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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마가복음 10:23-27 / 낙타와 바늘 구멍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마가복음

마가복음 10:23-27 / 낙타와 바늘 구멍

정인순 2011. 1. 7. 10:48

 

 

본문 : 마가복음 10장23-27절
제목 : 낙타와 바늘구멍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낙타와 바늘 구멍
이근호
2009년 1월 25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0:23-27

(막 10:23, 개역)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막 10:24, 개역)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막 10:25, 개역)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막 10:26, 개역)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막 10:27, 개역)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인간하고 협의하거나 물어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이 말씀을 우리가 안 들은 걸로, 못 들은 걸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돌리려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 원칙대로 밀어붙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우리 외부에 우리가 원치않는 현실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시는 이 현실을 오늘날 현대인들은 멀찍이 보고 있지만 그 현장에서 실제로 들었던 그 제자들은 경악을 금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희망을 걸고 예수님을 추종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먼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늬앙스를 접하는 것과 실제로 예수님의 코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반응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대체 무슨 충격적인 발언을 했기에 제자들은 한결같이 경악을 한 것입니까? 단순히 ‘돈 많은 부자만이 지옥감’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뉘어주지 않는 자만 지옥감‘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인간들의 자기 자리조차 제대로 모르는채 감히 천국 가기를 꿈꾸고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십계명 제 1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기 말라’입니다. 따라서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을 지극 정성으로 섬기고, 존중하고,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데 있어 한치의 오류도 범하지 않기 위한 마음 가짐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청년은 자기 속에서 생산되는 그 선이 곧장 이어져 예수님에게도 같은 성질의 선함으로 이어져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즉 이 부자청년은 하늘과 땅이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 부자 청년 자신과 자신의 것, 즉 돈과의 단절을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만 부자 청년은 근심하여 뒤돌아 가버렸습니다. 즉 부자청년은 하나님에 요구하는 현실과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이 단절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낙타와 바늘 구멍’으로 설명하고 계시는 겁니다. 부자 청년을 낙타로 표현하고 천국문을 바늘 구멍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좁디 좁은 바늘 구멍을 낙타 앞에 내세우는 것은 낙타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천국문을 가로막는 분이 딴 분이 아니라 예수님이 천국문을 가로막는 겁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막상 메시야를 만났다고 여기면 그다음은 곧 바로 천국의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막상 메시야를 만난 사람은 본격적으로 그 메시야가 심판주이심을 더 깊이 알아가는 수순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도에게 행복이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은 낙타에 불과하고, 천국문을 활짝 열리린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낙타에게는 철저하게 바늘구멍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성도에게만 주어진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예 천국은 없는 겁니까? 아닙니다. 바로 ‘바늘 구멍’이 있는 그 지점이 천국이 있는 지점입니다. 바늘 구멍이나 마나 천국은 분명히 있고, 그 안에서 천국이라면 자동적으로 그 밖에 있는 모든 세계는 지옥입니다.

그러니까 지옥에 있는 낙타들 끼리 교회 만들도 신앙생활을 아무리 해봤자 낙타의 덩치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을 뿐이고, 바늘 구멍은 결코 넓혀지지 않는 겁니다. 남도지방(전라도 남쪽 지방)에서는 지금도 명절이 되면 풍어제를 지냅니다. 그동안 고기 많이 잡히게 해주신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어제나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교회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어 다같은 짓입니다. 그 공통점이란 곧 자신의 죄를 모른다는 겁니다. 

다같이 낙타들의 행세에 불과합니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태어난 공간과 영역 자체가 이미 저주받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들은 자력으로 절대로 부자청년 같은 지옥적 안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기껏 그들이 노리는 것은 기적입니다. 마태복음 7:21-23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며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지만 에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배척해버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인이며 자기 앞의 천국문은 바늘 구멍인 것으로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인간은 있을 수 없다”입니다. 왜냐하면 바늘구멍을 통과할 낙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직 십자가 전입니다. 당연히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베드로가 물을 위를 걸었다고 해서 그것을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물 위로 걸은 낙타 덩치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전도해도 낙타 덩치라는 점에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천국문은 여전히 바늘 구멍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이후에 보면 분명이 바늘 구멍을 통과한 자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분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낙타 주제에 바늘 구멍을 통과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답변은 갈라디아서 6:17에 나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여기에 ‘예수의 흔적’이 나옵니다. 예수의 흔적은 갈라디아서 6:15에 보면 십자가를 말합니다.

예수의 흔적은 두 가지 점을 말해줍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직접 주신 흔적이라는 겁니다. 즉 인간들이 자기 몸에다 십자가 문신 새기는 것은 소용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흔적은 결코 인간 본인을 자랑하라가 아니라 예수님만이 자랑하라고 예수님이 새긴 흔적이라는 겁니다.

그 흔적을 요한복음 16:20-21에 보면, 임산부가 아기를 임신한 것에 비유합니다. 기뻐하라는 겁니다. 너 자신의 행함으로 기뻐하라가 아니라 너 안에 들어있는 아기로 인하여 기뻐하라는 겁니다. 임산부의 아기 가짐은 결코 임산부의 ‘자기 흔적’이 아닙니다. 그녀는 ‘남자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즉 남자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이 때부터 성도는 자기 몸은 해체되고 그 안에 말씀이 들락달락하면서 마치 아기가 자궁을 발로 차듯이 말씀이 수시로 우리 일생을 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구원과 평생이 삶은 결코 우리 자신의 노동과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는 겁니다.

예수님의 기도하신 떡이 살되고, 기도하신 포도주 잔이 피가 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그 살과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준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기껏 우리 인간들이 하는 짓은 빌라도 대야에다 대고 손 씻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이런 우리의 행위에 영광을 입히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유월절 피가 우리에게 주어진 심판을 능가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