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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마가복음 10:17-22 / 영생과 돈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마가복음

마가복음 10:17-22 / 영생과 돈

정인순 2011. 1. 7. 10:38

 

 

본문 : 마가복음 10장17-22절
제목 : 영생과 돈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영생과 돈
이근호
2009년 1월 18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0:17-22


(막 10:17, 개역)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8,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막 10:19, 개역)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 10:20, 개역)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막 10:21, 개역)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막 10:22, 개역)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오늘 내용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집니다. 전반부는 영생에 관심이 있는 어떤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과 그리고 예수님이 제시하는 십계명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는 겁니다. 이 전반적의 내용으로만 보면 오늘날 교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하고자 교인의 표본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와서 이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거부당합니다. 기가 막힐 결과입니다. 영생을 추구하는 종교성을 갖추었고, 너무나도 양심적으로 살았던 사람, 이런 사람 같으면 천국에 가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될 사람 같았는데 막상 이 사람의 모습은 예수님과 결별하고자 하는 결별 수순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집에 처박혀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찾아온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집에만 있었다면 자신이 마치 구원받는 사람이라고 계속 자부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님과 대면해보니 전혀 자신이 영생 얻을 인물이 못됨이 들통난 것입니다.

이 부자청년의 등장으로 모든 인간들이 시도하는 바의 막장이 어디쯤인가가 밝혀졌습니다. 부자청년은 모든 땅의 사람들의 대표선수입니다. 사람들이 시도하고 교회들이 시도하는 모든 것이 이 부자청년이 시도하는 것이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결국에는 예수님과 헤어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몰라서 그러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몰라서 그러합니다. 우선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는 비록 부자였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 영생을 얻는 것이 인생에 있어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대견스러운 종교심입니까? 그리고 그 신에게 나아가려면 당연히 신의 말씀인 십계명을 준수하는 것이 신앙인으로 당연하고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훌륭한 의식입니까? 하지만 이 모든 양심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즉 인간들 주변에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 같이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이 아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지독스럽게도 융통성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인간 취급을 해주지를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오늘날 매스컴이나 교회에서나 주변에서 만나는 그 모든 인간들은 전부다 옳은 인간이라고는 없습니다.

이 점이 우리를 속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동안 우리는 소위 신앙심 있다는 사람들의 소문에 얼마나 주눅들여 살아왔습니까. 테레사 수녀나 성자나 성인 반열에 속한 대단한 신앙인들의 업적에 기세가 눌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사기에 놀아날 필요없습니다. 못 먹는 감 찔려나 본다고, 나 역시 본디 그 인간 아닌 것처럼 그들도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사람들이 시도하는 각종 종교적이고 신앙적이고 복음적인 행태나 선행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인간 아님’을 수선하기 위해 수선책이었습니다. 덧대기에 덧대기를 반복하고 수리에 수리를 반복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인간 아니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부자청년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어릴적부터 십계명을 지켜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면 새 사람으로 간주해 주리라 보십니까?

예수님이 제시하는 새 사람의 요건은 요한복음 17:14-16에 잘 나와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즉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라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정말 영생을 얻을 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으면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부자청년은 ‘어릴적 부터’라는 말을 꺼내면서 자신의 과거에 어떤 의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인 것처럼, 참으로 영생얻을 자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에 국한된다는 겁니다.

잘 했다 하는 것도 생각지 말고 잊어야 하고, 못 했다 하는 것도 생각지 말고 잊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래나 저래나 이 세상에서 살면서 겪은 모든 것은 결코 그 사람을 새 사람 만들어내는데 기초로 작용하지를 못합니다. 오직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미 고장나버린 인간을 하나님이 원래 의도한 인간으로 변모시키십니까?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아는 하나님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취지에서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거론하신 것이요 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신 것을 거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선하심을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가 새로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십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십계명을 주는 자면 누가 그 십계명을 받을 자인가 하는 점입니다. 십계명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호세아서에 잘 나와있습니다. 거기에 나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마냥 지엄하시고 위엄으로 가득찬 채 하늘에 머물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기 여인을 친히 찾아 나서시는 남편의 모습으로 등장하십니다.

즉 성도와 하나님과의 사이는 부부사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자는 간음한 여인입니다. 행실이 나쁜 여인입니다. 자신의 남편이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남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그런 철없는 여인입니다. 이럴 때 참 하나님께서는 그 뒤 치닥거리를 다 해주시면서, “너 같이 훌륭한 여인이 왜 이 남편보다 못한 남편을 찾아 헤매느냐”하시면서 강한 질투심으로 줄기차게 뒤쫓아 다니시던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사랑의 모습이 십계명의 완성인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성도는 법에 묶인 자가 아니라 성령을 받아서 영생의 씨가 이미 주어진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법으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가서 사랑으로만 대화하십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볼 때에, 예수님의 품속에서 나오는 사랑을 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 청년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로서 그 청년은 예수님을 만난 그 최초의 순간부터 예수님과 결별하는 수순을 밟은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을 보면서 법으로 보지말고 사랑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로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