양을 바칩니다" 라고 하면서, 살려주신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지내는 것만이 참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만이, 그것만이 참 사랑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마음에 부담을 잔뜩 가지고 형제들끼리 모여서 자기 자랑이나 하면서 돈이 없는 사람을 기나 죽여가면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제사는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상에게 지내는 제사 말고 참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참 제사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가 예배드림도,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랑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예배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날마다 날마다, 여러분의 목숨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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